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스에서 담배 피우는 즐거움은 창가에서 담배 피우는 즐거움보다 더 클 것이다. 

냉장고 등등 산 것도 많고 돈을 많이 써서 어제 잔고 확인하니 6월까지 50만원으로 살아야 하겠다였는데

오늘 아침 담배 사고 다시 보니 60여만원으로 읽었던 숫자가 80여만원이었. 눈이 침침해서 8의 위 동그라미가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20만원이 생긴 느낌. 오늘 책상이 배송되고 정리되고 나면 그 20만원으로 책 사도 될 거 같아졌다. 전에 40만원으로 한 달 살아본 적 있고 그게 그렇게 아주 어렵지는 않았다. 시간의 힘! 무엇도 하지 않아도 아주 빨리 지나가는 일주일! 한 달! 


이사하느라 책을 못 샀네, 책을 사들이기 위해서도 책장으로 집을 채워야 하는데. 

그러나 어제 약 13만원 어치 책들이 배송되었고 그 중 하나가 2018년 나온 바슐라르 전기다.  

우리는 언제나 더 사고 있다. 


"한때의 우체국 직원이 어떻게 이 위대한 사상가가 되었는지, 어떻게 동시에 과학적, 시적, 철학적, 윤리적인 사유가 그의 평범했던 삶에서 태어날 수 있었는지, 우리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그가 우체국 직원이었음은 그가 겪은 곤경으로 흔히 여겨진다. 1차 대전에 "징병"되었던 것과 비슷하게 처리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그의 이 경험들은 우연/사고가 되고, 우리는 그가 성취하는 탁월한 운명으로부터 이 우연/사고들을 제거하고 싶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이 경험들이 그를 형성하며, 그의 삶의 장애들이 그의 사유에 색채를 부여함을 보지 못한다." 


저런 대목이 서두에 있다. 

결말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그가 구현한 역설을 생각하자. 그는 가장 전통적인 장인들이 보유했던 기술들을 옹호하고 칭송했지만 동시에 진보와 모더니티의 인간으로서 현대 과학에서, 예술과 시, 문학에서 혁신에 민감했다. 그는 땅과 시골의 사상가였지만 세계를 인식하고 이해하기 위해 모든 영역에 그의 역량을 적용했고 파리에서, 보편을 사유하면서, 생애를 마쳤다. 모두를 인식하겠다는 열정을 가진 사상가였으면서, 딸을 혼자서 세심히 키운 아버지이기도 했다. (....)"


<응용 합리주의>에 "(신은) 대학을 수립하기 위해 우주를 창조했다" 이런 문장이 있다. 

... l’Univers était créé pour fonder une Université. 영어로 구글 번역 시켜 보면: the Universe was created to found a University


이런 구절은 단지 재미있는 구절일 뿐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삶과 세계를 바꿀 위력을 갖는 구절로 해석하고 논평할 수도 있는 구절일 것이다. 

어떻게 그런 해석과 논평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느냐. 이게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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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좋다는 건 집이 담배 피우기에도 좋다는 뜻이고 

그건 술 마시기에도 좋다는 뜻이어서 

담배 잘 피우고 있다가 조금 전 맥주 사왔다. 

둘레길 30초 컷 오지라서 편의점이 슬세권에는 없다. 레트로한 수퍼가 있음. 어두컴컴하고 층고 낮은, 바닥도 두 계단쯤 반지하 느낌 수퍼. 몇년동안 편의점 맥주만 마셨었는데, 여기 와서 테라, 클라우드 마신다. 수퍼는 기네스 팔지 않는다.  


이 집에서 담배 피움은 위 그림을 기억함이다. 

본질은 같음. "at the window." 창가에서 피운다 해도 보통은 연기가 집안으로도 들어오고 재도 날리고 좋지 않은데, 여기선 좋다. 환기가 과하게 잘된다. 그리고 마주보는 집이 없다. 또한, 예전 집은 "동선" 개념을 조롱하는 공간이었던 데 반해 이 집은 흡연자이며 독자인 사람이 흡연이 독서를, 독서가 흡연을 돕는 동선을 구상하면서 방들을 만든 거 같다. 


