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타 소녀와 좀비 소년 라임 청소년 문학 18
김영리 지음 / 라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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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주인공 같은 겉표지의 소년 소녀가 눈에 확 들어온다.

자세히 살펴보면

소년은 여기저기 얼굴에 상처가 나있고

소녀는 치타 풋을 착용하고 있다.

이 둘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을까?

 

소년의 이름 태범

소녀의 이름 수리

둘 다 열여덟살이다.

한창 공부해야 할 나이인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태범의 아버지가 귀가 중이던 수리를 뺑소니 하고 도망가는 바람에

수리는 한쪽 다리를 잃고 의족을 하게 된다.

수리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을 그렇게 만든 뺑소니범 태범 아빠를 찾아가

살인을 저지른다. 태범의 동생도 그 때 죽게 된다.

태범의 가족은 한순간에 풍비박산 난다.

태범의 엄마는 그 사건으로 인해

정신을 놓아버린다. 심지어 태범 또한 그 날 죽었다고 여기며 태범을 좀비 취급한다.

태범은 자신만 보면 기겁하는 엄마를 뒤로한 채 가출하여

노숙자 생활을 하며 맷값으로 돈을 받아 연명한다.

수리는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오명 하에 치타 풋을 장착하고 마라톤 완주를 꿈꾸며 매일 매일

엉덩이와 다리에 쥐가 나도록 뛰고 또 뛴다.

 

책의 내용 중 둘은 서로 데칼코마니 처럼 닮아있다는 문장이 나온다.

태범과 수리 둘다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을 안고 있다.

태범은 가족이 산산이 흩어졌고

수리는 살인자의 딸이라는 말과 함께 한 다리를 잃었다.

따지고 보면 서로는 상대에게 원수 같다.

하지만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면서 둘은 서서히 다른 사람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맞으면서 돈을 벌지언정 절대 파란집 대문으로 들어가지 않던 태범과

살인자 아버지를 한 번도 면회가지 않았던 수리의 삶에 서서히 변화가 생긴다.

 

태범과 수리에게 일어났던 끔찍한 일들.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정말 좋았겠지만서도

이미 벌어진 일을 후회해도 원망해도 소용 없다는 걸 우린 너무 잘 알고 있다.

 

원망과 자해, 자포자기 속에 살던 태범과 수리가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감싸 주면서 서서히 변화되는 모습이

이 쓸쓸한 가을에 너무 잘 어울린다.

 

요즘 성장통을 겪고 있는 청소년이 읽으면 많은 위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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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퍼 - 제14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탁경은 지음 / 사계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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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교과서를 채점하다

반 아이 중 한 명이 수학책에 가득 낙서를 한 게 보였다.

너무 내용이 어두워 잠시 불안한 생각을 했으나

자세히 보니 랩 가사여서 한시름 놓았다.

평소에 공부 잘하고 수업 시간에 집중하는 녀석인데

이 아이도 이런 갸벼운 일탈(?)을 하는구나 싶었다.

찬찬히 살펴보니 한두 쪽이 아니라 거의 모든 쪽수에다 랩을 적어놨다.

음~ 이건 아닌데.

수학 시간이 지루했나 싶기도 했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 흠~~ 그 분(사춘기) 이 오셨군!'

 

딸래미도 초6 때 교과서 가득 그림을 그려놨던 게 떠올라

조용히 해당 아이를 따로 불러 조근조근 말했다.

랩을 좋아할 수 있고 깊이 빠질 수도 있으나

수업 시간에 이렇게 하면 곤란하다는 경고를 살포시 줬다.

왜냐하면 이걸 쓰는 동안 수업에 집중 안 했다는 거니깐.

물론 안 들어도 공부 잘하니깐 괜찮다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다.

쉬는 시간에 낙서를 했을 리는 없다.

똘똘한 아이라서 말뜻을 금방 알아들었다.

그 후로 수학 교과서를 채점하지 않아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교과서에 낙서하진 않았을 거라 믿는다.

