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 First Programming - 파이썬으로 처음 배우는 프로그래밍 Head First 시리즈
폴 베리 & 데이빗 그리피스 지음, 강권학 옮김 / 한빛미디어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읽은 기간: 5/23 ~ 5/28(머리와 눈으로 일독하는데 3시간 53분 걸림, 현재 머리와 손가락으로 재독 중)
총평: 매우 좋다!

일단 이 책은 파이썬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책이 아니다. 당연하다. 그럼 프로그래밍 방법론에 대한 책인가?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방법론도 약간 소개되고 있지만 주된 내용은 아니다. 그럼 무엇에 관한 책인가? 물론 프로그래밍이다. 아다시피 프로그래밍이란 요구조건에 맞추어 논리 구조를 짜고 그것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 책은 실제의 바로 그 프로그래밍에 집중하고 있다.

제1장은 숫자 맞추기 게임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데이터 타입 변환, if 문, while 문, 라이브러리 사용법 등을 소개한다. 물론 문법 구조로서가 아니라 일종의 패턴(이디엄)으로서다. 그리고 곧 이러한 간단한 개념들만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 다양한 요구 조건에 맞춰 프로그래밍할 과제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예를 들면 이렇다. 웹 페이지를 주시해서 가격 정보를 체크하라. 해당 웹 페이지의 전체 문자열에서 가격 정보 부분 문자열의 인덱스를 읽어서 해결. 그런데 웹 페이지가 동적이라서 인덱스가 계속 변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가격 정보 부분 문자열을 검색하는 것으로 코드를 바꿔서 해결. 그런데 가격이 4.74 달러 이하일때 살 수 있도록 알람을 해주면 좋겠는데? 4.74를 while 문에 걸어서 계속 웹 페이지를 긁어대는 것으로 해결. 그런데 그렇게 했더니 상대 서버가 과부하로 다운됐다!(이 부분 읽으면서 빵 터짐) while 문의 주기를 조정하는 것으로 해결. 4.74 달러보다 비싸더라도 재고가 없으면 사야 하지 않겠어? if 문을 써서 긴급 구매 조건을 처리하는 것으로 해결. 난 외근이 잦으니까 가격 정보를 트위터로 볼 수 있게 해줘. 트위터 API를 써서 해결. 휴~

이런 식이다. 이것이 앞서 말한 "실제의 바로 그 프로그래밍에 집중하고 있다"는 말의 의미다. 프로그래밍에서 뿐 아니라 일반적인 학습도 이러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왜냐하면 첫째, 아이가 말을 배우는 과정이 바로 이렇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내적 혹은 외적 요구가 발생하면 아이는 자신이 가진 개념들을 조합하여 실험적으로 구사해 본다. 기대했던 반응이 주변(엄마)으로부터 오는지를 체크하면서 아이는 자신의 언어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둘째, 신이 세상을 만들어 가는 과정도 그랬다. 신이 처음부터 완벽한 세상을 창조했던가? 아니다. 신은 세상에 과제를 주고 세상이 그 과제를 해결하면서 성장하도록 했던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개념에 앞서 문제를 준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개념이 등장하는 것이다. 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을 등한시 하고 있는가! 이런 사람들은 먼저 개념을 갖고 온다. 다른 사람들이 만든 개념들. 예를 들면 외국에서 수입된 개념들. 그리고 그에 맞는 문제, 상황을 찾으려 한다. 못찾겠으면 문제, 상황을 개념에 두드려 맞추려고 한다. 고로 현실은 없고 개념만 있게 된다. 혹은 왜곡된 현실과 왜곡된 개념만 있게 된다. 먼저 문제 위에 서야 한다. 아니, 문제를 발견하여야 한다. 개념은 거기서 생성된다.    
 
