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증보판 리라이팅 클래식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마도 첫만남은 국어교과서였을 것이다. 일야구도하기와 허생전, 양반전, 호질 등이 국어교과서에 실려있다. 하루 밤 사이에 강을 아홉 번이나 건너면서도 태연자약하던 정신상태가 기이했던 인물이라는 생각. 밤에 물흐르는 소리 하나로 수십개의 비유를 만들어낼 수 있는 놀라운 인물이라는 생각. 호랑이의 입을 빌려 매섭게 세상을 쏘아대고 있구나 하는 생각 등등이 떠오른다.

그리고 두 번째 만남은 <삶이 보이는 창>에 ‘한국철학의 이 한마디’를 연재할 때, 그에 대하여 나름대로 연구(?)할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그때 그에게 푹 빠져버렸다. 이덕무, 박제가 등의 그 주변인물의 기이한 면면은 그만두고라도, 그는 나와 몸집이 비슷하고, 나보다 더 술을 좋아한다. 그리고 근성상 기존체제와 문학적으로 사상적으로 타협하지 않는 아주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그 때 읽었던 책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이 <비슷한 것은 가짜다>(태학사)와 <나의 아버지 박지원>(돌베개)이다. 아참, <열하일기>(솔)도 그때 읽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틈만 나면, 한 일년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박지원에 미쳐살고 싶다고 술만먹으면 떠들어댔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 소망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삶이 윤택해졌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다가 올해 고미숙씨가 쓴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그린비)을 읽었다. <열하일기>를 읽어만들기 위해 새겨놓은 주술서같은 아주 매력적인 책이다. 이 책을 읽은 이후, 나는 다시 박지원 열병을 앓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병적 증세 중 하나가 <열하일기>완역본을 찾아 읽어보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러나 아뿔사! 민족문화추진회에서 나온 <열하일기>완역본은 이미 절판되고 없었고, 대형서점에도 재고가 없었으며, 헌 책방을 뒤져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소망 하나가 생겨버렸다. <열하일기>를 다 읽어야겠다는 소망. 그리고 소망 하나 더. 그대도 고미숙씨의 주술에 걸려보라는 소망!

고미숙씨의 미덕은 고전을 전혀 고전(?)스럽지 않게 소개하는 능력과 박지원을 읽지 않으면 안되게 만드는 수백 수천개의 매력적인 문장들을 펼쳐놓았다는 점이다. 비디오 평론식으로 평가하면 별 다섯 개를 주고 싶은 책.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도 쓸쓸하냐 - 2004년 1월 이 달의 책 선정 (간행물윤리위원회) 운문산답 1
이아무개 (이현주) 지음 / 샨티 / 200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고르는 데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내 경우는 나의 기분이 책을 선택하는데 크게 좌우될 때가 있다. 기분이 우울할 때에는 이성적으로 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우연을 가장한 운명이라도 만나려는 듯 그렇게 내 감각에 따른다. 때로는 표지디자인 때문에, 어떤 때는 제목 때문에, 어떤 때는 나를 위로해주리라 믿는 저자 때문에 책을 고른다. 아내에게서 책을 그만 사보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듣고, 서점에 들어가 고른 책이 다름 아닌 ꡔ지금도 쓸쓸하냐ꡕ(이 아무개/샨티/2003)이다. (책을 그만 사라는 충고를 듣고 곧장 서점으로 달려가는 꼴이라니…)

이현주 목사는 자신의 단독 저서일 경우 이제는 자신의 본명을 밝히지 않고 이 아무개라고 저자이름을 써놓는다. ‘아무개’는 특정인을 지칭하는 지시어가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현주 목사는 그러니까 자신이 특정인으로 불리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원래 감리교단에 몸을 담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마저 자진하여 버림으로 홀홀단신 목사일을 하고 있다. 어디에도 얽히거나 구속되지 않으려는 그가 사실은 조금 부럽기도 하고 많이 두렵기도 하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마냥 버리게 만드는 것일까? 그는 직업상 기독교 목사이지만 그의 저술에는 하느님과 예수님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부처가 나오고 공자, 노자, 장자도 나온다. 그러니까 그가 믿는 하느님은 -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 이미 기존의 기독교 범주에서 멀찌감치 벗어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목사이면서 목사가 아니다.