 

힙합의 무엇이 그 아이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았을까!

평소에는 얌전하고 문학소녀에다 자기 일만 파고

반에서 " 암기의 신"인데 힙합에 심취했다는 게 다소 의외였다.

힙합을 좋아해서 암기를 잘하나?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러고보니 그 아이가 시 좋아하는 주인공 도건이를 닮은 구석이 있는 것도 같다.

 

이 책 <싸이퍼>를 읽어보니

전부는 아니지만 도건과 그 아이의 마음을 약간 알 듯도 하다.

힙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책 한 권을 읽었다고 해서

힙합을 좋아하게 되지도

수학책 가득 랩 가사를 적어놓은 그 아이의 마음을 다 헤아리진 못하겠지만

힙합이 이런 매력이 있구나 정도는 알게 된 게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1꼭지를 읽고 깜짝 놀랐다.

와~ 대상 탈 만하네! 이런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었다.

1꼭지를 읽다보면 합합의 문외한인 사람도 힙합 리듬을 저절로 타게 된다.

비트 박스도 하게 되고 말이다.

책인지 힙합인지 모를 정도로 라임이 절묘하게 맞아 진짜 신기하다.

첫부분이 이렇게 강렬할 수가.

중간과 뒷부분은 어떨까!

너무 궁금해 한달음에 내달렸다.

 

힙합 꿈나무 중2 도건과

허슬을 하며 힘겨운 가운데서도 여전히 힙합을 사랑하는 가출 청소년(?) 정혁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진행되는데 스토리도 탄탄하고 짜임새도 있다.

도건의 이야기는 라임에 맞게 힙합처럼

정혁의 이야기는 보통 책처럼 서술되는데

이것 또한 독자로서 흥미진진하다.

또 하나 도건 어머니의 파업과 가출도 중요한 이야기이다.

위 세 가지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축이다.

 

마냥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고 오직 그것만을 생각하고 내달리는 중2 도건.

도건이처럼 고등학생 때, 꿈만 보고 내달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출하여 여지껏 힙합을 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다보니 자신의 재능에 한계를 느낀 정혁.

가족을 위해 현모양처로 살아왔지만 죽음의 순간에 직면한 친구를 외면했다는 자책감에 빠져 가출한 엄마.

 

위 세 명은 독자가 걸어가야 할 과거,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듯하다.

세 명의 스토리를 읽다보면 살면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가? 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머리에 떠오른다.

과연 난 지금, 잘 살고 있는가?

 

현재 청소년인 경우에는 도건의 삶이 가장 와 닿을 것 같고,

현재 직장을 놓고 고민하는 20대 이상한테는 정혁의 갈등이 자신의 삶과 오버랩될 듯하다.

나같은 40대한테는 도건 엄마의 삶이 공감될 거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세대를 아우르는 이야기가 힙합이라는 음악 장르를 통해

결국 " 어떻게 살 것인가?" 를 묻고 스스로 답하게 만들고 있다.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나라가 하도 어수선하여 시간 관념도 없어진 느낌이다.

이제 2016년도 달력도 겨우 2장만 남겨 놓고 있다.

새해 첫날 세웠던 계획과 목표들

얼마나 잘 실천했는지 생각하니 한숨만 나온다.

그래도 아직 2달이 남아 있다.

하루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모여 일 년이 된다.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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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2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02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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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파과>라는 소설 때문에 구병모 작가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그녀의 문장은 처음에는 너무 낯설어서 잘 읽히지 않았다.

문장이 너무 길어 중간에 내용을 자꾸 놓쳐 몇 번을 읽어내린 적도 있다.

하지만 흡인력 있는 내용 때문에 그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졌다.

초반에는 작가의 문장이 그렇게 길지 않았다는 말도 있어

그녀의 초기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현재와는 달리 청소년문학으로 등단하였다고 한다.

바로<위저드 베이커리>라는 책으로 수상을 하였다고 한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빵은 과연 어떤 맛일까?

