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콕 - 서스펜스의 거장 현대 예술의 거장
패트릭 맥길리건 지음, 윤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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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올해 이렇게 두꺼운 책을 산 것은 <젠틀 매드니스> 이후 두 번째인데, 이 책은 <젠틀 매드니스>보다는 훨씬 흥미롭고 재미있다.

미스터리와 서스펜스의 대가답게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추리소설 작가의 이름들이 정겹다. 히치콕이 만든 영화의 원작자인 퍼트리셔 하이스미스, 로버트 블록, 서머셋 모옴, 코넬 울리치 등은 물론이고, 레이몬드 챈들러. 이든 필포츠-책에서는 에덴 필포츠로 나온다.-프랜시스 아일즈, 에반 헌터(에드 멕베인), 제임스 힐튼 등이 나온다. 괜히 정겹고 신기하더라.

하지만, 재미만큼이나 꺼려지는 것이 각 영화의 결말을 언급해서 보지 않은 영화의 제작과정에 얽힌 이야기를 읽기가 두렵다는 점이다. 뒤 모리에의 <레베카>, 버칸의 <39계단>에서 한 방 맞았다. ㅠ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떠난 뒤에는-영국에서 제작한 영화들을 구해보기는 힘들기 때문에-내가 본 영화들에 관한 일화만 보고 있는데도 재미있다. 히치콕이라는 사람은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하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신의 한계를 알고 그 안에서 '그 이상'을 집어넣을 줄 알았던 전문가적 혁명가였다는 점이다. 전자였다면, 매끈한 범작 영화들만 만들다가 시대가 지난후 잊혀졌을 것이고, 후자였다면, 오손 웰즈와 같은 길을 걷지 않았을까. 하지만 히치콕에게 느껴지는 것은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았고, '최선'을 '최상'으로 만들줄 아는 현실적힌 지혜였다. 그 점만큼은 배우고 싶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나에게는 매력적인 모습이였다. 그만큼의 재능과 노력을 하고 있느냐는 논외로 치고 말이다.

추신) 이 리뷰를 책을 다 읽지 않았음에도 쓴 이유는 내가 본 영화들을 다 봤기 때문이다. 차근차근 영화들을 다 보고 먼 훗날에 읽을지, 이야기의 재미에 빠저 결말을 알게 되는 것을 감수하고 볼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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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2007-10-01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책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상복의랑데뷰 2007-10-01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말씀을....^^ 즐거운 독서 되시면 좋겠습니다.
 
뷰티풀 몬스터
김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r님의 블로그에 본 서평이 재미있어서였다. 지금은 r님의 글이 재미있었던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지만, 처음 읽었을 때는 호기심이 확 일어났었다. 추리소설만 읽는 것 같아서 약간의 환기도 필요했고...

처음 읽었을 때 '이 누나 조낸 쿨해요.'류의 감탄이나 '에라~이 XX야'의 극단적인 비난을 기대했었는데, 아무런 느낌이 없어서 내 마음 속이 무덤덤한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예전에 이렇게 썼다가 지웠다.) 그런데 웃긴건 그냥 놓아두기에는 괜시리 찝찝해졌다는 거다. 괜히 빛진것도 아닌데. 그래서, 다른 책들 사이에서도 틈틈이 읽었다. 재미있었다.

왜 나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을까? 부끄럽지만, 김경이 펜으로 펼쳐놓은 공간은 조선시대 사람이 '컴퓨터 매뉴얼'을 보는 느낌이었음을 고백해야는게 맞는 것 같다. 그녀와 나는 같은 시간 대에서 숨쉬고 있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은 나에게서는 신기원이었다. '버킨 백'은 고사하고 BAZAAR라는 잡지가 있었다는 것도 그녀의 약력 덕분에 겨우 기억해낸 내게, 그녀가 보여주는 별난 신세계를 이해하기는 것은 애시당초 무리였다. 게다가 개성 제로의 지오다노 스타일의 남자가, 더욱이 집안이 가난해서 명품을 선물한 여자친구는 사귈 능력이, 아니 그녀들이 눈꼽만치도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전무한 남자에게는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기껏 소재의 유사성을 찾으라면 '청담동 댄디 보이'일텐데, 그래봐야 내 주위에는 눈씻고 찾아봐도 그리 친하지 않은 청담동 출신의 컨설턴트나 IB 종사자가 몇 명 있을 뿐이니.

