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안짱 - 산하어린이 144 
야스모토 스에코 (지은이), 허구(그림), 조영경 (옮긴이) | 산하
정   가 : 8,500원
출간일 : 2005-10-10 | ISBN : 8976503023
반양장본 | 234쪽 | 223*152mm (A5신)

올해 설날에 조카에게 줄 책을 고르려고 오프라인 서점에 갔다가 발견한 책입니다.
산 날 바로 다 읽어버리고 조카에게 주었는데,
나도 꼭 한 권 갖고 싶어서 알라딘에서 다시 샀습니다.
아니 그런데 알라딘에 이 책에 관한 리뷰도 페이퍼도 전혀 없지 뭡니까!
뭐야, 이렇게 좋은 책이 왜 묻혀 있는 거야!

[니안짱]은 동화나 소설이 아니고, 실존했던 어린이의 일기입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고, 바로 그 일본 땅에 남아 살아가야 했던
조선인 네 남매의 막내가 쓴 일기를 추려서 모은 책입니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이 일기를 쓴 스에코(末子)가
소학교 3학년이던 1952년 12월경에 돌아가셨습니다.
이 책은 아버지의 49제 날인 1953년 1월 22일 일기부터 시작됩니다.

‘니안짱’은 ‘작은오빠’란 뜻이지만 원래 일본어에서는 쓰지 않는 표현인데,
스에코가 작은오빠를 이름으로 부르곤 해서 이름 대신 부르기 쉽도록
아버지가 지어준 호칭이라 합니다.
그러나 일기에 작은오빠 이야기만 나오지는 않습니다.
아버지 대신 생계를 짊어져야 했던 큰오빠,
형에게 짐이 되지 않고 저도 한 몫을 하려 들었던, 똑똑하고 다혈질인 작은오빠,
어머니 대신 집안을 돌보고 살림을 책임졌던 언니와
다정하고 씩씩한 스에코, 그리고 스에코의 착한 친구들을 눈앞에서 보는 것 같습니다.


4월 8일 수요일 맑음
점심시간 때 나카타케 치에와 손을 씻으러 갔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틈에
“치에, 나는 도시락 안 먹을 거야.”
하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치에는
“네가 안 먹으면 나도 안 먹을래.”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잠깐 6학년 2반 교실에 갔다 오자.”
나는 그렇게 말하고 교실로 돌아와 책상에서 도시락을 꺼내 들고 작은오빠네 반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작은오빠는 교실에 없었습니다. 설마 내가 도시락을 가지고 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나가서 놀고 있는 모양입니다.
내가 배가 고프면, 작은오빠도 배가 고플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남자니까 활발하게 뛰어놀 거고, 게다가 6학년이라 집에 늦게 오니까 나보다 훨씬 더 많이 배가 고플 것입니다. 4학년은 늦어도 3시까지는 집에 가니까 괜찮다고 생각해서 가지고 온 도시락이었습니다.
하지만 작은오빠가 없어서 이런 생각이 모두 소용없게 되자 맥이 탁 풀리고 말았습니다. 모처럼 가지고 왔는데 줄 수 없게 되어, 그대로 집으로 가져와서 언니하고 둘이 나눠 먹었습니다. 둘이서 먹었다고는 해도, 언니는 겨우 두 숟가락 정도밖에 안 먹었습니다.


4월 9일 목요일 맑음
점심시간에 손을 씻고 나서 치에와 고다마에게 같이 가 달라고 해서 오늘도 6학년 2반 교실에 가 보았습니다. 어제는 교실에 없었기 때문에 오늘은 도시락을 들고 가지 않았습니다.
작은오빠가 있는지 없는지 교실 안을 들여다보았지만, 오늘도 없었습니다. 어디에 갔을까 하며 운동장을 둘러보았더니 거기에 있었습니다.
“니안짱!”
하고 부르자, 작은오빠는 바로 알아듣고 내게로 왔습니다.
니안짱은 작은오빠라는 뜻으로, 다카이치 오빠를 말합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 내가 다카이치, 하고 이름을 부르니까, 그러면 안 된다면서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호칭입니다.
“나는 안 먹을 테니까 도시락 가지러 와.”
하고 말하자,
“그런 거 안 먹어. 너나 먹어.”
하며 작은오빠가 화를 냈습니다.
작은오빠야말로 배가 고플 것입니다. 그래도 나를 생각해서 안 먹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작은오빠가 먹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먹지 않았습니다.


