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이현 님께서 보내주신 5월의 좋은 어린이 책, <천사를 미워해도 되나요?>의 추천글입니다.


"범죄의 재구성"

'천사를 미워해도 되나요?'라... 제목에서 '범죄'의 냄새가 풍긴다. 우리의 도덕률은 천사를 미워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이 책, 독자에게 그것도 어린이 독자에게 뭔가 음험한 유혹을 하려는 것 같다.


하긴, 동화작가 최나미는 이미 전작들에서 그런 기미를 보여 왔다. 집 나간 엄마('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와 집 나간 아빠('걱정쟁이 열세 살')가 태연히 등장하는가 하면, 우리의 우정이라는 게 얼마나 위태로운 모래성인지('셋 둘 하나')를 신랄하게 드러내기도 하고, 유토피아 따위는 없는 거라고('움직이는 섬') 비장하게 털어놓기도 한다. 설령 공주라 해도 사는 건 역시 녹록지 않다고('옹주의 결혼식') 말한다.


이 모두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동화의 문법과 꽤 어긋나 있다. 어른이 아이를 대하는 방식으로서 다소 상식 밖에 있다. 이래야 한다고 가르치거나 저래서는 안 된다고 꾸짖는 법이 없다.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누구나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마음에 없는 장담을 하는 법도 없다. 대신 최나미는 고개를 반쯤 숙인 채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이렇게 중얼거린다. 사실, 세상은 이런 거거든. 알고 보면 우리 모두 참 못났잖아.


그러더니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큰소리로 떠든다. 어른이라는 가면 따위 완전히 벗어 던지고 동화라는 울타리를 훌쩍 넘어 이렇게 묻고 있다. 천사를 미워해도 되나요? 솔직히, 우리 모두 그러지 않는가? 우리가 얼마나 옹졸하고 비겁하고 열등감투성이인지 잘 알면서 모르는 척 입을 꼭 다물고 있다. 어른들끼리는 물론이고, 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대부분 동화는 말한다. '친구끼리' 사이좋게 지내야지. 하지만,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친구니까' 사이좋게 지내기 어렵다는 것을. 그런데도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왜? 우린 어른이니까. 왜? 이건 동화니까.


그러고 보면 우리 모두는 아이들에 대해 일종의 공범인지도 모르겠다. '친구가 잘되면 난 배가 아프더라.' '다 이해하는 척 손 내미는 네가 더 짜증나.' 이런 인생의 진짜 속살들을 어른끼리만 공유하며 철저히 비밀에 붙인다.


그런데 최나미가 이번에는 제대로 선을 넘었다. '그래도 내가 어른인데 말이지' 하고 눈치 보는 법 없이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어른 입장에서는 내부고발자라 하겠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든든한 아군이다. 도덕률로 무장한 어른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참에, 적진에서 넘어 온 공범이 생긴 거다. 최나미는 말한다. 걱정하지 마.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나이 마흔이 넘어도 산다는 건 여전히 해독 불가의 암호문이다. 오십이 되고 육십이 되어도 그럴 테고, 서른일 때도 스물일 때도 다섯 살일 때도 그랬을 테다. 그렇게 난감한 숙제를 받아 들고 속으로 끙끙 앓고 있는 그 아이에게, 단독범행인 줄 알고 외로워하는 그 아이에게, 최나미식 범죄의 재구성을 권해 보는 게 어떨까.


천사를 미워해도 되나요?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씩 웃는 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좀스러운 자신 때문에 움츠렸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르는 거다. 살다 보면 그럴 때도 있는 거로구나. 그렇게 자신을 이해하고 나면 오히려 옹졸한 마음도 좀 풀어져서 친구에게 문자메시지라도 보낼 여유가 생길지 모른다. 왜,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들 하지 않는가. 내 편이 생긴다는 건 그런 여유를 주게 마련이다. - 이현(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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