행복하고 즐거운 마법도 들어 있지만

부두 인형처럼 남에게 해꼬지하는 마법도 빵에 들어 있다.

이런 부정적인 마법이 들어간 빵은 주로 온라인으로 주문이 들어오곤 한다.

이런 부정적인 마법이 들어간 빵을 주문하는 사람은

스스로는 상대를 어떻게 처치하지 못해

마법의 힘을 빌리려는 이들이다.


한 일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어떤 여학생이 위저드 베이커리에 빵을 주문했다.

배탈이 나는 빵이었다.

시험날, 여학생은 라이벌인 친구에게 마법이 들어간 쿠키를 먹였다.

그 아이는 시험 내내 배탈이 왔고 시험을 엉망으로 봤을 뿐 아니라

교실 바닥에 큰 실례를 하고 말았다.

낙심한 그 아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빵을 주문한 여학생은 크게 후회하며

자신은 친구의 목숨까지 뺏을 생각은 아니었다며

위저드 베이커리에 항의 하러 왔다.

사장은 여학생의 항변을 듣고

그것 또한 여학생이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못 박는다.

그러니 마법이 들어간 빵을 주문할 때는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모르니 말이다.

 

이 이상야릇한 위저드 베이커리에 매일 들러 빵을 사가는 남학생이 한 명 있다.

껑충한 키에 말을 더듬는 게 특징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빵을 사가는 이 남학생이

어느 날 밤 다급하게 위저드 베이커리에 들이닥친다.

옷은 찢겨나가고, 얼굴은 누군가에게 맞은 채로 말이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소년은 이제껏 누구도 보지 못한 오븐에 숨어지낸다.

그 속에서 지내며 이 위저드 베이커리의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다.

 

소년이 말을 더듬기 시작한 건 4년 전이다.

친엄마가 청량리역에 소년을 버리고 갔을 때도

친엄마가 샹들리제에 스스로 목을 매달았을 때도 말을 더듬진 않았다.

아빠가 초등학교 교사인 새엄마와 재혼하고 나서 처음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엄마는 소년을 부담스러워하고,

아주 교묘하게 구박하였다.

소년은 점점 더 말수가 줄어들었고 급기야 말을 더듬게 되었다.

종래 자신의 끼니는 자신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지경에 이른다.

소년이 매일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빵을 산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소년은 배선생(새엄마)이 가급적 자신과 부딪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혼자 알아서 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자기 방에 콕 틀어박혀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배선생이 데리고 온 배다른 동생 무희에게 나쁜 일이 생겼다는 걸 빨랫감을 통해 알게 되었다.

누군가 어린 무희에게 나쁜 짓을 한 것이다.

무희가 범인으로 영어학원 강사를 지목하였으나

그쪽에서 완강하게 범죄사실을 부정하고,

재판 과정에서 어린 무희에게 너무 심한 질문을 하는 탓에 무희와 배선생의 정신적 고통은 더 커진다.

이 과정에서 배선생은 엄청난 히스테리를 부리고

무희도 엄마의 그런 모습을 보며 더 겁에 질리게 된다.

사건이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던 찰나,

잔뜩 겁에 질린 무희가 엉겁결에 자신에게 나쁜 짓을 한 사람으로 오빠를 지목하자

이성을 잃은 배선생은 소년의 옷을 찢고 때리고 죽일 기세로 달려든다.

그 순간,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도망치는 것 뿐이었다.

이미 배 선생은 소년이 범인이라고 믿어버린 것이다.

그래야 이 지리한 싸움이 끝나니 말이다.

그렇게 소년은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았으면서

이복동생을 건드린 파렴치한이 되어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숨어 지낸다.

 

소년은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이런저런 주문 내용을 알게된다.

온라인을 통해 들어온 주문은 하나같이 누군가를 증오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그득하였다.

그 중 부두인형 주문 하나가 눈에 들어오는데

주소가 익숙해서였다.

바로 소년 자신을 해하기 위한 주문인 것이다.

누가 주문한 것인지는 뻔한 일...