여동생과 오빠가 서로 밥을 양보하고,
또 친구가 안 먹는다고 자기도 안 먹는 아이들.
(저는 배고픈 걸 참지 못하고 식탐이 있어서 먹을 것은 일단 먹고 보는데... ㅠ.ㅠ)
밥을 싸 가지고 달려가서 한 공기씩 먹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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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7-27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3=3

가랑비 2006-07-27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으하하, 그것도 그렇네요. 요즘 어린이들에게 말하면 다 그런 줄 알 것 같은데요?
만두 언니/어딜 가셔요오~~~

아영엄마 2006-07-27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벼리꼬리님~~ 님 맞으시죠? ^^ 니안짱은 언제 인터넷에서 표지를 본 기억이 나는데 읽어보진 못했어요. 등록된 리뷰가 없다니 님이 좋은 리뷰 올려주세요~~

sooninara 2006-07-27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통째 갖다주고 싶어요.ㅠ.ㅠ

가랑비 2006-07-28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앗, 제가 아영엄마님께 미리 인사하지 않았던가요? 진작 했는 줄 알았는데. ^^a 에, 리뷰는 벅차고오... 그냥 이걸로 때우려고요.
수니님/우리 손잡고 같이 가요. 덥석.

산사춘 2006-07-30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고의 사랑은... 먹을 걸 양보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가랑비 2006-07-31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사춘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 저는 사랑이 너무 부족해요.
 

정신병 환자에 대한 편견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순전히 필자의 주관임을 미리 밝혀둔다) 착각, 멸시, 공포이다.

첫째로, 착각은 정신병 환자가 행복할 것이라는 편견이다.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환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행복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인데 사실 대개의 정신병 환자들은 환청, 환시, 환상, 망상에 시달리면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허공을 향해 중얼거리고 있는 정신병 환자만 상상하고서 행복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멸시는 정신병 환자는 인간이 아닌 ‘또라이’이며 짐승보다 못한 존재라는 편견이다.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동물적 존재라는 멸시는 정신병 환자의 재활에 대한 중대한 장애로 작용한다. 일반적인 신체장애자에 대한 멸시도 문제지만 정신병 환자에 대한 멸시는 동정의 여지도 없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셋째로, 공포는 정신병 환자가 언제든지 심리가 돌변하여 주변 사람들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편견이다. 극히 일부의 경우에 정신병 환자가 돌발적인 공격을 했다는 보고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개는 자기 자신과 싸우느라 타인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가 거의 없다.

― 정도상, “그것은 절망과의 싸움이었다”, [나는 '나쁜' 장애인이고 싶다] 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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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쁜' 장애인이고 싶다] 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

......

“패널로 참석했던 한 심리학자는, 극심한 사회적 거부를 경험할 때 장애 여성들이 가져야 할 긍정적인 자아 존중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다르다’는 것이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그녀는 ‘파이의 비유’를 들어서 설명한다. ‘사람들 몇이 레스토랑에 모여서 식사를 한 뒤 디저트를 뭘로 할지 고르게 된다. 어떤 사람은 레몬파이를, 또 어떤 사람은 바나나크림파이를 선택할 것이다. 어떤 파이는 선택되고 다른 것은 선택되지 못한다고 해서 어떤 파이가 다른 파이보다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파이들은 서로 다르다. 여성들도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것이다.’ 이때 어떤 사람이 손을 번쩍 든다. 장애를 가진 중년의 흑인 여성이 논의를 순식간에 원점으로 돌려놓는다. 그녀는 이렇게 묻는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찌그러진 파이라면 어떨까요?’ 너무나 용감하게 제기된 이 질문은 장애를 가진 여성들이 겪는 경험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것이다.”

