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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1.

[ ]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현직 정신과 전문의들은 DSM 분류체계에 큰 관심은 없다 51

2.

[ ] 정신의학은 과학이 될 수 있을까: 행동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그리고 행동을 일으키는 변인이 많아질수록 행동이 특정 변인과 정확한 상관관계를 가질 가능성이 낮아진다. 고려해야 할 요인이 너무 많으면 그중 대부분은 평가가 불가능해져 추측 또는 환자의 자기보고에 맡길 수밖에 없어진다....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 코헛의 자기심리학, 매슬로의 욕구단계이론은 같은 비판의 먹잇감이 된다. 72 일반적으로 정신의학은 자기보고, 추측, 문화적으로 결정된 병리학의 정의에 근거해 진단한 다음 그에 대한 생물학적 표지를 찾는다. 73 우리는 정신질환이 대유행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74 불편한 곳이 어디인지, 언제부터 그런 증상이 있었는지, 증상이 심해질 때와 완화될 때는 언제인지 묻는다. 의사는 질문을 마친 다음 환자를 검사해 질병의 객관적 징후를 찾고 감별진단을 내린다...누구든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응급실을 찾아갈 수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심근경색을 진단받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정신과를 찾아가 우울함을 호소할 경우 대부분 우울증 진단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정신의학의 의료행위는 DSM 진단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DSM 진단은 자기보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셈이다. 75

[ ]감정은 진공 상태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감정은 세상에 대한 판단이며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세상과 교류하는 방식이다. 이는 그런 감정들이 불편하지 않다거나 특정 행동이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므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하지는 않는다. 감정과 행동은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77 의학계 곳곳에 노화방지 약물이나 장 해독제와 같은 엉터리 치료가 꾸준히 번성하고 있다. 이는 정신의학도 예외가 아니다. 77 정신의학의 의료행위는 여타 의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시장의 힘에 좌우된다. 정신의학계가 원하든 원치 않든 상담사에게 상담을 받고, 정신과 의사에게 약을 처방받는 것이 더 저렴하다. 약물은 이제 현대 정신의학의 초석이다. 78 이제 정신의학은 다른 모든 질병과 유사하게 주로 ‘뇌에 기초하고 있는 장애‘라는 좁은 모델 안에서 운영된다. 이 모델에서 뇌가 겪는 혼란은 약물의 기술적 조작으로 개선될 수 있다..근시안적 관점은 관리의료제도, 감정 문제에 인내심이 부족한 일반인, 제약회사, 신화를 영원히 이어가려는 정신의학자의 결탁으로 유지된다. 79 과학적 의학의 목표가 질병을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이라면 결과를 예측하는 동시에 질병에 가장 적절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게 구체적이며 객관적인 검사를 마련해야 한다. 많은 부분에서 정신의학은 과학적 의학이라고 하기엔 충분치 않다. 81

3.

[ ] 우울증 치료의 다섯가지 쟁점: 많은 연구가 우울증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믿음과 신뢰, 과학적 용어로는 기대감과 위약 효과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85 심리치료의 효과가 각 치료의 특별한 기법보다는 환자와 치료사 간의 연대감, 환자가 심리치료 효과와 치료사에 대해 가지는 믿음 등 소위 ‘비특이적‘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 92 비판적 사고는 보통 사람에게는 잘 듣는 치료에 고집스럽게 저항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우울증 치료에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치료에 무조건적인 믿음을 가진 환자는 치료에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치료에 회의적이라면, 치료에 대한 낮은 기대감이 그대로 자기충족적 예언이 될 가능성이 높다....윌리엄 제임스는 ˝사실에 기반을 둔 믿음은 사실을 창조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고 ˝세상에 위대한 공헌을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은 깊은 절망에 빠진 사람이 자살하는 것을 막고 세상에 이바지하도록 만든다. 94 그는 ˝삶은 행동과 고통, 창조로 만들어진다.˝라고 믿었다. 95

4.

[ ] ADHD, 질병과 마케팅 사이: 리탈린을 복용하는 아이가 미국인 중 300-500만에 이른다. 전 세계 리탈린 생산량 중 90퍼센트를 미국 아동이 복용한다. 99 ADHD는 가장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소아질환인지도 모르지만, 그것의 결정적인 신경병리학적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이를 도파민 부족을 판단할 생물학적 검사가 없다는 것이다... ADHD 자녀를 둔 일부 부모들은 이 약이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고 방학중에는 먹이지 않아 약쉬는 날로 부르기도 한다. 만약 당뇨병을 원하지 않는다고 인슐린 투약을 중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연히 약 쉬는 날이 없다. 100, 101 제약회사 마케팅 부서는 아동의 약물 복용 결정을 (1) 진단이 곧 질병이다. (2) ADHD는 환경이 아닌 생물학적 요인에 기인한다. (3) 질병은 약으로 치료할 수 있다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106 ADHD를 일으키는 유전자가 있다는 발상은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이런 발상은 약물이 유전자 결함에 의한 신경전달물질 장애를 고치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아동에 대한 향전신성의약품 처방도 쉽게 정당화할 수 있다. 108 초파리 실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빛을 향해 나아가는 단순한 행동조차 수백 개의 유전자가 관여한다. 108 ‘부모와 교사가 수반성강화 기술들(가령, 점수제도, 타임아웃, 특권 제공 또는 박탈)을 갖추도록 교육하고 지원한다면, 아동들의 파괴적 행동에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 109 딜레마: (1) 부모는 수년 동안 이러한 딜레마를 겪어왔고 (2) 리탈린은 반창고처럼 단기적인 조치에 불과하며 (3) 장기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족상담사를 추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만 (4) 관리의료제도 하에서는 약 처방이 쉽고 저렴하며 (5) 이 병원에서 처방받지 못하면 부모는 결국 다른 곳에서 처방받을 것이다. 111

