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현대성 - 패러다임 총서
주은우 지음 / 한나래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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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가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자신의 박사논문을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논문이 발표될 당시 우연찮은 계기로 훑듯 읽어본 기억이 난다. 사회학 논문으로서는 문화와 미학과 접목된 분야를 다루고 있었기에 매우 흥미로운 논문이었다. 그러나 수 년이 지난 이 논문이 머리 속 한 켠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던 것은 최근 들어서 깊은 고민의 영역인 본다는 것의 의미와 효과, 영향과 역사 등을 화두처럼 안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본다는 것은 분명 내 마음대로 본다는 것도 아니고 그 봄으로 인해 일으키는 반응 역시 자율적인 의지에 따른 것도 아니다. 그리고 본다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우리가 현대 사회와 어떻게 접촉하며 타인들과 문화를 공유할 것인지 하는 난감한 가정을 해보곤 한다. 20세기는 분명 본다는 것 자체의 환경과 구조에 심대한 변화를 가져온 시기였다. 자본주의적 대량생산과 사회의 민주화는 특권층의 향락이나 과시 수단이었던 각종 진기한 볼거리들을 서민들의 일상으로 이끌어 들였다. 그리고 대도시로 재편된 도시 환경의 변화와 소비자본주의의 확산은 본다는 것이 어지럼증과 환영의 기나긴 연속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러한 조건 속에서 여전히 우리는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문제들과 연관된 사유를 확장시키기에 우리의 연구 성과는 매우 보잘 것 없음을 종종 느껴왔다. 번역서라도 좋으니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으로 가는 길을 보여지기를 바랐는데, 저자의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내게 큰 의미를 준다. 아직까지 대중화되지 못한 영역이라서 그런지 내게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마냥 흥미롭다.

물론 논의의 상당수가 해외 연구 성과들을 정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으나, 초기 단계의 연구에서는 해외 연구 성과의 정리와 소개만으로도 그 의미는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원근법으로 요약되는 현대성의 시각 문화에서 다양한 광학 기계와 대도시적 경험에 기인한 탈중화되고 유동적인 시각 문화로의 변화 과정은 의식 철학의 인식 주체라는 매개로만 이해되던 현대성의 중요한 심급을 또 다른 각도에서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연구 성과를 보면서도 정작 우리의 경험들을 우리의 자료에 근거해서 설명할 수 있는 날은 아직도 멀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자료조차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으니, 어느 세월에 자료를 검토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심도 있는 논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외국의 경험은 외국의 경험일 뿐이다. 그리고 정작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것은 우리의 환경과 연계된 경험의 역사일 것이다. 그런 점은 저자 역시도 차후의 연구 과제로 삼고 있으니 머지 않은 장래에 어떤 식으로든 좋은 결과가 도출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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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환상성 동문선 문예신서 189
장루이 뢰트라 지음, 김경온 외 옮김 / 동문선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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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영화제가 특화된 하나의 영화제로 정착될 정도로 판타스틱 영화라 불리는 일군의 기이하고 독특한 영화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져가고 있다. 전통적인 서사와 영화 형식에 식상한 사람들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뭔가 좀 더 신선하고 새로운 자극을 찾기 마련이고, 영화 역시 첨단화된 기술적 조작으로 이미지 구사가 용이해짐으로 해서 이와 같은 사람들의 욕구에 조응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킹콩'이나 '투명인간'같은 영화가 보여주는 놀라운 기술에 찬탄을 금하지 못했다는 경험담은 이제 아주 낡은 것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관객의 기대 수준과 기술적 발전이 지금처럼 근접해 있는 시대도 없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영화에 있어서 새로운 기술을 액션 영화에서의 스펙터클을 양념처럼 바르거나 코믹 영화에서 과장된 웃음을 유발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용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는 단순한 유흥 이상의 지적 텍스트로서, 훌륭한 몇몇 영화들에서 우리는 기존의 질서와 자아정체성으로부터 놀라운 전도와 의심의 계기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대체로 전통적으로 관객의 대중적 호응을 받았던 장르 영화보다 공포영화나 미스테리 영화처럼 저급하거나 낯선 장르로 취급받아온 영화에서 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우리가 우리와 주변 환경을 받아들이는 어떤 합의된 관념을 리얼리티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와 같은 기존 관념에 회의를 품게 하는 다양한 기제들을 총칭해서 판타스틱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기제들은 영화의 공인된 질료인 이미지와 사운드의 차원일 수도 있고, 카메라의 시선이나 편집의 차원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일군의 판타스틱 효과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대체로 의식적이지 못하다. 무엇이 그러한 효과를 만들어내는가 하는 질문에 둔감하다는 말이다.

