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함정이 뭔지 아니? 돈을 주면 모든 종류의 감각을 살 수있어. 하지만 감각과 진짜는 달라. 돈은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하다는 감각을 만들어줘. 진짜로 사랑받는 게 아니어도 사랑받는 느낌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돈으로 비바람을 피할 지붕은 살수 있어도 내면의 평화를 사지는 못 해."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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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집을 사랑하기에 오로라에 다시 오고 싶었어요."

"자네는 저 집이 아니라 추억을 사랑하는 거야. 일종의 ‘향수병‘이라고 할 수 있지. 지난날은 행복했고, 그 시절 우리의 선택이 최선이었다고 믿게 만드는 게 바로 향수병이지. 지난날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그때가 좋았지.‘라고 생각하는 건 사실 우리의 뇌가 병들어 향수든 우수든 찔끔찔끔 분비하는 탓이거든. 지난 과거가 헛일은 아니었다고, 공연히 시간을 허비한 건 아니었다고 믿게 하려는 거야. 시간을 허비하는 건 인생을 내다 버리는거나 다름없으니까." - P60

친구란 살다 보니 운 좋게 만나게 되는 존재가 아니라 그가 친구라는 사실을 어느날 눈앞에서 보여준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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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면서 통증이 느껴졌다.
‘내가 한 일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나는 인생의 정확한 가치도 정의나 우울의 가치도 모른다. 나는 한 인간의 기쁨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정확히 모른다. 떨리는 손의 가치도 모른다. 동정도, 따뜻함도 그는 생각에 잠겼다.
‘삶에는 얼마나 모순이 많은가. 하지만 우리는 삶과 화해할 수 있는 만큼 화해하며 산다....... 그러나 계속 살아가고,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소멸할 수밖에 없는 육신과 맞바꾸는 것은 ...........‘ - P61

실패는 강한 자들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인간을 상대로 진정한 의미라고는 거의 고려되지 않는 게임을 벌인다. 겉보기에 우리는 성공하거나 실패하고, 하잖은점수를 얻는다. 그리고 그 표면적인 실패에 발목을 잡힌다. - P79

어느 날 정비사와 리비에르는 건설중인 다리 근처를 지나가다가 부상당한 인부를 보게 되었다. 이때 정비사가 리비에르에게 물었다. "이다리가 저 망가진 얼굴보다 더 가치가 있을까요?" 그 다리를 이용하게될 농부 중 어느 누구라도 다음 다리로 돌아가는 수고를 덜기 위해 그토록 끔찍하게 얼굴을 훼손시켜도 된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다리를 세운다.
정비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 공익은 개인의 이익이 모여 이루어집니다. 그 외의 것들은 아무것도 정당화되지 못해요."
한참 뒤에 리비에르가 대답했다.
"하지만 인간의 목숨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 해도, 우리는 항상 무언가가 인간의 목숨보다 더 값진 것 처럼 행동하죠.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

‘어쩌면 곧 사라질지도 모를 그 친구들은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땐데.‘ 저녁 식탁을 밝힌 불빛이 만들어낸 황금빛 성소 속에 고개를 숙인그들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무엇의 이름으로 내가 그들을 거기에서 끌
‘어냈을까?‘ 무엇의 이름으로 그들을 개인적인 행복에서 빼내왔을까?
이런 행복을 보호하는 것이 첫번째 규칙 아닐까? 그러나 그 자신이 그러한 행복을 깨뜨리고 있다. 그렇지만 황금빛 성소는 언젠가는 신기루처럼 사라질 운명이 아닌가. 노화와 죽음이 리비에르보다 더 냉혹하게그 성소를 파괴할 것이다. 어쩌면 더 영속적인 무언가가 구해야 할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리비에르가 일을 하는 것은 사람의 이런 부분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행동은 정당화될수 없다.
‘사랑한다는 것, 단지 사랑하기만 하는 것은 막다른 골목과 같다! 리비에르는 사랑하는 일보다 훨씬 더 막중한 의무가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 또한 애정과 관련된 것이겠지만, 여타의 애정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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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에르는 가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저들은 행복해.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랑하니까. 내가 혹독하게 군 덕분에 저들이 자기 일을 사랑하게 된 거지."
어쩌면 그들을 고통스럽게 했는지도 모르지만, 리비에르는 그들에게 강렬한 기쁨도 주었다.
‘그들이 강렬한 삶을 향해 나아가도록 밀어줘야 해.‘ 그는 생각했다.
‘고통과 기쁨을 동시에 불러오는 강렬한 삶으로 나아가도록. 그런 삶만이 중요하니까.‘ - P35

