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 1권
굽시니스트 지음 / 애니북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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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릴 때 시골에 내려가면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가 있었다. 그 어린 게 밤을 새고 그 만화책을 읽곤 했는데, 나이를 먹고 어른이 돼서 보니 그 책은 수많은 패러디를 차용하고 있었다. 고우영의 '십팔사략'도 같은 맥락이다. 역사를 재해석하는 데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대중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접근하는 데에 패러디를 사용하는 것은 꽤 적절해 보인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의 2~30대들이 환호할만한 패러디가 나왔다. 그렇다고 모든 이들이 환호할 만한 책은 아니다.

이 책은 이런 책이기 때문이다.

내용이 풍부하다. 하지만 학습용은 아니다.
진짜 재밌다. 하지만 원작을 알아야 한다.
성인용이다. 하지만 야한 컷은 없다;
 
저자 '굽시니스트(뜻은 모른다. 안 나온다)'에겐 '용자'라는 호가 있다. 아마 인터넷용어로 '용기있는 자' 정도를 뜻하는 것 같다. 그렇다. 패러디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미 인기있는)원작을 전복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굽시니스트의 호는 적절하다. 그에게 패러디의 대상은 스타크래프트이고, 인터넷용어이고, 일본애니매이션이고, 때로는 허경영(!)이다. 동시에 그의 독자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재의 인터넷 세대들이다. 우리 세대의 패러디 작품을 내줘서 고맙다.

두어 시간동안 깔깔거리며 봤지만, 의미 있는 작품이다.
기분 좋게 2권을 기다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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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다 괜찮다 - 공지영이 당신에게 보내는 위로와 응원
공지영.지승호 지음 / 알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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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읽을 책들이 있었는데도 삼 일동안 이 책만 들고 있었다. 사실 제목이 좋아서, 나를 위로해주는 것만 같아서 다른 책들보다 곁에 두었던 것 같다. 요새 힘든 일이 많아서 위로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읽는 내내 행복했다. 이 사람이 질투난 적은 한 번도 없었고(사실 굉장히 힘들게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 오히려 내가 공지영이란 작가를 다독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라는 강바닥에 돋아난 바위들을 고스란히 헤치며 흘러가는 강물처럼,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녀는.

괜찮다, 다 괜찮다.

그녀는 나에게 얘기해주고, 나도 그녀에게 속삭여주는, 따뜻한 가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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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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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이틀이 지났다. 비로소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책표지를 쓰다듬어본다. 위대한 작품, 감히 소설 앞에 위대하다는 수식어를 붙여본다. 어울린다. 나는 절대 성취할 수 없을 것 같은 것을 코맥 매카시는 만들어냈다. 나 뿐만 아니라 이전의 누구도 만들어내지 못했던 것을 그는 그렸다.

<로드>의 가장 큰 성취는 '세계'다. 나는 대단한 소설을 평가할 때, 그 소설이 갖고 있는 세계를 본다. 그것이 확고하고 명징할 때, 종이 위의 검은 기호에 불과한 것들이 비로소 단단한 육체를 획득한다고 믿는다. 인물이나 문장은 물론 그 다음이다(때때로 인물이나 문장이 고스란히 하나의 세계일 때도 있다. 김훈의 문장이 내겐 그랬다). <로드>의 세계는 무언가에 의해 멸망해버린 문명으로부터 출발한다. 잿더미가 된 도시 위에 단 두 사람이 있다. 아버지와 아들. <로드>는 그들에게 이 세계를 던져준다. 그곳은 내가 본 곳 중 가장 구체적인 멸망이 있는 세계다. 그곳은 "재의 큰 파도들이 위로 솟구쳤다가 광야를 거쳐 멀리 쓸려내려가는" 곳이며, "해안 평원의 강들이 황무지가 된 농장들을 가로지르는 납빛 뱀처럼 보이"는 곳이며, "하루하루가 헤아림도 없이 달력도 없이 진창을 기어가듯 지나가는 곳"이다. 그리고 그 곳은 내가 본 세계 중 가장 비현실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존재감 있는 세계다. 그 존재감이 이 소설을 한 차원 높은 곳으로 격상시켜준다.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책을 읽은 뒤에도 이 소설을 떠올리는 동안만큼은 결코 누구도 이 세계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로드>에서 빛나는 다른 것은 '문장'이다. <로드>의 문장은 모래주머니를 연상시켰다. 그것은 매우 무겁지만 다행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무거웠다. 안 된 일이지만, 아마 어떤 사람들은 감당하지 못하고 중간에 내려놓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대부분 여백을 기다렸기 때문일 것이다. 로드의 문장에는 여백이 없다. 생각할 시간도 없다. 그냥 문장이 있고, 또 문장이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멸망한 세계를 가장 잘 떠받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임무는 작가가 지시했다기 보다, <로드>를 구성하는 세계가 지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어떤 문장들은 그것을 쓰는 작가마저도 질식시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단단하다. <로드>의 문장에는 타협이 없다. 그것이 독자든, 작가든. 그저 멸망한 세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잿빛 문장들일 뿐이다.

