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

 

 

 조금

 늦었을 뿐인데

 

 조금

 햇살이 길게 드리웠을 뿐인데

 

 뜨락에는

 목련도 빼꼼

 산비탈엔

 신갈나무 꽃순도 수척

 길가엔

 개나리 꽃숭어리에 꽃점도 활짝

 

 무슨 세상이

 이리도

 잠 뒤척이는 새

 

 봄산으로 피었단 말이야

 

 

볕뉘. 

 

이른 아침 출근 약속을 뒤로 미루고 게으름을 피운다. 아침을 먹고 완보로 버스를 기다리고 타다가 차창가로 비치는 모습에 봄빛이 완연하다. 목련은 벌써 고개을 내밀고, 한 두녀석이다 말겠지 했는데 드문드문 여러 점이다. 지난 봄비도, 지난 햇살을 담뿍 받은 것인지 산비탈도 제법 봄기운이 파릇하고 실루엣의 끝점들을 연한 빛으로 채우고 있다. 눈여겨둔 노랑들도 하나둘 꽃색을 채우면서 늘어진다. 매화에 가린 녀석들이 보란듯이 고개를 바짝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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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 보풀 그리고 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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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미터

 

마음이 가난한 자는 소년으로 살고, 늘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다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네 생각이 났다. 오십 미터도 못 참고 내 후회는 너를 복원해낸다. 소문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축복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게 그런 축복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오십 미터도 못 가서 죄책감으로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무슨 수로 그리움을 털겠는가. 엎어지면 코 닿은 오십 미터가 중독자에겐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지 화면처럼 서서 그대를 그리워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십 미터를 넘어서기가 수행보다 버거운 그런 날이 계속된다. 밀랍 인형처럼 과장된 포즈로 길 위에서 굳어버리기를 몇 번. 괄호 몇 개를 없애기 위해 인수분해를 하듯, 한없이 미간에 힘을 주고 머리를 쥐어박았다. 잊고 싶었지만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어떤 불운 속에서도 너는 미치도록 환했고, 고통스러웠다.

 

때가 오면 바위채송화 가득 피어 있는 길에서 너를 놓고 싶다

 

목련이 죽는 밤

 

피 묻은 목도리를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날을 떠올리다 흰머리 몇 개 자라났고 숙취는 더 힘겨워졌습니다. 덜컥 봄이 왔고 목련이 피었습니다.

 

그대가 검은 물속에 잠겼는지, 지층으로 걸어 들어갔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꿈으로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기억은 어디서든 터를 잡고 살겠지요.

 

아시는지요. 늦은 밤 쓸쓸한 밥상을 차렸을 불빛들이 꺼져갈 때 당신을 저주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 목련이 목숨처럼 떨어져나갈 때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목련이 떨어진 만큼 추억은 죽어가겠지요. 내 저주는 이번 봄에도 목련으로 죽어갔습니다. 피냄새가 풍기는 봄밤.

 

Cold Case 2

 

(19세기 사람 쥘 베른이 쓴 20세기 파리라는 소설에 보면 시인이 된 주인공에게 친척들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 집안에 시인이 나오다니 수치다.”)

 

20세기도 훨씬 더 지난 지금 시는 수치가 된 걸까.

 

시는 수치일까. 노인들이 명함에 박는 계급 같은 걸까. 빵모자를 쓰는 걸까. 지하철에 내걸리는 걸까.

 

시가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랑 더 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오후다. 시 쓸 영혼이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해본다.

 

싸구려 호루라기처럼 세상에 참견할 필요가 있을까. 노래를 해서 수치스러워질 필요가 있을까? 자꾸만 민망하다

 

그런데도 왜 난 스스로 수치스러워지는 걸까. 시를 쓰는 오후다.

 

불머리를 앓고도 다시 불장난을 하는 아이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쇠꼬챙이를 집어 든다.

 

봄산

 

볼품없이 마른 활엽수들 사이로 희끗희끗

드러나는 사연들이 있어 봄산은

슬프게도 지겹게도 인간적이다.

 

아무것도 감추지 못하는

저 산들은 세월 흘러 우연찮게 모습을 드러낸

도태된 짐승들의 유해이고,

그 짐승들을 쫓다

실족한 지 일만 년쯤 된 가장의 초라한 등뼈다.

이제 싹을 틔우려고 하는 불온한 씨앗들의 근거지,

원죄를 뒤집어쓴 채 저 산에서 영면에

들어야 했던 자들의 허물 같은 것이다.

 

기껏 도토리 알이나 품고 삭아가는 노년기의

앞에서, 봄에 잠시 드러나는

의 한 많은 내력 앞에서

못 볼 것을 본 듯, 이 초저녁

난 자꾸만 가슴을 두드린다.

 

기적은 오지 않겠지만

저 산은 곧 신록으로 덮일 것이고,

곧게 자라지도

단단하지도 못한 상수리들은

또 사연을 만들 것이다.