어떻게 보면 이 책은 김경 플래닛의 청담동/패션/주류 투어 가이드와 비슷했다. 와~이런 사람이 있었네. 오호~이런 카페도 있었군. 그러니 처음 읽었을 때 신선했지만 무덤덤 할 수 밖에 없지.

엉뚱한 이야기는 집어치고, 몇 번 더 읽은 그녀의 책은 그녀도 순순히 인정했듯이 매력적이고 모순적이다. 모든 것이 모순적으로 보여야한다고 해야할까. 장정일의 서문과 본문을 보는 듯한, 극도의 자조적인 서문과 극도로 자아도취적인, 어쩌면 허영덩어리의 본문. 그 속에서 등장하는 댜양한 군상들에 대한 그녀의 애증이 섞인 태도. 별로 아쉽지 않은 척하지만, 그녀가 인용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잘 나가는 사람들이다. 어디 그뿐이랴. 인용자에게 붙여준 수식어는 나 뛰어난 사람들 많이 알아라는 호가호위성의 치기가 보인다.(솔직이 아무리 좋아하려고 해도 눈에 거슬렸다.) 인용의 목적이 출처를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용자의 위력을 강화시켜준다고 해야할까. 비주류에 대한 솔직한 그녀의 표현는 '컬티즌의 이영재라는 자'라는 문구로 대략 느낌이 왔다. 그렇지만 멋져 보이는 그녀의 삶과 그것을 더욱 매력적으로 그려낼 줄 아는 문체. 설사 속빈 강정일지라도 드러나는 반짝반짝한 자신감을 모른척 지나갈 수는 없었다. 피해안가는 약자만 까는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지만, 어찌되었건 유쾌하게 잘근잘근 씹어대면서 나름대로의 스타일을 설파하지 않는가?  

그래서, 너그럽게 생각하기로 했다. 만약 그녀가 전여옥이었다면, 나는 눈에 불을 키고, 앞장과 다음장의 여백사이의 모순을 찝어내느라 열을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멋지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전여옥에 대한 그녀의 글은 정말 푸하하하 웃으면서 읽었다.) 누구나 자기합리화를 하고, 약간의 허영이 있으며, 돈없지만 재능이 충만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회주의적 속성을 그녀는 통제가능한 범위에서 솔직하게 인정하고, 적절하게 이용했을 뿐이다. 마치 그녀가 좋아하는 미디엄 바디 와인처럼 말이다. 풀 바디도 아니고 샴페인도 아닌 미디엄 바디 와인처럼.

그게 포인트였다. 마치 비계사이의 속살을 파고들듯 예쁘게 파고드는 그녀의 경계인적인 삶과 글쓰기는 솔직이 나의 기본적인 그것과 비슷할 터...그녀의 재능, 솔직함, 그리고 적극적인 구애활동에 나같은 사람은 그저 부럽고 감탄할 뿐이다. 다른거 다 제끼고, 글솜씨-지금까지 쓴 칙칙한 리뷰만으로도 그녀와 나의 차이는 아득해 보인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상식과 마음가짐에서도 배울 것이 많았고. 어디에서 내가 쉬크, 버킨 백 등의 용어와 그 속에 담긴 단어를 배울 것인가?  

그녀는 A0다. A+이 되기에는 가진 것 없고, 속물이고, 교활하지만 A-가 되기에는 솔직하고 당당하다. 그녀의 책도 마찬가지다. 별 5개를 주자니 그녀의 모순적인 태도가 걸리고, 별 3개를 주자니 그녀의 당당한 태도와 빛나는 개성이 아깝다. 어쩌면 그녀에게는 별 4개가 최고의 찬사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힘닿는데 까지 즐겁게 살아가시길~