[ ]우리는 질병을 치료하고 있는가, 아니면 일종의 경기력 향상 효과를 지닌 임시방편의 패치로 다른 사회문제들을 감추고 있는가/...틱 발병, 약물복용량, 장기 치료의 영향에 관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아직 답이 나오지 않았다고 주디스 래포포트 박사는 말한다. 111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 외에도 각 학교들이 숫자와 글자 교육에 치중하는 현재의 교육 방침에서 벗어나 더 많은 시간을 예술, 음악, 체육 교육에 할애해야 한다고 주장 한다. 111 어떤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에너지가 넘치고 활동적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그러한 아이들이 에너지를 해소하도록 더 많은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더 쉽고, 건강하고, 인간적인 방식은 아닐까? 112


볕뉘

0. 관심이 가는 잡지였는데 특집이 유난히 눈에 띠어 사서 본다. 생각했던 것보다 그 격차는 커 보이며 심각한 듯싶다. 질병을 확인할 수 있거나 대조군을 비교하는 툴조차 없다는 것이다.

1. 네 편의 논문은 주요한 사실들을 말한다. 기준 자체가 모호하며 재현성의 검사방법도 없는 병들이 과잉으로 진단 처분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 해결방법 역시 논의나 토론 담론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 ADHD 한 친구의 딸은 지금 그림공부를 하고 있는 중학생이다. 유난히 활달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이 딸을 초등학교 ,2학년때 병원은 이런 진단을 해놓은 것이다. 위 논문들에서 지적한 주요한 몇가지 사실들이 염두에 두어졌으면 좋겠다. 국내 현실도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듯실다. 글에도 나오지만 윌리엄 제임스는 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그 증상을 연구와 과학으로 한 단계 올려놓은 사람이다. 믿을 수 있는 것은 많지만 나누고 믿고 어울리고 여러 관계가 증상을 완화한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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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계의 물리학

[ ] 관계의 우주에서 우리는 알게 된다. 사귄다는 것은 다른 존재를 내 안에 받아들이는 일이고, 친하다는 것은 서로의 다름을 닮아가는 일이며,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의 다름에 스며드는 일이다. 어떤 물리적 관계는 우아하게 도약해서 관계의 화학으로 나아간다. 24

[ ] 사람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이면서도 가장 잘 찾아가지 않는 곳, 그곳에 천국을 숨겨놓았을 거다. 그곳은 마음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천국과의 거리는 영이다. 35

[ ] 관계는 수제품이다. 수공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해지는 것, 그것이 관계를 대하는 안목이다...내가 아는 관계에는 공짜도 일시불도 없다. 오늘의 관계는 오늘의 성실을 요구한다. 44

[ ] 거리를 두지 않고 거리를 준다는 것은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고백이다. 서로에게 마음의 곡률반경과 자유로운 선택의 권한을 늘려준다는 것은 사랑의 본질을 이해했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거리를 주면 관계의 너비와 둘레가 확장된다. 당신이 원하는 만큼 생동하는 자유의 거리를 내준다. 당신의 원심력이 커질수록 나의 구심력도 커진다. 그리움의 힘은 믿음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50

[ ] 우리는 동사의 시대에 태어났는데 어느새 명사의 시대가 삶을 접수해버렸다. 하지만 이것은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공부가 배움을 잃고, 만남이 사귐을 잃고, 노동이 땀을 잃고, 삶이 쓸모를 잃어가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발효의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54

[ ] 자기 자신과 사귀는 법을 모르고 사는 어른이 의외로 많다. 자신의 어떤 감정을 밖으로 내보내고 어떤 감정을 보살펴야 할지 몰라 온갖 감정을 다 끌어안고 살거나, 모든 감정을 내보내버리고 감정 없이 사는 사람도 있다. 감정이 시키는 대로 감정에 끌려다니며 사는 사람도 있다. .삶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는 감정, 건강, 관계, 돈, 섹스, 배움, 영성의 범주에 들어가 있다. 물론 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감정을 밑절미로 서로 영향을 미친다....감정은 애완견의 산책과 같다. 내가 어디로 갈지는 애완견이 아니라 목줄을 쥔 내가 정하는 것이다. 202, 203

