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립자 열린책들 세계문학 34
미셸 우엘벡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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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후반에 나온 책이다. 2000년대 후반인 지금의 현실과도 아주 비슷한 게 놀라울 따름이다. 몸이, 특히 젊은 몸이 이상화되는 것은 거의 똑같다. 허벅지가 건강해보인다는(진짜 이유는 뭐였더라... 아무튼 기분 나쁜 이유였는데...?) 이유로 꿀이라는 접두사가 붙고, 소녀들이 나와서 엉덩이를 흔드는 것도 지금은 아주 익숙한 풍경이다. 

책 표지 뒷면에 쏟아진 찬사를 보면 "다른 소설들이 토끼를 사냥하고 있을 때 이 소설은 거대한 사냥감을 노리고 있다. - 줄리언 빈스" 라는 것이 있는데, 나도 이 말이 가장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쉽게 쉽게 읽히는 흔한 소설과는 달리, 읽는데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과학, 철학, 종교, 성.... 이 모든 것을 다루었지만, 사실... 다 이해가 가는 건 아니다. 다만 자본주의, 성의 해방이 원래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자들에게만 더 유리해졌다거나, 젊고 아름답지 않은 몸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지금 상황이랑 딱 맞는 것 같아서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소설은 논문이 아니므로 이런 얘기를 주제별로 줄줄 한 것은 당연히 아니나니! 큰 줄기를 이끌어나갈 주인공은 어떤 형제다. 그것도 아버지가 다르고 아름답고 자유분방한 어머니를 둔 형제. 이 조건만 봐도 두 사람의 자아형성이 쉽지 않았으리라는 촉이 오지 않는가.  

나중에 이름을 제인을로 바꾼 자닌은 너무나 아름다운 여자였고 전쟁 후에 크게 바뀐 변화에 적극적으로 응했다. 그 전에 털복숭이 원숭이처럼 생긴 의사 사이에서 형 브뤼노를 낳았고, 신여성(?)이 된 후에는 유능하고 잘생긴 다큐멘터리 감독 사이에서 미셸을 낳았다. 다만 그녀는 제 자식들을 방치해버린 것이 문제였다. 책임감은 강하지 않지만 그래도 죄의식은 있었던 아비들은 각자의 어머니에게 맡겨버리고, 형제는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게 된다. 

태어나서 부터 어미의 손을 타지 못한 형제는 성에 대한 대응방식이 무척이나 다르다. 형 브뤼노는 성에 과도한 집착을 하는데, 아버지를 빼닮은 외모로 시장(?)에서 경쟁력은 그리 뛰어나지 못하여 항상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전전긍긍하는 인물이다. 반면 미셸은, 사후에 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되는- 태생적으로 순수히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역시 아버지를 닮아 잘생긴 외모에도 불구하고 성에는 도무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모름지기 5살까지가 인간의 성격을 형성하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심리학에서는 침을 튀겨가며 강조하여, 아기 때에 엄마의 행동이 그렇게 중요한지는 알겠는데.... 이 형제의 반응은 이렇게 다른 것을 보면 결국은 천성인가?? 

작가가 하려는 말은, 당연하겠지만, 이런 건 아니다. 서구의 몰락(작가는 확실히 지금의 세태에 대해서 이렇게 보는 것 같다.)에 동참하거나, 혹은 동참하지 않는 개인도 어쨌든 사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 그것이 제목 '소립자'가 뜻하는 것은 아닐까.  

소립자는 과학용어인데 물질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한다. 원자 같은 건가... 소설 안에 나오는 과학에 관한 얘기는 부끄럽게도 거의 이해하지 못 했는데, 그냥 이것이 뜻하는 바는 개인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특히, 두 형제 중에 비교적 멍청하게(?) 느껴지는 브뤼노의 경우, 그 욕망이 사회의 욕망과 매우 흡사한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헷갈리는 것은 소립자의 성질이 물질의 성질을 결정하는 것인지, 물질의 성질이 소립자의 성질과 그저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런... 과학을 모르니. 정말 너무 치우치게 공부하며 살아왔구나..쩝! 

