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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한 모기만
사람의 피를 빤다.
새끼들을 위해서
결사적으로 덤빈다.

 

피를 빠는 모기는
온몸이 찰 때까지
경건하고 순수하다.
목숨을 다 걸고 나면
남은 몸짓이 없어진다.

 

세상의 소리를 죽이는
피를 빠는 모기의 긴장.
목숨은 빛나는 한 순간의 힘,
죽은 척 살아 있기보다는
살다가 죽고 싶은 힘.

 

수컷 모기는 이슬을 마시고
가는 눈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허둥대는 암컷의 들뜬 눈에는
사랑은 피던가 이슬이던가.

 

늦가을 모기의 날개는 숨어 있는 한숨처럼 멀다.
낮게 날아가는 한 생명의 끝, 아프지도 앓지도 않고
모든 암컷의 모기만
피를 빨다 죽는다.

     - 마종기, '임신한 모기만 사람의 피를 빤다' 전문

                       ***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것이다. 모기에게도, 사람에게도? 사람에게도!

한 때 위의 시를 잃고 무는 모기를 잡지 못했던 적이 있다. 어리석은 짓이었을까? 지혜로운 행위였을까?

지금 이 시간에도 우주가 태어나고 우주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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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를 조금 내려야겠다.
내가 밝힐 수 있는 만큼의 빛이 있는데
심지만 뽑아올려 등잔불 더 밝히려 하다
그으름만 내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잠깐 더 태우며 빛을 낸들 무엇하랴
욕심으로 타는 연기에 눈 제대로 뜰 수 없는데
결국은 심지만 못 쓰게 되고 마는데

 

들기름 콩기름 더 많이 넣지 않아서
방안 하나 겨우 비추고 있는 게 아니다
내 등잔이 이 정도 담으면
넉넉하기 때문이다.
넘치면 나를 태우고
소나무 등잔대 쓰러뜨리고
창호지와 문설주 불사르기 때문이다

 

욕심부리지 않으면 은은히 밝은
네 마음의 등잔이여
분에 넘치지 않으면 법구경 한 권
거뜬히 읽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의 빛이여.

 

    - 도종환 시인의 『부드러운 직선』에 실려있는 '등잔'이란 시

                     ***

혼자 강제로 격리되어 있을 때 외웠던 시였다. 참으로 큰 힘이 되는 시. 시가 없었으면 삶은  참 시시했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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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토니오 할아버지는 말했다.
투쟁은 둥근 원과 같다. 어느 곳에서나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끝나지 않는다."

                                   - 『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마르코스/다빈치/2001 중에서

 

우리의 시작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끝은 아무도 모른다. 단 한 사람이라도
살아있는 한 우리의 역사는 지속될 것이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2.
"벽이 없는 사람과는 사귀지 말라. 깊은 정이 없기 때문이다. 흠이 없는 사람과는 사귀지 말
라. 진실한 기운이 없기 때문이다." - 장대(張岱)


"기이하고 빼어난 기상이 없으면 어떤 사물이든지 모두 속됨에 빠진다.

산이 이 기운이 없으면 부서진 기와조각이요,

물이 이 기운이 없으면 썩은 오줌이요,

학자가 이 기운이 없으면 묶어놓은 꼴이요,

방외인(方外人)이 이 기운이 없으면 뭉쳐 놓은 진흙덩이요,

무인이 이 기운이 없으면 밥 보따리요,

문인이 이 기운이 없으면 때 주머니에 불과하다"

                                                -이덕무(李德懋)
                                                               『궁핍한 날의 벗』/박제가/ 태학사/2000 중에서

 

<퀴즈> 다음 OOOO에 알맞는 말을 넣어보시오.(글자수 무제한)

 

         나에게 이 기운이 없으면 OOOO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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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인간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글

 

그대 세면할 때, 그대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있는가?
오줌 눌 때, 참된 순결을 기억할 수 있는가?
먹을 때, 만물의 순환을 기억할 수 있는가?
일할 때, 그 하는 일로 말미암아 행복한가?
말할 때, 그대 말에 간교함이 섞이지 않았는가?
물건 살 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는가?
어려움 겪는 이를 만날 때, 그를 돕는가?
죽음을 당면할 때, 두려움 없이 맑은 정신인가?
갈등을 겪을 때, 조화를 이루고자 애쓰는가?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자애로 그들을 대하는가?
아이들을 기를 때, 부드러우면서 엄격한가?
문제를 만났을 때, 멀리 보고 끈기 있게 대처하는가?
일을 마쳤을 때, 쉬는 시간을 갖는가?
휴식을 준비할 때, 마음 가라앉히는 법을 알고 있는가?
잠 잘 때, 절대 공(空) 속으로 들어가는가?

                                                                      - 덩밍다오(Deng Ming-Dao)

 

                                     『물(物)과 나눈 이야기』/이현주/이레/2001 중에서

 

매 시간이 선(禪)이다. 선을 내 맘대로 한자풀이하면, 자기 스스로를[單] 보는[示] 행위이다. 그리고 매미[蟬]를 보는[示] 마음이다. 매미가 되어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 그 노래 하나 만들기 위해 수십년을 땅 속에서 인내하는 굼뱅이. 과연 우리의 오늘은 그 날 중 몇 째 날일까?  (200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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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끝 / 송곳

 

끝이 뾰족한 송곳. 종이를 뚫거나 구멍을 팔 때 쓰는 물건이다. 송곳의 기능은 날카로운 끝에
있다. 그래서 '송곳' 하면 날카로움이 먼저 떠오른다. 과연 송곳이란 곧 날카로움인가?
송곳은 날카로운 끝을 지니고 있지만 그러나 '날카로운 끝'은 송곳의 지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
고 나머지 부분은 조금도 날카롭지 않다.

"그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의 모든 날카롭지 않은 부분들은 내 몸의 지극히 작은 부분인 '날카
로운 끝'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내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부분이 날카로운 끝 한 점에 수렴(收
斂)될진대, 송곳이란 곧 날카로움이라고 해도 잘못은 아니겠지."
"아무렴, 끝이 뭉툭한 송곳은 더이상 송곳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자네의 '뾰족한 끝'은 무엇인가?"
"……?"
"그것 아니면 자네가 자네일 수 없는 그것은 무엇인가?"
"……"
"참고 삼아 말해 주지. 바울로라는 사람은 일찍이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했다네."

송곳의 날카로운 끝에 가슴이 찔려 나는 지금 아무 말 못하겠다. 다만, 바라건대 나 또한 바울
로처럼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 그리하여 송곳이란 곧 날카로움이라고 말할 수 있듯이, 나
또한 곧 사랑이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

(이현주 씀 / 물과 나눈 이야기 / 이레) 중에서

      ***

나의 송곳을 무엇이라 부를까? 사랑, 정의, 행복....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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