책으로 돌아가자. 다양한 요구 조건을 아우르려 하다보면 하나의 코드가 여러 곳에 반복될 수 있다. 코드가 반복되면 나중에 수정할 때, 즉 유지 보수할 때 힘들어 진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이 책은 함수라는 개념, 장치를 도입한다. 나에게 커다란 파일이 하나 주어져 있다. 이 파일 안에 적혀 있는 항목들에 접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배열이라는 장치를 사용한다. 항목들이 사람-몸무게 식으로 연관되어 있다. 이 항목들을 별개의 배열에 담으면 연관 구조가 깨어진다. 어떻게 해야 하나? 연관 배열을 사용한다. 이런 식이다. 물론 별로 참신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뻔한 얘기를 돌려서 얘기한다고 답답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책 전체가 이런 식으로 사고를 일깨우는 구조로 되어 있다. 나는 감탄.

그렇다고 이 책이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스토리를 만들려다 보니 어색한 장면도 있고(예를 들면 전역 변수, 지역 변수를 설명하는 부분. 왜 이런 얘기를 꺼내나 싶었다), 코드가 심하게 못생긴 부분도 있다(예를 들면 함수 안에다 파일에 접근하는 경로명을 직접 적어 놓은 부분. 저자들은 스토리 진행을 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별 탈 없이 돌아가는 코드에는 가급적 손을 안대려 하는 것 같다). 걸리적 거리기는 하지만 흥을 깰 정도는 아니다.

이 책은 프로그래밍 과정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프로그래밍 툴(파이썬과 파이썬의 통합개발 환경인 IDLE)에 대해서는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못하다. 다시 말하면 이 책은 파이썬에 대한 책이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뭔가를 해보려 한다면 파이썬과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별도의 책이 필요하다. 그 문 앞까지 인도하는 것이 이 책의 역할인데 탁월하게 잘 해낸 것 같다.

저자들이 실습용 언어로 파이썬을 선택한 것도 정말 잘한 일인 것 같다. 파이썬 코드가 깔끔해 보인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IDLE에 모든 것이 통합되어 있어서 자질구레한 것에 신경 쓸 일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예를 들면 tkinter라는 GUI 라이브러리나 SQLITE3 라이브러리를 따로 설치하고 설정해 줄 필요가 없다. import 문 하나면 바로 사용가능하다.    
 
나는 이 책을 빠르게 한 번 읽고 나서 재독 하고 있다. 재독을 하면서는 "하루에 1시간 이하, 또는 하루에 한 챕터 이하"란 규칙을 정하고 하나 하나 프로그래밍을 해보고 있다. 프로그래밍하면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한 챕터가 끝나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난 혼잣말을 한다. "어, 벌써 끝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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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전략 - 장(場)을 가진 자가 미래의 부를 지배한다
히라노 아쓰시 칼 & 안드레이 학주 지음, 천채정 옮김, 최병삼 감수 / 더숲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읽은 기간: 5/7 하루(1시간 45분 걸림)
총평: 더 두꺼워야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 사람이다(저자 중 한 사람은 일본 사람, 다른 한 사람은 미국 사람으로 생각됨). 미국 사람이 썼더라면 더 풍부하고 현대적인(!) 예화들을 모아다 피카레스크식으로 묘사하면서 책의 부피를 늘렸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더 읽을 만한 책이 되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런 주제로 이런 얇은 분량은 도대체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플랫폼 전략이란 단일 주제에 집중하면서 이를 (마치 수학에서처럼) 공식화한다. 그래서 대단히 명료하게 읽히고, 또 곳곳에서 통찰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런 통찰력은 고도의 추상화때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저자는 플랫폼의 기능 중 하나로 삼각 프리즘 기능을 든다. "언뜻 보면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두 개 이상의 그룹을 서로 연결해 주는 기능이다. 예를 들어 잡지나 TV, 신문 등은 광고주와 구독자(혹은 시청자)라는 두 개의 그룹을 연결하기 위해 제3의 그룹, 즉 구독자(혹은 시청자)가 원하는 기사나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미디어라는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50페이지) 통찰력이 빛나는 명쾌한 문장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구글은 광고주와 사용자를 연결하기 위해 검색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이고 페이스북은 관계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이렇게 추상적으로 플랫폼을 정의하고 나면 플랫폼 이용자와 플랫폼 운용자 사이의 전략적 행동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구글은 애플의 iOS에 맞서 안드로이드 진영을 창설하였다. 구글은 모바일 시장의 절대 강자인 애플의 플랫폼에서는 제대로 힘을 쓸 수 없음을 깨닫고는 안드로이드를 무상으로 시장에 제공하여 스스로를 플랫폼화한 것이다. 저자들은 이를 거대 플랫폼에 대해서 오픈 플랫폼으로 대항하는 전략적 행동으로 설명한다. 명쾌하다.