위와 같은 즐거움은 물론 순수히 즐거움인 것만은 아니다. 담배는 끊겠다고 오늘도 여러 번 작정해 보기도 했고. 

그런데 이사하고 다음 날 책상에 책 펴놓고 앉아 있다가 의자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서 느꼈던 그 기묘한 즐거움은, 그 기묘하고 충격적이던 강한 즐거움은 기록해둘 가치, 탐구해볼 가치가 있지 않나 한다. 나는 진짜로는 그런 생각을 지금까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저 때엔 "아 정말 있는 집 애들이 공부든 뭐든 잘 할 수 밖에 없는 건 그들의 공간 때문이다"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신체의 자유는 신체에 어떻게 기입되는가. ;;;;;;; 신체의 자유는 어떻게 정신의 자유가 되는가. 


한국에 와서 바로 이만큼 넓은 집에서 살 수 있었다면 나는 다른 글을 ㅆ(.....). 이렇게 생각할 뻔했다. 

좁은 집, 좁은 방에서 <공간의 시학> 같은 책을 쓴 바슐라르 때문에, 바슐라르 기억하면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지만, 한 번 진지하게 시험해 보고 싶기도 하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내게 최적의 환경을 준다면 과연 읽기와 쓰기가 달라질 것이냐. <자기만의 방> 논지에 추가할 세밀한 경험들을 해볼 수 있을 것이냐. 지금 책상 왼쪽으로 길게 이어서 쓸 책상과 거실 벽들을 채울 책장들이 내일 올 예정인데, 이것들로 집을 채워놓고 나서 과연 변화가 있을지, 삶이 달라질지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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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보물섬AD 채널 보면 

한국에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있나 감탄이 계속 (어쩌다, 가 아니고) 인다. (위 이미지는 이 채널과 관련된 건 아니고 구글 이미지에서 "정선 계곡"으로 찾아보다가 아무 거나 픽. 보물섬AD 채널 최근 업로드가 정선의 잘 알려지지 않은 계곡에서 노지 차박 영상이었는데 풍경과 분위기가 꿈결같은 곳이었다. 사진으로는 어떤 게 있나 찾아봄. 사진으로는 그다지. 영상에 담긴 풍경은 아름답고 심지어 비현실적이라 심장이 아파오는 느낌. achingly beautiful.) 


지금 청년들....;;; 에게는 어떤가 몰라도 

라때는 "한국은 볼 거 없음"에 만인이 합의했었다. 

그런데 청년이 아니게 된 지금 ;;;;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되는 중. 

한국 자연이 아름다워지기도 했겠지만 (예전보다 더 잘 가꾸고 보존하니까) 

그보다는,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눈이 우리에게 있게 된 거 같다. 자신의 빼어남을 자각하는 눈. ;;;; 뭐 좋은 얘기니까 오글거림은 잠시 견디고 정말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생각해 봅시다.   


둘레길 입구가 30초 컷이라 

입구에서 한 50m 까지는 진입해 보았는데 

.... 무슨 지리산 온 줄 알았다. 나무가 정말 울창하고 초록초록 정도가 아니라 깊고 검고 푸른. 

감탄함. 서울 대단한 도시라고 감탄함. 


하이고. 그래서 오늘은 둘레길을 한 2km 걸어볼까 합니다. 





찾아보니 정선 계곡은 8개월전 업로드된 이것. 

최근 업로드는 홍천이었다. 

(.... 아 이 정신없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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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스는 나보코프의 광팬이고 나보코프 주제로 많이 썼다. 

