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둑 1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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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둑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선 색깔, 그 다음에 인간, 나는 보통 그렇게 본다. 적어도 그렇게 보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죽음을 나르는 신'의 이야기입니다. 사신이 가장 아끼는 한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그 소녀가 쓴 '책도둑'이라는 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철학적이며, 사색적입니다. 말과 말 사이에 큰 여백이 있었습니다. 여백에서 여운이 빗방울처럼 제 뺨에 튀겼습니다. 사신의 말투는 낯선 문장이었습니다. 30페이지에 달하는 프롤로그를 읽고 났을 때, 이미 그 문장은 중독성을 띠고 있었습니다. 책등을 천천히 쓰다듬고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또한 '리젤 메밍거'라는 한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독일의 가난한 마을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한 소녀가 겪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하면서도 찬란한 유년의 성장에 대한 기록입니다. 끔찍하면서도 찬란할 수가 있을까요? 이것은 제 생각이 아닙니다. 이 쯤에서 사신의 문장 하나를 인용해야겠습니다.

나는 어떻게 똑같은 일이 그렇게 추한 동시에 그렇게 찬란할 수 있냐고, 말이라는 것이 어떻게 그렇게 저주스러우면서도 반짝일 수 있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이것은 또한 '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책'이 외로운 한 소녀에게 어떤 의미인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어떤 의미로 놓여져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책도둑'에서 책은 이와 같은 상징으로 표현됩니다. 

책도둑은 이렇게 끝납니다.

나는 나를 떠나지 않는 인간들에게 시달린다.

저는 책도둑이 되어야 했던 '리젤'에게, '리젤'이 훔친 열 권의 책에게, 또한 '리젤'이 들려준 폭격 속의 낭독의 밤에게, '리젤'의 목숨을 구한 마지막 책에게 한 동안 시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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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복 교수의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 1 - 와인의 세계
이원복 글.그림 / 김영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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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수도원 근처에 왜 포도밭이 많은지 아세요? 세계에서 제일 비싼 와인이 얼만지 궁금하세요? 와인을 어떻게 만드는지 들어보셨나요? '파리의 심판'을 아세요? 칠레가 현존하는 유일한 프랑스 포도나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아셨나요? '보르도'지방이 왜 유명한지 궁금하세요? PP포인트가 와인가격에 미치는 영향은요? 정말, 좋은 와인을 어떻게 고르는 지 궁금하세요? 저는 이 책을 읽고 말해주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이 생겼답니다.

'먼나라 이웃나라'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고 다시 만난 이원복 교수! 역시, 그의 글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재미있을 뿐더러, 무한한 지식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환갑이라는 나이를 무색케하구요.

와인의 역사부터, 와인 만드는 법, 품종, 와인에 얽힌 비화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지식입니다. 초보자부터 소믈리에까지 모두가 봐도 유용한 책입니다. 단 한 권의 와인책을 고르라면, 단연 이것입니다. 저는 지금 와인바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상태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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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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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어 본 인도문학입니다. 21개국이나 번역됐다고 하니, 인도문학 중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편인 것 같습니다. 인도의 본격문학인지는 모르겠지만, 내용은 대중적입니다.

Q&A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조금 짬뽕 같은 작품입니다. 작품성도 갖추었고, 흡인력도 있고, 캐릭터도 살아있고, 재미도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걸 갖추었다고 하기에는, 부산스럽습니다. 여러 장르적 특성이 섞여서 미친 듯이 질주합니다. 이게 인도문학의 특징일까요. 아시는 분은 대답 좀;;

주인공 '람 모하마드 토머스'는 고아로 태어나 인도의 가장 낮은 계급으로 살아가는-아마도 불가촉천민이 아닐까 의심되는- 열 여덟의 접시닦이 청년입니다. 그런데 우연히 참가한 퀴즈쇼에서 사상 최대의 상금을 받게 됩니다. 무려 10억 루피(!)라고 하는데요.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인지를 모르겠습니다. 방송국과 부패경찰이 퀴즈쇼가 방송에 나가기 전, 주인공을 붙잡아 가두어 취조합니다. 물론 퀴즈쇼를 취소할 계획으로 말이죠. 나쁜 놈들! 어딜 가나 있는 악당들!

그런데 정체 모를 한 여성 변호사가 자신을 구해줍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서 변호사는 주인공이 어떻게 퀴즈쇼에서 우승했는지 이야기해 달라고 합니다. 총 12문제, 그 12문제를 푸는 과정에 대해서 말이죠. 사실 고아에 접시닦이가 무슨 상식을 많이 알겠습니까. 그가 정답을 다 맞출 수 있었던 건 정말 우연히 그가 살아 온 이력과 퀴즈 문제가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억지스럽다구요? 한 번 읽어보세요! 얼마나 기구하면서도 자연스러운지! 그리고 얼마나 엄청난 반전이 숨어있는지! 참고로 반전은 세 번입니다. 저는 하나 밖에 맞추질 못했답니다 ㅡ.ㅜ 나중에 알고서는 잠깐 책을 덮고 망연해졌습니다.