이러한 연역적이고 추상적인, 그러므로 명쾌한 논리는 이 책의 대단한 장점이다. 그러나 이 책은 얇다. 이러한 멋진 논리에 더 풍부하게 살을 붙였어야 했다. 예를 들어 저자들은 플랫폼 전략이란 "관련 그룹을 플랫폼에 모아 네트워크 효과(일종의 입소문)를 창출하고 새로운 사업의 에코 시스템, 즉 생태계를 구축하는 전략이다."(16페이지)라고 정리해 준다. 그러면 실제로 관련 그룹들을 어떻게 플랫폼에 모을 것인가, 어떻게 네트워크 효과를 창출할 것인가? 그러나 저자들은 이에 별 관심을 주지 않는다. 탁월한 검색 서비스일 수도 있을 것이고, 대대적이거나 독특한 홍보일 수도 있을 것이고, 풍부한 콘텐츠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페이스북의 경우는 무엇일까?) 저자들은 이에 대한 조언을 해주지 않는다. 또, 네트워크 효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페이스북의 뉴스피드나 트위터 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내가 보기에 이 책의 가장 큰 한계는 바로 그 분량이다. 이 책은 더 좋은 책이 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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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호 2011-07-17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드레이 학주는 미국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weekly 2011-07-17 11:15   좋아요 0 | URL
지적 감사합니다.
제가 다시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저도 그렇게 생각되어서 본문에 반영했습니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
클레이 셔키 지음, 송연석 옮김 / 갤리온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읽은 기간: 5/8 ~ 5/9
총평: 잘 읽힌다. must read

IT의 발달로 원하는 정보를 찾고, 그것을 자신의 필요에 맞춰 재단하고, 또 스스로 정보(콘텐츠)를 생성하는 일이 무척 쉬워졌다. 말하자면 IT의 발달로 모든 것을 개인화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원의 반쪽일 뿐이다. 다른 반쪽은,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지만 일단 사회화라고 해보자. 여기서 사회화란 사적인 것을, 역시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지만 말하자면 출판을 통하여 모두와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어쩌면 사회화되지 않은 개인화란 파편화에 불과한 것일런지 모른다. 인터넷의 초기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은 파편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현재 현상으로 보이는 모습은 파편화보다는 사회화인 것 같다. 물론 더 깊은 부분에 대해서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클레이 서키의 이 책은 사회화를 조직화라는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 새로운 도구들(스마트폰,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위키 등등)의 등장으로 그룹을 조직하는 것이 너무도 쉬워졌으며 이 그룹들은 개인의 사소한 문제 해결에서부터 특정한 정치적 사안의 이슈화나 거대한 소프트웨어 개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현장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더구나 이 모든 일들은 중앙의 통제 조직없이 자발적으로, 말하자면 각 개인의 선의에 의해 진행된다. 에릭 레이몬드가 말한 시장 모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키는 이런 조직들이 굴러가는 메카니즘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 메카니즘이 참 역설적이다. 예를 들면 세상에 수없이 많은 블로그 중 대다수는 독자가 몇몇에 불과하다(내 블로그처럼), 인터넷을 통해 수 많은 조직들이 형성되지만 그 중 대다수는 dead on arrival이다, 위키피디아나 리눅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인원은 수십만, 수백만에 이른다고 하지만 핵심적인 기여를 하는 사람의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등등.