The rub of time에도 나보코프에 관한 여러 글들이 있다. 나보코프의 전기에 관한 글도 있고

헨리 필즈던가 이름이? 나보코프 생전에 나보코프 부부와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전기를 쓴 전기작가, 이 작가와 

그가 쓴 전기를 가혹하게 평가한다. 이 작가에게, 왜 나보코프는 나보코프이고 나는 나인가(나따위에 불과한가), 이것이 영원히 고통을 안기는 진정한 문제였다 -- 이런 투다, 그 가혹함은. "나도 천재적 작가일 수 있었어, 그런데 왜 나는 내가 아닌 천재적 작가의 전기를 쓰고 있어야 해?" 억하심정이 그의 문장들에 스며있다.... 고 전한다. 


어찌 감히, 꿈엔들, 나보코프와 너를 동급으로 놓아 봄? 

나도 작가인데 왜 나는 나보코프의 전기를 쓰고 있는가. 이게 그에게 괴로운 질문일 수 있었다는 게 자체로 그가 주제파악을 전혀 하지 못함을 알게 한다..... : 에이미스는 이런 입장이고 이 입장을 반복해서 말하는데  


(....) 왜 그가 어떤 이들에게 격한 적개심을 자극하나 알 거 같기도 했다. 

미미한 존재가 위대한 존재와 자기를 동급으로 놓아보는 것도 여러 방식이 있겠지. 

나보코프는 <롤리타>가 흥행하기 전까지 가난하게 살았다. 에이미스의 표현으로는 "50대까지 극빈 속에 (in penury)" 살았다. 코넬 대학 교수였는데 "극빈"일 수는 없다고 하고 싶지만. 나보코프의 돈 없이 늙어가던 시절과 자신의 그런 처지를 누가 비교한다면, 그것도 감히 미미함이 위대함과 자신을 동일시함인가? <롤리타>의 흥행 같은 건 자기 삶에 없을 것임을 알면서도 그럴 수 있지 않은가. 동급으로 놓아봄의 어처구니없음(꼴갑스러움)을 알면서도 동급으로 놓아볼 수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 아이러니가 열일하게. 그리고 그 꼴갑스러움을 질타하는 것도 여러 방식이 있을 것이고,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아이러니가 작동하게 할 수 있을 것인데, 에이미스는 그러지 않는다. 아이러니 대신 사고의 통제, 사고의 검열, 차단. 이 욕망이 작동한다. 그의 "보수" 성향은 무엇보다 이런 면모에서 보이는 거라 해도.     


그런가 하면, 이 전기작가 때문에 말년의 나보코프가 겪어야 했던 고통을 "낭비와 훼손 waste and violation"으로 말하던 대목은 적지 않게 공감하면서 조금 오래 보게 되기도 했다. 그와 같이 한 시간, 해야 했던 대화가 모두 "낭비와 훼손"이었다. 혼자서든 여럿이든 인간이 형성하는 삶의 풍토를 낭비와 훼손, 이걸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을 거 같다. 어떤 낭비와 훼손이 거기서 일어나는가, 조장되는가, 방치되는가. 



오늘 오전에 할 일이 두 가지 있었는데 하나 끝내고 다른 하나를 보니 안해도 되는 일이었다! 

아직 집안도 복잡하고 머리 속도 복잡한데, 일요일 오늘은 적어도 몇 시간은 멍때리고 있어도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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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있는 방 방문 옆 구석은 이렇게 채웠다. 

3단 공간박스는 옛집에 이사하고 얻어왔던 것. 그 위의 더 누런 색 3단 책꽂이는 쓰레기 나와 있던 걸 주워왔던 것. 이 책꽂이는 목공 배우는 사람이 연습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공정을 제대로 꼼꼼히 한 거 같은데 다 조금씩 틀린 느낌? 특히 연결이 다 조금씩 맞지 않으니 좀 심하게 삐그덕 삐그덕 했었다. 그래도 나무도 좋아 보이고 이런 작은 책꽂이 있으면 잘 쓰게 되므로 냉큼 주워와서 몇 년을 같이 했고 이사하면서도 버리지 않고 가져옴. 그리고 저렇게 놓으니 아주 딱이지 않? 긴 세월 책들의 무게를 감당하면서 오히려 더 튼튼해졌다. 여전히 수직으로 서지는 못하지만 이제 흔들리지 않는다. 요걸 저렇게 놓으니 흡족했다. 스위치를 막지 않는다! 기특한 것. 두 칸은 책으로 채우고 맨 윗칸엔 지갑 이어폰 등을 놓으면서 쓰면 되겠는 것이다. 가방을 걸어둘 수도 있다. 옆에 노랗게 때가 꼬질꼬질한 책장은, 저 싸구려 책장은 (10여년 전 당시 아마 국민 책장이었) 조금씩 수정액으로 흰색 칠해 가면서 쓰면 될 거 같다. 