배선생은 죽이고 싶을만큼 소년이 미웠나?

무희를 그렇게 만든 진범이 소년이 아니란 것쯤을 알고 있을 텐데...

소년은 너무 비참하였다.

'내가 그렇게 죽이고 싶을만큼 나쁜 존재였던가'

소년이 이 주문을 과연 어떻게 처리할지....


식탁에 마주 앉는 것조차 역겨워 하는 배선생 때문에

스스로 끼니를 해결하는 소년의 신세가 너무 처량했다.

가족이긴 한데 가족이 아닌 유령처럼 지내야 하는 소년의 생활이 너무 딱했다.

급기야 동생을 건드린 파렴치한으로까지 내몰리고

그것도 모자라 죽이고 싶은 대상이 되어버린 소년.

이 소년의 아픔의 끝은 도대체 어디일까?


소년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부두인형 주문을 사장에게 보일 건지 말 건지.

사장이 소년에게 마지막 준 타임 리와인드를 사용할 건지 폐기처분할 건지.

사장이 여학생에게 말한 것처럼

선택은 자유이나 그것에 따른 파장 또한 오롯이 소년의 몫이다.

소년의 아픔을 봤던 나는 소년이 타임 리와인드를 써서 배선생과 만나기 이전으로 돌아갔음 했다.

그럼 적어도 말을 더듬거나 동생을 건드린 파렴치한으로 오해받진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숙명이란 게 있어

또 다시 아버지가 배선생을 선택하여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이번에는 소년이 배선생과 당당히 맞서길 바랄 뿐이다.

전처럼 일방적으로 당하지 말고 말이다.


<송곳>에서 구고신이 한 말처럼

인간은 자기 것을 빼앗기면 분노하고, 화 낼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소년처럼 당하고만 있으면 상대는 더 강하게 압박해 들어올 뿐이다.

소년이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조금 더 용기를 내어주길 바란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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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1-28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병모작가는 청소년 문학도 어두운 분위기네요^^
잘 읽었습니다, 수퍼남매맘님, 좋은하루되세요

수퍼남매맘 2015-11-30 14:19   좋아요 1 | URL
어둡고 칙칙한 이야기에 강한 분인 듯해요.
아직 2작품만 읽어봐서 단정할 순 없지만서도.
일단 이 작품은 문장이 길지 않아 좋았어요.

2015-11-30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30 1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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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가족 레시피>는 오래 전부터 입소문으로 들었던 책이었다.

불량가족이라? 구미가 막 당겼다.

읽어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 불량(?)스럽고 이 가족사에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이 가족이 과연 부둥켜안고 화해할 날이 오기는 할지....

 

얼마나 불량한지 일단 가족 소개부터 들어보라.

주인공 여울이부터 말하자면

코스튬플레이가 취미이며 이 불량가족으로부터 가출 아니 출가가 꿈인 고1 여학생이다.

술을 진탕 먹어 필름이 끊겨진 적도 있다. (고1 여학생이다. )

여울이 덕분에 우리 딸도 가끔 가는 코스튬풀레이에 대해 몇 가지 알게 된 것도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딸과 모처럼 대화가 통했다.

 

여울이 위로 고3 언니가 있는데

여울이와 배가 다르다.

먹는 게 취미이고 따라서 살이 넘쳐난다. 

여울이와 같은 방을 쓰는데 여울이만 보면 쌍욕부터 나오는 캐릭터다.

 

그 위로 비리비리한 대학생 오빠가 있다.

이 오빠 또한 여울이 언니와 배가 다르다.

다시 말해 애 셋이 모두 엄마가 다른 일명 콩가루(?) 집안인 셈이다.

오빠는 희귀병에 걸려 대학생인데도 불구하고 기저귀를 차고 다닌다.

 

여기에 뇌경색에 걸린 이혼 당한 삼촌이 함께 살고 있다.

주식 때문에 전재산을 말아 먹고, 뇌수술을 받고, 이혼 당하고 이 집에 얹혀 살고 있다.

