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 스스로 ‘정상, 평균, 보통’이라 여기는 대한민국 부모에게 던지는 불편한 메시지
오찬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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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겉보기 사회적 위치가 어느정도 레벨이 되었는지 스스로는 종종 잊는다. 내가 어느정도의 나이로 보이는가를 잊는다는 것이다. 마음은 늘 스물 여덟 정도로 살아가는 나로써는 좀 아줌마로 보이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것일터. 가끔 미용실이나 옷가게에서 나의 겉보기 나이를 짐작할 수 있는데, 모두가 나를 ‘언니’로 부르기 때문이다. 나도 미용실 언니를 언니로, 옷 가게 언니를 언니로 부르니까, ‘언니’는 그냥 대강 나이를 모르는 여자를 지칭하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뭐, 처음 보는 사이에 아줌마로 불렀다가 서비스직의 본분을 잊었다느니 기분나빠서 거기 안가면 안되니까. 언니로 수렴되는, 몇 번의 방문으로 뭔가 편안한 분위기가 되면, 그녀들은 묻는다. 결혼해도 괜찮으냐고. 애 키우기 괜찮으냐고. 불쌍해보이나, 내가?

최근에는 두 언니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했다. 나야 물론 이럴 때마다 ‘나만 당할 수 없지’의 심정으로 결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가능하면 아이도 낳고 결혼하는 것이 좋다는 식으로 은근 농담을 던진다. 그러고는 친정 동생을 대하는 심정으로 결혼의 장단점을 읊는다. 그들도 다 들어보았을 말을. 살림, 시댁, 육아에 관한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출처가 분명하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아 일반적이 된 호러물 스토리들을. 이때 호감이 가는 여성이라면 결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꼭 더 붙인다. 그 남자만 보일 떄 결혼하면 안된다고. 그 남자에 딸린 모든 식구가 따라오며, 당신도 혼자 시집가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업고 가는 거라고. 아니고 싶지만 그렇다고. 그러면 언니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렇죠 그렇죠’하며 맞장구를 치다가 결국 자신이 점찍어 놓은 그 남자 하나에 대한 아쉬움과 연애의 피로를 토로하기 마련. 나야 머리 손질을 끝내고, 옷가게를 나오면 그만이지만 내 말은 가게를 맴돌며 그녀돌의 마음을 스치다 다음 언니에게 질문이 옮겨가겠지. 어떤 선택을 하던지 후회하는 성격이라면, 둘 다 후회할 거고 후회없는 성격이라면 비혼으로 살아도 후회없겠지. 결국 못 가본 길에 대한 기회비용 아닌가. 최근 미용실 언니가 그만둔 것으로 보아, 결혼하나보다. 축하해 주고 싶으나 심정은 말이되어 나오지 않는다.

오찬호님의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을 읽었다. 결혼해서 애를 낳기 전에는 이해하기 힘들 말들. 나도 몰랐던. ‘왜 다들 이렇게 힘들다고 말 안해준거야?’가 아니라 사실은 다 말해줬는데 내가 골라들었던 것들. 언제 결혼하느냐 묻는 무례한 말들부터 육아서의 육아간섭과 사교육으로 불어닥치는 옆집 엄마들의 공세까지. 대한민국에서 지금, 아이를 낳아 기르는 모두에게 무릎을 치게, 아니 가슴을 쥐어 뜯게 할 글들. 하지만 책 표지의 글처럼 스스로 정상, 평균, 보통이라 여기는 대한민국 부모들은 이 책을 잠깐의 불편함으로 느끼고, ‘다들 불편하군’ 위로하며 결국 스스로를 토닥이고, 다시 정상, 평균, 보통의 육아로 돌아갈 터. 모두가 불편해서 모두가 이것을 바꾸는 일은 언제 또 일어날까.

다행이라면 오찬호님과 비슷한 세대라, 함께 사회의 아픔을 쏙쏙 파고들어 조망할 수 있다는 것. 아니야, 이건 다행이 아닌것 같다는 슬픈 느낌. 망했어. 이번 생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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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 - 알바노동자의 현재와 미래
박정훈 지음 / 빨간소금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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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근처에 아주 작은 편의점이 하나 있다. 10년 넘게 세탁소가 있던 자리에 폐업을 알리는 종이 쪽지가 붙더니 이내 번듯한 편의점이 되었다. 그곳의 점장은 사라진 세탁소 사장의 아들일까? 아니면 어디 좋은 자리없나 알아보다 이곳에 오게 된 걸까. 미스테리하지만 묻지 않는다.

