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다니구치 지로 지음, 박정임 옮김 / 이숲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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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위축된 마음을 위무(慰撫)하고자 읽은 책이 타니구치 지로의 산책(이숲, 2015)이다. 이 만화는 1991년 작품으로, 대사나 지문은 거의 없이 배경과 등장인물 묘사로만 이루어진 시리즈 연작물이다. 만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당연히 산책이다. 그는 산책이야말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자유라고 말한다. “아무 목적 없이 산책하러 나서면, 그 순간부터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 시작합니다. 저절로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흐르는 구름을 보면 편안한 느낌이 들고, 길가의 잡초나 돌멩이를 보면 또 다른 감정이 솟아나기도 합니다. 산책은 어쩌면 작은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맛볼 기회입니다.”

첫장을 넘기자마자 작가가 살고 있는 마을 풍경이 전면에 나타난다. 그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청신해지고 따뜻해진다. 골목 구석구석 산책하고픈 마음이 들 정도로 조용하고 평화롭다. 나는 작가를 따라 이 소박한 마을의 골목을 산책한다. 작가의 눈은 따뜻하고 걸음은 느긋하다. 그는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것에 반응하고 소통한다. 비가 내리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는다. 낯선 존재를 만나도 환하게 반응한다. 새와 함께 날고, 개와 함께 걷고, 꽃잎과 함께 눕는다. 이 완보(緩步)의 미학(美學)에 빠져들면, 나의 호흡도 차분해지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인간은 애초부터 보행자(步行者)였음을 자각하게 한다.

 

타니구치 지로 (谷口ジロー)고독한 미식가로 유명한 일본만화가다. 고독한 미식가는 일본TV의 시리즈물로도 제작되었다. 1947년 일본 돗도리 현에서 양복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만화에 심취하여 중학교 시절부터 잡지에 만화를 투고하였다고 하니 천생 만화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만화견습생으로 일했으니 평생 만화만 그려온 셈이다. 그리는 만화마다 주목을 받았고 국제적인 만화상도 많이 받았다. 2003년도에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시나리오상을 수상한 열네 살2010년 프랑스에서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2017년에 70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저는 인간이 원래 조용한 생명체였다고 생각합니다. 큰소리를 지르거나 야단스럽게 우는 사람을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없듯이 인간은 은밀하게 살아감으로써 자신을 지켜왔다고, 저는 믿습니다.
시시한 일상의 사소한 일로 보이는 것도 자세하고 깊이 관찰하다 보면, 거기서 하나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포착해서 한 편의 만화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배움의 결과가 바로 『산책』입니다. (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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