이 집의 가장인 여울이 아빠는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인간이다.

그러니까 세 아이의 엄마가 모두 다르겠지.

여자를 밝힐 뿐더러 수 틀리면 폭력도 가끔 쓴다.

여울이도 불곰 아빠한테 흠씬 두들겨 맞은 적이 여러 번이다.

뚜껑이 열렸다하면 물불 안가리는 다혈질이다.

 

엄마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이 집에 없다. 

안주인은 다름 아닌 80세를 훌쩍 넘긴 여울이 할머니다.

80 넘은 노구를 이끌고 이 대식구 살림을 도맡아 하니

입만 열었다 하면 쌍욕에 "양로원에 보내 줘" 란 말을 노래처럼 부른다.

특히 캬바레 댄서였던 여울이한데는 한 번도 상냥하게 "여울아" 이름 불러준 적이 없다.

"이 년, 저 년" 이 일상어이다. 

이런 레시피를 가지고 있으니 불량가족이라고 할 밖에.

내가 여울이라도 하루 빨리 출가를 하고 싶을 듯하다.

이건 가족이 아니라 웬수가 모여사는 것 같다.

 

이런 가족사 때문에

여울이의 목표가 출가-가출은 어쩐지 불량스럽다나?- 가 된 건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얼굴도 모르지

아빠는 다정하기는 커녕 일만 부려먹고 경찰이 출동할 정도로 두들겨 패지

할매와 언니는 자기만 보면 쌍욕을 해대지

그나마 자기 편이 되어주던 오빠와 삼촌이 여울이보다 앞서 가출을 해 버리자

마음 둘 곳이 더 없어진다.

 

여울이가 마음 줄 곳이라곤 코스튬플레이와 고양이 뿐이다.

지금의 " 나 " 가 아니라 전혀 다른 " 나 " 가 되어보는 시간.

그게 코스튬플레이의 매력이다. 

그 시간만큼 여울이는 우울함을 벗어버릴 수 있다.

이 집의 천덕꾸러기에서 탈피하여

피요나 복장을 한 그 날만큼은 공주인 것이다.

비참한 현실을 잊어버리기 위해 여울이는 코스튬플레이에 더 집착하는 것일지도.

 

오래 전부터 출가를 결심하고 차근차근 일을 진행하던 여울이를 앞질러

다른 가족이 하나 둘 가출하자 정작 여울이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욕쟁이 할매와 단둘이 집에 남게 된다.

할매도 양로원에 가고 싶은 게 소원이지만 

형편상, 할매의 꿈도 잠시 보류다.

바야흐로 지금이 불량가족 최대 고비인 듯하다.

"뭉치면 싸우고 흘어지면 산다"는 불량가족이건만

각자 서로 뿔뿔이 흩어진 지금, 여울이는 문득 도덕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 위기에 처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진화한다" 

어쩌면 지금, 불량가족 저마다의 진화가 시작되는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어거지로 가족을 화해시키지 않고, 해피엔딩의 행복감도 독자에게 맛보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위기를 맞은 그 상태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이 점이 오히려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이야기는 위기의 정점에서 끝났지만

여울이가 이 위기를 통해 달라질 거라는 점을 확신한다. 

" 위기에 처할 때 비로소 인간은 진화한다"는 그 말처럼 말이다.

여울이 뿐만 아니라, 이 가족 구성원 모두 각자가 맞은 위기를 통해

지금보더 더 진화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삼촌이다.

 

가출 후 여울이를 찾아온 삼촌은 전과 완전 달라졌다.

뇌경색 때문에 팔다리 움직임이 부자연스럽지만

구박 받으며 주유총 쏘는 것을 익혔고, 주유소에서 기숙하면서

외국에 나가 있는 아이들을 언젠가는 보러 가리라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단다.

주식도 끊었고 월급도 꼬박꼬박 모으고 있다고.

집 나갈 때 여울이한테 비루하게 꿔갔던 돈도 갚았다.

