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많이 보고 멀리 볼 수 있으려면 

하나라도 잘 보는 훈련, 투명하게 자유롭게 (그럴 수 있는 한에서) 보는 훈련을 

거쳐야 할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은 분노하지 않는다." 

이 말 포함해서, 지식인을 구제하겠다는 게 한편 그의 의도인 걸로 보이는 아도르노의 여러 말들. 

그 말들이 하려는 얘기가 이것이기도 할 거 같다. 하나라도 투명하게 자유롭게 보았던 적이 있다면 

너는 맹목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이다... 같은. 너는 눈먼 지배에 반대할 것이다. 




좋은 학자의 좋은 강의.  

이건 정말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스타일, 사유의 방식, 이런 것들의 문제고 

그것들이 가능하게 하는 해방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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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유 습격에 대해 

bbc 제작 프랑스 혁명 다큐멘터리는 

"they dismantled the past brick by brick" 이런 말 하기도 했다. 

(바스티유를 공격한 파리의 군중은) 벽돌 단위로 그들의 과거를 해체했다. 

............ 


요즘 듣는 유럽 현대사 강좌는 90년대 말 제작되었고 

강의했던 교수는 이미 은퇴한지 오래거나 어쩌면 타계했을 수도. 

Great Courses에 참여한 교수들이, 널리 학계에서 유명한 교수들은 별로 없는 거 같고 

소소하게 그들 소속 대학 차원에서 유명했던 이들이 다수인 거 같다. 사실 이 점이 놀랍기도 하다. 

막 찾아보면 바로 나올 대단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아니야. 그런데 강의를 이 정도로 잘해... 같은 놀라움. 

이 교수는 유펜에 재직했던 사람. 그러니 조금 유명한 책 하나만 썼더라도........ 일 분일 텐데 어쨌든 내겐 

전혀 모르던 분이고 


강의를 듣다 보면 

(모를 만한 이유가 여기 있겠네) 온건하거나 우파 쪽이겠구나 좌파는 아니다... 같은 생각 들기도 한다. 

인문학에선, 우파 쪽이라면 아주 아주 잘해야만 명성이 (존경받는 명성이) 

좌파 쪽이면 아주 조금 도발적이기만 해도 명성이....... 이렇지 않나. 


그렇든 아니든 

"나폴레옹의 부상: 혁명의 계승자냐, 새로운 폭군이냐" 대혁명에 바쳐진 2개 수업 다음 수업이 이런 제목인데 

이 수업도 듣기 전의 기대를 좀 많이 뛰어 넘는다. 혁명의 계승자면서 폭군의 면모도 있었다... 쪽으로 가겠지. 그게 정답이지. 정답이겠지. 그렇지 않다면 수업 제목이 저게 될 수 없겠지. (.....) 생각하다가, 굉장히 절묘하게 


그에게 폭군이던 면모는 시대보정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에게 혁명의 계승자인 면모는 지금도 칭송이 필요하다... 같은 방향으로 논의하는 걸 듣게 된다. 

그런게 그게 아마도 우파의 관점에서. 



우리는 이 정도도 전혀 못하지 않나. 

우리는 왜 이 정도도 못하는가. (.....) 이것에 답하는 게 우리의 과제다. 시급하다. 시급한 과제다. 

같은 생각을 진지하게 ; ㅇ 으으 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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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7-17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에서는 200년 전 역사도 치열하게
디비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불과 몇년 전 일도 사회
통합에 저해가 되니 그만 덮고 가자는
의견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잘못된 것은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지
밝혀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몰리 2018-07-17 08:49   좋아요 0 | URL
정말입니다. 제말입니다.
본격적으로 제대로 반성하고 사유하고
재구성하고 논의하고 공유하고 바꾸고 다시 본격적으로 제대로......
..... 에너지의 결집, 표출이 (.....)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속지 말라. 위대한 정신들은 모두 회의주의자다. 짜라투스트라도 회의주의자다. 

정신의 힘에서 오는 활력과 자유는 회의주의를 통해 자신을 입증한다. 가치 혹은 가치의 부재에 관한 

기본 문제들을 다룰 때, 확신하는 인간들은 숙고하지 않는다. 확신은 감옥이다. 확신하는 이들은 충분히 멀리 보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아래를" 보지 않는다. 그러나 가치 혹은 가치의 부재를 말하려면, 너는 너의 "밑에" 있는, 너의 "뒤에" 있는 오백 개의 확신들을 보아야 한다. . . 위대함을 향한 의지가 있으며 그걸 얻을 수단을 향한 의지도 있는 정신은, 필연적으로 회의주의자다. 모든 종류의 확신으로부터의 자유, 사물들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능력 그 자체가 그의 힘을 구성한다. . . 


신념(신앙)의 인간, 모든 유형의 신앙인들은 필연적으로 의존적인 이들이다. 

이들은 그들 자신을 목표로 삼을 줄 모른다. 이들은 그들 자신으로부터 목표를 이끌어낼 줄 모른다. 

신념하는 인간은 그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수단이 될 수 있을 뿐이며 이용되고 소진되어야 한다. 

그는 그를 이용하고 소진할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구속 혹은 안정의 외부적 원리로서 어떤 규제가 필요한 사람들이 얼마나 다수인가 생각하라. 

어떻게, 노예제의 좀더 고차원적 표현인 강압이, 의지가 약한 사람이 번영할 수 있는 유일하며 궁극의 조건인가 생각하라. 

확신과 신앙이 무엇인지 이들이 우리에게 알게 한다. 확신, 혹은 신앙은 그걸 갖는 인간에게 척추가 된다. 