차이가 위계화되는 것을 간과한 채 차이만을 강조하는 것은, 차이가 발생시키는 차별과 몸의 경험, 고통을 쉽게 지워버린다. “단지 다른 것일 뿐이다”라는 말은 사실상 장애를 제외하고 ‘지배 집단과 같음’을 주장하기 위한 말이 된다.

   김은정, “다양한 몸의 평등한 삶을 꿈꾸며”, [나는 '나쁜' 장애인이고 싶다] 269~2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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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7-27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애인이 착하다는 건 사회가 그들을 그럴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고 장애인이 나쁘게 된다면 그것도 사회가 만드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이 성격까지 좋아야 하고 다름을 인정하길 바란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됩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평등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죠. 꿈만 꾸는 일이 되는겁니다. 저는 장애인에게 성질이 더럽기를 바랍니다. 물어 뜯어도 되지 않는 세상이니까요.

가랑비 2006-07-27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넹넹~ 공감 고마워요.
만두 언니/네. 착한 건 좋은 일이지만 착하기를 강요하는 건 나쁘죠. 평등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다... 후우... 그래도 전 "다양한 몸의 평등한 삶"을 '꿈꾸고' 싶어요! 최소한 자신의 욕구를 당당하게 보일 수 있고, 그 욕구를 실현하는 길이 보통 사람만큼만 불편한 삶을...

가랑비 2006-07-28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그렇지요? 머리로만 아는 것과 실제로 겪는 것의 차이랄까...
 

아래의 시는 송하원이라는 어린이가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 사이에 쓴 것들이다.



팽이

돌고 도는 팽이
때려야만 도는 팽이

때려야만 돈다니
팽이가 불쌍하다

세상에......

이 세상에 때려야만
하는 것이 나 말고
또 있다니......



(푸핫. 웃고 말았는데, 갈수록 더 재미있다.)



거울

그냥 쳐다봤는데
왜 째려보냐고 한다

그래 나 여우 눈이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적에 잘 듣던 소리다. ㅎㅎ)



오줌

오줌 싼 뒤
진동이 온다

나 핸드폰 없는데



두시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집에 왔다

새벽 두시였다

새벽 두시를 시계로
처음 보았다

새벽 두시가
신기하고 놀라워


(매일 잠자던 시간에 깨어 그 시간을 처음 '보는' 경험. 오. )



팔다리

나는 TV에서
전쟁으로
팔과 다리가 잘린
아이들을 보았다

괜히 미안했다
내 팔다리는 멀쩡해서

 

이 시들을 읽고 서재지인들께 소개하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主式會社 드림’이라는 유령출판사에서 나온
송하원 송호일 시집 [개똥아빠 개똥딸]에서 옮겨 온 것이다.
유령출판사 드림에 대해서는 여기를 보세요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823220




☜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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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7-20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아이가 썼다고 생각이 안들 정도로 잘 쓰고 시사성까지 있다는 생각이 드네.

가랑비 2006-07-20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 언니, 아이답기 때문에 더 좋지요? ^^

파란여우 2006-07-20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이미지가 님의 서재에 뜬다고해서 째려보는 것은 아니니 미워하지 마세요!^^

반딧불,, 2006-07-20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세상에나 아이가 이런 책을요?

가랑비 2006-07-21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오모나, 여우님은 여우답지 않게 눈이 크고 시원하신 줄로 압니다만?
반딧불님/때로는 아이들이 하는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다 시 같아요. ^^
바람구두님/네, 무엇보다 그냥 읽기에도 재밌어요. 킥킥거리며 보게 된답니다.
 

7월 10일부터 16일까지 열린 "제3회 EBS 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 프로그램 중에서
내가 본 일곱 편에 대한 짤막한 감상. 7월 1일(월) 하루 휴가여서 세 편을 보았고,
7월 16일(일) 저녁 시간에 네 편을 보았다.

7월 12일(수) 저녁에도 한 편, "라스트 코뮤니스트"를 보려고 했는데,
처음 시작하는 시간을 놓친 데다가 피곤했는지 중간에 자버린 바람에(ㅠ.ㅠ)
봤다고 할 수가 없다. "추방당한 말레이시아 공산당수"의 궤적을 따라가되,
그 궤적에 드러난 시간, 공간과 물질, 사람들을
과거의 당시 모습이 아니라 현재 말레이시아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을 찍어 엮은 점과
손가락 인형, 가면을 이용한 세미 뮤지컬 형식이 꽤 흥미로웠는데, 아쉽다.