언니, 오빠, 아빠, 할머니, 그리고 여울이 모두 삼촌처럼 조금씩 진화할 거라고 믿는다.

 

불량가족을 응원한다.

부디 다시 한 집에 살게 될 때는,

상대의 상처를 후벼파는 말보다 따뜻한 눈길 한 자락, 말 한 마디 건넬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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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5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5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냥, 컬링 (양장) - 2011 제5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최상희 지음 / 비룡소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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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버리, 스위핑, 페블, 시트, 하우스, 브룸, 스톤.

이런 낱말과 연관되어 있는 운동 경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컬링"이다.

사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이 "컬링"이 그 컬링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다 읽고 다시 표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는데 힌트가 다 나와 있었다. 

그런데도 눈치 채지 못했다. 역시 아는만큼 보이는가보다.

 

지난 동계 올림픽 때 잠깐 컬링 경기를 본 적이 있다.' 와! 무슨 저렇게 재미 없는 경기가 다 있냐?' 싶었다.

한 사람이 맷돌 같은 돌을 던지자 두 사람이 열심히 대걸레 같은 것을 가지고 돌을 쫒아가면서 빙판을 문질러댔다.

한편으론 웃겼고, 한편으론 저런 게 무슨 운동 경기인가 싶어 금방 채널을 돌려버렸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서 컬링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완득이>이후 이렇게 열광한 청소년 소설은 처음이다. 

책을 읽고나서 운동 같지도 않게 느껴졌던 컬링이 참 철학적인 운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빙판 위의 체스"라는 별명을 가진 컬링이 궁금해져 경기 동영상을 찾아보기도 하였다. 놀라운 변화였다.

책 한 권이 이렇게 비인기 종목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만들다니. 

작가는 참 위대한 사람 같다.

생각을 변화시키는 마력을 가졌으니 말이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나처럼

컬링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고, 자료도 찾아 보고,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도 해주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고, 더불어 컬링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음 좋겠다.

더 나아가

컬링 처럼 혹시 내 주변에 관심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나 자세히 들여다보고, 

관심 가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컬링이 비인기 종목이고, 누구에게도 관심 받지 못하는 비주류 운동이듯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 또한 그런 존재들이다.

이름 때문에 "으라랏차" 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주인공 차을하를 비롯해서

며루치, 산적, 박카스 모두 그냥저냥하다.

작가 말대로 만년 후보 같은 아이들이다.

 

어느 날, 며루치와 산적이 을하에게 집적대며 컬링 이란 것을 해보자고 제안한다.

동계올림픽 중계 때 딱 한 번 스쳐가듯 경기를 구경한 것 뿐인데

그런 사람한테 컬링을 함께 해 보자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리고 왜 하필 나냐고? 라는 의문도 들었다.

넷이 하는 경기라면서 그럼 나머지 한 명은 어디서 조달하려고?

뭐? 강원도에 내려간 박카스라는 녀석이 있다고? 

뭐 이런 녀석들이 다 있어? 라고 생각했지만

을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컬링 동호회에 들어가게 된다.

 

학교나 집에서나 관심 받지 못하던 을하는

어느새 컬링에 빠져들게 된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며루치와 산적이 왜 야구를 관두고 컬링을 하게 되었는지 조금씩 알게 된다.

자신은 아무런 재능이 없어 이렇게 관심 받지 못하고 지내지만

산적처럼 뛰어난 재능이 있고, 그 일을 좋아하더라도 뜻하지 않은 일로 관둘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를 다 해봤지만 어느 것 하나 남다른 재능이 없어 

모두 관두고, 어느 것 하나 잘하는 게 없는

말 그대로 이류처럼 되어버린 을하.

반대로 동생 연화는 피겨 스케이트에 일찌감치 재능을 보인다.

이를 본 엄마는 연화에게 올인하고, 이 때부터 을하는 집에서도 찬밥 신세가 되고 만다.

맹모 삼천지교라고

엄마는 연화를 위해 대전에서 서울로 이사를 감행하고, 아버지만 대전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주말가족이 된다.