Q&A를 읽고 나서 다른 인도 소설에도 관심이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도 소설은 거의 없더군요. 종교적 색채가 짙은 '붓다'나 '술탄'에 관련된 것이 전부입니다. 다른 인도소설, 어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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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field 2008-01-07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참 재밌게 쓰시네요~ 발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인도의 영화들 보면, 그야말로 '미친듯이 질주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데, 인도문학마저 다 그런 건 아닌 거 같아요^^ 물론 (아, 넘 재밌게 봤습니다ㅋㅋ)는 정말 '질주하는' 느낌 맞는데, 이는 철저히 대중문학을 표방한 작품이라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살만 루슈디의 작품이나, V.S Naipaul의 작품을 읽어보면, 이처럼 진지하고 사색적이고 '날'이 서 있는 작품도 없지요.. 인도 사회 특성상, 배웠다 하는 지식인들(작가, 정치인, 교육자 등등)이 대개 영국에서 유학을 해서 그런지, 작품 세계도 인도 토속적인 부분보다는, 서방국가의 인도 이민자 2세, 인도 유학생 등 타국생활에서 인도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다룬 게 많은 듯해요..^^(여기까지 개인적 의견이었습니다^^) 저도 인도 소설이 국내에 많이 많이 소개되었으면 좋겠어요-

readersu 2008-01-08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짬뽕 같은 작품이라니, 세 번의 반전이라니, 인도문학이라니, 리뷰가 매우 재미있습니다. 카트로 손이 가게 만드는군요!
 
포지셔닝 - 20주년 기념판, 잭 트라우트와 앨 리스의 마케팅 클래식
잭 트라우트 & 알 리스 지음, 안진환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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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셔닝'은 마케팅에 관련된 고전입니다. 나의 기업을, 또는 나의 제품을 어떻게 포지셔닝할 것인가, 에 대한 이야깁니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이야깁니다. 이 이야기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같은 저자의 '마케팅 불변의 법칙'을 먼저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마케팅 불변의 법칙' 44p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제품은 환상에 불과하다. 객관적인 실체란 없다. 실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최고의 제품이란 것도 없다. 마케팅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것은 소비자나 잠재 고객의 마음 속에 담겨 있는 인식이 전부이다. 인식만이 실체이다. 다른 모든 것은 환상일 뿐이다." 

'마케팅 불변의 법칙'도, '포지셔닝'도 결국 이 문장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다면, 당신은 축복받은 것입니다. 저는 아주 여러 번 생각했으니까요.

'포지셔닝'은 위의 연장선상에서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행동하려고 하는 '어떤 것'을 대상에게 어떤 이미지로 인식시킬 것인가" 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에 대한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하인즈 케찹이나 아이팟 등의 제품에서부터 몬산토와 같은 기업, 벨기에와 같은 나라, 가톨릭 교회와 같은 단체까지, '포지션'이 가능한 모든 것에 대한 방법론입니다. 그리고 방법은 매우 구체적이고 유효합니다.

그런데 '포지셔닝'은 자세히 읽어보면 원래 세상 어느 곳에나 존재해 있었던 개념입니다. '나'라는 주체가 자식으로서, 배우자로서, 기업인으로서 어떻게 위치할 것이냐 하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매우 광범위한 개념입니다. '나'를 인식하는 대상도 결국 내가 어떤 방법으로 나 자신을 '포지셔닝'하느냐에 따라 나를 평가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포지셔닝'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방법론입니다. '내부'로부터의 평가를 배제한, '외부'로부터의 평가에 대한 대처 방안인 셈이지요. 이 책을 추천합니다. 단, 행복의 주체는 '내부'로부터의 평가가 아닐까요. 별 하나를 뺀 이유는 그것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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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먹다 -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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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여러 인물들이 주인공입니다. 마치 연작소설처럼, 챕터마다 화자가 바뀝니다. 바뀐 화자들에겐 여러 가지의 사건들이 생깁니다. 때로는 살인사건이기도 하고, 사소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보이건 주인공들에겐 격랑과도 같은 한 때입니다.

사실, 산다는 건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살인과도 같은 대단한 일이든, 집안에 굴러다니던 도자기를 깬 대단찮은 일이든, 인생의 주인공인 '나'에게 인생 자체는 항상 큰 파도가 휘몰아치는 격랑의 현장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번을 울다 웃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추측만 가지고도 화가 나거나 웃음이 납니다. 그리고 아무도 나를, 나의 내심을 온전하게 바라봐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는 늘 두렵습니다.

이 소설은 그런 인간의 두려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또 하루는 지나갑니다. 마음 속에 부는 폭풍을, 그 엄청난 힘을, 따뜻함을, 외로움을, 참담함을, 빛남을 우리는 타인과 나누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외롭습니다. 그런 '인간'에게 바치는 소설 같습니다. 작가가 '사건'이 아닌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인간'에게 소설책 한 권을 고스란히 헌정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이번 문학동네 소설상도 새로웠습니다. 인간을 정면으로 '직시'했을 때, 이야기는 이렇게 흘러간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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