[ ] 나와 놀아주는 일에 익숙해야 한다. 혼자 밥 먹고, 혼자 책 보고, 혼자 여행하고, 혼자 말하고, 혼자 사랑하고, 혼자 떠나는 일들을. 너무나 오랫동안 여럿이 하는 일에 길들여졌다. 이제는 혼자서도 나를 잘 돌봐야 한다. 잘하는 방법을 배워서 능숙해질때까지 혹독하게 연습해야 한다. 그래야 외로원도 덜 외롭다. 아름답지 않아도 당당할 수 있다. 237

2.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 ] 만남이란 놀라운 사건이다. 너와 나의 만남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넘어선다. 그것은 차라리 세계와 세계의 충돌에 가깝다. 너를 안는다는 것은 나의 둥근 원 안으로 너의 원이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감내하는 것이며, 너의 세계의 파도가 내 세계의 해안을 잠식하는 것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34

[ ] 가정과 학교의 보호 속에서 제대로 된 실패를 해보지 않은 사람일수록 자신에 대한 환상을 갖는다. 자신이 실패를 피해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 하지만 세상은 당신과 그런 방식으로 관계 맺으려 하지 않는다....당신이 제대로 된 선택으로 시작하지 못할 것임을. 따라서 다른 길과 다른 가능성을 마음에 품은 채 느슨하게 출발해야 한다....세상은 한 번도 당신에게 단 한 가지만을 골라 그것에만 매진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83, 84

[ ] 세상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존재가 태어나고 어쩔 수 없이 자기만의 시간을 고스란히 지내야만 한다. 그것은 가르쳐준다고, 알려준다고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세상을 살아가며 얻게 된 소중한 경험과 이해는 오래 산 존재들과 함께 침묵 속으로 사라지고, 세상은 이 세상이 처음인 싱싱한 존재들이 장악한다. 90

[ ] 우리가 세계에 던져졌다고 할 때, 그 세계는 지구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우리는 나 자신에게 던져졌다. 당신은 당신에게, 나는 나에게, 그래서 그것은 신비한 일이다. 왜 나는 당신이 아니라 나에게 던져졌고, 당신은 내가 아니라 당신에게 던져졌는가? 93

[ ] 자아의 내면세계에서 시간은 우리의 상식처럼 하나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사람은 자기만의 시간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이는 현재에 살지만 다른 이는 과거에 살고, 또 다른 이는 미래에 산다. 99

[ ] 겉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모습이지만 자신의 삶을 순례하고 있는 사람들을 알아보게 된다. 현실과 일상의 고통을 인내하며 자기 안에 숨겨진 내면의 빛을 키워나가는 사람들. 그들이 현실을 걷는 건 한 발 한 발이 오체투지의 눈부신 절정이다. 112

[ ] 운명이라거나 의무라거나 책임이라거나, 그런 것들은 생각처럼 무겁거나 슬픈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128

[ ] 통증은 자아와 신체가 관계 맺고 있는 방식이고, 동시에 자아와 신체는 통증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나는 통증을 통해 비로소 내 신체의 내면을 보고, 신체는 통증을 통해 내면을 보는 나를 본다...내가 타자과 관계 맺는 방식도 넓은 의미에서의 통증인 것이다. 나와 나의 신체가 그러하듯, 나와 타인도 통증을 통해 관계를 맺고 통증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나는 통증을 통해 비로소 신체의 껍질 안쪽으로 펼쳐진 타인의 내면을 보고, 타인은 통증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보는 나를 본다. 136,137 ‘이야기‘는 통증의 다른 이름이다. 139

[ ] A의 여집합: A가 진리이고 보편이면 전체이기 위해 A가 아닌 것들에 대한 제거가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본격적인 폭력이 가해진다. 폭력은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난다. 회유, 유인, 강제, 억압. 이 와중에 A의 감정 상태는 흥미롭다. 분노와 연민, 우월감과 초조함. 이것은 스스로 진리 집단이 된 존재가 진리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느끼기에 적합한 감정 상태이다. 156

[ ] 자본주의는 곁과 일상의 춤과 노래, 말과 대화, 사유와 지식을 빼앗아 가고 소비자로 지위만 갖게 만든다. 160-161 네 전문 분야가 아닌 곳에서는 입을 다물고 소비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라. 우리는 결국 놀지도 관계도 맺지도 못하고 생각할 줄도 모르는 다만 소비해야 하는 존재로 밀려나 버렸다. 163

[ ] 당신이 충분히 나이 들었다는 것은, 서른을 넘기고, 마흔을 넘기고, 노동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의 부조리와 대면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고, 이별하고, 삶의 누추함과 고통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 그것은 당신이 이제야 비로소 인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남겨온 보석 같은 고전들을 읽을 준비가 끝났음을 뜻한다. 181

[ ] 허망함은 존재론적이고 본질적이다. 꿈은 매일 우리를 가르친다. 아무것도 없음을. 실체도, 기반도, 남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삶이라는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이곳과는 다른 곳에서 꿈은 또 다시 이어진다. 203

[ ] 나는 무엇인가: 내 앞에 펼쳐진 빛으로서의 세계가 곧 나 자신이라는 진실. 이 심오한 진리를 표현하기 위해 서구철학은 이를 ‘현상‘이라 부르고, 고대 인도에서는 이를 ‘마야‘라고 부르며, 불교에서는 이를 ‘색‘이라고 말한다. 240

볕뉘

1. ‘관계‘에 관한 책들을 살펴본다. 처세가 아닌 좀더 깊이 들여다보는 글들이면 좋겠는데 하다가 미덥지 못해 속는 셈치고 보자구 해본다. 보통씨와 비고츠키의 관계관련 책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도착한 두권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판단이나 사족은 당분간 미뤄보기로 한다.

