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생의 시대 - 병리학과 근대적 신체의 탄생 고미숙의 근대성 3부작 3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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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가 가라앉지 않는다. 이 바이러스의 대처하는 개인적 방식은 손씻기, 마스크하기, 사회적 거리두기이다. 매일 업데이트되는 확진자와 그 사람의 동선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 일주일에 하루만 살 수 있다는 마스크를 사기 위해 우체국이나 약국 앞에 장사진을 이룬다. 이대로 좋은 것인가?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인가?

코로나19 사태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책 한 권을 소개한다. 고미숙의 근대성 3부작 중 마지막 권 위생의 시대:병리학과 근대적 신체의 탄생(북드라망, 2014)이다. 이 책은 양생에서 위생으로패러다임이 바뀌는 우리나라 계몽기의 모습을 소개하면서, 우리의 생활과 사유가 어떻게 서구적인 삶의 방식으로 무비판적으로 바뀌었는지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대중목욕탕과 병원, 교회의 삼위일체가 우리 몸과 마음을 어떻게 관리의 대상의 바꾸는지, 그로 인해 어떻게 근대적 위생권력생체권력이 우리의 삶을 압도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이러한 위생관과 신체관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기 위해 고미숙은 박지원의 저술과 허준의 동의보감, 푸코의 저술에 나오는 양생술과 자기관리의 기법을 소개한다. 이는 바이러스를 적으로 여기고 제거하려는 근대적 시선과는 다른 대안적 관점과 삶이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데 적절히 이용된다.

모든 질병을 박멸하는 유토피아적 염원이 아니라, ‘질병과 공존하는 삶이라는 새로운 관계의 모색하려는 관점은 다음과 같은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질병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어떤 신비한 블랙박스에서 튀어나오지 않았다. 기생(奇生)과 질병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사실 어떤 면에서는 삶의 일부로서 필요한 것이다. 그것들은 대초의 가장 단순한 유기체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에 근본적인 것이다.” - 아노 카렌, 전염병의 문화사

사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질병의 원인은 우리의 삶의 방식과 환경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잘 먹고, 푹 쉬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효과 큰 처방책이다. 우리는 그와는 정반대로 지나치게 먹고, 쉬지 못하고, 괴롭게 살아왔다. 이번 기회에 문명 전체의 거대한 반성과 전환이 요구되는 것은 아닐까?

<추신> 이 책의 부록으로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 대한 인문학적 분석이 소개된다. 꼭 한 번 영화도 보시고 글도 읽어보시길.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위생권력의 실체를 이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영화와 글은 보기 힘들 것이다.