뢰트라의 <영화의 환상성>은 우리에게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공포영화들을 매개로 하여 영화가 발휘하는 환상성이 어떤 차원에서 어떤 기제나 모티프를 중심으로 구성되는지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책 한 권이면 영화의 환상성이라는 테마를 고민하는 데 충분한 단초가 되리라 생각한다. 물론 잘 알지도 못하는 영화들에 대한 서술을 읽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읽어내려 하는 것보다는 처음에는 총론 중심으로 읽고 나중에 영화를 구해본다음 관련 부분을 정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영화를 웬만큼 보고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이 책을 찾으려 하지 않겠지만, 이 책은 영화나 문학을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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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성과 육체의 정치학 동문선 문예신서 231
다비드 르 브르통 지음, 홍성민 옮김 / 동문선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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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움직임에 제약을 가하고 사악한 감각들로 정신을 혼란시키는 빈 껍데기, 이것이 중세 서구까지 지속되어 온 육체 혹은 몸에 대한 인식이었다면,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 속에서 몸은 해부 가능하며 구조가 이해될 수 있는 일종의 기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서구적 근대화 속에서 육체는 개인주의를 담보하는 물증이 되었다. 개인주의는 나와 남을 구분하고 자신의 육체를 적극적으로 통제함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근대화 속에서 여타 감각을 제외하고 시각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한 것은 근대적 도시환경이 배태한 복잡한 공간적 배치와 위협적인 타자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몸 그 자체를 하나의 자산으로 삼아 적극적으로 관리함으로써 죽음과 질병의 위협을 극복하고, 타자와의 구별 감각을 적극적으로 발산하면서 각종 육체 산업의 발전을 가져온 것은 근대적 현상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르 브르통의 이 책은 철학과 사회학, 의학 등 한 사람으로서는 아우르기 힘든 영역을 포괄하면서 육체에 대한 서구적 관념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살피고 있다. 번역서 제목에는 ‘정치학’이라는 말이 새겨져 있지만 원저에는 ‘인류학’이라고 되어 있다. 실제 내용 역시 인류학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 작가인 탓에 주로 프랑스 쪽 문헌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지만, 그렇다고 프랑스적 현학취미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읽기 편하다.

그리고 기존의 육체 담론들이 그야말로 담론이라는 다분히 추상적인 맥락에서의 이론적 검토에 치중했던 데 비해, 이 책은 구체적인 현상을 미시적인 분류 속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육체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항을 검토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듯하다. 원 저자의 각주를 보아도 알 수 있지만, 저자는 그동안 육체나 몸과 관련해 축적된 연구 성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의 논의가 비단 이 책을 통해서 개화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이 책이 포괄하고 있는 논의가 상당히 오랜 기간의 숙고와 정련 과정 속에서 탄생한 것이므로 신뢰할 수 있는 수준임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다만 근대적 육체 관념의 형성기는 철학적 수준에서, 그리고 근대적 전개 과정의 양상에 대해서는 사회학적 수준에서, 그리고 이후에는 의학적 수준에서 논의를 펼치고 있기 때문에 일관된 이론적 맥락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아쉬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아쉬운 부분 중 하나인 육체 관련 저서 중 이만큼 구체적인 검토를 시도한 책이 드물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의를 찾고 싶다.

최근 대중문화 연구, 도시 연구의 일환으로 육체 담론이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지만, 대부분 파편적인 데 머물고 있다. 육체는 소비되고 적극적으로 관리되는 측면이 강하지만, 그것은 육체와 관련된 근대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육체는 금기의 영역이었고, 지금도 우리에게 육체는 무수한 금기들이 온존하고 있는 공간이다. 가장 개인적이지만, 어떻게 보면 역설적으로 가장 공적인 영역이 육체이다.

유교적 가치관 속에서 통제되어 온 육체가 기독교적 가치관 속에서, 그리고 근대적 가치관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통제하에 놓여지는지, 그리고 금기의 양상이 어떻게 바뀌는지 우리는 여전히 잘 모른다. 그리고 감각과 관련해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들에 대해서는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거나 무관심하다. 우리에게 서구적 육체 담론은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등장했지만, 그 밑에 깔려 있는 무의식의 언저리에서 우리의 육체 담론은 허약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브르통의 이 책은 우리 역시 몸과 관련된 우리 나름의 인류학, 민족지학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하게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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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미메시스 - 서구문학에 잠재된 환상성의 재발견
캐스린 흄 지음, 한창엽 옮김 / 푸른나무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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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구 문학에 내재된 환상 충동을 총체적으로 조명하겠다는 취지에서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환상적 요소를 내포한 문학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문학 속에 미메시스 충동과 환상 충동이라는 두 개의 기둥이 존재해 있다는 가정 하에서 서구문학에서 환상적 요소가 어떻게 개입되고 왜 환상적 요소가 사용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로즈마리 잭슨의 책이 다소 제한된 영역을 중심으로 환상 문학의 이데올로기적, 주제적 차원을 논하고 있다면, 캐서린 흄의 이 책은 전통적으로 문학 분석의 토대로 사용되어 온 기호론적이고 유형론적인 관점에서 엄격한 형식적 분류에 치중하고 있다. 따라서 잭슨의 책은 환상문학의 의미론적인 차원에 관심을 가진 대중 독자의 관심에 적당하다면, 흄의 이 책은 작가-작품-독자라는 관계나 노스롭 프라이의 희극, 비극, 로망스, 아이러니, 4개의 신화체계로부터 환상성을 양식화하고자 하는 전문 독자에게 적당한 책이 아닌가 싶다.