2. 마저 읽다. 저자들의 사유가 책 보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낮은 별점을 준다. 관계의 물리학보다는 화학이나 생태학이었으면 더 좋겠다 싶다. 날씨나 중력, 우주에 대한 비유 역시 예상하는 수준이었음이 아쉽다. 채사장의 사유 역시 특별히 튀는 것도 없이 평이한 수준, 사유했던 비유도 겹쳤다. 여집합이나 팔라우에 대한 시도 써볼까 했지만.....그렇게 당연한 이야기들이 회자되면 좋겠다. 멀리 잔잔하게 시간에 굴곡을 갖지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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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그 여름

[ ] 이경은 서서히 이해하게 됐다. 수이가 자신에 대해 별로 말하지 않았던 건 수이의 그런 성향 때문이라고. 수이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에 대해 이경만큼의 생각을 하지 않는지도 몰랐다. 수이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었고, 선택의 순간마다 하나의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에 대해서는 어떤 변명도 하지 않는 것이 수이의 방식이었다. 35 수이는 자동차 정비 일을 하면서 그것이 자기 인생에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지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일이니까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반면 이경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끊임없이 생각했고, 어떤 선택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알지 못했는데,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결국 후회가 더 크리라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36

[ ] 은지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한순간도 죄책감이나 불안함 없이 행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경은 인정했다. 은지의 말처럼 이경과 은지는 너무 비슷한 사람들이었고, 그 이유 때문에 빠르게 서로에게 빠져들었지만 제대로 헤엄치지 못했으며 끝까지 허우적댔다. 누구든 먼저 그 심연에서 빠져나와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순간이었다. 은지와 함께했던 기억은 하루하루 떨어지는 시간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 흘러가버렸고, 더는 이경을 괴롭힐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갔다. 58

볕뉘

삶의 나이테가 두터워진다. 두려워지지 않고 두터워진다라고 쓰고 있다. 어쩌면 실패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 반복된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의 일이다. 사람들 사이의 그 관계의 온도와 농도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래서 미적지근한 온도도 때로 고맙고 소중한 일이라는 것도, 너무 빨라 스스로 감당할 온도가 넘어서서 또 다시 추락하는 일이 두려워 어쩌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단 하나의 선명한 밑줄은 그 다양한 농도와 밀도와 온도의 관계들을 수긍해낸다는 데 있다. 채근하지도 재촉하지도 않는 일. 그 다양한 결들을 살려내는 일. 그것의 우선 자신과 관계를 설정하는 일이기도 하고 다양한 타자와 만남을 이뤄내는 일이기도 하다. 나 자신과 관계는 자신이 가장 잘 헤아린다는 점이고, 곁의 타자와 관계들을 잊지 않는다면 좀더 낫고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어갈 수 있겠다싶다. 많은 결들을 보이지 않지만 퀴어한 스토리의 특징있는 관계 서술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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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많이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 ] 많은 발명들은 그것들이 출현하기 이전에 요구됐던 우리의 모든 습관적인 움직임을 체계적으로 앗아간다.....그 결과 특히 선진국 사람들은 비만, 당뇨, 심장병, 골다공증, 근육 소모 및 관절염, 균형감 및 협응력 문제, 수면 장애, 체력과 에너지 부족 등 심각한 건강 문제가 크게 증가했다. 15 중력없이 사는 것이 병상에 몸이 고정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움직임을 조절하는 다리 근육, 뼈, 뇌와 척수 프로그램이 더 이상 필요치 않아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고정되는 것만큼 두뇌의 위축을 재촉하는 것은 없다. 16

[ ] 우주에서처럼 중력이 전혀 없으면 그 변화율이 한 달에 1-2퍼센트로 늘어난다. 근육 감소량도 비슷하다. 지구에서는 1년에 1퍼센트지만 우주에서는 한 달에 1퍼센트다...몸을 잘 움직이지 않는다면 40대나 50대에 위험구간에 다다를 수 있지만, 위험 구간에 이르는 시기는 뒤로 미룰 수 있고 심지어 역전까지 가능하다...90세 노인들도 12주동안 중량 운동을 하지 근력과 지구력이 증가했고 골밀도까지 회복했다. 36

[ ] 중력 결핍 증후군: 지구로 돌아오면 속귀(귀의 가운데 안쪽에 단단한 뼈로 둘러싸인 부분을 말한다)가 중력에 적절하게 반응하는 법을 잊은 상태이기 때문에 넘어진다는 감각이 없다. 우주비행사는 몇 주 내에 회복하는 듯 보이지만, 증상들이 종잡을 수 없어 위험이 높아진다. 41 우주선에서 운동을 해도 몸의 큰 근육만 유지되는 것이지 척추를 따라 난 근육처럼 안쓰는 작은 근육군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42

