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쓸쓸하냐 - 2004년 1월 이 달의 책 선정 (간행물윤리위원회) 운문산답 1
이아무개 (이현주) 지음 / 샨티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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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르는 데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내 경우는 나의 기분이 책을 선택하는데 크게 좌우될 때가 있다. 기분이 우울할 때에는 이성적으로 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우연을 가장한 운명이라도 만나려는 듯 그렇게 내 감각에 따른다. 때로는 표지디자인 때문에, 어떤 때는 제목 때문에, 어떤 때는 나를 위로해주리라 믿는 저자 때문에 책을 고른다. 아내에게서 책을 그만 사보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듣고, 서점에 들어가 고른 책이 다름 아닌 ꡔ지금도 쓸쓸하냐ꡕ(이 아무개/샨티/2003)이다. (책을 그만 사라는 충고를 듣고 곧장 서점으로 달려가는 꼴이라니…)

이현주 목사는 자신의 단독 저서일 경우 이제는 자신의 본명을 밝히지 않고 이 아무개라고 저자이름을 써놓는다. ‘아무개’는 특정인을 지칭하는 지시어가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현주 목사는 그러니까 자신이 특정인으로 불리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원래 감리교단에 몸을 담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마저 자진하여 버림으로 홀홀단신 목사일을 하고 있다. 어디에도 얽히거나 구속되지 않으려는 그가 사실은 조금 부럽기도 하고 많이 두렵기도 하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마냥 버리게 만드는 것일까? 그는 직업상 기독교 목사이지만 그의 저술에는 하느님과 예수님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부처가 나오고 공자, 노자, 장자도 나온다. 그러니까 그가 믿는 하느님은 -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 이미 기존의 기독교 범주에서 멀찌감치 벗어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목사이면서 목사가 아니다.

이 책은 두개의 자아가 대화하고 있는 형식으로 짜여져 있다. ‘몸나’와 ‘얼나’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어찌보면 정신의 스승과 자신이 대화를 하는 것 같기도 한 이 형식이 참으로 독특하다. 매일 매일 스스로 반성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이룰 수 없는 경지. 그는 매일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ꡔ대학(大學)ꡕ에서 나오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日新 又日新)’의 경지라 하겠다. 책에 나와 있는 한 대목 :

“선생님, 오늘 종일토록 참 쓸쓸합니다”
“알고 있다. 축하한다.”
“축하한다고요? 무엇을 말입니까?”
“내가 하루종일 쓸쓸했다는 사실을. (……) 쓸쓸함도 너에게 온 손님이다. 지극 정성으로 대접하여라.”
“어떻게 하는 것이 쓸쓸함을 잘 대접하는 겁니까?”
“쓸쓸한 만큼 쓸쓸하되, 그것을 떨쳐버리거나 움켜잡으려고 할지 말아라. 너에게 온 손님이니 때가 되면 떠날 것이다.”

‘모든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되 아무것도 움켜잡지 말고 아무것에도 움켜잡히지 마’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마도 이 아무개의 삶의 목표가 아닌가 싶다. 그는 그렇게 매일 매일을 자기 자신과 대화하며 - 어쩌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하느님과 대화하며 -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목사이면서 목사가 아닌 이 아무개의 이 책을, 신자이면서 신자가 아닌 나의 아내에게 건네줘야지. 그녀에게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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