<로드>의 감동은 '살아남은 두 사람'에게 있다. 남자와 소년. 그들은 <로드>의 세계와 정면으로 맞서는 인간이다. 음식물을 싣고 나르는 한 개의 카트와, 두 발의 총알을 장전한 한 정의 권총이 그들의 전부다. 세상은 멸망했고, 문명은 붕괴되었고, 살아남은 이들은 다른 이들을 살육해 잡아 먹는다. 지구에 단 한 사람이 살아남을 때까지 절망은 계속될 것이다. <로드>의 세계에는 희망이 없다. 신도 없고, 당연히 구원 같은 것도 없다. 남자와 소년은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로드>라는 이야기의 바깥에서 이 세계에 도전하기 위해 온 것만 같다. '남자'는 문명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는 이 세계가 변하지 않을 것을 안다. 그는 이 지긋지긋한 절망을 끝내고 싶다. 그는 죽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걷는다. 남쪽이라고 부르는 목적지에 도착해도 결국 그에겐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는 걷는다. 다만 자신의 아들을 이 세계에 혼자 남겨둘 수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 구하고자 하는 인간이 있다는 것은 어느샌가 자신의 목숨 이상으로 존재하게 된다. 반면 '아들'은 문명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소년은 늘 자신과 같은 인간의 존재를 그리워한다. 낯선 사람을 만나도 소년에겐 잡아먹힐 것이라는 두려움보다, 동정심과 반가움이 앞선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소년이 숲길로 도망가지 않는 것은, 그가 <로드>가 만들어낸 세계보다 '인간'을 선택한다는 의미에서 빛나는 장면이다. 완벽한 절망의 세계에서 결국 인간은 인간을 구원할 것이다.

<로드>를 떠올리면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나,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가 연상된다. 그러나 이들과 비교하지 않겠다. 그것은 이 작품들에게는 물론이고 <로드>에게도 큰 실례가 될 것이다. 항상 위대한 것들은 단지 그것으로 빛나는 역사를 이뤘다. <로드>는 <로드>다. 그것이 내가 이 작품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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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Quinta Camera 라.퀸타.카메라
오노 나츠메 지음, 심정명 옮김 / 애니북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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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노 나츠메, 일본에선 꽤 이름을 날리고 있는 신인 만화가라고 한다. 오늘 그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 일단 굉장히 느낌이 좋은 만화구나, 하는 생각.

'라 퀸타 카메라'는 이탈리아어로 '다섯 번째 방'을 뜻한다. 즉 이탈리아가 배경이고, 다섯 개의 방을 갖고 있는 게스트 하우스가 공간이다. 책표지의 소파에 편하게 걸터앉은 네 명의 남자가 주인공이고, 다섯 번째 방은 방안 가득 온기를 품고 바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이 만화에는 불필요한 치장이 없다. 때로는 너무하다 싶게 깔끔하다. 그려나가는 선이 굉장히 평면적이고 단순하다. 뒷배경은 거의 흰색처리. 아무래도 인물이 강조되는 그림이다. 전체 구조도 이야기보다는 인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느낌이 좋다고 생각했던 건, 그 인물들이 너무 사랑스럽고 따뜻하다는 점!

절제되고, 정재된 여백에서 소란스럽지 않게 쉬고 싶다면, 바로 '라 퀸타 카메라'다.

당신을 외롭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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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 2008년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백영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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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얼마 전 종영된 '온에어' 폐인이었다. 송윤아와 김하늘을 넋놓고 보고 있노라면 한 시간이 일분처럼 갔다. 키작고 주름 많은 것만 빼면 이범수도 너무 좋았고(물론 '각하용하'는 완전 느끼, 내가 여신처럼 떠받드는 송윤아와 절대 맺어지지 않기를 끝까지 응원했다). 주연 배우들의 열연도 좋았지만, 방송을 16회까지 보게 만든 건 방송국 드라마 만들기의 생생함 때문이었고, 순간순간이 주는 재미 때문이었다. 그리고 책은 절대 드라마만큼의 재미는 줄 수 없겠구나, 낙담하기도 했다.

그런데 '스타일'을 보면서 소설도 드라마보다 재미있을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물론 '대중적인 재미'를 얘기하는 것이다. 시청자이기 전에 애독자로서 나는 꿈꾸고 싶다. 한 시간동안 눈을 떼지 않고 TV를 보는 것처럼, 그 많은 사람들이 눈을 떼지 않고 소설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희망, 꿈꾸면 안 될까?

욕을 먹는 건 '세계문학상'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문학적'이라고 할 만한 코드가 약하다는 것은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하지만 대중적인 문학이라는 점에서 나는 100점 만점에 100점 준다.

솔직해지자. 이 책, 진짜 재밌다. 문장도 된다(좋다는 말은 안하겠다. 하지만 '진시황 프로젝트'처럼 엉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 읽는 동안 참 많이도 나를 웃겼다. 개인적인 바램이겠지만, 100점 만점 받은 재미로 책 안 읽는 사람들에게도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내 오른손은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응원하겠지만, 왼손으로는 '스타일'을 응원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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