[ ] 우주에서 신체 변화: 유산소 능력이 일이주 사이에 45% 감소(지구 10년에 10%). 혈장량이 7-90일동안 10-20% 감소.(10년에 1%) 골밀도가 한달에 5%(1년에 1%). 근육량 한달에 1%. 태아처럼 곡선 모양 자세가 됨. 비정상적 반사 패턴 생성. 피로도 증가. 심장박동량과 박출량 감소. 동작과 반응시간 감소. 근육이 체지방으로. 인슐린 감수성이 감소. 테트토스테론 감소. 관절 통증. 발바닥 예민, 소화가 안되고 소화관 통과시간과 흡수 지체. 여성 요실금. 43

[ ] 중력폐쇄기는 상당한 시간을 침대에 누워 보내거나, 혹은 그저 앉아서 보내거나, 척수 부상 혹은 소아마비, 뇌성마비, 루게릭병 같은 마비 질환이 있을 경우에 생긴다. 거동이 제한이 있는 노인이나 나이와 상관없이 활동이 적은 생활을 하는 사람도 유사한 문제들이 있다. 모든 경우, 즉 중력에 덜 노출되었든, 중력을 느낄 수 없든, 중력에 반응하지 못하든 간에 똑같은 변화가 일어난다. 끝에 가서는 늘 허약해지는 것이다. 46 하루 종일 앉아 일하거나 티브이에 매여 있다면, 거기에 가정요리가 아닌 싸구려 즉석식품, 어쩔 수 없이 당과 지방이 많이 든 음식 섭취를 더하면 중력폐쇄기로 가는 길이 날마다 가팔라진다. 47

[ ] 20세부터 위험구간이 시작하지만 이 속도는 늦출 수 있다. 비결은 우리의 손에, 다리에, 머리에 있다. 일찍 시작할 수록 좋다. 너무 늦은 때란 없다. 48

[ ] 노년에 생기는 요실금은 골반 근육을 반복적으로 조이는 케겔이라는 근육 강화 등척성 운동과 점프나 춤 같은 수직 가속 활동으로 완화하거나 해소할 수 있는 문제다. 51

[ ] 처음 태어난 아기는 머리를 가누지 못한다. 중력 속에서 3-4주 살아야 목덜미 근육이 튼튼해져 머리를 지지한다. 팔의 힘은 점차 강해져 4-5개월 지나면 몸을 떠받칠 수 있다. 6개월이 되면 상체가 중력이 당기는 힘을 경험할 준비가 되어 똑바로 앉을 수 있다.....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고양이와 개처럼 기지개를 켠다. 58 일어설 때마다 몸은 체액, 호르몬 등을 변화시키고 근육을 수축시킨다. 게다가 거의 모든 신경이 자극된다. 하루에 2분씩 16회 일어나면 몸은 그것을 16회의 자극으로 읽는 반면, 한 번 일어나 32분 동안 서 있으면 몸은 그것을 한 번의 자극으로 볼 것이다. 68

[ ] 우리가 꼿꼿이 설 수 있도록 해주는 척추 주위 속근육을 생각해 보자. 그 근육이 없으면 앞으로 고부라질 것이다. 목덜미 근육은 머리를 지탱한다. 목덜미 근육이 약해지면 머리가 앞으로 쏠려 치명적일 수 있다. 71 운동근이 아니라 안정근이 건강해야만 우리는 나이 들었을 때 독립성을 지킬 수 있고,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고, 허리나 목 통증 없이 서서 움직일 수 있다. 72

[ ] 서기, 앉기, 눕기, 몸을 구부려 물건 줍기, 쪼그려 앉기, 몸을 뻗어 선반 위 물건 집기, 옷 입고 벗기, 악기 연주하기, 냄비 젓기 등 자세를 바꾸는 행동이 가장 효과적이다. 다리를 꼬거나 풀고, 대화하며 손을 흔들고, 꼼지락거리는 것처럼 작은 움직임도 유용하다. 이런 작은 움직임과 활동이야말로 잘 움직이지 않는 사람에게 필요하다.....조직적 운동과 니트(비운동성 활동 열 생성)가 각각 다른 작용을 통해 다른 근육섬유에 영향을 미친다...일상에 간헐적으로 분포된 비운동성 활동 혹은 자연스러운 신체 활동에 반응하는 것은 안정근뿐이다. 75

[ ] 현대인에게 특히 의미 있는 중대한 사실은 작고 빈번한 활동이 줄거나 사라지면 당과 지방의 물질대사가 막힌다는 점이다...과도하게 앉아서 생활하면 중성지방과 콜라겐 최종생성물 등과 같은 축적된 비정상적 대사산물과 후기 당화 생성물들이 붙어 복잡한 교차 결합을 형성하는데, 그것은 ‘지질 독성‘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는 심장과 혈관이 굳는 원인으로 생각된다...우주와 침대 요양에서 생긴 문제들을 해소해 주는 활동과 니트의 공통점은 똑바로 선 자세를 취해야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76, 77 지구 중력 두배의 힘으로 회전하면, 중력에서 살 때보다 적게 활동하고 많이 먹더라도 근육이 포도당을 더 많이 흡수하고 여분의 지방이 거의 모두 빠진다. 79