"병리학이 도래하면서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는 견고한 장벽이 세워졌다.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둘러친 방어벽이 결과적으로 자신을 그 안에 가두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그 장벽 안에 갇혀서 사람들은 자연과의 거리, 타인과의 거리, 연인과의 거리가 세련된 도시인의 삶이라고 자명하게 받아들인다. 길거리에서 이질적인 것들이 뒤섞여서는 안 되는 것처럼 인간 사이에도 서로 ‘지지고 볶는’ 관계는 허용되지 않는다. 두렵기 때문이다. 고독과 우울이 근대인의 질병이 되는 건 그런 점에서 너무나 당연하다. 이러다 보니,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는 방법이 아니라, 덜 불행해지고 병에 덜 걸리는 게 사람들의 목표가 되어 버렸다. 고작 덜 불행해지기 위해 살다니! 이보다 더 초라할 순 없다!" (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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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 - 21세기 페미니즘에 대한 7가지 질문
강남순 지음 / 한길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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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세계 여성의 날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세계 여성의 날은 여성의 정치·경제·사회적 업적을 범세계적으로 기리는 날이다. 1909년 사회주의자들과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정치적 행사로 시작되었고, 1910년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와 클라라 체트킨에 의해 세계적 기념일로 제안되었으며, 1975년부터 유엔에 의하여 매년 38일이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되었다.” 작년부터 고양페미에서 활동했던 신지혜와 올 한 해를 페미니즘 책 읽기로 북토크를 진행해보자고 약속했었다. 그 약속이 실현되었다면 아마도 다음 주 수요일부터 페미니즘 북토크를 진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확산과 4월 총선이라는 일정으로 그 약속이 언제 지켜질지는 미지수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여성의 날이니까, 그를 기념할만한 책 한 권을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번에 읽은 책은 페미니스트이자 철학자인 강남순이 쓴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한길사, 2020)이다. 이미 강남순은 다양한 글쓰기를 통해서, 페미니즘을 소개해왔다. 하지만 이번의 책은 그간 글쓰기와는 다르다. 페미니즘의 역사와 쟁점, 현실 속에 나타나는 다양한 차별을 페미니즘의 차원에서 교과서적으로 차분하게 정리한 책이다. 7개의 질문으로 크게 항목을 나눈 이 책을 읽다보면, 그동안 내가 페미니즘에 대해서 얼마나 좁게 이해했으며, 얼마나 많은 것을 간과했는지 절감하게 한다. (내가 모르는 용어들, 생각하지 못했던 점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7개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2) 성차별이란 무엇인가, 3) 여성혐오란 무엇인가, 4) 페미니즘은 하나인가, 5) 남성과 페미니즘은 어떤 관계인가, 6) 페미니즘은 어떤 세계를 지향하는가, 7) 페미니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 평등사회를 위한 다섯 가지 과제 등이다. 각각의 질문에 3~4가지 소주제로 나누어 핵심을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근래 읽은 페미니즘 책 중에서 가장 전방위적이고 논쟁거리를 잘 설명한 책이 아닐까 싶다.

아직은 얼치기이지만, 나는 페미니스트를 지향한다. 남자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냐고 묻는다면 강남순의 말로 대신하겠다.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라고 해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 나는 페미니즘이 생물학적 본질’essence이 아닌, 사회정치적 입장’position에 관한 것임을 주지하는 것은 이론과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의 의미와 방향성을 규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인식론적 출발점이라고 본다.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 물론이다. 페미니스트가 되어야만 한다. 페미니즘은 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세계를 꿈꾸는 모두를 위한 이론이며 실천적 운동이기 때문이다.” (242)

p.s. 여성의 날에는 가까운 여성에게 장미를 선물하는 전통이 있다. 이번에는 장미와 함께 이 책을 선물하면 어떠실지. 성과 관계없이 모든 분들에게 권한다.


차별의 종류는 참으로 많다. 그 가운데 성차별, 인종차별, 계층차별 이 세 가지는 전통적으로 가장 많이 논의되는 대표적인 차별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차별을 판단하는 기준점이 더욱 확장되었다. 나이차별주의(ageism), 장애차별주의(ableism), 이성애에 근거하여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heterosexism), 외모차별주의(lookism) 등 다양한 종류의 차별이 등장했다. 이런 다양한 차별은 새로 생긴 종류가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지만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며 이제야 비로소 차별에 대한 복합적인 인지가 확장되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인간의 권리와 평등, 그리고 차별에 대한 인지가 확장된 사회일수록 다양한 종류의 차별이 사회 전체의 공공주제가 된다.(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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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 거칢에 대하여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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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려도, 정치의 시기가 왔다. 4월이 되면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진행된다. 총선이 되면 후보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력을 자랑하며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지지를 호소할 것이다. 지방분권의 시대가 왔다고 하지만,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의 낙하산 인사들이 지방시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민주주의를 말할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민중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 것이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이럴 때는 정신을 바짝 들게할 책이 필요하다. 정치적 혼돈기에 좌표가 될 만한 책은 많다. 그 중에 나는 홍세화의 신간 : 거침에 대하여(한겨레출판, 2020)을 집어 든다. 홍세화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생각의 좌표를 쓴 지성인이자, 현재는 장발장처럼 작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돈이 없어 징역형을 살아야하는 사람들의 벌금을 이자없이 대여해주는 장발장은행의 은행장이다. 스스로는 소박한 자유인으로 소개하는 홍세화가 11년 만에 새 책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프랑스에서 난민으로 살다가 한국으로 귀국한 후 겪은 일과 생각들을 말하듯 조근조근 정리한 이 책의 제목이 왜 하필 이고 거침일까 생각해봤다. 그러다가 자유인이라는 말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홍세화가 말하는 자유인이란 무엇인가? “오늘처럼 권력과 물질이 승리를 구가하는 시대에 지배와 복종에 맞서겠다는 자유인은 모순적 존재일 수 있다. 자유인으로 남기 위해서는 세속 사회에서 패배자가 되어야 한다. 인간사에서 반지배주의자(아나키스트)는 자유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은 거의 숙명처럼 패배자의 길을 걸었다. 그들은 가령 마오쩌둥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라는 말을 이념 이전에 정서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총을 들었지만, 그것은 폭정에 저항하기 위해서였지 권력을 장악하여 지배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반지배주의자들이므로.”