내가 들르는 시간은 주로 5시 반-6시 사이다. 주로 맥주를 산다. 내가 좋아하는 맥주를 점장은 알고 있다. 그때 즈음에는 저녁 근무를 하는 알바생과 점장을 함께 만날 수 있으니까. 알바생은 자주 바뀌지만 점장은 계속 나를 만나므로 다른 맥주를 들고가면 ‘오늘은 다른 거 드시네요.’ 하고 알은체를 한다. 밤에 가면 알바생만 있는 걸 보면 점장이 낮에 근무하고, 알바생이 밤에 근무하는 것이리라.

그 시간의 점장과 알바생의 표정은 늘 밝지 않다. 좁은 카운터 뒤에서 점장은 늘 알바생에게 잔소리다. 보통은 손님이 들어오면 끊어지기 마련인데, 어느 날은 굉장한 기세로 잔소리가 쏟아진다. 앉아서 핸드폰만 보지 말고 뭔가 일을 하라는 것이다. 어디 앉아있을 만한 곳도 없어 보이는 카운터 뒤에 점장과 함께 서서 침과 잔소리를 한번에 받아내는 알바생의 영혼을 잃은 표정.

그런 날은 어색하게 카드를 받아들고 주섬주섬 맥주를 챙긴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그의 목소리 사이를 비집고 점장의 꾸중은 이어진다. 더 큰 소리로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라고.

박정훈님의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를 읽었다. 그러면서 또다른 누군가의 집 앞에 있는 전국 3만여 개의 편의점에서 매일 점장의 잔소리에 시달리는 이런 알바생들이 계속 떠올랐다. 재미있게 읽었다. 통계와 인터뷰, 인용과 상상이 적절히 조화되어 있는 글이다. 맥도날드, 편의점, 여성 알바를 구체적 사례를 들어 언급한 점도 좋았다. ‘알바’로 뭉뚱그려진 그 노동의 사이에서 생동감 넘치는 알바생들이 튀어나와 자신의 경험담을 증언하는 모습이다. 생생한 알바노동의 사회학. 강력추천.

“여기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노동자 혐오가 깔려 있다. 편의점 알바노동자는 나보다 하층 인간이다. 그런데 그런 인간에게 무시당했다는 분노가 폭력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내가 제어할 수 있을 것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행사가 거대한 권력이나 보이지 않는 시스템에 맞서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82쪽

“용모 단정이라는 전가의 보도는 의외의 효과를 낸다. 구직자로 하여금 자신이 자격이 되는지를 검열하게 만든다. 그 결과 사장은 두 가지 이점을 얻는다. 스스로 자격을 의심하는 노동자를 손쉽게 다룰 수 있으며, 노동자들이 자격을 갖추기 위해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꾸미기 노동을 한다는 점이다.” 107쪽

“사장들은 자주 ‘화장은 예의’라고 말한다. 여성의 꾸미기가 자기 관리와 노동 조건을 넘어서 인성으로까지 치환되는 순간이다.” 110쪽

“남성은 자신의 고생을 생색낼 수 있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과제를 부여받는다. ‘내가 이렇게 무거운 걸 옮겼어. 이렇게 힘든 일을 해냈어.’ 반면 여성은 늘 타인의 시선을 기준으로 수동적인 과제를 부여받는다. ‘내가 손님에게 예쁘다는 말을 들었어.’ 무엇을 차별이라고 해야 할까? 중요한 것은 누군가는 노동자로 인정받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인형으로 인정받기를 요구받는다는 사실이다.” 121쪽

“알바노동자들의 하루 20분짜리 무료 노동에 대한 문제 제기가 어쩌면 정규직 노동자들의 하루 2시간짜리 무료 노동을 비추는 거울이 될지도 모른다.” 158쪽

“결국 그 사람이 하는 말이 ‘그러니깐 나이 처먹고 알바나 하지’였어요. - 20대에 잠깐 하고야 말아야 할 알바 노동시장에 계속 머물러 있는 50대의 무능력에 대한 비하일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기에 실패한 인생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잔인하다.” 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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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5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의눈물 2019-01-25 16: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본사와의 계약구조가 개선되어야 점주도 알바도 살기 좋아질 것 같아요. 점주 입장에서 본사에게는 을 입장이니 자신이 갑이되는 알바생을 뜯어먹으려는 것 같아요. 모두가 모두에게 갑질하는 세상이 슬퍼요.
 