추신) 그녀의 인터뷰집, 최소한 BAZZAR 과월호를 은행에서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봐서는 내가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세상을 비슷한 마인드로 살아가는 사람으로써의 동질감? 천만에. <너는 내 운명>에서 황정민이 전도연을 처음 봤을 때의 그 느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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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간의 기적
아사쿠라 다쿠야 지음, 김난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차라리 지금부터 읽었을 걸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이렇게 기분이 처져있을 때는 이 작품처럼 상투적이지만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좋은 테라피였을 텐데...게다가 나는 당연히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하고 끝까지 읽었기 때문에-'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의 제1회 대상 수상작이라는 홍보문구는 오히려 이 작품의 장점을 깎아먹는 홍보문구이다. (신인 작가가) (정도의 필력을 보여준) 미스터리(한 작가의 글재주) 대단하다는 뜻인가?-몰입은 커녕 작가가 묘사하고 있는 상황이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상황이기에 도대체 '어떤 트릭인가?'를 고민하고 있었으니, 가슴이 울려야할 판국에, 머리가 쥐가 나 버란 상황이 되었다. 이 정도의 트릭을 설명하려면 교코쿠도가 와야하는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니 여러모로 불만족스러울 수 밖에...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 모두 포함해서 상투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별 무리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필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뛰어나다라고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작가가 음악과 잡지라는 분야에서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피아니스트라는 약간은 희소성이 있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으면서도 깊은 음악적 소양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풀어내는 기본적인 필력과 구성은 탄탄한 편이다. 데뷔작답게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 집중한 것이 성공했다고 봐야할 것 같다.

다만, 비슷한 이야기를 다뤘다고 할 수 있는 <레인 맨>의 톰 크루즈와 더스틴 호프만 내지는 <말아톤>의 김미숙, 조승우와 같은 반짝반짝하는 재기는 없는 편이다. 그게 아쉽다. 주요 등장인물 3명은, 각각의 환경이 특이함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의 신인다운 신선함이나 혹은 기성작가의 노련함을 보이지 못한다.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세 명을 엮은 것도 불만족스러웠고, 4일간의 제한된 시간 치고는 이야기 전개가 느슨한 편이다. 감정이라는 것이 복받쳐 올라오게 만드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이 작품은 밀어올리는 힘이 약하다. 그러다 보니 절정부분의 감동이 그냥저냥 지나쳐버린다.

신인작가-물론 연배를 보면 신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상투적이더라도 강추 한 방을 때릴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 법인데, 그런 면에서 아쉽다. 전부 '우'를 받은 학생 같다고 해야할까. 평균 80점이라도, 100점과 60점을 받은 학생이 80점과 80점을 받은 학생보다 더 인상에 남는 것처럼...

하지만, 가슴이 따뜻한 분들이 읽으시면 의외로 공감하실 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타이밍과 방향이 너무 달랐던 안타까운 책이었다. 그렇다고 다시 읽어보기는 찝찝한 그런 책이다. 가뜩이나 죽음이 두려운데...

추신) 김난주씨의 성의없어 보이는 해설은 이 책의 부정적인 이미지에 한 몫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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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나 - 시드니 셀던 자서전
시드니 셀던 지음, 최필원 옮김 / 북앳북스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홍보용으로 실린 외국신문의 리뷰는 잘 안 믿는 평이지만, 이 자서전 만큼은 동의하게 되더군요. 정말 소설보다 더 소설 같았습니다. 차 안에서 읽다가 밤을 새면서 다 읽어버렸습니다. --;; 이제는 시드니 셀던이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잘 팔리는 작가도 아니고 이미지도 별로 좋지 않죠. 전성기에 무분별한 중복출간으로 이미지가 많이 훼손된 점이 가장 클 것입니다. 헌책방에서 가장 즐거운 사람들은 시드니 셀던의 팬일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있으니까요. 책을 읽고 나서는 헐리우드의 고전기에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이 쓴 작품이 지금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는 느낌입니다. 어찌되었건 시드니 셀던이 8~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 중에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흥미진진한 그의 인생을 보면서, 단순히 베스트셀러 공장장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나 3억부를 팔 수 있는 것은 아니죠. 당연한 이야기인데 늘 잊어먹는 것 같습니다. 처절한 가난, 육체적 정신적 질병에 맞써 싸우는 그의 일대기를 보고 있으면, 안타깝다 못해 슬프기까지 합니다.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을 했다기 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구요. 책의 내용을 읽으면서 마치 자랑하듯이 일 이야기만 늘어놓아서 거부감이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시드니 셀던의 삶에서 과연 개인적인 부분이 얼마나 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50세 이전에는 계속 부침을 거듭했으니, 일중독도 보통 중독이 아니었겠지요. 잘 나가는 시절에도 불안에 떨어야 했구요. 

