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파이 살인 사건> 영화 나왔다는데요????? 잠깐 기다려! 책 읽고 올게요! 

(코퍼필드, 너도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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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en's Prize for Fiction A Year of #ReadingWomen - Women's Prize for Fiction (womensprizeforfiction.co.uk)


소설 제목보다 작가 이름이 더 크게 들어간 이 책은 작년 여성소설상Women's Prize for Fiction 수상작이다. (링크에는 <햄닛>을 비롯한 28년간의 수상작 목록이 있다.) 제목은 붉은 머리칼 때문에 Copperhead로 불린 주인공의 별명이지만 찰스 디킨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의 재해석이라고 한다. 유복자로 태어나 지지리 고생하다 성공하는 인생.


모셔둔 묵직한 디킨스 책을 읽기 시작했다. 술술 잘 읽힌다. 클레어 키건의 얇지만 밀도 높은 책에서 신경써서 읽어야 하는 의미나 묘사와 달라서 두꺼운 책의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에 속도가 붙는다. 디킨스의 시대 어린이는 아무리 뼈대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더라도 친 아버지와 돈이 없으면 고생할 수 밖에 없다. 사회 복지가 약한 현대에도 비슷하겠다. 초등 3학년 아이가 겪게 되는 학대에 가까운 취급(무능한 엄마는 어쩔)은 옛날이나 지금의 독자들 마음을 울린다. 데이비드 코퍼필드 주위에는 한줌의 은인들과 무리의 사기꾼들이 들끓는다. 어른이 된 화자는 어린 데이비드가 얼마나 쉬운 먹잇감이었는지 잘 알고 있다. 이 능청맞은 화자는 이미 당시의 유명 작가인 디킨스의 생애를 각색해서 시장성 있는 상품으로 내놓았다. 얼마전 영화로도 나왔다는데 주인공을 백인이 아닌 배우로 설정한 것이 특이해 보인다. 바로 이 소년의 성장담 + 권선징악 + 가문과 교육의 중요성이 현대 소설에서 그것도 "여성소설"에서 어떻게 구현됬을지 궁금하다. 너무 궁금하다. 그래서 지금 디킨스 700여쪽 남은 분량이 귀찮아 지려고 한다. 건너뛰고 코퍼헤드로 갈까 말까.



사실 이런 재해석 소설이나 영화는 출발점이 되는 옛소설들을 먼저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자꾸 미뤄놓게 된다. 스미스의 <온 뷰티>가 그렇다. 이 소설은 <하워즈 엔드>의 오마주 작품이라는데 포스터 소설 <모리스>를 읽고 별로였기에 선뜻 손에 잡지 못하고 있다. <온 뷰티>의 번역본 소개글에는 포스터의 작품과 연결이 언급되지 않는게 의외이고 그래서일까, 별점도 박하다. 그래도 난 제이디 스미스의 소설을 읽고 싶다. 



읽을 책은 내 앞에 쌓여있고 설거지랑 빨래도 쌓여있고 흰머리는 올라오고 애 학원 등록도 해야하고 벌써 열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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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이 너무나 평범해서 한참을 묵혀두었다가 읽었다. 표지 안에 담긴 보석을 하마터면 못 만날 뻔. 중요한 것에 표지랑 제목도 포함시키자. 


주인공이나 화자의 직업이 작가거나 작가 본인이 반영된 소설은 많다. 그런데 이번에는 작가가 직접 자기 이름을 걸고 자신의 프로필을 많이 반영한 모습으로 천연스레 살인 사건에 뛰어들었다. 그것도 까칠한 전직 형사, 현 탐정 대니얼 호손과 함께. 이미 코넌 도일 재단에서 새로운 홈즈 시리즈 작가로 공식 인정까지 받은 작가 앤서니 호로위츠는 탐정 호손의 옆에서 21세기 왓슨이 되는 것이다. 


"솔직히 왓슨이 셜록 홈즈를 아무리 우러러보았다 한들, 헤이스팅스가 푸아로를 아무리 존경했다 한들 바로 그때 내가 호손을 사랑한 것에는 미치지 못했을 테고, 나는 그가 내 편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 (376)



재미있다. 중요한 건 살인이라고 제목부터 강조하듯이 중심은 살인 사건이다. 작가/화자는 중간 중간 사건 진행 상황을 정리하고 맨 마지막엔 그 복선 혹은 힌트가 언제 어디쯤에 놓였었는지, 독자가 혹시 알아차렸는지 확인시켜준다. 내가 놓쳤더라도 괜찮다. 작가가 (소설 안에서) 나보다 조금 더 헛발질을 했기에 홈즈형 호손을 상대로 무력해 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중요한 건 소설!이라고 계속 화자는 상기시키고 있다. 이거 소설입니다, 알죠? 작가가 정말 재밌게 잘 쓰지 않습니까? 내가 쓰고 있다고요. 독자님덜 여기서 손님이심. 함정이 여럿 있으니까 알아서 피하십쇼.


초반부터 홈즈 말고 호손은 작가 (존 아니고 토니 아니고 앤서니)호로위츠에게 사건 해결에, 그러니까 범죄 논픽션을 쓰면서 군살이나 뻔한 가짜 장식을 붙이지 말라고 화를 낸다. 사건과 그 세부사항에 집중하고 실마리를 찾으라고 작가에게 면박을 준다. 자신이 참고인들과 면담 할 땐 끼어들지 말라고 윽박을 지르고 개인적 친밀감은 차단한 채 수사의 진행 상황도 전부 공유하지는 않는다. 호손이 버럭할 땐 무서운 폭력성이, 편견이, 어쩌면 정의감이 보인다. 그리고 결국 그는 살인 사건의 범인을 밝혀낸다. 이 책이 증거잖아요? 사건 해결 했고 작가는 책을 냈고. 바바요, 군살 없이 딱떨어지는 진짜배기 범죄 소설.