최근에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사탄스러운 엽기적인 범죄들은 정말 세상이 몰락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하게 만든다. 실제로 사탄숭배자라는 집단은 정말 사탄이라는 어떤 영적인 존재를 신봉한다기 보다는 물질숭배(페티시즘)와 섹슈얼리티의 숭배의 결합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오 하나님 맙소사. 

나도 내 욕망이 그저 사회의 욕망에 따라 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반추해보며 리뷰를 마친다. 

 

그냥 덧붙이는 말) 열린책들에서 나오는 미스터노 세계문학은 정말 쵝오! 일단 다양성의 측면에서 소설의 선정은 두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책의 무게와 크기가 감동스럽다. 가벼우니 얼마나 좋냐구요. 요즘 말하는 '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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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읽는 노인 Mr. Know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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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주에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소설을 반쯤 읽고 연애 소설의 읽는 노인에 우리 할아버지를 대입해서 읽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였을 때 말고 이렇게 가까운 친척이 돌아가신 것은 처음이다. 다음날 교수님께 일방적인 메일을 보내고 옷가지들과 일기, 그리고 가방에 들어있던 이 책을 들고 함안까지 버스를 타고 내려갔다. 아침에 처음 부음을 들었을 때는 발작적으로 눈물이 났는데 하루 학교에 갔을 때는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 

엄청 불경한 말이지만... 고속버를 타고 혼자 내려가는 길은 학교를 빼먹었다는 해방감과(그것도 합법적으로!) 미뤄두었던 잠을 자는 시간, 또 오랜만에 혼자서 여행하는 기분과 더불어 꽤 즐겁기도 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는데 이미 첫 날 한바탕 울어서 그런지, 워낙 노인들이 많아 그런 데에 무덤덤해지신 건지, 호상이라 생각되서 그런건지, 주변은 온통 먹고 마시는 분위기여서 혼자 화장실에서 울어야 했다. 

................. 연애 소설읽는 노인은 아마존 부근에 살며 마을에서 가장 정글을 잘 아는 사람으로 통한다. 노인이 젊었을 때는 이름이 무진장 긴 여인과 결혼도 했었다.(톨스토이 소설을 읽다가 이름때문에 쉽게 포기하곤 했었는데, 중남미 소설도 장난아니다.) 둘 사이에 아이가 들어서지 않자 마을 사람들의 소문에 휩싸여 마을을 나오게 되고, 둘은 직사리 고생을 하다 수아르 족과 친구가 되면서 정글의 법칙 같은 것을 알게된다. 독사에 물려서도 살아남고 아주 큰 뱀 2마리를 사냥하기도 한 그는 그들사이에 -그는 인정하지 않지만- 최고의 무사(?)가 된다. 그러던 중 부인을 잃게 되고 불행한 일이 자꾸 생긴다.  

...............문명이란 이름으로 계속 밀려오는 양키와 노다지 꾼들. 그로 인해 죽어가는 동물들과 아마존, 원주민. 양키에게 친구를 살인한 복수를 하러간 젊었던 시절의 노인은 생각보다 완력이 컸던 나머지 당황하여 그를 총으로 쏴 죽이고 만다. 수아르 족의 믿음을 배반한 -복수를 할 때에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화살로써 복수를 하면 그가 평온하게 죽어서 괜찮지만, 총같은 걸로 쏴 죽인 양키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어서 그의 친구는 구천을 떠돈다고 믿었다.- 노인은 방문만 할 수 있을 뿐 같이 생활할 수 없게된다. 

................그렇게 비참한 일을 겪고 즐거움없이 살던 노인은 어느 날 자신이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리고 가끔 들어오는 치과의사는 노인을 위해 연애소설을 가져다 준다. 아름다운 연애 소설을. 

................그는 글을 읽을 줄 알았다. 그는 늙음이라는 무서운 독에 대항하는 해독제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읽을 줄 알았다. (72p.) 