이 책은 두개의 자아가 대화하고 있는 형식으로 짜여져 있다. ‘몸나’와 ‘얼나’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어찌보면 정신의 스승과 자신이 대화를 하는 것 같기도 한 이 형식이 참으로 독특하다. 매일 매일 스스로 반성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이룰 수 없는 경지. 그는 매일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ꡔ대학(大學)ꡕ에서 나오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日新 又日新)’의 경지라 하겠다. 책에 나와 있는 한 대목 :

“선생님, 오늘 종일토록 참 쓸쓸합니다”
“알고 있다. 축하한다.”
“축하한다고요? 무엇을 말입니까?”
“내가 하루종일 쓸쓸했다는 사실을. (……) 쓸쓸함도 너에게 온 손님이다. 지극 정성으로 대접하여라.”
“어떻게 하는 것이 쓸쓸함을 잘 대접하는 겁니까?”
“쓸쓸한 만큼 쓸쓸하되, 그것을 떨쳐버리거나 움켜잡으려고 할지 말아라. 너에게 온 손님이니 때가 되면 떠날 것이다.”

‘모든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되 아무것도 움켜잡지 말고 아무것에도 움켜잡히지 마’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마도 이 아무개의 삶의 목표가 아닌가 싶다. 그는 그렇게 매일 매일을 자기 자신과 대화하며 - 어쩌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하느님과 대화하며 -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목사이면서 목사가 아닌 이 아무개의 이 책을, 신자이면서 신자가 아닌 나의 아내에게 건네줘야지. 그녀에게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으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방각본 살인 사건 - 상 - 백탑파白塔派 그 첫 번째 이야기 백탑파 시리즈 1
김탁환 지음 / 황금가지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역사소설을 읽는 것은 재미와 교양의 두 마리 토끼를 좇는다는 의미에서 즐거운 일이다. 특히 김탁환의 소설은 시대적 고증뿐만 아니라 문체의 탁월함을 드러낸다. 내가 처음으로 그의 소설을 접한 것은 [나, 황진이](푸른역사)였다. 이 소설은 일반판과 주석판을 동시에 출간했는데, 주석판에서는 일반판에서는 볼 수 없는 자세한 역주를 쪽마다 빽빽이 달아놓았다. 자칫하면 글의 흐름을 방해할 수도 있는 이 주석판을 사서 읽은 이유는 김탁환의 치밀함을 경탄했기 때문이다. 황진이의 1인칭 독백체로 처음부터 끝까지 밀고가는 이 소설은 그야말로 황진이의 내면사일 뿐만 아니라 당대의 지성사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읽을거리가 풍부하고 다채롭다. 특히 기생이 풍속사라 할 만큼 기생생활 관련 용어들을 철저하게 고증하고 있어 언어학적으로도 매력적인 책이다. 어찌되었든 그 이후로 나는 그의 소설은 의심없이 사서보고 있다.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이라는 매력적인 제목을 달고 한 소설가 - 당대 용어로는 매설가 - 의 일생을 그린 작품을 통하여 나는 조선 후기의 소설풍속사를 공부했고, [불멸](미래지성)을 통하여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안팎의 정치, 전쟁사를 생각했으며, [허균, 최후의 19일](푸른숲)을 통하여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홍길전동’의 저자 허균의 생각을 더듬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조선 역사와 관련해서 나는 김탁환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가 [방각본 살인사건-백탑파 그 첫 번째 이야기](황금가지)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소설을 선보였다. 백탑파가 누구인가. 박지원을 비롯하여,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백동수 등 영정조시대에 백탑 근처에 살면서 당대를 고민하고 미래를 준비했던 최고 지성들이 아니던가. 그런데 김탁환은 이들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이들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를 그물망으로하여 배경을 형성하면서, 의문의 연속살인범을 주인공인 이명방이 추적하는 추리소설의 형태를 취함으로 얼핏보면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닮기도 한 소설을 만들어놓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역사적 인물을 배경으로 하고, 역사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당대의 소설풍속사를 재현한다. '방각본'이라는 말 자체가 이제 소설은 필사단계를 거쳐 인쇄단계에 도달했으며, 그많은 당대의 사람들이 소설을 즐겨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그의 소설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과 맥을 같이 한다.