많이 보지 않겠다는 것.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자유롭지 않겠다는 것

언제나 뼛속깊이 편파적이겠다는 것. 모든 가치를 완고하며 필요한 하나의 관점으로만 보겠다는 것. 확신하는 인간이 발생하기 위해 필요한 유일한 조건이 이것들이다. 


광신자들은 우리 눈을 즐겁게 한다. 인류는 이성에 귀기울이기보다는 제스처를 보고자 한다. 



<안티크리스트>의 54번 단장에 이런 내용이 있다. 

오늘 읽다가 특히 밑줄 부분에서 


아아아아아아아아 이것은 

78% (87%, 98%)의 한국인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냐. 

우리는 모두 확신인, 확신자, 확신범이 아니냐. 


그리하여 우리는 모두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튼. 

어디서나 보는 편협하고 얕은 정신. 편협하고 얕은데다 공격적인 정신. 

이것에 한국의 교육은 얼마나 기여하는 걸까. 무엇보다 교육 탓이다.... 고까지 말할 수는 없을 거 같다. 

그러나 아주 중요하게, (교육이 다르다면 다른 요소들이 똑같아도 이렇지 않을 거 같으므로) 둘 사이의 연관이 있을 거 같다. 


많이 보기, 멀리 보기, 나의 아래와 나의 뒤를 보기. 내 믿음을 알기 위해 5백 개의 다른 믿음들을 보기. 

이걸 가르치는 학교는 ............. 당신은 그런 학교를 다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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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시학. 

이 책에 "내밀의 무한" 이런 제목 장이 있는데 

그 장은 어쩌면 칸트와 논쟁하는, 칸트를 비판하는 장인가 보다는 생각이 오늘 들었다. 

아도르노가 <순수이성비판>을 강해한 강의록에, 칸트가 시간, 공간의 인식에서 경험이 하는 역할을 

어떻게 해결하지 못하나 말하는 대목이 있다. <순수이성비판>은 케임브리지에서 나온 영어판 갖고 있기도 한데 

갖고만 있는 책. 소문도 사실 잘 모르는 책. 어쨌든 잘 모르는 책 얘기라서 


(이제 마침내 읽지 않을 수 없게 되었군.... 순수이성비판....) 

괴로워하며 읽다가 


바슐라르가 왜 저 책을, 그리고 그 장을 

썼나 알겠다는 심정 되던 순간이 있었다. 

아도르노 강의록에 바슐라르의 저 책을 다시 보게 하는, 여러 의미심장해 보이는 대목들이 있다. 

그것들이 갑자기 바슐라르와도, 칸트와도 (모르면서, 모르지만),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연결되는 거 같았다. 

무슨 실뜨개 놀이처럼. 




며칠 전엔 (오늘처럼 더운 날이 아니었다) 

오후에 동네 체육공원에 갔는데 체육공원의 지붕 있는 정자 (왜 그 꼭 기와얹은 정자 있지 않나. 육각정. 팔각정) 

그 정자의 마루에, 두 할아범들께서 


한 분은 가부좌로 앉으시고 

다른 한 분은 드러 누우셨다 일어났다 하시면서 

소주를 드시고 있는 걸 보았다. 두 분 사이에 신문지가 펼쳐져 있었고 

과자류 안주와 소주, 종이컵이 신문지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두 분은 아무 말 없이 소주를 천천히 마셨는데 


그러니까 내가 거기 있던 거의 한 시간 동안 그들 사이 대화는 거의 없었다. 

아주 가까이 있던 건 아니나 .... 하여튼. 


그런데 그러다 

누워 있던 분이 일어나서 

자리에 앉는 정도가 아니라 신발 신고 서시더니 

사진을 찍기 시작함. 가부좌 하고 술 드시던 할아방께서 

굉장히 열심히 사진 촬영에 참여하셨다. 종이컵 술잔을 들어 올리며 웃기도 했다. 거의, 껄껄껄. 


서울, 2018년 여름. 

..... 그런 풍경이었다. 당시 시각 3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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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로베스피에르에 관해 조금 더 얘기해야 하는데,  

그가 유럽의 역사에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혁명의 최악의 과잉을 집행한 인물이고 그 점에서 피에 굶주린 유형이기도 했다. 

이걸 그가 "true believer"였다는 것과 뗄 수 없다. 그는 혁명을 진정 믿었다. 그는 광적으로 믿었다. 

그는 유럽의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한, 그리고 유럽 정치에 자기 자취를 남긴, 진정한 이데올로그다. 그리고 그의 후예들이 등장할 것이었다. 



강의 빌런 ('빌런' 일케 써도 됨?), 아니면 강의 생활자인 나는 

7월의 audible 1크레딧으로 '유럽 현대사: 프랑스 혁명에서 EU까지' 같은 과목 받아서 

내게 프랑스 혁명을 얘기해주는 당신, 사랑합니다. 더 해 줘. 더 해 줘. 이러며 듣고 있다. 


프랑스 대혁명에 바쳐진 수업은 겨우 두 번. 

그 두 번째 수업의 마지막 말이 위와 같다. 

..... "그리고 그의 후예들이 등장할 것이었다." 영어로는 

(He was the first real idealogue who made his mark in European politics.) He was certainly not the last. 이런 문장이었다. 


미국 교수들이 이런 것에 참 강한 편인데 

뜬금없이 어떤 문장 멋있게 말하기. "He was certainly not the last" 이 문장을 교수가 

갑자기 너무 멋있게 말해서 


다른 더 훨씬 중요한 얘기들은 다 잊어도 "He was certainly not the last"는 잊지 않을 거 같았다. 

로베스피에르 포함, 대혁명 주역들이 30대였다는 점을 교수도 ('껄껄껄') 아마도 이런 심정 되면서 말할 때

.... 그러게 참. 그들은 30대였다. 그것도 초반 아님? 로베스피에르는 32세던가. 30대.... 30대의 저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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