재미있다. 왓슨보다 더 재치있는 말장난과 과장된 자기비하 아래 놓인 이야기 진행 솜씨는 얄밉도록 훌륭하다. 시체를 목격하고 피냄새에 정신을 놓아버렸다면서도 한 페이지 꽉 꽉 채워서 그 살벌한 난도질을 묘사해 놓아 나도 어떤 비린내를 맡았고요? 이렇게 쉽게 끌려가는 독자인 내가 추리에서 그를 앞질렀다는 건 큰 착각인 것이다. 호로위츠 선생, 당신이 이겼소. 


재미있다. 중요한 건 살인이고 중요한 건 이야기 솜씨이다. 앤서니의 <맥파이 살인 사건>을 이제라도 읽어야겠다. 내가 져서(응?) 분한 마음과 책의 마무리에 조금 여유가 보여서 별 하나를 빼는 꼬장을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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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끼 2023-11-10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몇군데 웃음포인트가 ㅜㅜㅜ
”표지와 제목이 너무나 평범해서“네?? ㅌㅌㅌ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자님덜 여기서 손님이심“…
“져서 분한 마음… 별 하나 빼는 꼬장을 부려본다“
포인트에서 웃었어요

유부만두 2023-11-11 10:01   좋아요 1 | URL
ㅎㅎㅎ 웃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의 톤을 좀 더 과장해봤어요. 아주 능숙하게 이야기를 다루는 작가의 문장에 과몰입하면서 따라가게 되거든요. 재밌습니다. 추천해요.

책읽는나무 2023-11-12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와 제목이 가장 중요한 줄 알았는데 살인이 더 중요한 거였군요?ㅋㅋㅋ
이 책은 만두 님이 쓴 책인 줄 알고 읽는 느낌일 것 같아요.^^

유부만두 2023-11-12 09:22   좋아요 1 | URL
어데예~ ㅎㅎㅎ
책 정말 재밌어요! 추천합니다.


psyche 2023-11-22 0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재미있겠다

유부만두 2023-11-22 09:09   좋아요 0 | URL
언니야 이거 이거 꼭 읽으세요. 이거 시리즈래.
언니야 이거 꼭 읽어!!!!!!! 나랑 손 잡고 수다 떨게!
 

십대 때 뫼르소에 동일시했던 화자와 뫼르소 같은 류의 인간을 비난하는 전직 형사 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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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1-10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11-10 1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번째 사진 문장은 희진쌤 빙의...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3-11-10 16:39   좋아요 2 | URL
이 장면 읽으면서 을매나 놀랐게요?!?!

공쟝쟝 2023-11-12 0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죽은 카뮈 뺨 맞는 소리 ㅋㅋ

유부만두 2023-11-12 11:38   좋아요 0 | URL
소설 후반부에는 카뮈가 정말 글 잘쓴다, 라고 나와요.
뺨 때려 놓고 미안했나봐요. ㅋㅋ
 

클레어 키건의 초기 단편집 Antarctica. 15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실려있다.(개정판엔 Close to the water's Edge가 추가로 실려있다는데 아직 못 읽었다.) 각 이야기가 매우 강렬해서 한 호흡에 이 얇은 책을 읽기는 힘들었다. <맡겨진 소녀>와 <Small Things like these>의 따뜻함 보다는 그 우물가의 음산함과 수녀원의 폭력성이 단단하게 뭉쳐있다. 이 단편집에 주어진 상의 이름 윌리엄 트레버와 함께 셜리 잭슨과 도리스 레싱이 연상된다.


강압적인 사회/가정 질서와 답답한 생활이 쌓이고 쌓이다 쩍 하고 금이 간다. 그 금 간 곳에 바람이나 빗물이 들어와 온 세계가 흔들린다. 세계가 무너지는 것이 눈에 보이는 순간 소설이 끝난다. 아니면 이미 비극이 벌어진 다음, 좌절한 인물이 그 사건을 수습하려다 더 큰 사고가 터져 버리는 결말이다. 상대적으로 약한 수위의 글들도 있지만 그 역시 긴장감으로 팽팽하다. 이야기는 짧지만 설명하는 대신 보여주는 예리한 묘사로 아주 길고 풍성한 소설 읽기를 할 수 있다. 


제일 내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는 "Quare name for a Boy". 아일랜드를 떠나 영국에서 일하던 여자가 크리스마스에 맞춰 귀향한다. 영국에서도 따로 만나곤 했던 고향 애인과 자신은 가벼운 사이라고 생각하지만 임신 사실을 알려야 한다. 자신을 보러 몰려 온 아일랜드 동네 아줌마들, 해변 산책에서 보는 어부들, 숲속에 아버지가 굴뚝도 없는 집에 가둬 죽였다던 어떤 여자 이야기 등 이런 묘사나 단상들이 모두 화자의 상황을 암시한다. 함께 펍으로 들어가지만 애인은 자신을 친구들에게 소개하지 않는다. 여자는 마침 읽고 있던 <자메이카 여인숙>을 떠올리고 아이 이름에 대프니가 좋겠다고 말한다. 애인은 "그건 사내 아이 이름으론 이상한데"라고 대답한다. 이 대답 하나로 그 애인과 두 사람의 관계의 많은 부분을 파악할 수 있다. 


천천히 재독하고 싶다. 억세고 무서운 이야기도 통쾌한 이야기도 있는데 모두 클라이맥스에서 끝나기에 독자가 그 뒷수습을 나름대로 하는 재미 혹은 부담이 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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