당대 지성인에 대한 생생한 모습과 소설풍속사에 대한 지식, 그리고 추리소설적 흥미진진함까지 모두 갖추고 있는 이 소설은 역사소설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언제든지 자신있게 권할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추신 : 그는 소설의 끄트머리에 자신이 참조한 자료를 열거하고 있는데, 나는 이 목록을 보다가 2권의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1. 홍대용, [산해관 잠긴 문을 한 손으로 밀치도다](돌베게)
2. 김영호, [조선의 협객 백동수](푸른 역사)

그리고 그가 참고한 책들과 내가 읽은 책들이 많이 겹침을 알고 묘한 동지애를 느꼈다. 어쩔 수 없는 먹물근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크라테스 카페
크리스토퍼 필립스 지음, 안시열 옮김 / 김영사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얼마전 플라톤이 쓴 [향연-사랑에 대하여](문학과 지성사)를 읽었다. ‘함께sym 먹고 마신다posium'의 뜻을 가지고 있는 이 책은 그야말로 그리스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함께 먹고 마시며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물론 등장인물 중 주인공은 소크라테스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을 기억하기보다 분위기를 기억한다. 술을 먹는 자리에서도 철학적 대화가 가능했던 당대의 분위기와 술을 먹으며 현실의 부조리와 부패를 성토했던, 그리고 평등한 미래사회를 갈망했던 젊은 날이 묘하게 겹쳐지며 나를 흥분시켰다. 지금은 멀어져만 보이는 그 분위기. 시대보다는 내가 타락했기 때문이리라.

그후 나는 크리스토퍼 필리스가 지은 [소크라테스 카페](김영사)를 읽었다. 지은이 필리스는 소크라테스의 말 중에서 “음미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말에 깊이 감동하여 넉넉한 삶을 살 수 있는 자유저술가의 길을 접고 소크라테스처럼 살기를 결심하여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 책은 어떻게 그가 길거리 철학자로서 살게 되었는지, 그와 철학적 대화를 원하는 곳이며 어디든지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그 대상이 누구든지 -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죄수에서 대학교수에 이르기까지 - 대화하고, 이야기하고픈 소재가 무엇이든지 진지하게 접근하여 서로의 지혜를 확인하는지, 기록하고 있다.

그는 가르치려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는 오히려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에게서 배우고 서로를 고양시키고, 다양한 관점에서 사고하게 하고, 굳이 결론을 내리려하지 않는다. 그는 철학을 강연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하기를 실천한다. 물론 철학하기의 방법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골방에 처박혀 심오한 형이상학적 세계를 구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고, 다른 철학자들의 사상에 깊이 매료되어 그 철학세계에 빠져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바로 소크라테스의 방법을 선택한다.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묻고 답하는 방법, 대화하는 방법.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았던 것은 그의 교육내용이나 방법이 아니라, 그가 과거의 자신의 길을 버리고 과감하게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었던 용기다. 그것이 나에게는 없기에.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말에 밑줄을 처놓고는 망설이는 것이다.