[ ] 진동: 낮은 고진동수 기계적 신호에 매일 짧은 시간 동안 노출시키자 골밀도가 증가한 것이다. ...뼈는 쿵쿵대기보다는 웅웅대는 신호에 반응한다는 말이다....뼈에 이로운 행동이 근육을 통해 전달된다는 해석으로 보면 어떤 작용이 근육에 먼저 미치고, 그 뒤에 근육이 각각 작은 수축을 통해 뼈를 끌어당기고 잡아당겨 자극한다는 것이다. 81 니트 활동과 저강도, 고진동수 진동 처치 사이에 명확한 관련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리적 열 발생이 존재한다. 바로 떨림이다...82 주위에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보자 그들이 마른 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적 있는가? 그들은 빈번히 하체를 씰룩거리면서 열량을 태우고 에너지를 열로 바꾼다. 특히 아이들은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며 몸을 데운다. 놀라운 니트활동이다. 83

[ ] 회복은 가능하다. 활동과 운동을 통해 몸을 움직이고 떨고 늘리고 팽팽하게 해 중력에 맞서면 나쁜 변화를 예방할 수 있다. 새로운 신경세포와 신경 연결이 생기고 균형감각과 동작을 조절하는 두뇌 체계가 다시금 발달한다. 84

[ ] 자세와 균형감이 필요한 활동은 안정근과 두뇌에, 스트레칭 동작은 유연성에, 근력 강화동작은 운동근에, 격한 유산소 운동은 체력과 심혈관계 건강을 개선하는 데 좋다...106 건강한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고강도 활동과 저강도 활동을 다채롭게 포함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습관은 우리가 온종일 간헐적으로 하는 활동이다.107 동작의 다양성은 무척 중요하다. 변화를 주는 습고나을 기르자. 매일 똑같은 시간과 똑같은 순서로 완전히 똑같은 절차를 밟는 일은 피해야 한다....근력 훈련을 한다면 숄더 프레스를 할 때 한발로 서서 머리 위로 운동기구를 들면 무게와 균형감 모두 중력에 좌우되므로 운동의 효과가 늘어난다..운동을 눈 감고 하면 중력의 영향이 커져 우리가 균형을 잡을 때 속귀 대신 시각에 얼마나 의존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109 건강한 혈압 조절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앉았다 일어나고 다시 앉는 자세 변화가 최소 32회 있어야 한다....측정한 혈압을 유지하려면 자세를 그만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앉은 자세에서 일어설 때에는 누워있다가 일어설 때보다 중력의 자극 변화가 적기 때문에 32회 이상 반복해야 한다. 32회를 최소 목표라고 생각하자. 121 좋은 자세를 유지하고 느리게 앉을수록 근육에 이롭다. 훌륭한 다리 강화 운동이다. ...쪼그려 앉았다 일어설 때에는 피가 머리로 향한다. 이런 효과가 있는 동작은 그리 많지 않다. 뇌가 고마워할 것이다. 123

볕뉘

0. 우연히 알게 된 책이다. 다소 구하기에는 시간이 걸렸다. 평소 따로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 그것을 목적으로 삼아 또 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1. 우리 몸이 아직 구석기시대에서 진화를 하지 못했다. 지방을 끊임없이 비축하려고 하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몸은 비상상태로 여긴다. 그래서 간헐적 단식이든, 코어운동이든 하라고만 한다. 이렇게 구분될 수 있을까, 구분되어야만 할까. 늘 부담스러운 건강관리담론은 숱한 성공담을 낳기도 하지만 거꾸로 필요이상의 헌신과 용기와 결단을 요구한다. 사회 관계라는 것을 말소할 정도의 노오력을 요구한다. 독하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하는 모습은 건강관리 역시 세상을 똑같이 빼다 박은 것은 아닐까.

2. 희소식은 아니지만, 애초에 그런 것은 없다.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 몸이 아직 진화가 덜 되어 구석기 인간처럼 꼼지락거리기를 요구한다고 하자. 그렇게 몸을 달리 여러군데 꼼지락거리면 된다.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간헐적 단식에 몸이 정신차리는 것처럼, 운동도 그렇게 몸을 속여보자. 조금 다르게 걷고, 다르게 앉고, 다르게 일어서고, 다르게 눕자고 한다.

