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발견한 명강의.  

텍사스 대학 철학과에 재직했다는 Robert Kane의 도덕철학 강좌. 

도덕철학을 개관하는 강의 듣고 싶어서 찾고 비교하다가 청취자 평점도 높고 

리뷰를 보면 내가 원하던 형식이어서 (개관 + 비판과 보완) 낙점. 


틀어놓고 잤기 때문에 

한 8강 정도 다 건너 뛰고 오늘 새벽 멈춘 지점에서 시작했다. 

어디서 시작하든 상관없다. 선형이 아니야. 순환형이지. 돌고 돌고 돌고. 


보편성, 혹은 인간 본성을 향한 호소는 

도덕철학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 : 멈춘 지점 직전 이런 얘기 했나 보았다. 

이어서 그가 하던 얘기는, 가부장제가 보편적이지? 가부장제는 인류 문화 거의 어디서나 발견되니까. 

그런데 그렇다고 가부장제가 도덕적이냐? 노예제는 어때? 노예제는 사실 최근까지 보편적 제도였어. 

지금도 존재해. 노예제가 인간 본성에 부합해? 


한국인으로 살았다 함은 

특히 정신의 영역에서 매우 낮은 눈 갖기일 거라서 

나는 저런 말 들으면서 감격했다. 가부장제. 당신이 그 말과 뜻에 조금도 저항하지 않는 가부장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축복합니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그만!) 



그게 무엇이든 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함. 무엇이든 사적인 문제로 만듬. 

정신의 영역에서는, 이게 노예의 특징 아닌가 생각했다. 



*아무튼. 

정작 나는 그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겠지만 (이미 노인. 어제 식당에서 어떤 특별 메뉴가 있었는데 

식권을 사면 전광판에 번호가 뜰 때까지 기다렸다 가서 받는 메뉴. 줄이 길고 복잡했다. 

순서에 노인 우대는 없습니까? 했다가 계산해준 분께서 싫어하셨다. 그러나 싫어함의 한 2%는 "그러니까..."이기도 했다) 

앞으로 누군가는 적어도 그들처럼 공부하고 그들처럼 강의할 수 있어야 한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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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들인 책들 거의 전부 

한두 페이지나 읽으면 기적이겠음 실감하면서 

정말 꼭 필요한 책 (성서..... 같은. 안 읽어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 종류) 아니면 

사지 않겠다 다짐하다가 발견했다. 18년 연말에서 19년 연초에 나온 아도르노 강의록들. 


아도르노도 

독자를 양분하는 저자겠지. 

애독자가 되거나 무관심하거나. 독자 다수가 이 둘 중 하나에 속할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앞 쪽의 

독자가 다수일 것이다. 애독자라면, 힘들고 어렵지만 그의 책들을 안 읽지 않을 것이다. 이거 한편 신기하다는 생각 든다. 

인용하기도 쉽지 않은 편이고 (인용자 자신 어느 정도, 높은 역량에 도달하기 전까지 인용자와 아도르노의 

언어 사이 격차 때문에도 인용하기 쉽지 않은 면 있는데 그게 다가 아니기도 하다) 어쨌든 즉각 쓸모를 

찾을 수 없는 논의들만 가득함에도 


일단 읽기 시작하면 무관심할 수가 없다. 


다시는 책 사지 않겠다 다짐하자마자 사야했. 

나중 그렇게 추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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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배송받은 책들 중 이게 있다. 

디드로의 백과전서에 달랑베르가 썼던 서문 격의 긴 글 "Preliminary Discourse."

원제는 Discours préliminaire des editeurs. 역자의 굉장히 긴 해제가 있다. 나중 그 해제가 또 별도로 

책이 되어도.... 그러면 그 해제에 또 누가 긴 서문을 쓰면 그 서문이 나중에 또 별도로.... 



이 저술의 배경으로 역자가 하는 말 중: 

Preliminary Discourse는 젊은 학자가 다른 지식인들과 연합의 맥락 안에서 쓴 저술이다. 

이들에게 분노가 아니라 우상 파괴의 열정이, 그리고 진보적이며 위대한 아이디어라 이들이 믿었던 것을 향한 자신 있는 헌신이, 있었다. 개성과 독창성에 우호적이던 18세기의 분위기에서 성장한 이 매력적인 인물들. 그들의 화려하며 세속적인 기벽들. 이것들이 이 세기 연구에 특별한 호소력이 있게 한다. 지난 두 세기의 인구폭발이 있기 직전 유럽에 존재했던 이 생기 넘치는 우주. 이 우주가 품었던 그 고도의 친밀성에 20세기의 독자는 놀란다. 이 시대 문인들은 절친이 되거나 아니면 증오할만큼 서로 알고 지냈다. 프랑스에서 특히 탁월했던 이들은 모두 파리로 이끌렸다. 1740년대 후반이 되면, 파리가 보유한 최고의 젊은 정신 4인이 서로 아는 사이임을 넘어, 같은 테이블 앞에 모여 앉아 논쟁하고 농담하고 설교하는 일이 일어난다. 그 4인은 디드로, 루소, 콩디약, 달랑베르다. 루소는 <고백록>에서 1740년대에 이들과 만나면서 있은 일들을 회고했다. 디드로와 매우 친해졌으며 거의 매일 연락하거나 만났다고 그는 썼다. 



지성사 연구자들 특유의 관점, 어법이 있다는 생각 드는 문단이기도 한데 

번역은 (당연하다만) 잘 되지 않는다. 이 주제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관심있는 누구든 

즐거이 매혹되며 읽을 문장들인데, 비슷한 느낌 들 한국어로 쓰기는 지금 내게는 어려운 일.   


