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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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보다 즐거운 유희

-마르께스에 대한 단상.


마르께스에게 바쳐진 헌사 중 최고의 것은 쿤데라의 입을 빌어야 했다. <소설의 종말에 대해 말하는 것은 서구 작가들, 특히 프랑스인들의 지엽말단적인 걱정일 뿐이다. 동구나 중남미 작가들에게 이와 같이 말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어떻게 서재에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꽂아놓은 채 소설의 죽음에 대해 중얼거릴 수 있다는 말인가?>


마콘도에서 아이들은 양탄자를 타고 다니면서 날아다닌다. 나는 것이 필요하면 나는 것을 꿈꾸면 된다. 비행기를 살 수 없는 사람들은 비행기를 꿈꾸면 된다. 마콘도는 가난한 땅이다. 그래서 신화도 많고, 전설도 많고 방귀 소리도 크다. 거기에 돼지 한 마리를 먹어치우고 엄청난 방귀로 꽃들을 질식시켜 죽여 버리는 거대한 사나이가 있다 해도 따지지 말 일, 송아지 한 마리와 쉰 개의 오렌지, 8리터의 커피와 30개의 날계란, 두 마리의 돼지와 한 다발의 바나나, 네 상자의 샴페인을 먹어치우는 여자가 있다 해도 따지지 말 일, 하늘에서 꽃비가 내릴 수도 있고, 한 여인이 돼지 꼬리가 달린 아이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도 그곳에서는 극한을 향해 과장된다. 중요한 건 표현과 현실의 일치가 아니라 무슨 말을 해도 즐겁자는 것. 그것이 게임의 논리요 언어의 논리가 아닌가. 생각해보시라 아무리 사람이 많다 하더라도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겠는가. 입추(立錐)의 여지(餘地)가 없을 정도로 붐비는 곳이 있다는 말인가. 해서 하는 말인데 즐겁자는 게 말이니 따지지들 마시길.


극한의 아름다움, 그 강철의 무지개 앞에서 죽음이나 삶도 무게를 잃어 버린다. 마콘도에서 운우지락(雲雨之樂)의 열락의 신음은 무덤 속의 유골마저 놀라움에 떨게 한다. 그런 강렬한 매혹 앞에서 현기증을 느끼는 몸, 탕진을 예감하며 떠는 몸, 죽음을 예감하며 한 사나이가 미녀 레메디오스의 아랫배에 손을 집어 넣는다. 이럴 때 에로티즘은 지독하게 외로워 보인다. 에로티즘은 지긋지긋한 개체성을 탈피해 어떤 합일과 섬광의 순간을 꿈꾸지만 그게 될 법한 일인가. 나는 너라구?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나는 지긋지긋하게 나다. 아닌가? 대체 어떤 탁월한 수단과 방법으로 네가 나이며, 내가 너란 말인가? 하기야 개체가 제 윤곽을 허무는 일도 있긴 하겠다. 가령 죽음 같은 거 말이다. 세상이 내 허물어진 몸에 확, 침투해서 비로소 내가 세상이 된다. 그런데 나는 없다. 그때 난 죽었으니까. 암만 생각해도 내가 네

가 되는 경우를 알지 못하겠다. 약의 힘을 빌기도 어렵고.


<진정한 기억은 기억의 환영 같았다. 반면에 거짓스러운 기억은 너무도 그럴 듯해서 현실을 그대로 옮겨다놓은 것 같았다.> 라는 마르께스의 구절은 곱씹을 만하다.


『백년 동안의 고독』이 말하는 것은 욕망이다. 욕망은 유전될 뿐 진화하지 않는다. 테크놀로지가 욕망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조작할 수 있는 날이 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까지는 인간은 아랫도릴 싸쥐고 신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럴 때 대체 역사는 발전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늙지 않는 욕망과 함께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은 아닌가.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역사가 끊임없이 욕망과 함께 순환하는 땅은 마콘도이다. 마콘도, 낙원의 땅, 저주의 땅, 대홍수의 땅, 전쟁과 살육의 땅, 위대한 어머니의 땅. 


욕망이란 렌즈를 통해서 본 미래는 뻔하다. 기껏 날아보았자 부처님의 손바닥 안이다. 욕망을 대체할 새로운 패러다임을 고안해냈다면 그는 대단한 히트상품을 발명한 셈. 어떤 고약한 신이 욕망을 근본적으로 개조할 능력을 우리에게 주지도 않으면서 영생만을 준다면 그보다 지독한 테러는 없을 것이다. 욕망을 좌지우지하고 그것을 제멋대로 주물러 가지고 놀 수 있는 막강한 힘과 함께 영생을 주지 않는다면 영생은 감옥이다. 담배는 수백 보루가 쌓여있는데 불이 없는 감옥처럼 끔찍한 감옥이 있을까. (인생이 짧은 건 그나마 다행이잖은가.)


프랑스의 한 출판사는 마르께스에게 물었다. 그는 유머스럽게 대답했다.

- 당신 최대의 미덕은?

- 죽을 때까지 비밀을 간직할 수 있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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