그러므로 서키의 책을 채우고 있는 성공적인 조직들의 예는 무척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서키도 이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수 많은 시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 중에 성공적인 조직들이 탄생할 수 있었으며, 또 실패에 대한 비용이 매우 적기 때문에 수 많은 시도가 있을 수 있었다는 것.

그러나 서키의 관점은 일종의 물량주의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리눅스 프로젝트의 경우 리누스 토발즈라는 헌신적인 핵심 개발자가 있었다.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경우는 리처드 스톨만이라는 탁월한 해커 혼자서 초기 코드의 대부분을 작성하였다. 칸 아카데미의 수많은 비디오 튜터리얼은 칸이라는 사람이 거의 혼자 만들어 낸 것이다. 앱스토어는 애플이라는 통제자가 있기 때문에 양질의 소프트웨어가 흘러들고 개발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져 안정적인 생태계를 이루고 있지만 안드로이드 마켓은 시장 모델을 도입한 결과로 아직 제대로 된 생태계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웹 상에 수 많은 공짜 읽을 거리들이 있지만 사람들은 기꺼이 오프라 윈프리와 프로페셔널들이 만든 아이패드용 잡지에 돈을 지불하려 한다. 나의 요점은 양질의 프로젝트는 소규모의 탁월한 실력을 보유한 사람들이 안정적인 기반을 구축하여 놓았기 때문에 그 질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프로젝트에 있어서 시장 모델은 현상일 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지속적인 프로젝트가 아니라 일시적인 문제 해결형 조직의 경우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서키의 책 서두에는 에릭이라는 남자가 수 많은 익명의 사람들의 도움으로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은 이야기가 나온다. 촛점을 수 많은 익명의 사람들의 도움, 갖가지 IT 신기술에서 에릭에게로 옮기면 그가 투여한 엄청난 에너지가 눈에 먼저 들어올 것이다.)

아무튼 서키의 책을 읽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서키가 대변하는 관점대로 흘러가는 듯 하지만 하나 반례가 있으니 그것은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다. 애플은 비밀주의, 폐쇄주의, 프로페셔널리즘, 디테일에 대한 집착, 미적 감각에 대한 옹호 등으로 묘사될 수 있을 것인데 사람들은 그 안에서 (나처럼) 편안함을 느낀다. 애플은 분명 현대적 흐름에 있어 색다른 흐름이다. 그런데 성공적인 흐름이다. 서키는 이러한 흐름을 외면하고 말았지만 이런 흐름은 분명히 존재한다. 프로페셔널리즘, 더 높은 가치, 더 높은 질에 대한 추구. 이러한 가치의 생산과 인식은 분명 우리의 몫이고 우리가 당연히 준비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서키가 이러한 관점을 한 책에 아우르지 못한 것은 좀 아쉽다. 그러나 서키의 책은 여전히 계발적이다. 즉,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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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하는 애플 추월하는 삼성 SMART 대전! 신라이벌 열전 5
이창훈.최광 지음 / 머니플러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읽은 기간: 4/30 ~ 4/30
총평: 사서 볼 책은 아니다. 물론 샀다면 끝까지 읽어야 겠지만.

질이 무척 낮다. 제목도 그렇고 책에 사용된 이미지들도 그렇고 저자들의 문장도, 논리도, 문제의식도 일관되게 질이 낮다. 이런 책도 드물지 싶다.

애플은 시장을 창출하는 기업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란 회사는 산업계에 부족한 것, 즉 혁신을 제공하는 기업이라고 정의한다. 반면 삼성은 시장의 문이 열리기를 지켜보고 있다가 문이 열리면 냉큼 따라 들어가는 기업이고 그런 부분에 탁월한 강점을 갖는 기업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fast fallower라는 것이고, 미안하지만 또 스티브 잡스를 인용하자면 copy cat이라는 것이다.

이쯤에서 벌써 애플과 삼성에 대한 가치평가는 끝나버린다. 그러니 두 기업을 동등한 위치에서 비교 평가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인 것 같다.