저녁 여섯시에 자고 밤 한시에 일어남. 

이제야 네 시 반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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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이 잉여자원의 축적을 가능하게 했고, 해서 필연적으로 잉여자원의 "불평등한" 축적도 가능하게 했다. 

사회의 계층화, 계급의 발명이 뒤따랐다. 빈곤이 발명되었다." 


로버트 사폴스키는 어제 처음 들은 이름이다. 

audible에서 여전히 3 credits special offer가 예전의 29불이 아니라 36불이라서 

(겨우 7불에 왜 그리 격분하게 되냐면 그게 "겨우" 7불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하여튼 

전처럼 29불 가격이면 세 번은 연달아 살 거 같은데 36불이라 한 번 사는 것도 꺼려지는 그것이.....) 

왜 이 가격 안 내려 주느냐, 얼른 내려라, 내리면 나는 연달아 구매하고 있을 것이다 이메일 쓰니까 

또 5불 쿠폰을 주었다. 5불 쿠폰으로는 special offer를 구입하지는 못한다. 5불 쿠폰을 합쳐서 special offer를 구입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는데 (간접적으로 깎아준 셈 치면서) 쿠폰으로는 오디오북의 현금 가격으로만 살 수 있어서 


쿠폰으로 사기 위한 8불 이하 타이틀들을 집중 검색했고 

사폴스키가 했던 "과학이 알게 하는 인간성 Being Human: Life Lessons from the Frontiers of Science" 제목의 

강의를 찾았다. 7불 얼마. 




그는 대단히 이력이 화려한 신경생물학자였다. 

맥아더 천재기금도 수상. 


강의 들어보면, 여태 들어본 여러 강의들 중에서도 특히 교수가 대단히 지적이던 강의들 

기청감.... 같은 느낌 든다. 그들이 공유하는 화법, 접근법, 이런 게 있긴 하다는 실감이 들기도 했다. 


이미 서재에 적어도 세 번은 쓴 거 같지만 

그들이 공유하는 특징엔 청중을 향한 존중도 있다. 진짜의 존중. 

어쩌면 이걸로 구분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독백이냐 대화냐. 어떤 독백도, 누가 됐든 그 말을 들을 사람을 향한 

진짜 존중이 거기 있으면 독백이 아니게 되는 거 같다. 


실제 청중을 앞에(옆에) 두고 말을 하지만 독백인 경우. 거기 존중이 없기 때문에 독백인 경우. 

아무 말이나 하거나 아니면 자기 아닌 걸 '코스프레' 하므로 독백인 경우. : 자주 보았던 이런 경우들

기억했다. 


독백이냐 아니냐. 존중이냐 아니냐. 

이것도 엄청나게 중요한 사회적 현실 아닌가. 

다수가 주로 혼잣말하고 다수가 주로 존중의 부재-멸시로 대접받는 곳에서 

정신은 죽고, 정신 유사품들이 번성할........... 뿐만 아니라 어떤 비참과 악이 제세상을 만날지는. 


로버트 사폴스키같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 곳과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곳. 그런 사람이 한 명 정도가 아니라 다수로 있는 곳.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한 명 덕분에 가능할 변화 같은 게 막 구체적으로 상상되기도 한다. 

사실 미국 대학 교수들 중 진보나 "좌파"로 분류될 이들에 대해, 이들이 진정 보통 사람들이 아님에 대해, 쓰고 싶었다. 

그냥 이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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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슐라르가 구약 시편의 몇 문장을 인용하고 논평하는 대목 보고 나서 

성경을 하나 좋은 걸로 사야겠다고 작정했다. 검색 결과 위 이미지 옥스퍼드 주석판이 

가장 좋아 보였다. 2천 페이지가 넘고 하드커버인 걸 감안하면 가격도 나쁘지 않다. 알라딘에서 5만원 정도. 

쿠팡에서 4만원. 아마존에서 30불 정도. 쿠팡에서 책도 파는 걸 최근 알았는데 여기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몰라도 신간들이 아마존보다 더 싸게 (조금 더 싼 정도가 아니라, 적어도 한 5불은 더 싸게) 나와 있기도 했다. 


바슐라르의 시편 논평은 

..... 바슐라르 애독자면 

아니 이게 뭐라고 이렇게 좋지? 뭐지. 왜 천재적이지 이게. 

암튼 그렇다. 여기 인용한다면 누구의 심장도 설득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혼자 그의 책에서 읽으면, 그리고 책을 덮으면, 거기 책의 앞뒤 표지 사이에 몰래 숨겨 묻어둔 보물이 있다고 

느껴질 것이다. 




<마담 보바리>는 폴 드 만이 번역한 것도 있고 내가 갖고 있던 건 그것인데 

불문학 강의 듣고 나서 이것도 새로, 다른 번역으로 사야겠어서 이번엔 플로베르 연구자로 

유명한 Francis Steegmuller의 번역을 샀다. 앞의 한 문단 비교해 보니, 폴 드 만의 번역은 

발번역이 되었다. 음 나치 동조자가 번역에 세심할 리가. 


<고리오 영감> 몇 페이지 읽으면서 

발자크도 좋은 질문과 함께 읽으면 무한히 더 재밌어지고 배울 것이 참으로 많은 작가겠음 

실감함. 좋은 질문을 공유하면서 좋은 토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같이 읽는다면 더욱 그럴 것임이. 


성경도 그렇다. 

바슐라르 같은 독자와 같이 읽는다면 성경 공부가 얼마나 재미있을까. 책들을 

매혹적으로 소개하고, 혹은 익숙한 책들을 새로이 다시 읽을 강력한 이유를 주고. 이런 사례들도 

모아 정리하면서, 그걸 한 그 비범한 독자들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도 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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