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끄는 글 ․․․․․․․․․․․․․․․․․








눈앞의 저 빛!

찬란한 저 빛!

그러나 

저건 죽음이다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


                           - 유하의 시 「오징어」







나의 이야기 6 -나의 시대


   나의 젊은 날은 거리의 시대였다. 불꽃의 시대였다. 죽음의 시대, 항쟁의 시대였다. 젊은이란 젊은이는 독재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와, 최루탄 지랄탄에 맞서 화염병과 짱돌을 던졌다. 그 혼동의 거리에는 매일 사망소식이 전해졌고, 열사라는 이름을 뒤늦게 얻은 청년들의 무덤이 전국을 메웠다. 저마다 그 조사를 전해듣고 치를 떨고 분노를 삭히고 소주를 기울이던, 그 소주잔에 담긴 것이 소주인지 눈물인지를 분가름하기도 힘들던 시대였다. 술이 거나해지면 너나 나나 할 것없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로 시작되어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로 끝나는 노래를 눈치보지 않고 목놓아 부르던 그런 시대였다.

   사상이 없어도 눈빛만으로 통할 수 있었고, 이념이 없어도 분노만으로 통할 수 있었던 시대였다. 우리는 행복을 찾기도 전에 싸움을 찾아야했고, 장미빛 미래를 꿈꾸기도 전에 싸늘한 감방이나 열악한 노동현장을 찾아야했다. 그렇게 나의 선배들은 하나 둘씩 감방으로 노동현장으로 옮겨갔고, 그런 선배들을 보면서 나는 죄책감 반 열심 반으로 살아야 했다.

   세월이 지나 동료들은 어느덧 번듯한 직장과 안락한 가정을 갖게 되었고, 젊은이들은 거리대신 도서관을 가득 메울 수 있게 되었다. 술집에서는 이제 더 이상 분노의 노래가 울려나오지 않는다. 대신 귀를 멍멍하게 하는 굉음들이 거리를 폭주하고, 허름한 술집 대신 대낮같이 밝은 조명의 락카페가 그 굉음의 거리를 수놓는다. 사회과학 서점의 이념서적들은 감성을 자극하는 베스트셀러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한 때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레닌의 동상이 바로 그 젊은이들에 의하여 무너졌다. 지성인들은 너나할 것 없이 깃발을 내리고 성급하게 반성문을 쓰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맑스주의자가 아니면 그 사람은 바보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도 맑스주의자라면 그 사람은 더한 바보다. 보통의 기성세대들이, 자신의 과거를 술안주꺼리로 회상하며, ‘요즘 젊은 것들’의 과격한 행위를 TV나 신문지상을 통하여 보며, 근심어린 표정으로 의례히 한마디하는 말 중에서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혈기있는 젊은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 말을 들어보았으리라. 부드럽게 해석하자면 젊은 시절의 미덕은 이상, 열정, 분노에 있다면 나이가 들어서의 미덕은 현실, 계산, 타협에 있다는 말일게다. 이 말이 요즘처럼 나를 괴롭힌 적은 없다.

   이상과 현실 사이, 열정과 계산 사이, 분노와 타협 사이에서 메트로놈처럼 좌우로 똑딱거리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젊음은 얼마나 불행한가! 현실은 초라했지만 미래는 찬란했던 젊은 시대는 가고 어느덧 현실은 네온싸인처럼 휘황찬란하지만 미래는 암울한 신시대(?)에 나는 - 우리는 - 살고 있다.

   자 그렇다면 나(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현실과 이상이 동반되었던, 루카치 식으로 말하자면, ‘혁명의 시대’의 해석학은 어디로 갔는가? 그것은 이미 ‘마치 우리를 비켜 지나가는 것처럼’ 파헤쳐지고 무너지고 폭발하고 날아가버렸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렇게 묻기로 하자, 그 자리에 남은 잿더미를 가지고는 무얼 해야 할 것이냐고. 그 잿더미는 그냥 잿더미일 뿐인가? 20세기를 마감하는 끄트머리에서 나는 나에게 물어본다. 수많은 나 아닌 나에게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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