또, 책의 주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시드니 셀던의 삶이 헐리우드의 변화에 따라 흘러가기 때문에, 지금은 전설 속의 배우들이 된 캐리 그랜트, 도리스 데이, 버스터 키튼, 프랭크 시내트라, 데이빗 셀즈닉, 진 켈리, 프레드 아스테어, 심지어는 커크 더글라스 까지...수많은 등장인물을 보면서 헐리우드 기록필름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시드니 셀던의 노력과 맞물려 참 흥미진진하더군요. 그리고 더 놀랐던 점은 작가로서의 삶의 출발은 50세 이후라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읽은 소설에서의 시드니 셀던은 상당히 젊고 트랜디한 작가의 느낌이었는데, 그 때 이미 인생과 인간에 대한 통찰이 어느정도 이루어진 완숙된 경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당대 미국인들 그리고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지 않았을까 싶네요.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소설가' 시드니 셀던의 이야기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분명 그의 모르는 부분을 알게 되서 좋긴 하지만, 소설가로써의 셀던을 알고 싶은 마음도 컸는데, 그 부분이 <벌거벗은 얼굴>의 출판까지만 이루어지는 것이 영 아쉽습니다.

개인적으로 <신들의 풍차>, <내일이 오면>, <게임의 여왕>은 상당히 재미있었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범작이었습니다. 가장 평이 좋다는 <천사의 분노(Rage Angels)>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기회가 되면 구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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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진 1 - 완전판
다카하시 츠토무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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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연히 들른 만화방에서 본 만화. 예전 모 님의 블로그에서 칭찬과 함께 암울한 느낌의 그림체가 마음에 들어서 머리 한 구석에 기억해놓고 있었다.

우울한 분위기가 더해진 87분서와 같은 형사'들'의 팀플레이를 기대했으나, 처음부터 끝가지 이 만화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주인공 이이다 쿄야의 피에 물든 활약상 뿐이다.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쿄야는 파트너와 함께 범인을 쫓고, 유혈과 함께 사건은 종료된다. 내내 이 패턴이 반복된다.

이 단조롭고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이유는 뭘까? 일단 주인공 교야의 압도적인 매력 때문이 아닐까 한다. 교야는 비정하다 못해 무정한 형사다. 손에 쥐어진 총은 분명 그의 업보일 것이다. 앞모습이 싸늘해 보이다가도, 뒷모습이 지치고 서글퍼 보이는 것은 살인의 업보일 것이다. 그는 기계적으로 범인을 추적하고 죽인다. 생각해보니 그는 결코 범죄자를 살려두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마음과 태도는 겨울호수과 같이 고요하고 서늘하다. 그 묘한 이중성이 가장 큰 매력이다.

아마도 그는 어렸을 때 입은 마음의 상처로 세상과의 감정적 소통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다. 뒤집어 말하자면, 그만큼 상처가 컸고, 상처가 두려운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그래서 그를 사랑하는 것보다 그를 이해하는 것이 더 힘들 것 같다.(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도 나온다.) 그래서 그를 보고 있으면 압도적인 카리스마에 감탄을 표하다가도 손에 피를 묻힌 채 마음의 문을 닫고 홀로 있는 모습을 보면 서글프다. 작가가 주화입마에 걸려서 숨겨진 이야기를 다 풀지 못하고 끝을 맺은건지, 아니면 원래 관심이 없었던 탓인지 교야의 성격형성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적어서, 오히려 교야의 성격이 뚜렷하게 들어나고 동정의 여지가 적어져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난 교야처럼 살 사진은 없다. 그처럼 살기에는 마음이 모질지 못하거나 그보다 받은 상처가 작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가지는 세상에 대한 태도나 그런 태도를 지탱하게 해주는 B급의 전문가주의-백발백중의 명사수, 노련한 수사관, 카리스마-는 흠모하게 된다. 안쓰럽게 쳐다보는 주위인물들이 나에게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감정이입이 쉽게 되는 캐릭터가 아니고, 원래 감정이입을 심하게 하는 편이 아니지만. 이 작품은 감정이입 대신에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나도 주변사물을 바라보는 태도가 무심하다라는-남의 일 이야기하듯이 이야기한다라는 표현을 숟하게 들은 나로써는...-생각도 많이 하고, 나도 상처받기 싫어서 누군가의 관심list에 오르내리기를 싫어한다. 늘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적당한 무관심'을 꿈꾸니까. 내 밥벌이가 걱정없고, 내 분야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는다면, 드러나는 표면은 다르겠지만 나도 쿄야의 삶의 방식을 따라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할 사진은 없다. 세기의 차이가 크다. 내가 루키라면 그는 메이저리거이다. 아마도 그는 배리 본즈일 것이다.  
 