3. 팔순이 넘으신 당신들은 늘 새벽부터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시작하신다. 자식에게 피해주지 않으려면 건강하는 수밖에 없다는 마음은 경이롭기도 하다.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점점 늘어난다. 좀더 다른 산책...그래 손해볼 것은 없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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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 ] 만약 몸이 로봇처럼 야무지고 단단해서 어떠한 외부의 영향에도 끄덕하지 않는다면 이웃들은 우리에 대해 염려하거나 걱정을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수치감을 느꼈던 몸의 연약함이 우리를 보살핌과 배려를 받는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끄떡하면 상처가 나고 병에 잘 걸리는 몸, 그것은 우리가 내부로 단단하게 닫힌 존재가 아니라 타자를 향해서 열린 존재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35

[ ] 로렌스와 사르트르에게 자유에 대한 갈망은 매우 역설적이다. 자유를 원하면 원할수록 자신이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더욱 예민하게 의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영혼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그렇지 않은 육체의 존재를 더욱 고통스럽게 의식하게 된다. 그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육체를 자기의 정체와는 무관한, 아니 자기의 완전성을 위협하는 타자로 만들어야 한다. 43

[ ] 혐오는 심미적 반응으로서의 싫음과 윤리적 반응으로서의 미움으로 구분될 수 있다. 혐오의 대상은 그냥 싫을 수도 있고 이런저런 이유로 미울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혐오하는 대상이 그냥 싫은 것인지 아니면 미운 것인지 스스로에게 자문할 필요가 있다. 물론 미우면서도 동시에 싫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45

[ ] 취향과 감각에도 역사가 있다. 타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타자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외국인이나 장애인과 같은 타자를 향한 혐오의 감정도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역사와 무관한 듯 보이는 음식 취향도 그러하다. 51

[ ] 낙인을 찍는 순간에 ‘나는 개고기를 안 먹는다‘라는 개인적 취향이 ‘모든 사람은 개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라는 명제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개념이 되는 것이자 개인적 취향를 보편적인 것으로 입법화하는 것이 된다. 55

[ ] 역사적 시선의 소유자는 본래 혐오스럽게 태어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그것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혐오는 비역사적인 무지의 시선, 맹목적 직관의 시선이 전제된다. 이것은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대도시에서 낯선 사람들을 보는 그 시선이다. 무지의 시선 말이다. 144

[ ]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2006 의 마츠코가 사랑했던 남자들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녀의 부모는 작은딸을 사랑하기 위해서 큰딸을 미워했다.. 부모는 사랑에 목말라하는 그녀를 외면하고 병약한 동생만을 끔찍이 보살피고 끔찍이 사랑하였다. 혹시라도 마츠코에게 관심을 보이면 그렇지 않아도 가엾은 동생이 섭섭해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그녀를 무시하였다. 여동생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녀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고 증명하기 위해서는 마츠코를 미워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49

[ ] 여성 혐오를 가부장적 구조로 설명하는 것은 고르디어스의 칼날의 효과를 보여주지만, 이 구조적 설명이 갖는 치명적 단점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즉 사회적 변동을 설명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배내옷이 파랑과 분홍색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연두색, 커피색, 블랙 화이트 등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이 선을 보이고 있다. 161 유니섹스. 성희롱. 비혼.

[ ] 군 가산점 제도의 폐지는 남성적 특권의 폐지를 의미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여성 혐오에 가담한 많은 남자들은, 여성들이 그러한 특권을 빼앗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아직도 자기네들에게 과거와 같은 남성적 책임과 의무를 요구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여성 혐오의 바닥에 깔린 정서는 남성적 우월감이 아니라 패배감이다....2028년 결혼 적령기 여성 100명당 남성의 수는 120-123명으로 증가한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165, 166

[ ] 자기가 여성에 비해서 유리하고 우월한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남자들의 인식을 빼놓고 여성 혐오를 설명할 수 없다. 물론 지나체게 남자들에게 유리했던 사회적.제도적 조건은 더욱 더 바뀌어야 한다. 그러한 정당성에도 어찌되었든 많은 남자들이 과거에 점유했던 특권적 지위를 상실하고 있다는 박탈감을 안고 있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167 혐오는 약자의 감정이 아니라 강자의 감정이다. 그것은 열등감과 패배감의 표출이 아니라 우월감과 자만심의 표출이다. 약자는 불의하지만 힘이 센 권력자에 대해서 혐오가 아니라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가진다. 167

[ ] 루저: 여성 혐오는 특정한 여성 개인에 대한 주관적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사회적 변화가 집단적으로 반영된 현상이다. ˝이들의 위치가 몇 년 전부터 중요한 문화 코드로 등장한 ‘루저 문화‘라는 테두리 안에 있다.˝ 한 남자 개인이 아니라 남자 전체가, 한 여자 개인이 아닌 여성 전체에 대해서 갖고 있는 정서적 태도인 것이다. 이 점에서 어떤 특정 여성 혐오자가 과연 루저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은 올바른 질문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남성이 무기력해지고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다. 이러한 사회적 공감대가 자신을 밀어주지 않는다면 감히 여성 혐오 발언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설혹 가능하더라도 여성 혐오라는 사회적 정동으로 발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70

[ ] 키에 대한 루저 발언에 대한 남자들의 반응은 혐오가 아니라 분노라고 말해야 옳다. 여러 사회적 상황을 감안하면 나는 여성 혐오라는 용어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혐오가 아니라 분노나 증오라고 말해야 옳다. 나는 미소지니도 우리말로 여성 혐오가 아니라 여성 비하로 옮기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 비하는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것이었다.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는 사회적 구조가 개인의 의식으로 내면화되어 나타난 언행이 여성 비하의 본질이다. 171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과 같이 자신의 우월성을 보장해주는 가부장적 지지대가 무너지면서 남자들은 여잘ㄹ 비하할 수 있는 특권도 동시에 상실한다. 172

