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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아픈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 시인 김선우가 오로빌에서 보낸 행복 편지
김선우 지음 / 청림출판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시인 김선우가 인도에 있는 작은 '오로빌' 이라는 마을을 다녀온 후에 쓴 여행에세이다.

몇 년 전 저자는 인도로 여행을 갔다가 공항에서 빼먹고 온게 있는 듯이 4시간에 걸쳐 '오로빌' 이란 마을에 갔다가, 오로빌의 초입에서 눈 도장만 찍고 다시 되돌아 온 적이 있다고 한다.  다시 4시간에 걸쳐 공항으로 되돌아오면서 언젠가 다시 꼭 오리라 하는 마음을 먹게 했다. 
 

몹시 궁금하면서도 서둘러 가고 싶지는 않았던, 퍽 이채로운 머뭇거림을 요구한 곳. 오로빌은 매혹이면서 한편으론 그곳을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절 인연'을 기다리라는 암묵적인 텔레파시를 보내는 특이한 여행지였다. (p9)
 

아껴두고 나중에 먹으려고 간직해온 맛있는 음식 같은 여행지. 
저자에게 '오로빌'은 그런 여행지였다.


내면과 영혼을 중요하게 여기며, 자신의 내면을 단련하기 위해 수련하고 명상하며 사는 삶을 택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 생태적인 삶을 지향하는 공동체의 마을.  크게 이 두가지의 특성으로 오로빌을 표현할 수 있겠다.  
 

이 마을에는 여행을 온 '게스트' 라 불리우는 사람들과, 오로빌에 정착해 살려고 마음먹고 적응 단계를 거치고 있는 '뉴커머' 라 불리는 사람들, 1세대부터 또는 그 이후 뉴커머 단계를 거쳐 오로빌의 주민이 된 '오로빌리언' 의 3개의 그룹으로 나눌 수가 있다. 
 

저자와 함께 오로빌을 둘러보며 우리나라의 '남이섬' 이미지가 자꾸 떠올랐다.  명상하며 자신을 수련한다는 내용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생태적인 삶을 지향하는 독립된 공동체의 이미지로는 닮은 듯 하다.  자연을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를 보존하려 애쓰며 사는 삶이 상쾌한 공기를 마시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눈다는 측면에서는 '공산주의' 이론이 떠오르기도 했다. 저자도 책에서 말하지만 지금까지 공산주의가 성공한 사례가 없었다.  오로빌에서는 함께 생산 하고 필요한 것을 함께 나누며 사는, 공산주의의 이상적인 꿈에 자본주의의 일부를 절충해서 공동체를 이끌어 가고 있다.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는 오로빌에서의 생활은 참 이상적이다.  어떤 일이든 공동체 마을에 도움이 되는거면 하나의 직업으로서 인정을 받는다. 자격증이나 어떤 기준도 따로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고, 공동체에 필요하다고 여러사람이 느끼고 결정되면 그게 다다. 바깥세상에서의 직업과는 차원이 다른 것들도 있다. 직업이 생기면 오로빌에서 월급을 받을 수 있다. 그 월급으로 마을에서 생산된 유기농 먹거리와 옷 등을 소비한다. 의.식.주를 마을안에서 모두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오로빌 내에서 100% 자급자족은 아직은 힘들다고 한다. 그 목표를 위해 '오로빌'은 지금도 계속 진화중이다.

 
저자가 만난 특이한 직업으로 '오로컬쳐'를 만난 일은 환상적이면서도,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신기한 직업이라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오로컬쳐가 하는 일은 떨어진 꽃을 주워 한 곳에 모아두고 거름을 만드는 일이다.  

 
웃기지 않는가. 생각해보라. 이런 일이 월급을 받는 '일'로서 존중받는다는 것. 떨어진 꽃을 주워 이른바 '꽃거름'을 만드는 일은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일이다. 매일 한 켜씩 쌓는 꽃 만다라는 하루가 지나면 밑에서부터 조금씩 가라앉는다. 우물 속의 제일 아래쪽은 꽃들이 썩고 발효하면서 따듯한 열기를 내고, 위쪽은 오늘의 꽃이 놓이고, 매일 조금조금 한 켜씩 퇴적하고... 그리고 꽃이 거름으로 변할 때까지 기다린다.  (p61)

 
꽃거름. 이름도 예쁘다.  향기로운 직업이 아닐 수 없다.  우리사회의 시각으로 보면 한주먹의 꽃거름을 얻기 위해 들어가는 노력은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로 참으로 한심한 일을 하고 있는거다. 하지만 오로빌은 오로컬쳐의 일을 귀하게 여긴다.  오로컬쳐도 자신의 일에 정성을 들이고 신성하게 작업에 임한다. 

 

공동체의 삶이 주는 여러가지 혼잡함과 애매함들. 자칫 무질서해 질 수 있고, 이기적으로 치닫을 수 있는 점들이 리더보다는 팔로어의 삶을 살아온 내게는 머리아프고 복잡한 것처럼 보였다.  뭔가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만들어진 길위를 걷는 게 자연스럽고 편안한 나는 지금의 현실이 주는 안정적이고 질서가 잡힌 생활이 더 좋다. 편안하고 몸에 익숙하다. 
 

물질이 풍요롭지도 않고, 너무 덥거나 많은 비가 내리는 등 기후도 좋지 않은 이 '오로빌'을 여행한 사람들이, 오로빌을 경험한 사람들이 바깥 세상이 주는 편리함과 풍족함을 버리고 다시 찾아온다.  다시 돌아온다.  그들은 왜 다시 돌아오는 걸까?  체감하는 삶의 질, 헌신하는 삶이 주는 기쁨과 삶의 만족도가 그들을 다시 돌려세우고 있는 건 아닐까.
 

한번은 꼭 가보고 싶은 '오로빌'이 되었다. 딱 한달만 살아보고 싶은 여행지가 되었다.
자기 자신을 버리고 타인을 배려하면서 사는, 헌신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졌고,
숲속에서 나는 푸른냄새와 자연의 소리들이 듣고 싶어졌다. 


웰빙을 꿈꾸는 사람들의 머리속 이미지가, 이들 오로빌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과 닮아있다.
오로빌리언들은 모두가 웰빙을 꿈꾸었던 사람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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