하지만, 더 서글픈 것, 역설적으로 더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일본의 일그러진 얼굴상이다. 작가의 공들인 그리고 우울한 그림체는 <프리스트>와 <베르세르크> 이후로 마음에 들었다. 흑백이 주는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좋다. 처절하게 묘사해냈다. 제목 '지뢰진'은 지뢰밭이란 뜻이라고 한다. 지뢰밭이라. 마음 편하게 한발한발 내딜 수 없는 곳이 바로 작가가 생각하는 일본일까? 작가가 보여주는 일본의 지뢰밭은 지옥도 그 자체다. 밀입국자, 스토커, 정신이상, 과잉팬덤, 매스컴 중독....에피소드 하나하나가 흡혈귀가 살고 있는 것처럼 피를 원하고, 정상인 사람은 먼저 죽어나간다. 그럼 비정상은? 나중에 죽어나간다. 바로 옆 나라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에는 우리나라도 점점 지뢰진의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문득 들었다. 에피소드의 잔혹성만으로는 'A'가 가장 처절했다. 인터넷 강국이라고 소문난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법이 없기에...

작가는 매 에피소드마다 지옥도를 그려놓고,  희망이 있냐고 질문을 던진다. 교활하게도 지옥도와 절망에 지쳐 포기할 때 쯤이 되면, 희망의 한자락을 슬몃 보여준다. 형사후배가 아이를 낳고, 새로 들어온 신참형사가 잠시나와 애인과 연애를 하고, 하지만, 자락이다. 다시 작가는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가 새로운 지옥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결말까지 질문을 던진다. 우리에게 희망은 있나요?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이렇게 나도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 만화만 놓고 보자면,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말하기에는 우리가 감당해야할 절망의 무게가 지나치게 크다. 희망과 절망의 진폭이 커서 마치 운동장의 끝과 끝을 끝없이 돌면서 뺑뺑이 도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앞에서 A에피소드 이야기를 했는데, 비단 A뿐일까. 모든 에피소드가 우월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우울하지만, 최고로 우울했던,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세 가지, 교야를 사랑하던 여자. 교야를 따르던 후배가 자식을 가지게 되는 에피소드,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 희망을 이야기하는 거라고 믿고 싶은 에피소드인데, 그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펼쳐놓은 절망의 무게가 너무 크다. 그래서 너무 슬프다. 마치 가까운 사람이 죽은 사람한테 가서, '희망을 가지세요.' 혹은 실연의 상처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에게 '시간이 해결해 줄거야'하고 말하는 거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특히 그랬다. 경찰이 되면, 사람을 죽이게 되면 행복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그들도 사람인데...

일본의 하드 보일드는 어떤 의미에서는 극단의 하드 보일드다. 단어 자체의 의미에 지나치게 충실하다고 할까. 이 작품도 그런 면이 있다. 하세 세이슈의 <불야성>과 함께, 가장 폭력적이면서도 가장 우울한 어조의 하드 보일드. 두 주인공이 만났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우울하지만, 속으로는 흥미가 생긴다.

추신) 마지막 에피소드를 보면서, 문득 작년에 서거하신 에드 멕베인의 유작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에드 멕베인 옹은 생전에 87분서의 마지막 권을 미리 집필해놓고, 사후에 출간하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내용은 아니지만, 과연 어떤 내용일까? 내가 추측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데뷔작인 <경찰혐오자>의 속편. 다시 경찰들이 죽어나간다. 맨 마지막 희생자는? 카렐라이다. 혹은 카렐라가 범인인 에피소드. 이 두 가지가 결합한 내용일 수도 있고......너무 우울한가?

추신2) 대화 한 토막 : 업보를 짊어진 자의 슬픔

"살아있는 사람에겐 반드시 그림자가 있다. 그건 그 사람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그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지. 하지만 사람마다 그림자 색깔은 모두 달라. 빨간 사람도 있고 파란 사람도 있다. 난 사람을 볼 때 반드시 그림자를 본다. 범죄자의 그림자는 한없이 어둡지..."

"선배님 그림자는 무슨 색일까요?"

"내 그림자? 내 그림자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냐. 다른 사람의 영혼을 너무나도 많이 짊어져서 밝은 색인지 어두운 색인지 구별도 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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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2-05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암울해 더 못본 만홥니다 ㅠ.ㅠ 쿄야가 불쌍할것같아서요.

상복의랑데뷰 2006-02-05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에피소드 때문이라도 꼭 끝까지 보시길 권합니다. 근데 저도 감당이 잘 안되네요. 기분이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