잭슨의 문체가 엄격하고 명석한 비판에 기반한 다소 건조한 문체라면, 흄의 문체는 다소 산만하면서도 재치가 넘치는 부드러운 문체라고 하겠다. 문체의 차이가 독서 과정에 어느 정도 상관관계를 가진다고 할 때, 흄의 문체는 학문적 엄격성을 바라는 이들에게는 다소 산만해 보일 것이 분명하다.

또 잭슨이 주로 근대 이후의 환상 작품에 주 관심을 두고 있다면, 흄은 중세 전공자답게 주로 중세 이전의 작품에 상당히 많이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학문적 관심이 아니라면 당연히 잭슨의 책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흄은 잭슨과는 달리 환상문학만이 아니라 문학 전반을 4가지 양식으로 분류하고 그 속에 개입된 환상적 요소와 그 기능을 밝히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환상성이라는 기본 테마에 대한 밀도 있는 서술은 아니지만 문학을 폭넓게 바라보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하튼 두 권의 책 모두 최근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환상성을 재평가하는 데는 좋은 참고서가 되리라 생각된다. 다만 이 두 권 모두 80년대의 성과이므로 이후 새롭게 진전된 논의 성과를 파악하는 것은 새로운 과제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들 책은 환상성에 대한 개관이나 총론의 성격이 짙고, 수많은 작품들이나 유형을 일별하고 있을 뿐, 세밀한 각론을 전개하거나 특수한 주제를 다루는 데 주안점이 놓여 있는 것은 아니므로 이 점도 염두에 둬야 할 듯하다.

그리고 이들 책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문학, 영화, tv 등 각종 매체 텍스트에서 환상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으며,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욕망과 긴장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또 우리에게는 왜 환상이 저급한 장르나 기법으로 이해되며, 환상 장르가 우리에게는 빈곤한지 등의 문제를 우리의 근대적 경험 속에서 따져보는 것도 흥미로운 테마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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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성 - 전복의 문학, 모더니티총서 14
로즈메리 잭슨 지음, 서강여성문학연구회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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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기 들어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중심으로 판타지 작품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기존의 관습적인 서사 방식과 스토리에 실증이 난 사람들이 그동안 저급 문화 또는 유치 문화라고 저평가되어왔던 판타지 작품에 열광하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특히 판타지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문학에서조차 그 맛을 제대로 느껴볼 기회가 적었던 우리에게 있어서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갇혀 있는 상상력의 나래를 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리얼리즘이나 모방, 사실이라는 개념에 지나치게 집착해왔던 지난 시대의 역사적 관습이 암묵적인 강제로 작용해왔던 점 역시 판타지 흥성의 한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대중문화의 주도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압도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제 판타지 작품들은 새롭게 가치 평가되어야 하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판타지 작품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 상황에서 자칫 맹목적으로 판타지에 열광하는 것도 새로운 편향이 될 가능성이 있다.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이 가진 사상과 세계관이 지극히 중세적이고 봉건적이라는 점, <반지의 제왕>이 가진 세계의 기독교적 엄숙주의와 배타적인 타자관을 보인다는 점 등을 고려하지 못할 때, 우리는 판타지 작품이 가질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편향에 쉽게 젖어들게 된다.

로즈마리 잭슨의 이 책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마도 작가와 작품이 관여하는 세계와 독자가 개입하면서 만들어 내는 세계에 대한 의미론적 차원에 대해서 날카로운 지적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판타지는 무비판적으로 동화되고 즐겨야 한다는 또 다른 강제가 낡은 맹신일 수 있음을 잭슨은 강조하고 있다. 특히 톨킨과 그의 <반지의 제왕>이 왜 진정한 의미에서 판타지 작품이라고 불릴 수 없다고 주장하는지 한번 경청해볼만 하다.

이 책은 판타지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광범위한 관심을 충분히 만족시켜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저자가 다루는 작품 중 상당수가 우리에게 낯선 작품이지만,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비록 서구 중심적인 역사이지만, 판타지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꽤 소상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많은 작품들에 대한 독서욕을 얻어 새로운 독서로 나아가는 길잡이로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판타지 목록이 얼마나 협소한 것이었는가를 이해하고, 보다 광범위한 작품에 대한 출판 바람을 가질 수도 있다.

추리문학이나 판타지문학에 대한 새롭고 적극적인 관심은 분명 이 시대의 새로운 문화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장르들은 우리의 문학사에서는 낯설고 저급한 것으로 평가되어왔다. 일종의 은폐를 통해 이루어진 과대평가와 맹신은 인간의 감수성과 가치관을 편협하게 조작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우리는 문학에 대해 주눅들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시대의 도래를 예감하고 있다고 해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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