5 일간 5 Days


감독 : 요아브 샤미르 Yoav Shamir
제작국가 : 이스라엘 / 제작년도 : 2005
러닝타임 : 94 min / 원작언어 : 히브리어
상영일시 : 06-07-13 19:30
방영일시 : 06-07-10 11:30

시놉시스
2005년 8월 15일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철수를 시작했다. 영화는 이스라엘 군대와 거주민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으로 5일간의 이 역사적인 철수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프로그램 뒤에 나온 인터뷰 화면에서 감독은 "군대와 정착민 사이에 대화가 부족했던 점(대화를 통해 원만히 해결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그러나 가자에서 이스라엘인들이 나간 것은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화가 났다. 동족인 군대가 자신들을 집에서 쫓아낸다면서 마치 순교자라도 된 듯 울부짖는 저들, 그들을 보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지 눈물짓는 병사들! 그래, 어쨌거나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라 살던 곳을 떠나야 한다니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적어도 자기 집에 대한 결정권마저 없다는 것은 화날 일이겠다. 하지만 정착촌 자체가 폭력적인 무단 점거였잖아! 감독은 이러한 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 본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반응도 같이 촬영하려 했다던데, 왜 편집에서 뺐을까? 처음과 끝에 굴착기가 정착촌의 집들을 때려 부수는, 똑같은 장면이 나온다. 끝 장면에는 정착민들이 정부에게, 자기들이 살던 집들을 부수어달라고 압박했다는 해설이 같이 흐른다. 마을 자체를 파괴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가 살던 집들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활용하는 것조차 보기 싫었던 것이다. 진짜 욕 나온다.


(사이에 "꽃섬Flower Island"이라는 짤막한 영화를 했는데, 이상하게 EIDF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자료를 찾을 수가 없다. 남미 영화였는데, 일본계 농부가 생산하여 판 토마토가 유통 경로를 거쳐
향수 외판원인 여성의 손에 버려지고, 그것이 쓰레기 하치장인 '꽃섬'에서 돼지의 먹이가 되는 과정,
그리고 돼지에게도 못 먹일 것들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주워 가는 모습을 재기발랄하게 표현한 영화였다.
우울한 유머가 가득했는데, 왜 이 영화에 대한 정보가 없을까.)


예멘의 나즈미에 A Stranger in Her Own City




감독 : 카디자 알 살라미 Khadija Al-Salami
제작국가 : 예멘 / 제작년도 : 2005
러닝타임 : 29 min / 원작언어 : 아라비아어
상영일시 :
방영일시 : 06-07-10 13:10

시놉시스
예멘의 한 옛 도시에 유독 눈에 띄는 한 소녀가 있다. 감독은 그녀의 주변을 쫓으며 이 남다른 그녀가 주변의 이웃들에게 어떻게 대우 받는지를 살핀다.

나즈미에는 열서너 살쯤 되어 보인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차도르를 쓰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며 남자아이들과 거리낌없이 어울려 논다. 그래서 나즈미에의 하루하루는 전쟁이다. 늘 비난과 손가락질과 싸우면서도 언제나 웃음과 활기를 잃지 않는 나즈미에. 나즈미에의 태도에 견주면 도리어 감독이 더 여유가 없어 보였다. 이렇게 특별한 아이의 부모는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남다른 소신이 있는 분인가 보다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즈미에는 부모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하고 있었다. 맨 마지막에, 이 영화를 찍고 7개월 뒤 결국 나즈미에가 차도르를 쓰고 학교도 그만두게 되었다는 자막이 나왔을 때,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저 아이는 이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폭동 Pokdong


감독 : 알랙스 동 코 Alex Dong Ko
제작국가 : 미국 / 제작년도 : 2006
러닝타임 : 25 min / 원작언어 : 한국어, 영어
상영일시 :
방영일시 : 06-07-16 19:50

시놉시스
1992년 로스엔젤레스 폭동으로 인해 상처 받은 한 한인 가족의 삶을 그린 영화. 감독은 이 폭력적 반란이 근면한 가족에 미친 영향과 그에 따른 절절한 이야기를 당시 직접 피해자였던 그의 가족들의 입을 통해 생생한 영상으로 그려낸다.