 

산은 무심해서 모든 것들의

일부고, 그런 봄날

생은 잠시 몸을 뒤척인다. 다 귀찮다는 듯이

 

직박구리

 

어느 날이었다 초봄은 추웠다 직박구리가 날아왔다 직박구리는 수돗가에 앉았다 초봄이었다 직박구리는 차가운 수도꼭지에 주둥이를 대고 물을 먹었다 직박구리는 혼자였다 초봄이었다 직박구리는 근처강에서 왔다 혼자 왔다 철봉 몇 개 녹슬어 있는 가난한 공원엔 직박구리만 있었다 뭘 가졌냐고 슬픔이라고 직박구리는 울었다 초봄이었다 직박구리는 정적 속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앉아 있었다 안개는 짙었고 초봄은 완강했다 그날 이후 영역 안에서 한때 사나웠던 직박구리는 수돗가에 다시 오지 않았다 초봄이었다

 

며칠 후 강둑의 나무들이 모두 베어졌다는 소문이 들렸다 초봄이었다 나는 천천히 불행해졌다

 

Republic 1

 

'아이가 타고 있어요

그래서 어떡하라고. 그럼 늙은이가 타고 있거나 돼지가 타고 있으면 어떡해야 하지?

이 공화국에선 말도 안 되는 표어가 통용된다

 

새들이 떠나버린 공화국에서 서 있는 자리가 이념이 되는 공화국에서 종의 비열함으로가득 찬 공화국에서 자고 나면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는 공화국에서 눈이 똑같이 생긴 밀랍 인형 여인들이 날마다 지하도에서 쏟아져 나오는 공화국에서 위도와 경도가 저주인 공화국에서 농담으로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공화국에서

 

근육질의 아이들이 공갈 젖꼭지를 물고 침을 흘릴 때

늙은이와 돼지를 가득 실은 트럭은 전선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볕뉘. 나쁜 소년의 시인. 시 몇 편을 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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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맘때

이맘때 즈음이면
흘깃
흘깃
담장 넘어 를 훔친다

이맘때면
여기
저기
산비탈 길
옹기종기 모인
담장안을 살핀다.

차도
차도
부족한
봄의 너머를 찾는다.

발. 

 

 매화가 집집마다 함박웃음이다. 

 산책길 마실길 일찍 찾아온

 남녘의 봄길, 

 

 다 옛 애인의 집 담장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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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5 09: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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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6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7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21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21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21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21 1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착각 - 인공지능에 들썩인다. 사람이 한 일에 대해 서로 사람이 낫다거나, 기계가 대단하다고 하지만 들썩이는 건 같다. 왓슨이나 딥블루 , 그리고 바둑게임에도 이러하다. `인공뇌`가 쥐뇌프로젝트를 너머서 모종의 장벽인 감정과 정서를 인문학에서 수혈한다고 해보자. 그리 먼 일이 아닐게다.

과학기술은 인간친화적이 아니다. 더구나 이렇게 초거대화된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목격한대로 자본친화적이다. 과학기술에 경도되거나 복속되어 식민화된 경제- 정치- 인문-사회학은 과학기술에 끌려다니지 말고 끌고다녀야 한다. 어쩌면 환호가 아니라 미몽에서 빠져나와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교묘하게 족쇄로 삼는지,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황폐화시키고 계급을 층분리 시키는지, 비비정규직이 과학기술의 집중도에 따라 얼마나 많이 생기는지, 제3세계는 얼마나 고립되는지. 적정기술의 쓸모는 언제 없어져야 하는지. .세계 절반의 사람을 쓸어내고 있는 것에 과학기술이 책임은 없는건지

.`자본`의 초집중을 위해 쏠리는 경향과 `사람`의 도구로 쓰이는 쓸모 사이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 가늠하는데 학문이 제 역할을 하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처럼 유행을 빙자해서 극단은 끊임없이 몰려다닐 것이다.

왜 이렇게 세상은 과학기술에 전권을 주고있나. 지금까지 해온 짓이 무엇이었는지 보고도 모른 체 할 수 있을까. 자기 삶의 도구로 제대로 쓰이는가. 자본에 종속된 도구로 더많이 쓰이는지 구분될 수 있는 지점에 서있지 않는가. 권한의 축소를 다른 학문이 과학적으로 증명해내지 못한다면 학문의 식민상태는 영구화될지도 모른다. `대중의 직관`은 지금처럼 고여있을 것이다. `기계`에 대한 열망만 가득한 채 소멸하고 굶주릴 `사람`들에게 향하지 않는다. 떡고물은 우리 몫이 아니다.

짐승은 미리 길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친다. 어~ 하는 사이에ㆍㆍㆍ아! 하는 사이에ㆍㆍ

 

발. 제목은 프레시안 서리풀논평 기사가 유사해서 그 제목으로 해두었다.(프레시안 타이틀 제목은 과하다.) 아래 책들은 주제별로 개요를 일목요연하게 기술해서 참고하기 좋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4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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