그럼 저자들은 이 주제에 대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뭔가를 알고 있다는 것일까? 나는 이 책을 한번 다 읽고 나서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한번 읽었다. 그 결과로 말하겠다. 그런 건 없다.

이 책의 저자는 신문 기자들이다. 당연히, 지면 관계상 신문에서 하지 못했던 얘기들, 좀 더 심층적인 얘기들을 책에 담아냈겠지 하는 기대를 갖게 된다. 그러나 그런 것 전혀 없다. 신문에서와 마찬가지로 피상적인 이야기, 엉뚱한 결론, 상투적 문구, 누구나 알지만 기자들만 모르는 이야기들로 책을 가득 채워 놓았다.

예를 하나만 들어보자. "한국에서 아이폰 판매량이 어느 지역보다 가파르게 상승했던 요인 중의 하나는" 무얼까? 한국에서 아이폰 판매량이 가파르게 상승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관련 자료는 있는지 따위는 묻지 말자. 저자들이 그런 걸 제시할 리도 없다. 그냥 저자들의 결론만 들어보자. 그 "요인 중의 하나는 바로 나쁜 남자 코드와 절묘한 타이밍을 이루어 한국 시장에 진출한 애플의 행운이었다고 봐야 할까."(22페이지)라고 저자들은 말하고 있다. 농담인지 진지한 얘기인지 모르겠는데 불행하게도 저자들은 진지한 것 같다. 아이폰이 한국에 들어오기까지 한국 통신 시장, 휴대폰 시장 상황의 심층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여기서 바로 책을 덮어도 된다. 그런 수준을 이 저자들은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미 책을 산 사람이라면 미장원에서 차례를 기다릴 때 여성 잡지를 이리 저리 뒤적이는 식으로 이 책을 보면 된다. 쓰레기통에 버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애플-삼성의 스마트 대전이라는 주제로는 도저히 책 분량을 채울 수 없어 이 주제, 저 주제 손에 잡히는 대로 건드리는 저자들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또 가끔은 재미있는 일화도 건지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 이건희는 신세계 백화점 사장에게 백화점 사업의 특성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단다. 당연히 유통업이라는 대답이 나왔지만 그건 이건희가 원한 답이 아니었다. 이건희의 답은 백화점 사업은 부동산업이라는 것이었단다. "백화점이 들어서면 유동인구가 늘어나고 주변 부동산을 개발할 여력이 커지는 만큼 백화점은 궁극적으로 부동산업"이라는 것. 현실적이고 일리 있는 얘기임에 틀림없다. 반면 한 사업을 정의하는 주요한 요소 중 하나, 즉 소비자가 간과되고 있음도 바로 눈에 보인다. 스마트 기기 시장에서 삼성이 취한 행보들이 이런 마인드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삼성은 아이패드에 맞서 7인치 갤럭시탭을 내놓았다. 문제는 갤럭시탭의 운영체제가 태블릿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7인치 갤럭시탭 이후의 삼성 태블릿들은 태블릿용 운용체제를 탑재하게 될 것이므로 7인치 갤럭시탭에 대한 지원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이런 예는 계속 들 수 있다. 삼성이 이런 정책을 쓰는 이유는, 물론 소비자들에게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 등등이 아니다. 상대 업체에게 소비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제대로 된 제품이 준비되기 전까지 시간을 끌어 줄 제품을 브랜드 파워를 믿고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나는 삼성식의 정책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삼성이 틀렸다고 삼성이 실패할 거라는 얘기는 아니다. 삼성이 이런 정책을 쓸 수 있는 것도 fast follower로서의 자신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약간만 시간을 벌어준다면 곧 제대로 된 제품을 시장에 공급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 그러나 저자들이 조심스럽게 비판하는 것도 삼성의 이런 모습이다. 삼성도 시장을 창출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일하게 저자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었던 것 같다. 물론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느끼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쨌든 저자들(기자들)도 상식적인 사고가 가능하구나 하고 조금 놀랐다는 점을 특기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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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하하 2011-08-25 0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참 재미있는 책일거 같네요..
이런 책도 있구나.. 하면서 읽고 그냥 잊어버리는..
그런 책이라고 할수 있겠네요 ㅎㅎ

리뷰 잘 읽었습니다 ^^
 
새로운 과학정신 - 현대프랑스철학총서 15
가스통 바슐라르 / 인간사랑 / 1990년 6월
평점 :
품절


읽은 기간: 4/1 ~ 4/9
번역 상태: 죄악이다!