 

을하의 고통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전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급우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부모에게 아무런 도움을 구하지 않고 묵묵히 혼자 견뎌내던 을하는 어느 날,

학교를 걸어나와 무작정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이웃 학교 야구부 연습 장면을 보게 된다.

그후로 매일 같이 야구 연습을 지켜보던 을하의 눈에 들어온 선수가 한 명 있었다.

그게 바로 산적 " 강산" 이었다. 자신과는 달리 진짜 멋져 보였다.

그 강산이 하교 후에 흠씬 얻어맞고 있던 자신을 구해주던 "베어맨"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

산적은 왜 을하에게 컬링을 함께하자고 제안했을까. 아무런 재능도 없는데 말이다.

그때 자신이 구해준 옆학교 비실비실한 남학생이 바로 을하하는 것을 산적은 알고 있을까. 

함께 컬링을 하며 친구 비스무레한 사이가 되어가지만 여전히 산적과 관련해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존재한다.

가장 궁금한 것은 그들은 왜 컬링을 하는 걸까.

또 을하 자신은 왜 컬링을 하는 걸까.

 

아웃사이더였던  을하가 컬링을 하면서 확실히 얻은 게 있다.

바로 친구다.

시종일관 말 많은 며루치, 자신을 구해줬던 은인 산적, 전지 훈련 장소를 제공해준 박카스.

매주 일요일마다 함께 연습하고 박카스가 있는 강원도 두메산골로 전지훈련하러 갔다오니 어느새 친하게 되었다. 

서울로 이사온 이후, 늘 혼자였던 을하에게 친구가 생겼다. 컬링 덕분에 말이다. 

 

그 녀석들과 함께 컬링을 하면서 확실히 달라진 점이 있다. 

더 이상 일방적으로 매 맞는 을하가 아니었다. 

을하는 산적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게 되자

며루치와 합세하여 학교와 전면전을 벌이게 된다.

정작 범인은 따로 있는데 교묘하게 산적을 엮어 산적을 제거하고자 하는 이들에 맞서는 둘의 노력은 정말 눈물겹다.

한편 학교라는 사회도 여전히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원리가 지배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안타깝고 분노가 일었다.

을하는 산적을 위해 그동안 억눌려 있던 용기와 정의감을 당당히 표출한다.

학주가 엄청 나게 폭력을 가해도 이에 굴하지 않았고,

대충 합의하고 넘어가라는 온갖 협박과 감언이설에 끝까지 저항하였다.

친구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는 컬링 팀을 향해 나도 몰래 " 힘내 화이팅 조금 더 버텨" 라며 간절히 응원했다.

 

을하가 안고 있는 문제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이다.

남다른 재능도 없고, 공부도 못하고, 그래서  무엇도 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과 혼자라는 외로움 등.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감정이다. 특히 청소년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요즘처럼 아주 어릴 때부터 꿈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특별한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을하 같은 아이들은 더 불안을 느끼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을하에게도 재능이 있을지 모르는데

기존의 잣대로만 들여다보니 재능이 없어 보이는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재능으로만 아이들을 평가하니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을하처럼 자존감을 잃고 더 헤매는 것은 아닐까.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을하는 그 해법을 "친구"에게서 찾았다.

그건 산적, 며루치, 박카스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이 암흑 같은 세상을 버티는 게 가능할 수 있다고 말이다. 

 

컬링 경기는 인생을 담고 있는 듯하다.

우리 인생에 있어 곧은 길만 존재할까. 굽은 길은 없을까.

강한 직구로 던진다고 하여 하우스 안에 스톤이 안착하는 것은 아니다.

을하가 처음 딜리버리 했을 때는 직구로 스톤을 던졌다가 보기 좋게 아웃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 가서 딜리버리 할 때는 을하가 던진 공이 컬링하여 하우스 근처로 간다.

에둘러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그게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는 길일 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린 지금, 컬링 하고 있는 중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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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6 14: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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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6 21: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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