글쓰는 여자의 공간 - 여성 작가 35인, 그녀들을 글쓰기로 몰아붙인 창작의 무대들
타니아 슐리 지음, 남기철 옮김 / 이봄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게 다 은행 잔액의 차이다. 엉뚱하게도 '글쓰는 여자의 공간'을 읽으며 작가의 서재를 구경하다가 든 생각이다. 명작을 쓰지 못해서도 억울한데, 대체 명작을 뽑아내는 사람들은 터를 잘 잡아서인가! 이런 경망스럽고 불순한 호기심과 다른 사람 인스타그램 구경보다 재미있는 다른 사람 집구경이, 특히 작가들의 서재가 아닌 글 쓰는 작업실이 궁금해서 집어 든 책이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의외로 작업실의 스펙트럼이 넓고, 작업실을 규정하는 두 가지 결정적 요인은 개인의 재력과 성향, 이 두 가지가 아닐까 싶었다. 




 '글쓰는 여자의 공간'은 버지니아 울프, 프랑수아즈 사강,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실비아 플라스(내가 좋아하는 순서다) 등 여성 작가 35인의 글쓰는 공간을 담고 있다. 집은 그 사람의 성정을 담았다면 작가가 글을 쓰는 공간으로 쓰는 곳은 작가의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 작업실은 때로는 부엌, 개인 서재, 호텔, 카페, 혹은 집안 곳곳이 되기도 했다. 

 나탈리 샤로트는 '글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허공에 뛰어드는 일과 흡사하다. 카페에서라면 쉽게 뛰어들 수 있다'라고 말하며 전화를 받을 일도, 누군가 자질구레한 집안일로 자기를 찾는 일도, 불쑥 방문을 여는 사람으로 방해받을 일도 없는 카페를 글쓰기 공간으로 칭송했다. 이 책은 가정과 개인, 사회의 여러가지 방해와 비협조 속에서 가까스로 자기의 글쓰기 공간을 찾아내 스스로에게서 무언가를 뽑아낸 사람들의 마음속이 한가득 있다. 




 35명의 작가들의 제각각 글만큼이나 다른 사정들이 있어서, 물론 집이 여러채 있고 글쓰기를 위해 로지아를 지어 글을 썼다는 애거사 크리스티 여사도 있고, 개인 비서를 두고 사자 모피를 깔개로 둔 서재에서 작업한 카렌 블릭센 같은 작가도 있다. 

 서재는 글쓰는 공간이 될 수 있지만 글쓰는 공간이 서재인 것은 아니어서, 이 부등식에는 오히려 글 쓰는 공간보다 중요한 것도 있으니, 작가 개개인의 성향과 삶의 사이클 같은 것이 포함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실비아 플라스는 결혼과 출산 후 온전히 글쓰기에 집중할 수 없었고, 버지니아 울프는 몽크스 하우스의 헛간을 개조해 글쓰는 공간으로 활용하다가 마침내 정원 구석에 목재로 된 작업실을 짓고 나서야 더욱 마음편히 글을 쓸 수 있었다. 왜 그 전에는 마음이 불편해서 글을 쓸 수 없었냐고? 어머니 사망 후 열세 살부터 9년간 아버지를 뒤치다꺼리했고 의붓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한 그가 아버지 사후 24년 후 쓴 글을 보면 엿볼 수 있다.



 "아버지의 생일이다. 살아 계셨다면 오늘로 아흔여섯 살이었겠다. 아버지도 다른 사람들처럼 아흔여섯까지 살 수 있었을 텐데, 다행히도 그러질 못하셨다. 만약 그랬다면, 아버지의 인생은 내 인생을 완전히 끝장냈을 것이다. 살아 계셨다면 어땠을까? 나는 글도 책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실비아 플라스에 관해서는 엇갈린 증언들이 나온다. 주로 알려진 사실은 테드 휴즈와 실비아 플라스가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살았고, 육아와 가사를 병행하던 실비아 플라스는 그야말로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는 증언과, 부부가 일을 나누어서 했다는 증언(번역가 유타 카우센)이 있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책 속 사진의 실비아 플라스는 책상 위에 올라가 앉아 책을 들여다보거나 뒷마당 테이블 위 타자기에 손을 올려놓고 있다. 사진은 순간이어서 그가 연속 몇 시간 동안 작업을 했는지, 혹은 일할 시간을 넉넉히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단, 실비아 플라스가 남긴 말은 그 시간의 흐름이 녹녹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많이 써보면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작품을 잘 쓸 때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해야 할까?"




 서른다섯 명의 문체만큼이나 다양하고 제각각인 글 쓰는 공간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보게 되는 책이다. 주로 세상에 이제는 없는 작가들이 많지만, 엘프리데 옐리네크, 니콜 크라우스처럼 살아있는 작가도 다루고 있다. 제인 오스틴처럼 초상화로 사진을 대신한 작가도 있고, 인물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호사를 누린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안네마리 슈바르첸바흐 같은 작가도 있다. 오죽하면 '식탁에 앉은 안네마리 슈바르첸바흐는 꼭 타락한 천사 같았다'고 무려 토마스 만이 말했겠는가. 



 

 주로 작가의 서재를 구경하다보면 높은 천장과 시원한 전망, 책으로 가득한 서고 같은 것으로 주눅이 들곤 하는데, 이 책 속의 작가들은 그 스펙트럼이 참으로 넓다. 또한 어떤 경우에는 지정학적 위치가 작품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해리엇 비처 스토가 뉴잉글랜드 메인 주에 살고 있었으니 다행이었지, 남부 연합군 지역에 살았다면 과연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나올 수 있었을까? 공간에 대해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다시 자연스레 앞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니까 이 책에 소개된 작가 중 메리 매카시는 한나 아렌트와 절친이었지만 시몬 드 보부아르는 메리 매카시를 좋아하지 않았고, 카슨 매컬러스는 엘리자베스 보옌과 친했지만 그는 또 안네마리 슈바르첸바흐를 사랑했고..읽다 보면 글쓰는 여자들의 굳게 앉은 뒷모습 그림자가 보일듯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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