그의 글-결은 전혀 거칠지 않다. 술술 읽힌다. 그러나 그 결 속에 담긴 뜻-결은 거칠다. 현재에 순응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보자면 말이다. 그 거침을 따라서 살려면 손해를 보아야 한다. 지본주의의 이해와 신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와 함께 걷는 길에 쉽게 동참하지는 못할 것이다. 홍세화는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의 말씀을 지금도 간직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착하면 손해 본다. 그래도 넌 착한 사람이 되어라!”


그래서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것이다. 내가 기본자본이나 기본소득, 무상의료나 대학 무상교육, 공동임대주택 건설, 토지 보유세 강화 등의 정책 제안에 대해 빨갱이들이 주장하는 사회주의 정책이라면서 지레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거나 아예 관심조차 갖고 있지 않다면, 그런 생각을 내가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 물어야 한다고! 그 생각, 내가 갖고 태어났을까? 아니다. 그 생각, 내가 창조했나? 어림도 없다. 그렇다면 그 생각, 내가 선택했을까? 그럴 리 없다. 그 정책들이 실현된다면 나의 처지가 훨씬 좋아질 텐데 왜 내가 그 정책을 거부하는 생각을 선택하겠나? 하지만 실제 일어나는 일은 항상 이런 것이다. ‘80’에 속한 나는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대해 일말의 회의도 없이 막무가내로 고집하면서 살아간다는 것, 자유의 날개는 저 먼 곳에서 슬픈 날갯짓을 하고 있다.(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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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다니구치 지로 지음, 박정임 옮김 / 이숲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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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위축된 마음을 위무(慰撫)하고자 읽은 책이 타니구치 지로의 산책(이숲, 2015)이다. 이 만화는 1991년 작품으로, 대사나 지문은 거의 없이 배경과 등장인물 묘사로만 이루어진 시리즈 연작물이다. 만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당연히 산책이다. 그는 산책이야말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자유라고 말한다. “아무 목적 없이 산책하러 나서면, 그 순간부터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 시작합니다. 저절로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흐르는 구름을 보면 편안한 느낌이 들고, 길가의 잡초나 돌멩이를 보면 또 다른 감정이 솟아나기도 합니다. 산책은 어쩌면 작은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맛볼 기회입니다.”

첫장을 넘기자마자 작가가 살고 있는 마을 풍경이 전면에 나타난다. 그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청신해지고 따뜻해진다. 골목 구석구석 산책하고픈 마음이 들 정도로 조용하고 평화롭다. 나는 작가를 따라 이 소박한 마을의 골목을 산책한다. 작가의 눈은 따뜻하고 걸음은 느긋하다. 그는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것에 반응하고 소통한다. 비가 내리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는다. 낯선 존재를 만나도 환하게 반응한다. 새와 함께 날고, 개와 함께 걷고, 꽃잎과 함께 눕는다. 이 완보(緩步)의 미학(美學)에 빠져들면, 나의 호흡도 차분해지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인간은 애초부터 보행자(步行者)였음을 자각하게 한다.