[ ] 우리는 처음 보는 물건을 신기하게 보듯이 낯선 타자를 대상으로 바라본다. 그의 보이지 않는 마음이나 인격이 아니라 보이는 외모만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 점에서 타자는 몸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친근한 관계로 접어드는 순간 대상이었던 타자는 주체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즉 인격적인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인격적 관계에서 타자는 주체와 동등한 대화 상대가 된다. 지금까지 ‘그‘로 보이던 제삼자가 자신을 ‘나‘라고 칭하는 ‘너‘가 되는 것이다. 내가 질문하면 그는 ˝나는 ..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면서 ˝그러면 너는?˝하며 나의 의견을 물을 수 있다. 일방적이던 관계가 쌍방적인 관계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내가 모르는 타자만이 대상화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여성이 나에게 성적으로 대상화된다. 175

[ ] 과연 남자들이 할 수 없는 것을 무리하게 요구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될까?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자는 다 김치녀라는 식으로 일반화하는 남자들이 많다. 특히 자신의 무력감을 절감하는 남자들은 그러한 일반화에 기대고 싶어 한다. 그녀가 너무하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무력함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자기를 치고 올라가는 여성들을 김치녀라는 이름으로 비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남자들은 자기가 여자들보다 우월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이 우월하지 못하면서 상대 여성을 비난하는 것일까? 우리는 김치녀에 대한 비난에서 남성 우월주의적 유산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은 남성성의 신화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몰아쉬는 마지막 거친 숨이 아닐까. 182

[ ] 여성 혐오라는 용어가 선동적인 구호에 가깝다면 여성 비하라는 용어는 태도의 전환을 요구하는 윤리적 성격이 강하다. 인간이 가진 다양한 감정 가운데 혐오감만큼 거두기 어려운 감정이 없다. 혐오했던 대상이 착각이며 환상이고 오류였다는 사실을 아무리 설명하더라도 혐오감이 사라지지 않는다...그것은 지극히 보수적이며 심미적인 감정이다. 반면에 비하는 대상에 대한 즉각적이고 심미적인 반응이 아니라 관찰과 도덕적 판단의 결과다. 판단하지 않으면 비하의 감정도 생기지 않는다. 때문에 지금까지 이러저러한 이유로 비하했던 사람의 진면목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면 이전의 비하했던 감정과 태도도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오해했다는 생각에 후회하기도 한다. 심지어 존경심이 생길 수도 있다. 186

[ ] 혐오가 정치적인 이유는, 자기보다 약하고 만만한 상대를 타겟으로 고르기 때문이다. 타자의 몫을 가로채는 전형적인 희생양 만들기와 단물 빨아먹기의 메커니즘이 작용하는 것이다. 케이크자르기라는 게임이론이 있다. 욕심 많은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케이크를 자르고 큰 조각을 취한다. 이때 케이크가 생명이며 행복이고 부, 건강, 아름다움리라고, 반면 그 가장자리가 죽음과 불행, 가난, 질병으로 오염되어 있다고 생각해보다. 혐오의 기원은 생리적인 기능에 있다. 단 것은 삼키고 쓴 것은 내뱉고, 단물을 빨아먹고 찌꺼기를 내뱉는 동물적 본능이 그것이다. 191

[ ] 혐오는 비민주적이다. 강자의 약자에 대한 무시, 다수의 소수에 대한 무시, 즉 이러한 권력의 위계가 없으면 혐오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러한 불평등을 영속화하는 경향을 가진다. 소수의 타자를 혐오함으로써 달콤한 쾌락을 향유하게 되지 않는가. 이 점에서 혐오는 분노의 감정과 다르다. 분노는 불의에 대한 자의식에 머물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로 잡으려는 강력한 의지까지 동반한다. 행동으로도 점화될 수 있다. 194 그렇지만 혐오감은 행동의 가능성을 극히 주관적인 쾌락으로 바꿔버린다. 194

볕뉘

0 . 여기저기 이동하는 틈에 읽다.

1. 저자는 몸문화연구소장으로 있고 영문학전공이다. 사례로 여러 문학이야기가 자연스러워 부담스럽지가 않다. 그는 혐오라는 감정을 몸에서 뱉은 침을 다시 먹을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이 감정을 잘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이것은 타자화의 역사이자 인류가 끊임없이 합리화하는 기제라는 것이다. 밖만 아니라 내부의 심연도 그러하다고 하다. 저자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역사의 구조적 설명만으로 지금을 설명해낼 수 없으며, 보다 적확한 용어를 쓰는 것이 현실을 좀더 낫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 대목에서는 오항영교수가 기존 관점과 달리 역사를 구조-의지-우연의 산물이라고 보는 점에서 곁들여봐도 좋을 듯싶다.

2. 결을 나누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싫다와 밉다. 심미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 조금씩 나누다보면 조금씩 보는 시선도 느끼는 마음도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쉽게 단정짓지 않고 유예를 두려는 노력이 움직인 것만이 아니라 움직이려는 것,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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