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쉽게 읽히는 소설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편견의 눈을 가지게 된다. 이를테면 글을 쓰는 사람의 소양이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들이나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마치 사전에서 수집한 듯한 어휘들이 등장해야 비로소 독자들은 작가로부터 이른바 지식인의 풍모를 찾아낸다. 하지만 우리들이 관념적인 언어들을 쓰는 이유는 무얼까. 그것은 우리가 그 추상성을 구체성으로 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차선을 우선으로 놓고 기고만장해진 우리 앞에서, 작가는 놀라운 필력을 보여줬다. 화자가 어린 아이가 아닌 소설을 통해, 작가를 한 번쯤은 다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소녀는 이름이 없다. 언나라고 불리기도 하고 간나라고 불리기도 한다. 한때는 드드덕이라 불리길 원하기도 했다. 이름 없는 소녀는 소설 안에 존재하지만, 또 한편으론 우리의 바로 곁에 존재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소설 속의 주인공이기도 하면서 언젠가 나의 곁을 스쳐갔던 어떤 소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관계의 형성은 소설의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독자는 이 소설의 이야기를 허구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우리 곁을 스쳐갔던 누군가의 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독자가 이 소설을 읽으며 집중할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다. 이름 없는 소녀는 그저 소설 속의 한 캐릭터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형체를 띤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의 곁을 스쳐 갔음에도 그녀에게 손길을 내밀지 못했다. 우리가 그녀에게 내민 것은 동정이었다. 서울에서 어떤 여자가 그녀에게 내밀었던 천원짜리 지폐와 같은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정 그녀의 곁에 있어 주었던 사람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그녀와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그녀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원하지 않는, 그러므로 아무에게도 붙잡히지 않는(p. 223)’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독자들은 그들의 아픔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죄책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사실 이런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많은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독자가 이 소설을 읽으며 느낄 감정은 공감이 아닌 동정이 분명할 것이기에 그렇다. 이런 소설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그것이 이 소설의 주인공들과 같은 결핍된 사람들을 위함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힘을 낼 수 있을까. 세상 앞에서 맥을 쓰지 못하고 한없이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주인공들을 바라보며?

  이 소설은 결핍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위선적 만족을 주기 위해 쓰여졌다. 그 사람들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에게 동정을 느끼고 아픔을 느끼고,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며 자신의 행복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 이 소설의 목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결핍되어 절망하는 사람들에겐 일종의 폭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결핍되지 않은 사람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슴이 아팠고, 마음이 절였다. 길거리를 걷다가 내 옆을 스쳐간 소녀에게 묘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이런 소설을 쓰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나는 이름 없는 소녀를 값싼 동정의 눈들 사이에 정육처럼 세우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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