바로 감독의 가족 이야기다. 그래, 매우 힘든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일어섰다는 자부심, 가족간의 유대감. 그런데... 더 이야기할 것이 없었을까? 감독 자신에게는 부모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겠지만. 좀더 넓게 볼 수 없었을까?


크리스 인 코리아 Chris In Korea


감독 : 김새노 Saino Kim
제작국가 : 한국 / 제작년도 : 2006
러닝타임 : 46 min / 원작언어 : 한국어, 영어, 불어
상영일시 : 06-07-12 18:30
방영일시 : 06-07-16 20:25

시놉시스
“나는 그의 첫인상을 알리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이 작품은 한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러나 이방인으로 살아야만 하는 한 외국인을 소개한다. 크리스는 한국에서 영화공부를 하거나 직접 영화를 제작해보려고 3년째 머무르고 있다. 감독은 정서적인 전달을 위해 그의 행동과 말들을 제약 없이 기록했다.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혼자 있는 크리스의 모습에서, 그가 만들어 낸 음악들에서 그가 풍기는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그래, 다큐멘터리라고 해서 항상 무거운 마음만을 남길 필요는 없겠지. 그러나 한국에서 그가 이렇게 산뜻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것은, 그가 유럽계 백인 남성이면서 학생이기 때문일 것이다. 유럽계. 백인. 남성. 학생.   


누구의 노래인가? Whose Is This Song?




감독 : 아델라 피바 Adela Peeva
제작국가 : 불가리아 / 제작년도 : 2003
러닝타임 : 70 min / 원작언어 : 불가리아어 외
상영일시 :
방영일시 : 06-07-16 21:10

시놉시스
노래에 관한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 영화는 터키, 그리스. 마케도니아. 알바니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그리고 불가리아를 넘나들며 때론 사랑노래로 때론 찬송가로, 그리고 전쟁노래로 변신하는 노래의 흥미진진한 여정을 쫓는다.

정말 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도입부를 놓쳤다. 어떤 노래가 있다. 그런데 그 노래를 터키인, 세르비아인, 보스니아인, 불가리아인들이 각자 자기네 전통 노래라고 주장한다. 감독이 이 노래를 따라 터키, 그리스, 알바니아, 보스니아, 마케도니아, 세르비아를 가보니, 가락은 똑같은데 지역과 민족에 따라 완전히 다른 노래말로 불리고 있었다. 사라예보에서는 사랑 노래였는데, 마케도니아에서는 이슬람 신앙을 다짐하는 군대 노래가 되고, 불가리아에서는 오스만 터키에 대항해 싸우던 옛 군대의 노래였다. 감독은 이 노래를 통해 발칸 반도 여러 민족 간에 화해를 도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세르비아인들에게 보스니아 노래라며 이 노래를 들려주자 모두 격분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고, 불가리아에서 "이 노래가 터키 노래라던데요?"라고 하자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목을 매달아버리겠다고들 한다. 같은 노래를 각각 자기네 전통 민요로 알고 있다는 건, 옛날에는 그만큼 가깝게 문화를 서로 나누던 사이라는 뜻 아닌가.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여러모로 인상 깊은 영화였다. 그런데 정말, 애초에 그 노래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터치 더 사운드 Touch the Sound


감독 : 토마스 리델샤이머 Thomas Riedelsheimer
제작국가 : 독일, 영국 / 제작년도 : 2004
러닝타임 : 99 min / 원작언어 : 영어
상영일시 : 06-07-14 21:00
방영일시 : 06-07-16 22:25

시놉시스
정말 소리를 만져 볼 수 있을까? 청각장애인 타악기 연주자에게 소리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연주를 해온 주인공은 장애라는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큰 산을 넘어 세상 사람들에게 너무나 아름다운 소리의 선율을 들려주고 있다.

소리의 향연.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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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17 21: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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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18 10: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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