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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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페루에 가고 싶었다. 우연히 마추픽추의 사진을 손에 넣은 그 날부터, 이 이름은 나와 관계된 모든 것의 암호였다. 가보고 싶은 곳, 초등학교 이름, 가장 친한 친구 이름, 기억할 만한 기념일, 그 모든 것은 마추픽추였다. 먼 이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보다 훨씬 강한 열망으로 나는 그 곳을 떠올렸다. 거기에 나의 과거가 있는 듯 했고, 거기에 나의 미래가 존재할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 곳은 먼 우주에서 온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이라고 했으므로. 먼 우주에서 빛의 속도로 날아온 그들이 지구의 사람들과 혼인하며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땅이라 했으므로.

1970년생의 작가가 1990년대를 회고하는 이야기를 썼다고 했을 때, 이상하게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이제 겨우 십여 년이 지났을 뿐인 시대를 회고하기에 시간은 아직 흐르지 않았고, 그는 아직 나이 들지 않았다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아니 어쩌면 책장을 넘기면서 오버랩될 나의 한 시절을 추억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아직 나이 들지 않았지만 어제의 일은 무엇이든 되새김질할수록 이야기가 많아지는 법. 나는 그의 이야기를 빙자하여 나의 이십대와 그 시절을 함께 했던 누군가들을 떠올리고 싶었던 것이다.

퇴계로 좁은 골목길에서 시위를 벌이던 김귀정이 죽어갈 때, 나는 정민을 찾아 골목길을 정신없이 뛰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만난 투쟁국장에게서 쇠파이프로 어깻죽지를 세차게 얻어맞았다. 반쯤 넋이 빠져 있던 투쟁국장은 나를 사복경찰로 착각했던 것이었다. 그때, 내가 누군지 소리치면서 왼손을 드는 내게 투쟁국장이 쇠파이프를 내리치던 그 순간은 오랫동안 내 뇌리에 남았다. 같은 시간, 거기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한 여학생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순간은 영원히 내 기억 속에 남게 된 것이다. 
                                                                                                             - 본문 중에서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내가 나와 그들을 추억하면서 허랑허랑 책장을 넘긴 건, 그러니까 소설 속 ‘내’가 투쟁국장의 쇠파이프를 맞던 그날까지였다. 성균관대 불문과에 재학 중이던 어여쁜 여학생의 죽음을 흘려듣던 고교 시절의 내가, 김귀정의 죽음을 제 탓으로 여겼다는 어느 선배의 고백이 잠시 스쳐 지나간 후, 나는 더 이상 어떤 시절을 떠올리지 않았다. 병원 영안실에서 보낸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난 후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바람직한 독자가 되고 말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이길용이었다가 강시우로 다시 태어나는, 젊은 운동가에서 프락치가 되었던 한 청년의 인생 이야기는,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아무런 의식 없는 운동가 행세를 한, 자신의 슬픔을 과장하여 수많은 여학생들의 성을 유린한, 파렴치한이며 프락치인 그의 삶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동안, 그 삶에 엮어진 수많은 다른 생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건네 왔다. 그들은 아우슈비츠의 학살 현장에서 독일장교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하는가 하면, 죽어가는 유대인들을 위해 경쾌한 집시음악을 연주했다. 그들은 일본군으로 징집되어 남양군도에 다녀왔고, 서해의 갯벌을 막아 농토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다 간첩단으로 몰려 고초를 치르기도 했다. 그들의 아비와 할아버지는 시대의 모순에 항거한 농민 투사였다가, 필로폰 제조전문가와 밀수꾼으로 탈바꿈했다. 그들이 만든 필로폰은 우연한 가져다 준 폭력을 경험한 고등학생의 손에 쥐어졌고, 그는 밤꽃이 선사한 환영에 쫓겨 생을 마감했다.

