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농담이다 오늘의 젊은 작가 12
김중혁 지음 / 민음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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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작가의 마니아인데, 그의 장편 소설은 처음이다. 장편이 몇 편 나왔는데도 읽어 보지도 않은 채 단편과 에세이가 뛰어난 작가라고 생각했다. (단편과 에세이는 정말 좋다!) 다른 장편도 이정도라면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여튼 중혁작가의 장편은 피해다녔는데, 각종 서점의 각종 광고들이 자꾸만 나의 등을 떠미는것이 아닌가. 중혁작가 신작이 나왔다고, 어서 읽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중혁작가 특유의 느낌이 있다. 주인공을 `모든 이름`으로 부른다. 성과 이름을 함께 부른다는 뜻이다. 여자 주인공이 강차연이라면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강차연이라고 부른다. `차연은...`하고 이름만 부르는 페이지는 없다. 마치 중학생 남자아이들이 여자를 부를때 그렇게 하는 것처럼. 이런 거리 두기는 `여자는 역시 쓰기 힘들어..`하고 땀을 흘리는 중혁작가의 캐릭터를 떠올리게 한다. 즐겁다. 뭔가 수줍은것 같아서. (이것은 컨셉인가?)

줄거리는 그렇다치고 이 소설은 마치 여러 편의 단편이 서로 교차되는 느낌이다. 차연과 일영의 이야기, 우영과 세미의 이야기가 서로 다른 단편이고 서로 연결되는 모습이다. 그래서 큰 부담없이 잘 읽었나보다. 이일영의 이름이 센스있다. 읽어보시라. 우주적 섹스 코미디가 우아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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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언제나 강차연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아버지의 모습이 멀어질수록 강차연의 가슴은 점점 갑갑해졌다. 아버지와 자신 사이에 어떤 힘이 작용하는 것은 분명했으나 그것이 인력인지 척력인지는 알 수 없었다. 73

남자들은 연상력이 좋아서 피칸이나 야구 글러브를 보면서도 자위를 할 수 잇지만, 우리 여자들은 좀 다른 것 같아요. 특정 부위가 남자 성기처럼 보여도 막 흥분되진 않잖아요. 바나나를 보고 흥분하는 여자들이 있지 않느냐고요? 웃기는 소리 말아요. 그건 그냥 바나나가 너무 먹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가지나 오이나 바나나를 사면서 기죽을 필요 없어요. 마음껏 사 먹어요. 바나나가 남자의 성기처럼 보이려면, 바나나를 보고 흥분하려면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해요. 어떤 바나나인지, 바나나의 주인이 누구인지, 바나나는 어쩌다가 남자의 몸ㅇ에서 떨어져 나와 이렇게 혼자 있게 되었는지...... 사연이 필요하다고요.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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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13 1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

