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게이 <계몽시대>와 앤드류 쿠란의 <디드로와 자유롭게 생각하기의 기예> 

읽으면서 자극되었고 


대량 책 주문했다. 

일단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영어판 박스세트 4권. 

하우저의 책 국역으로는 3권인가만 어딘가 (집구석 어딘가, 찾기 힘들 어딘가) 있는데 

저걸 어찌 하면 좋으냐.... 근심거리였다. 어쩌다 드물게 불시에 보였을 때. 


그 근심의 해결이기도 하다. 이제 전권 갖게 되었다. 


<계몽시대>는 전미도서상 수상하기도 했지만 

내가 읽은 몇 권 게이 책들 중에서 압도적으로 걸작이다.  

갑자기 미친듯 미술사 공부하고 싶어지게 하는 대목들도 있다. 미술이 이렇게 

인간이 가진 모두를 요구하고 인간이 가진 모두에게 보상하는 예술이구나. 같은 생각 들게 하는 대목들. 

대단히 심오하거나 거창한 얘기를 해서도 아니다. 소소하고 평범하다 넘어갈 만한 문장인데 

그런데 뜻밖에 문득 머리 속 불켜지는 느낌. 아무튼 그래서 일단, 고색창연하게 하우저의 책으로 시작하기로 하고 

한 번 더 고색창연하게,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도 봐야겠어서 이것도 영어판 구입. 

곰브리치 <서양미술사>는 열화당에서 나온 2권 참 예뻤던 책, 그 하얀색 표지의 한국어판 

대학원 끝나던 시절 누구 줬다. 이제야 복원함. 


게이의 책이 걸작이라 감탄을 많이 수시로 (심지어 수업 시간에도 한다.... 수업 내용 말하면서 

머리 속에서는 게이의 책에 찬탄하고 있는............) 했다. 졸작이라 생각했던 편인 이 책도 구입함. 




다시 본다면 

어쩌면 이것도 걸작일수도. 


이것들 외에 

디드로가 그의 연인 소피 볼랑에게 쓴 편지, Diderot's Letters to Sophie Volland. 

이 책도 구입했으며 

하인리히 하이네의 <독일에서 철학과 종교의 역사> 이것도. 

하인리히 하이네에 대해서도 

피터 게이는 명언 제조기셨다. 

이렇게 멋있게 말하시면 당신 책 바깥의 삶의 비참을 더 견딜 수 없어질 거 같습니다.... 면서 울고 싶어진다. 

그러다 그의 책을 덮으면, 그의 책으로 얼른 들어가 그 비참을 잊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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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감사히 듣는다. 

책으로 사려고 했더니 비싸서 

일단 오디오북 구입했다. 오디오북은 1달 2개 크레딧이 22불 정도니까 

아무리 비싼 책도 11불에 살 수 있다. 1000페이지가 조금 넘는다던가 아래의 책. 





여기서 맨 왼쪽 책. Fatal Discord. 루터와 에라스무스 사이의 투쟁. 서구 정신을 놓고 벌였던 그들의 싸움. 

이 책도 책으로는 아마 40불? 오디오북은 11불. 36시간. 


디드로는 피터 게이 <계몽시대>에서도 극히 중요하게 대접받는다. 

앤드류 쿠란의 저 책은 게이의 책에서도 적지 않게 도움 받은 듯해서 

어떤 대목들은 줄줄 이어지는 직접 인용처럼 들리기도 했다. 


디드로. 참 매력적이다. 

볼테르, 루소와 비교한다면 그들의 강점들을 모두 가졌으면서 

그들의 치명적 결함들은 전혀 갖지 않은 사람. 뭐 대강 이렇게 아무렇게 일단 말해볼 수도 있을 거 같다. 


도회적. 세계시민적. 세속적. 

이런 것이 삶의, 도덕의 이상이라면 그걸 구현한 인물로 

그가 빠지면 안될 거 같다. 


오디오북을 이제 1년 넘게 들었다 보니 이 내용을 

활자로 보면 어떻겠다 느낌도 전보다 명확히(아마도, 정확히) 드는 편인데 

쿠란의 책은 책으로 읽어도 여러 모로 매력적일 거 같다. 디드로를 좋아하고 그의 삶을 추적하면서 

디드로같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기도 하겠다. 아무튼 그의 문장들도, 도회적, 세계시민적, 세속적. 


게이의 책에서 읽었던 

내게 너무도 절묘했던 한 문장은, 디드로가 50대에 겪은 변화에 대한 문장이었다. 


그는 무려 40대 후반까지도 (당시 40대 후반은 지금 60대 후반쯤 되는 거 아님?) 