“어떤 일을 행하게 될 때까지는 주저하기 마련이다. 주저함은 뒤로 물러서는 것으로서 비효과적인 결과만을 낳는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창조하는 데에는 하나의 기본적인 진실이 있다. 이 진실을 모르면 수많은 아이디어가 사장되고, 멋진 계획들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 진실은 바로 결행의 순간에 그 결정으로부터 모든 사건의 흐름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상황이 긍정적으로 바뀌어, 보이지 않는 사건과 만남, 그리고 꿈도 꿔보지 않았던 물리적 지원이 밀려온다. 무엇을 할 수 있든, 무엇을 꿈꿀 수 있든 간에, 일단 시작하라. 용감함에는 천재성, 힘, 마술이 들어 있다. 지금 시작하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기말고사 기간이다. 낮부터 새벽까지 정신이 없다. 꼭 이렇게까지해서 살아야하나 생각해보다가도 결국 제자리다. 어쩔 수 없다. 구르는 재주밖에 없는 굼벵이인 것을 깨닫는다. 어제는 오늘 아침에 있는 ‘동화 읽는 아빠 모임’의 발제를 맡았기에 준비하느라 밤을 꼴딱 새웠다. 아이들 시험대비 때문에 책을 읽지 못한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그리고 발제할 책을 만만히 본 것도 잘못이었다. 폴 아자르가 쓴 『책․어린이․어른』(시공주니어)는 그렇게 쉬운 책이 아니었다. 아침에 모임을 끝내고 나니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서점에 들렀다. 아침에 문자메시지로 ‘주문하신 책이 들어왔습니다’라고 찍혀 있었다. 내가 주문한 책은 김근이 쓴 『욕망하는 천자문』(삼인)이었다. 2만 5천원짜리 730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 사실 나는 『천자문』에 대한 욕망을 가진 사람이다. 3년 전쯤 인휘형과 거의 한 달에 두 세 번씩은 종로에 있는 탑골공원에서 만나곤 했었는데, 그때 우리는 탑골공원 뒤쪽에 있는 1500원짜리 국밥을 먹고, 자판기 커피를 뽑아놓고 공원 벤치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때 나는 내가 쓰고 싶은 책을 주저리주저리 인휘형에게 이야기했었는데, 그 중에 제 1위가 바로 『천자문』과 관련된 책이었다. 내딴에는 야심찬 기획이라 할 수 있는 천자문이야기는 천자문 속에 숨어있는 온갖 종류의 동양적 사고를 쉽게 풀이하고, 영역본과 비교하여 학습과 교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는 것이었는데, 아직도 때를 만나지 못하고 컴퓨터의 디렉토리만 차지하고 있다. 그러던 차, 천자문과 관련된 묵직한 저술이 나왔으니, 반가움이 이만 저만 아니다. 나는 이 책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채취(?)하리라.

하지만 오늘 나를 사로잡은 책은 『욕망하는 천자문』이 아니라, 김훈이 쓴 『밥벌이의 지겨움』(생각의 나무)이다. 김훈에 중독된 나로서는 이 책이 주는 흥분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김훈 世說, 두 번째’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이 책은 첫 번째 수필집보다 더 쓸쓸하고 가슴을 울린다. 아, 이를 어쩐다. 오늘 할 일이 무척 많은데, 나는 오늘 김훈에 사로잡혀 아무 일도 못하겠구나. 이 즐거운 안타까움!

명색이 리뷰이니 표제가 된 글의 일부분을 인용하자. [밥벌이의 지겨움]의 한 대목:

“그러므로 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조져대지 말아 달라. 제발 이제는 좀 쉬라고 말해 달라.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했다.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나는 오늘 김훈의 친구가 되어, 모반의 동반자가 되어, 밥벌이를 뒤로 제쳐놓고 책을 읽는다. 설령 밥벌이가 나를 호출할지라도 그래서 결국 꾸역꾸역 밥을 벌어야할지라도, 지금 이 시간만은 방해받고 싶지 않다. 나에게 가장 즐거운 시간. 김훈을 읽는 시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