초딩 2016-09-14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추석 되세요~
 
[eBook] 인생 수정 : 조너선 프랜즌 장편소설
조너선 프랜즌 지음, 김시현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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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그 등장 인물의 행동과 말로 이루어져 있다. 말과 행동이 그의 모든 것을 나타내며 현실 속의 인물로 살려낸다. 모든 소설에는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이있다. 하지만 이처럼 현실적인 인물들이 소설속에서 툭툭 튀어나오기는 어렵다. 이 긴 이야기를 하나하나 잘 엮어 주인공들의 말과 행동에 잘 녹였다. 아버지와, 아들과, 딸의 이야기는 미국적이면서 한국적이기도 하다. 길다. 하지만 각 등장인물의 짜증나는 면을 잠시만 눈감을 수 있다면, 분량은 문제되지 않는다. 나로써는 너무나 많은 주변 인물들을 떠올리며 푹 빠져들었다. 이니드와 닮은 누군가, 게리의 아내 캐롤라인과 닮은 누군가 등등. 그들을 더욱 이해하게 되었다는 말은 덧붙이지 못하겠다. 다시 읽을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입해서 속도는 빠르게, 하지만 아주 힘들게 책장을 넘겼다. 속도감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읽을수 있겠거니 하고 따라가다가 한없이 가라앉는 자신을 발견했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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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교사, 입시를 넘다 - 사교육 구렁텅이에서 어떻게 빠져나올까?
홍세화 외 지음,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기획 / 우리교육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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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송승훈 선생님의 방학을 위한 추천도서에 올라 있기에 읽었습니다.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사걱세)에서 이루어진 강연을 묶은 책입니다. 강연의 말글을 그대로 옮기는 과정에서 많이 다듬지 않아 읽는데 조금 걸립니다. 그래도 보석같은 글들이 있습니다. 특히 고병헌 선생님의 글은 강연을 옮긴 느낌 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정말 깊이 있고요. 강연도 잘 하시고 글도 최고입니다. 사교육 문제와 진로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위한 입문서 라고 해야 할까요.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만을 목표로 살아가는 교사들이 아직도 남아있다면, 읽어야 할 책. 이제 중등 교육에 들어간 자녀를 둔 학부모를 위한 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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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유시민의 공감필법 : 공부의 시대 공부의 시대
유시민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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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좋은 강연을 잘 글로 옮겼네요. 유선생님의 글과 말과 행동 모두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편안하고 핵심을 짚어 말하고 글쓰는 능력에는 박수를 보내는 편입니다. 교양으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좋은 강연입니다. 강연의 말글을 그대로 줄글로 옮기지 않고 덧붙이고 손봐서 편하게 잘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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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사이
아모스 오즈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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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오즈의 글은 처음이다. 페이스북에서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나의 친구의 친구겠지?) 나의 친구에게 권하는 `좋아하는 작가`의 리스트가 나의 리스트와 매우 닮아 있었다. 필립 로스, 줌파 라히리, 줄리언 반스, ...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댓글을 주목해 보고 있었는데 모르는 작가가 있었다. `아모스 오즈? 누구지?` 그래서 읽게된 책. 잘 모르는 사람의 책장에서 그가 권하는 책을 집어드는 느낌.

인간은 모두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간다. 요즘 학교에서는 마을교육공동체 라는 말도 많이 한다. 정책적으로 내려와 피곤한 일이지만, 마공의 생각에는 동의하는 편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조언의 형태로 요청하지 않은 참견을 할 때나, 잘 알지도 못하며 간섭하는 것은 누구나 싫어할 터. 개인적으로 분절되고 서로 나누어진 지금의 삶에 공동체라는 말은 늘 기름처럼 나의 위에 둥둥 떠있다. 구체적이지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삶으로, 대안으로 다가왔지만 섞이기 어렵다는 느낌이었다. 서로 이야기하고 함께 살지만 그것이 `공동체`라는 명칭으로 묶이는 순간 속박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답답함.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키부츠 라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자급자족하고, 서로 일을 나누어 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결정하는 삶은 유토피아적이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림같지 않다. 함께 살아가다보면 사랑에서도, 일에서도 모두 예측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기 마련. 하지만 이런 삶을 당장 실현할 수 없다면 공감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공동체 안에서도 외롭다는 것을, 결국 희생이 전제되어야 모두의 동의가 있는 결정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사랑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결국 공동체 묶어도 그 밖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니, 이름이 없다 뿐이지 결국 크기가 다른 공동체 안에 우리 모두가 묶여 있음을.

아모스 오즈는 단편 소설을 어떻게 끝내야 하는지 그 정확한 지점을 잘 알고 있다. 8편의 소설이 모두 좋은 지점에서 끝난다. 여운을 남기기에도, 생각하기에도, 한숨을 짓기에도, 눈물을 흘리기에도 딱 좋은 지점에서. 그래서 그의 글을 더 읽어보기로 정한다.

덧, 에스페란토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은 지인에게서, 한 번은 소설로 이렇게 두 번이나 듣게 되고, 그에 관해 글도 썼는데. 정작 나는 에스페란토를 한 글자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뭔가 이쪽 길을 두드려 봐야겠다는 다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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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가 물었다. ˝왜 세상의 모든 슬픔을 어깨에 지고 곗는 거예요?˝ 즈비가 대답했다. ˝삶의 잔혹함을 못 본 척한다는 것은 어리석고도 죄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최소한 알고라도 있어야죠.˝ <노르웨이 국왕> 중에서

한번은 카르멜라가 햇빛을 받으며 서서 어떤 여자애와 이야기하고 있을 때, 모시는 그 곁을 지나가면서 햇빛이 맞은편 벽에 드리운 그애의 그림자를 쓰다듬었다.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반은 뜬눈으로 지새웠다. <아버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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