예술, 미학과 관련해서는 단순한 도덕주의를 넘어서는 견해는 갖고 있지 않았다. 

그 나이까지 쓴 예술, 미학 관련 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얄팍한 근거에 기대어 설교하는 그를 볼 수 있다. 

그러다 50대에, <트리스트럼 샌디>를 읽으면서 영향 받기도 하고 아무튼 그의 예술철학에

심대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그 변화에 대해 게이가 쓰던 문장은 

"언제나 자신에 충실했던 디드로, 아니 점점 더 그 자신이 되는 중이었던 디드로는 마침내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그 디드로로 쓰기 시작했다." 



와 이게 뭐야. 뭐 이리 절묘하고 심오해. 

디드로 정신의 질적 도약을 가리켜, "그는 언제나 그 자신이었으므로" "그건, 점점 더 자신이 되는 중이었다는 뜻이며..." 이렇게 말하다니. 하아. 한숨 쉬고 탄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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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이 책에 긴 역사가 있다. 지난 세월, 이 책에 속하는 지적 영토를 나는 

자주 횡단했고 여러 관점에서 지도를 그렸다. 스타일에 대한 내 관심은 역사가가 되겠다는 결정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언제나 그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나의 독자들이라는 행운이 내게 있었다. 

1950년대에 처음 내가 역사가로 쓰기 시작했을 때, 예리한 비평가면서 또한 가까운 친구였던 리처드 호프스태터와 헨리 로버츠가 내게 있었다. 내 최초의 편집자 크리스토퍼 헤롤드는, 그를 내가 그들만큼 잘 알았던 건 아니지만, 그들이 내게 가르친만큼 나를 가르쳤다. 이 세 사람 모두가, 솔직하고 감식안이 날카롭고 동시에 나를 격려하는 이들이었다. 애정, 그리고 고통과 함께 그들을 기억하면서 -- 세 사람 모두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 이 책을 완성하던 동안, 나는 로널드 사임 경이 그의 책 <타키투스>를 끝내면서 썼던 문장을 자주 생각했다. "인간과 왕조는 사라진다. 스타일은 남는다." 위안이어서가 아니다. 친구의 죽음은 복원될 수 없는 상실이다. 하지만 내 친구들의 스타일이 이 책의 페이지들에 자취를 남겼다고 나는 생각하고 싶다. 


스타일의 가장 우아한 실천자도 스타일을 위해 해야 할 노고. 이것을 나는 호프스태터 가족과 함께 보냈던 1954년 여름에 

알았다. 호프스태터가 그의 책 The Age of Reform의 서론 원고 전부를 개고하는 걸 곁에서 보았다. 그리고 그 해 여름 나는 에리히 아우얼바흐의 <미메시스>를 읽었다. 그 책은 계시였다. 그 후 긴 세월 나는 이 영감 가득한 걸작, 문헌학이면서 동시에 사회학인 이 책이 내게 준 교훈을 역사 쓰기에 적용할 기회를 탐색했다. 그 기회는 1960년대 초에 내게 왔다. 당시 몇 년 동안 나는 컬럼비아 대학의 대학원에서 신입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역사 서술 주제 과목을 강의했다. 이 책에서 내가 상세하게 탐구하는 아이디어 중 일부는, 여기서와는 아주 다르고 원시적인 형태였지만, 당시 그 수업에서 처음 타진되었다. 그 시절, 역사학에서 스타일이라는 주제는 계급과 국가가 역사가에게 가하는 제약에 관한 탐구에 속했다. 칼 맑스나 칼 만하임에게 직접 빚을 진 이들, 혹은 찰스 비어드를 읽으면서 간접적으로 그들에게 빚을 진 이들이 역사학계를 주도했다. 의심의 시대였다. 그러다 서서히, 역사 서술 분석이 더 세련화되었고 또 어떤 점에서 더 낙관적이 되었다. 내 수업에서, 나는 관점 실재론이라 부를 만한 입장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역사 연구의 대상은 실제로 역사 연구의 대상임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그들은 연구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객관성은, 어렵기는 해도 가능한 미덕이다. 


(.............) 


과거의 책들에도 그렇게 느꼈지만, 이 책에도 나는 내 비평가들이 내게 행운임을 다시 느낀다. 

내 원고를 집중하며 반복해서 읽었던 퀜틴 스키너와 나의 아내 루스에게, 전반적 논의를 섬세하게 하고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논점들도 날카롭게 다듬으라 나를 밀었던 이들에게, 특히 중대한 빚을 졌다. 