"자네가 내말을 알아들었다면 그렇게 하게, 로비노 자네는 부하를 사랑해야 하지만 그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서는 안 되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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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인이란 누구인가? "아니요"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에게 거부란 포기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는 반항의 시초부터
‘예‘라고 말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평생 명령을 받아온 한 노예가돌연 새로운 명령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한다. 이 ‘아니요‘의 내용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그것은 "이런 일이 너무 오래도록 계속되었소", "거기까지는 좋소, 하지만 그 이상은 안 되오", "이건 지나친 일이요" 또는
"당신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소"를 뜻한다. 요컨대 ‘아니요‘는 어떤 경계선의 존재를 긍정한다. 두 권리가 맞서 서로를 한정하는 이경계선 너머까지 상대편이 침범한다는 반항자의 느낌, ‘이건 좀 지나치다‘라는 반항자의 느낌 속에서 바로 한계의 관념이 발견된다. 반항운동은 참을 수 없다고 판단되는 침해에 대한 절대적 거부에 근거하는 동시에, 정당한 권리에 대한 막연한 확신, 좀 더 엄밀히 말하면 반항자가 가지는 ‘...할 권리가 있다‘라는 느낌에 근거한다. 반항은 어떤식으로든, 어떤 곳에서든 스스로 옳다는 감정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반항하는 노예가 ‘아니요‘와 ‘예‘를 동시에 말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다. 그는 경계선을 인정하는 동시에, 경계선의 이편에 유지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긍정한다. 그는 자기 속에 ‘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유의해야 할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을 고집스레 증명하려 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자신을 핍박하는 명령에 자신이 인정할 수 있는 범위 이상으로 핍박받지 않을 권리를 대립시킨다.
- P35

형이상학적 반항이란 인간이 자신의 조건과 창조 전체에 항거하는운동이다. 그것은 인간과 창조의 목적에 이의를 제기하는 까닭에 형이상학적이다. 노예는 자신의 신분에 주어진 조건에 항의한다. 형이상학적 반항자는 인간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에 항의한다. 반항하는 노예는 자신의 내면에 무엇인가가 있어서 주인이 자기를 대하는 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언한다. 형이상학적 반항자는 창조에 의해 기만당했다고 선언한다. 어느 경우든, 단지 순수하고 소박한 부정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두 경우 모두에서 우리는 하나의 가치판단을 발견하게 되는데, 반항자는 이 가치판단의 이름으로 자신의 조건에 동의하기를 거부한다.

주인에 항거하는 노예가 인간 존재로서의 주인을 부정하는 게아니라는 사실에 유의하자. 노예는 주인으로서의 그를 부정한다. 노예는 주인이 당연히 노예를 부정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노예의 요구를 소홀히 여기고 노예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 만큼주인은 실격된다. 만일 개인이 만인에 의해 인정되는 공통 가치를 누릴 수 없다면, 그때 개인은 다른 개인에게 불가해한 존재가 된다. 반항하는 자는 그 가치가 자기에게도 응당 인정되기를 요구한다. 이와같은 원칙 없이는 무질서와 범죄가 세계를 지배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항 운동은 그에게 명중성과 통일성의 요구로 나타난다. 가장 초보적인 반역일지라도, 그것은 역설적으로 질서에 대한 갈망을 표현한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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