내가 느끼기에 이 책은 현대의 고전이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성과를 바탕에 깔고 매우 미묘한 사상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읽어내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더구나 그 번역의 품질이란! 읽으면서 내내 영역본이라도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더 바라건대는 본문만큼 두툼한 해제와 깔끔한 각주를 단 새로운 역서가 나와 주는 것. 바랄 것을 바래야 하는 것일까?

바슐라르가 이 책에서 논박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서양의 전통적인 철학적 방법론이다. 즉, 이성을 사용하여 가장 직접적이고 단순한, 다시 말하면 확실한 기반을 찾아낸 후 그 위에 차곡 차곡 학을 쌓아올리는 방법론.

우선, 왜 데카르트인가? 즉, 왜 흄이나 로크가 아닌가? 그것은 바슐라르 자신이 데카르트의 후예답게 철두철미한 합리론자이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를 무찌르고 전장에서 돌아온 바슐라르는 이렇게 선언한다. "예외란 없다. 예외와 비합리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합리성으로 수렴한다." 반전의 묘미가 있다.

다음으로 이성을 사용하여 가장 확실한 기반, 즉 가장 직접적이고 단순한 기반을 포착하자는 방법론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가능할 것인데, 아마 가장 근본적인 것은 "단순한 것은 단순화된 것"이라는 것일 게다. 예를 들면 평행선의 개념이나 동시성의 개념은 자명하지도 단순하지도 않다. 그에 대한 더 심도 있는 사색의 결과로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나 상대성 이론이 등장한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말이다.

직접적이고 단순한 기반에 대한 추구는 곧장 본질론으로 이어지고, 실체론적 철학으로 귀결될 것이다. 그러나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성립사에서 보듯이 우리가 평행선의 개념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의 본질을 이해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다양한 적용의 양상을 안다는 것이다. 즉,  본질론은 무용하다. 또, 단순한 것이란 그것을 포괄하는 복합체를 전제하는 한에서 단순한 것이다. 즉, 단순한 것, 근본적인 것, 기본적인 것이 먼저 오지 않는다. 실체론은 무용하다.

"단순한 것은 단순화된 것"이란 비판이 가장 잘 적용될 수 있는 대상 중 하나가 결정론일 것이다. 결정론은, 예컨대 사물의 다양한 상태 중 고체 상태만을 고려한, 단순화되고 고정된 심적 상태를 반영한다. 데카르트도 이런 관념 안에 있었기 때문에 "운동과 형태를 구분하라"고 사람들에게 조언했지만 그가 도외시한 것, 즉 유체가 이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음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안다.

본질론이나 실체론, 결정론 등등에 대한 논박으로 현대 과학의 성과를 원용하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바슐라르가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여 수행하고 있는 일이 그것이다. 물론 여기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다. 위에서 논의한 것들도 책 전체의 줄거리라기보다는 여러 테마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 책은 상당히 얇지만 매우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간략히 스케치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과학적 활동의 배후에 놓여 있는 심적 상태에 대한 역사적, 심리학적 고찰과 그에 대한 교육학적, 철학적 의의를 다루면서 저자 자신의 매우 급진적으로 보이는, 수학적 형이상학이라 할 만한 주장을 내놓고 있어서 그에 대한 숙고를 피할 수 없게 한다. 앞서 이 책이 미묘한 사상을 다루고 있다고 한 것은 이것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이다.

자, 이 모든 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읽기 어려운 기술적 사항들로 꽉 차 있는 이 작은 책은 고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결론도 간단하다. 즉, 고전을 읽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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