................. 작가에게, 그가 가질 가치가 있는 독자가 있다는 생각을 지금 내가 명랑하게 하고 있다면, 그게 

공허한 자기만족이 아니기를 희망한다.  



피터 게이의 Style in History. 

이 책 궁금해져서 얼른 사야겠다 하긴 했지만 

좀 시간 걸릴 줄 알았더니 바로 알라딘에서 중고가 찾아져서 바로 구입했다.  


이 "서문"에 감동함. 

죽은 친구들을 말하는 대목에서 

10년 전만 해도 전혀 몰랐을 감정, 생각... 등이 든다. 


작가에게 그가 가질 가치가 있는 독자가 있다는 생각을 내가 명랑하게 하고 있다면, 그게 다만 자기만족은 

아니길 희망한다. (.....) 이런 말에도 감동한다. 피터 게이 같은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그건 

잘 살았던 삶의 고백이 되는 거 아니냐............ 이러면서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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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이성 비판.







오늘의 한문장: 

"그러나 제3비판(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은 

비판 철학의 기획에서 벗어나는 거 같다. <희망 이성 비판>은 없는 것이다." 


프랑스 여성 철학자 미셸 르 더프의 

The Philosophical Imaginary. 전에 읽으려다가 

몇 페이지 못 가서, 지루하고 지루한데다 바슐라르를 오독한다고 생각하면서 덮었던 책. 


다시 시작했는데 

굉장히 신선하고 도발적인 면이 있다. 위의 17쪽에 이르기까지 

이래서 여자가 철학해야 해! 그렇습니다. 이런 느낌 여러 번 들었다. 


웃기기도 한데 

특히 칸트. 칸트가 체험한 상징적 거세, 그리고 그의 (철학에서) 보상 찾기를 얘기할 때 

......... 전부 납득되었다. 


좋은 책은 

정말, 삶의 비참을 달랠 정당한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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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고통인 게 맞구나 실감한 건 

요즘 니체 읽는 동안 같이 피터 게이도 읽으면서였다. 

철학하기 좋은 나이라고 플라톤 <국가>에도 나온다는 나이, (.... <국가>는 언제 읽은 책이 됨? 

읽은 것도 읽지 않은 것도 아닌 <국가>), 35세라던가 그 나이 즈음에 나는 철학책들 읽기 시작했고 


재미있었다. 


책으로 제일 재미있는 건 철학이지 않나 쪽으로 

이젠 이미 오래 살아왔는데 (오래라 해서 그게 또 그 세월 동안 많이 읽은 것도 아님을 문득 

기억해야 하고) 


아무튼 그랬다 보니 잊고 있었다. 

재미라 여겨지고 체험되는 것의 아마 한 70%는 고통이었을. 


피터 게이의 <계몽시대>. 

이 책은 어떻게 규정해야 이 책의 강도, 분위기, 범위 등이 

한 번에 포착될 수 있을까. 막 대단히 엄청난, 다른 세계가 열리고 (그렇다 보니 지금까지 알던 세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그런 책은 아니다. 계몽시대 주제로 이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최상의 과외교사? 이런 느낌 있다. 저게 칭송일 수 있다면. 친절하고 다감하고 정확하고 모르는 게 없고 등등의 느낌. 


그리고 또 스타일이 있다. 

에릭 홉스봄의 역사책들을 나는 도저히 읽을 수 없었는데 

무엇보다 홉스봄의 <--의 시대> 연작엔, 스타일이 없다. 말들이 고생하는 책. 말들이 

오직 일만 해야 하느라 고생하는 책. 홉스봄과 비교하면 게이의 책들에서, 말들은 춤도 추고 

옷도 여러 번 화려하게 소박하게, 좋은 옷으로, 갈아 입고. 하여튼 그렇다. 읽는 재미가 있고 

마음의 무거움이 걷힌다. 울면서 읽을 페이지라 해도. 



그런데 철학책들은 

심지어 니체의 책도, 그러지 않는다는 것. 그럴 수 없다는 것. 

니체의 책에서 언어의 저런 면모라 알려져 있는 면모가 실은 저런 면모가 아니라는 것. 

역사가의 스타일과 철학자의 스타일은 아주 다른 무엇이라는 것. 철학자의 스타일은 철학자의 문제의 ㅎㅎㅎㅎ 

일부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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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달 2019-10-01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이야말로 깊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학문이자 분야인 듯.

몰리 2019-10-02 02:56   좋아요 0 | URL
니체가 <서광> 서문에서 말하는
땅굴을 파는 지하 인간의 집요함, 진지함. 철학 고유의, 철학적 진지함이 있는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