................그즈음에 양키와 노다지꾼이 죽임을 당한다. 땀을 계속 흘리는 면장은 원주민들의 의심하지만 노인은 그건 살쾡이의 습격이라고 말한다. 새끼를 잃어버린 암살쾡이의 습격이라고. 원래 사냥을 하면 안 되는 시기에 그걸 몰랐던 외지인들은 가죽을 얻으려고 사냥을 했던 것이다. 분노에 찬 암살쾡이는 계속해서 인간에게 습격을 한다. 노인과 젊은 사람들, 면장은 그 놈을 찾아 나섰다가 결국 노인에게 그것을 맡기고 마을로 사라진다. 

................노인은 기억을 떠올린다. 큰 뱀 두마리를 사냥한 기억. 또 예전에 살쾡이에 대해 들었던 수아르 족 사람들에 조언. 그리고 그는 그 암살쾡이와 마주치고 정면 승부를 한다. 죽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숫살쾡이를 죽여주고 다시 자신을 노리는 그 암살쾡이를 총으로 쏴 죽인다. 그는 인간이 만들지 못 한 그 아름다운 생명을 보고 반성의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편안히 연애소설을 읽을 수 있는 집을 향해 망신창이 된 몸을 이끌고 간다.   

...............만약 이 책이 언어 문제집에 나왔다면 이렇게 분류했을 것이다. [노인, 오두막, 암살쾡이, 아마존, 수아르 족 = 자연/ 면장, 양키, 노다지꾼들, 술집, 총 = 문명] 이렇듯 소설은 명료하다. 게다가 문명을 뜻하는 것은 무조건 부정적인 것임에 틀림없고. 

...............중남미 소설은 참 생소하고 매력있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듯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아마존, 정글하면 야생적이고 원시적인 느낌이 드는데 또 원주민은 자연 친화적인 느낌이 들고. 구도가 자연과 인간의 대립을 보여주는 것이니 더더욱 그럴 수 밖에.  

...............연애소설 읽는 노인의 독서법이 무척 흥미롭다. 요즘 '슬로리딩' 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 노인의 독서방식은 그것에 부합한다. 언어를 하나하나 곱씹듯이 또박또박 읽어나가는 노인을 모습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이렇게 독서하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이는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불과 일주일 전 만해도 살아계셨던 할아버지. 내일이 딱 일주일이 된다. 뭐 할아버지는 연애소설은 읽지 않으셨지만 책을 꼼꼼히 읽으셨고, 소설의 노인과 비슷하게 농부로써 자연친화적인 삶을 사셨다.  

화장을 하고 땅에 들어가신 할아버지를 보고 온 후는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워낙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엄마 목소리도 못 듣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계속 마음이 찜찜했는데... 소설 속의 노인도 오두막에서 연애소설을 실컷 읽다가 평안하게 살다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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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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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고전이 읽고 싶어져 몇 권 샀다. 발음하기도 기억하기도 힘든 러시아 작가가 쓴 [롤리타]는 사실 작년에 산 책이었다. 도대체 롤리타, 로리타 하는 게 뭔가 해서. 

예상과는 달리 저급하거나 재밌는 내용은 아니었다. 작년에 거의 다 읽었다가 포기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이 놈(?)을 정복하리라 하며 꾸역꾸역 읽었다. 그리 가독성이 좋은 책은 아니다.

책을 읽기전에 제목만 보고 편견이 있었다. 롤리타? 어린 애들만 밝히는 아저씨들 얘기 아니야? 요즘도 연예계에 롤리타 콤플렉스니 뭐니 하더니.. 작년인가 무대에서 신나게 깜찍한 엉덩이를 흔드는 원더걸스의 소희가 중학교 졸업식을 한 영상을 보고 정말 요즘은 젊음이 권력이 맞구나 하는 생각까지 했더랬다. 보통 사람들은 대게 중학교 시절이 가장 예쁘지 않을 시절인데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그녀가 사실은 부럽다. 눈 찡긋 하나에 남자들이 우르르 넘어가는 것은 유치하지만 여자라서 행복한 상황임은 분명한 것이다.  

상관없는 얘기는 그만하고 다시 소설에 대해 말하자면, 소설[롤리타]의 처음과 끝은 롤리타를 부르면서 시작하고 끝난다. 오 롤리타!   