쌓인 문제들 중 저자 "바이오"를 써 보내는 일도 있었다. 

내게는 꿈의 학술지였다는 곳에서 이사 다음 날 "너에게 곧 최종본이 갈 것이고 너는 바이오를 써 보내라" 이메일이 왔는데, 바이오 쓰기 이것이 (한숨) 쉽지 않았다. 컴퓨터를 제대로 쓸 환경이 아니었기도 하고 지금 있는 곳은 이번 학기로 끝인데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고. 그러니까 "--- is" 형식으로 쓸 수 없는 시점이다. 내 글이 실리는 호가 9월에 나오냐, 올해 안에 나오는 건 맞느냐, 같은 문의부터 해야 하나.... 이런 게 머리 아팠다. 이 문제로 일주일 내내 고심했는데 "--- has taught"로 해결하기로 하고 오늘 써서 보냄. "--- has taught at oo University and oo University 어쩌고 저쩌고." 막 바로 다음 달, 형식적으로는 현재 학교에 재직 중일 때 학술지가 나오더라도, 틀린 말이 되지는 않는다. 


깊이 염원하게 된다. "--- is"인 삶으로 진입해야 함. 

과거완료, 현재완료의 세계를 떠나야 함. 과거완료, 현재완료가 현재를 지배하는 삶이 아니라 그 반대의 삶으로. 



*이미지가 왜 저렇게만 입력되나 모르겠. 아무리 회전을 시켜보아도 저렇게만 뜬다. 

이런 문제 해결하려면 또 뭐라 검색해야 하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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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5-22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은 책장이 앙증맞고 귀엽네요. 쓰시고자 하시는 모든 글, 좋은 글들 마음껏 많이 많이 쓰시는 귀한 공간 되시길 바래봅니다.
이미지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는 핸폰으로 보다가 당최 이해가 안 되서 서재에 들어왔더니, 서재에서는 좀 나으네요.
제가 고개를 이렇게 휙!! 돌려서 사진을 보았습니다^^

몰리 2021-05-23 09:53   좋아요 1 | URL
책을 채워놔도 흔들흔들해서 괜히 주워왔나 하기도 했었는데, 세월이 가면서 더 번듯해졌습니다. 구질구질함에서 빈티지함으로! ;;;; 변신 책장. 역시 나무 고유의 무엇이 있는 거 같아요. 집이 이 정도 바뀐 걸로도 이렇게 좋으면, 진짜 좋은 집 가면 얼마나 더 좋을까 하게 되어요. 조금이라도 좋은 것에 깊이 감사함은 오래 가난해 보는 것의 장점!

이미지 파일이 이상하게 저장되는 것도 윈도우즈 7이 윈도우즈 10이 되었기 때문인지 아닌지도 모르겠. 컴퓨터 수리가 된 다음에, 다시 문제가 발생해서 수리하신 분에게 전화했더니 ˝케이스를 열어봐야 하는 문제인데, 케이스를 열 줄은 아세요?˝ 하더라고요. 케이스를 수시로 열어서 먼지 청소해온 입장에서, 케이스를 열 줄 모르는 사람도 어딘가엔 있나 보다는 생각에 잠시 안도했더랍니다. 하지만 이 낯설어진 컴퓨터에 어떻게 빨리 익숙해져야 할지 지금 망연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