 

타니구치 지로 (谷口ジロー)고독한 미식가로 유명한 일본만화가다. 고독한 미식가는 일본TV의 시리즈물로도 제작되었다. 1947년 일본 돗도리 현에서 양복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만화에 심취하여 중학교 시절부터 잡지에 만화를 투고하였다고 하니 천생 만화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만화견습생으로 일했으니 평생 만화만 그려온 셈이다. 그리는 만화마다 주목을 받았고 국제적인 만화상도 많이 받았다. 2003년도에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시나리오상을 수상한 열네 살2010년 프랑스에서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2017년에 70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저는 인간이 원래 조용한 생명체였다고 생각합니다. 큰소리를 지르거나 야단스럽게 우는 사람을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없듯이 인간은 은밀하게 살아감으로써 자신을 지켜왔다고, 저는 믿습니다.
시시한 일상의 사소한 일로 보이는 것도 자세하고 깊이 관찰하다 보면, 거기서 하나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포착해서 한 편의 만화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배움의 결과가 바로 『산책』입니다. (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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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로서의 질병 이후 오퍼스 9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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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어수선한 시절에 나는 수잔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이후, 2002)을 읽는다. 1978년에 발표된 이 글이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수잔 손택은 타인의 고통, 해석에 반대한다등의 글로 우리에게 알려진 소설가이자 평론가이다. 그녀의 작품은 현실적 세계에 대한 고발이자 도발로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 손택은 결핵으로 죽은 아버지를 쉬쉬하던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결핵은 당시 뭔가 수치스러운 질병이었던 것이다. 이후 손택은 1976년 유방암 4기라는 판정을 받는다. 이때부터 손택은 의학적으로 지성적으로 질병과 투쟁한다. 1978년 수술과 화약요법으로 완치된 후에도 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사람들이 질병을 대하는 태도와 질병을 신비화하는 언어를 쫓아내고자 노력한다. 은유로서의 질병은 그렇게 탄생했다. 한국에서 출간된 책에는 은유로서의 질병뿐 아니라 에이즈로 죽은 친구를 생각하며 쓴 글 에이즈와 그 은유(1988)도 같이 수록되어 있다.

사람들은 에이즈를 도덕적 타락에 의한 천벌로 여기고, 종말론을 주장하고 있었다. ‘편집증적 정치의 군사적 은유가 넘쳐났다. 인류의 적이라든지, 박멸이라든지, 격퇴라든지 온갖 무시무시한 용어로 에이즈를 정죄했다. 이에 맞서 손택은 질병은 질병이며, 치료해야할 그 무엇일 뿐이라고 말한다. 에이즈 역시 마찬가지였다. 손택은 은유 대신에 투명성(transparency)’을 요구한다. 투명성개념은 온갖 신비화와 은유에 맞서는 손택의 무기이다. 그것은 인간적 감수성을 회복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경험하는 것이 바로 투명성이고,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을 더욱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이후 그녀는 1998년 자궁암이 걸려 자궁절제 수술을 받았지만, 결코 질병에 굴종하지 않는다. 그녀는 생명을 더욱 소중하게 여겼다. “일단 사형 선고를 받고 나면, 당신은 태양도 죽음도 똑바로 쳐다보지 않으려 할 겁니다. 당신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차지요. 그러나 당신의 마음 속에는 끊임없이 강해지고 깊어지는 뭔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생명으로 부른답니다.”

 

나는 이 시절에 용기를 내기 위해서 이 책을 읽는다. 질병은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지만, 질병을 둘러싼 온갖 은유와 공포가 더욱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이 책은 그 질병의 은유를 파헤치고 우리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또 다른 질병을 치유하게 만드는 책이다.


‘역병‘은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질병들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명칭이었을 뿐만 아니라 집단적 재앙, 악, 천벌을 나타내는 최고의 본보기로 오랫동안 은유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따라서 역병이라는 은유는 질병이란 기꺼이 그 고통을 받아내야만 하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3쪽)

질병은 삶을 따라다니는 그늘, 삶이 건네준 성가신 선물이다. 사람들은 모두 건강의 왕국과 질병의 왕국, 이 두 왕국의 시민권을 갖고 태어나는 법, 아무리 좋은 쪽의 여권만을 사용하고 싶을지라도, 결국 우리는 한 명 한 명 차례대로, 우리가 다른 영역의 시민이기도 하다는 점을 곧 깨달을 수밖에 없다.(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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