그랬다. 이길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폭력의 시대였던 1980년대가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하게 만들어 가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고, 그의 아비와 할아버지가 살았던 사람들이 무엇을 꿈꾸다 어떻게 망가져 가는지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 삶을 찬찬히 들여다 보고 있는 동안, 나는 내가 살았던 1990년대를, 1980년 광주 이후의 시대를, 유신과 식민지의 시절을 그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그리고 레이와 헬무트. 전세계에서 출판된 세익스피어의 책을 모으는 헬무트의 생에 이르러서는, 아우슈비츠를 향해 걸었던 한 기타리스트의 걸음을 지켜보게 되었다. 더 이상 나는 나의 이십대를 추억하지 않았다. 그저 언젠가 찾아간 고궁에서 “나”와 정민의 데이트를 지켜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주에 살았던 나의 부모는 혹시 이길용과 스쳐 지나가지 않았을까. 필리핀인가 어디에서 미군의 포로로 잡혔다는 나의 할아버지는 혹시 “나”의 할아버지와 함께 입체누드사진을 보았던 게 아닐까. 이야기가 끝이 나는 게 서운할수록 나는 오래오래 그들과의 인연을 떠올리고 있었다.

역사라는 이름으로, 전체라는 이름으로 묻어버린 개인의 삶을 복원하려는 시도는 여러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왕들만이 주인공이었던 사극은 한 줄 기억밖에 남지 않았던 인물들의 삶을 드라마로 만드는 데 열중하고, 시대가 거세해버린 80년대 개인을 기억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시대의 열망이 아니라 그들의 욕망이 소중했다는 인식은 문학과 더불어 여러 현장에서 풍요로운 성과를 이뤄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개인의 삶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그것 자체만으로 강조될 때, 나는 그저 작은 방 구석에 틀어박혀 세상에 대해 투덜거리고만 있는 작은 존재가 되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김연수의 이 소설은 시대에 갇힌 개인들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그 개인과 개인의 삶이 연결되어 만들어낸 시대의 이야기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길용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헬무트의 삶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그들의 앉은 자리 어느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입체누드사진을 바라볼 자격을 얻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시간이 여기 어디쯤에 흐르고 있으므로.

그래서 나는, 언젠가 마추픽추에 갈 것이다. 우주에 가장 가깝다는 그 곳에 흔들의자 하나를 놓고 우주에서 다가올 누군가를 기다릴 것이다. 그들에게도 이길용과 헬무트와 레이의 이야기를, 정민과 ‘나’의 사랑을, 누군가를 오래오래 기다렸던 나의 시간을 이야기해 줄 것이다. 그러니 참으로 다행이다. 이 넓은 우주에 그대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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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07-10-25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지요. 저도 오래전부터 그렇게 오래된 황혼앞에 흔들의자를 놓고 자는 듯이 가는 꿈을 꾸곤 했답니다.

이 세상은 갈수록 낯설어져요...

오월의시 2007-10-25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정말 기가 막히네요.^^

선인장 2007-10-25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니케어님 > 하루 종일 알라딘이 버벅거려요... 그 사이에 님의 글 하나가 있었다 사라졌네요... 저는 이 세상이 늘 낯설다 생각했는데, 어느 사이엔가 익숙해졌버렸나 봐요... 낯설은 건 나...

까탈이님 > 알라딘은 늘 여전하네요. 오래 비웠나 돌아와도, 이렇게 늘 인사하는 누군가가 있어서, 낯가림인 심한 제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져요. 반갑습니다.

프레이야 2007-10-25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인장님 대문에 걸어둔 글귀가 참 좋습니다.
추천 누르고 가요.^^ 이 책 평이 다들 좋으네요. 멋진 리뷰입니다.

선인장 2007-10-26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문, 두만강에 놓인 다리에요. 다리의 반반을 서로 다른 나라가 차지하고 있는. 다리 중앙까지는 입장료를 내야 해서, 그저 강변만 어슬렁거리다 왔어요. 같은 말을 쓰는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세 나라의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감정으로 저 곳을 어슬렁거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