[eBook] 페미니즘 리부트 - 혐오의 시대를 뚫고 나온 목소리들
손희정 지음 / 나무연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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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책을 읽다보면 내용상 대략 두 부류로 나뉜다는 느낌이다. 역사와 사회 맥락 안에서 페미니즘 이슈를 깊이 있게 분석하는 쪽과 개개인의 경험과 문화적 맥락 안에서 경험으로서의 페미니즘을 드러내는 쪽이다. 읽는 쪽에서야 이쪽도 읽고 저쪽도 읽다보니 잘 몰랐는데, 그 둘이 겹쳐져 큰 시야를 제공하는 책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다 들었다. 이 책은 따지자면 분석적인 페미니즘 책에 속하는데, 그 분석이 세대의 경험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뭔가 더 가깝게 느껴지는 책이다. 분명히 깊이 있는 분석인데 대상이 비정상회담, 김숙, 트윗터의 이야기다. 정말이지 가깝고 좋다. 가까운데 가볍지 않다. 이는 손선생님의 글이 가진 매력이다. 페북에서 만날 땐 몰랐는데 책으로 만나니 학구적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물론, 일반적인 대중문화 속에서의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 시대적 흐름 속에서 페미니즘이 다시금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인지, 차근차근 따져볼 수 있었다. 계속 좋은 글을 써주시면, 하는 바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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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2018-01-31 0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웃님 덕에 좋은 책을 알게됐네요. 감사합니다
 
[eBook] 말이 칼이 될 때 - 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홍성수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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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성혐오에 관한 비판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는 자기검열과 눈치에서 벗어나 무엇이 잘못된 일인지 바로잡고자 하는 이야기가 쉽게 보인다. 다행이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중심에 서고, 이를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드러난다. 구조 속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개인의 차원에서 벗어나 무엇이 정말 문제인지 찾아보려는 글도 늘어났다. 다행이다.

이에 더해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의 혐오 문제를 다룬 좋은 글도 많아졌다. 특히 이 책은 정부 차원의 움직임에 역할을 했던 분의 글이라 더 좋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혐오의 문제를 다루면서 혐오와 증오범죄,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직도 동성애는 반대하지만 동성애자의 인권은 존중한다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메갈리아를 남혐집단으로 몰며 여혐도 안되고 남혐도 안된다는 양비론을 내세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대답할 말이 궁하다면 참고하면 좋겠다. (사실 답이 궁해서라기 보다는 더이상 답해봤자 싸움이 될까 참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아 심란하지만..)

책 전체가 한 가지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통으로 연결되어 있어 읽기 좋다. 또한 관련 문헌 소개가 간단한 글이 아니라 비교분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책을 가지치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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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키즈의 생애 - 안은별 인터뷰집
안은별 지음 / 코난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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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우리 반에도 몇 명의 아이들이 경주행 수학여행에 참석하지 않았다. 네다섯 정도였나, 더 많았나?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친구들이 안가니까 나도 따라서 안갔다. 그것도 말을 못해서 질질 끌다가 배가 아프네 뭐하네 하면서 엄마와 담임 선생님을 당황시키며 출발 당일 아침에 불참했다. 별 일 없었다. 그냥 도서관으로 등교했다. 그 이후에도 공무원 아버지와 전업주부 엄마를 둔, 외환위기에도 잘 살아남은 무난한 집 아이였다. 그게 피부에 와닿지 않을 나이였고, 직접적인 피해자가 눈에 보이는 위치에 있지 않았으므로 그걸 금세 잊었다. 친척들 사이에 이야기가 많았지만, 우리에게 자세히 이야기 해주지는 않았다. 아빠가 돌아가신 것이 2000년이고, 그게 큰 충격이어서 그랬나, 정말 그때 기억이 별로 없다. 나는 인터뷰어가 제시하는 어떤 카테고리에 딱 떨어지게 들어맞지는 않는 그냥 잘 살아남은 사람이지만, 인터뷰를 읽으며 내내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무엇이지?’ 생각했다.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시간을 겪은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길을 가는지, 참 당연한 명제 앞에 서있는데 그게 또 교묘하게 꼬이고 꼬여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IMF키즈가 제목이지만, 도식, 사교육, 가족과 결혼, 일, 젠더, SNS가 키워드다. 한계도 있지만, 그것을 잘 성찰한 서문이 좋다. 충분히 공감한 뒤에 책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즐겨찾기에 살포시 넣어두고 김괜저씨의 블로그에서 글을 읽던 재미, 홍스시 언니와 만났던 서울대입구의 그 밥집이 생각난다. 그때 혼자 가면 ‘오늘은 혼자 오셨네요?’하고 인사해 주셨는데. 인터뷰를 읽으면서 그분이 그분이라는 확신에 확신을 거듭한다. 괜히 또 만나보고 싶어서 검색을 했다. 인스타에 그분이 설대입구에서 운영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관련 계정이 있다고 하던데, 인스타 실력이 짧아 검색이 잘 안된다. 아시는 분 저좀 알려주세요. 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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