왜 그렇게 롤리타를 애타게 부르냐면 그녀는 화자 험버트의 딸이자, 애인, 첫 사랑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유일한 상대, 또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험버트는 앞서 말했듯, 첫 사랑에 상처가 있는 불행한 남자다. 12살 정도에 경험했던 첫 사랑은 그 열기가 체 가시기도 전에 소녀가 병으로 죽는다. 그리고 그는-결혼은 두 번이나 했지만- 평생 그 나이대의 여자애들에게만 사랑에 빠지게 된다. 

롤리타-본명은 돌로레스 헤이즈-는 두번째 부인의 딸이다. 처음부터 소녀의 엄마보다 소녀의 약간 천박하고 퇴폐적인 눈빛에 빠져 그 엄마하고 결혼도 감행하게 된 것이다. 소녀의 매력을 질투한 엄마는 소녀를 계속 그에게 떼어놓으려 하고, 소녀가 캠프에 간 사이에 험버트의 일기장을 보고 만다. 롤리타를 찬양하는 내용이 가득 적힌 일기장을 보고 충격을 받은 소녀의 엄마는 우편물을 부치려고 달려나간 새에 사고를 당해 죽는다.(작품을 쓸 때 인물을 죽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 교통사고라고 했는데, 정말 유용한 팁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부터 억눌렸던 험버트의 광기는 시작된다. 약간 퇴폐적인 성향을 가졌던 롤리타는 처음엔 장난으로 그를 유혹하지만 그런 생활이 몇 달, 몇 년간 계속 되자 성격에 이상이 생기고 삶에 의욕도 잃어간다. 그리고 그에게서 도망친다. 

사립 탐정까지 고용해서 롤리타를 찾던 험버트는 이상한 답변만 돌아오자 포기하고 평생 롤리타를 그리워하며 살려고 한다. 대답없는 이름을 부르면서. 그러나 몇 년 뒤, 롤리타에게서 편지가 온다. 아빠 전 결혼했어요. 임신도 했는데 너무 가난해요. 아빠가 돈을 주면 알레스카로 갈 수만 있다면 우리 가족은 대박날텐데! 아빠가 돈 좀 주세요. 뭐 이런 내용으로. 

소총을 갖고 간 험버트는 배가 이미 불러 있는 롤리타를 만나서 그녀에게 결국 돈을 주고 그간의 이야기를 한다. 그 동안 그녀는 퀼티라는 감독에게 영화에 출연시켜 준다는 말에 빠져 포르노 영화에 이용만 당하고 허름한 동네까지 오게 된 것이다. 험버트는 마지막으로 부탁한다. 자신과 다시 풍족한 삶을 살지 않겠냐고. 그러나 그의 롤리타는 단호하게 그렇게 하긴 싫다고 말하면서 다시 퀼티가 불러주면 가겠다는 말을 한다. 험버트는 퀼티를 찾아가 소총으로 쏘아 죽인다.  

험버트는 파렴치한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고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격렬하고 자조적인 비애가 잘 표현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는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얼마나 나쁘고 파렴치한 놈인지. 난 쓰레기야! 를 백만번 외쳐봐도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취향이 문제인 것이다.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것 처럼 롤리타를 사랑하는 것은 그에게 거스를 수 없는 운명과도 같았으니까. 끝이 보임에도 멈출 수 없는 사랑에 그도 어찌 보면 피해자인 것은 아닐까. 독자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소설은 고전의 반열에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일방적이고, 거기에 광적이기까지한 사랑은 정말 모두를 힘들게 한다. 롤리타의 엄마와 그가 안 만났다면,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지 않았다면, 그가 롤리타에게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롤리타는 그렇게 불행한 임신과 결혼을 하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딴 얘기....... 왠지 공공장소에게 이 책을 읽기가 민망했다. 친구에게 [롤리타]를 읽는다고 했더니 내용을 궁금해했다. 뭐 대충 아저씨가 어린 여자애들 사랑하는 얘기 있잖아, 했더니 그게 왜 고전이냐며 엽기다, 했던 친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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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에이단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 생각과느낌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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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학교' 같은 드라마를 보면 참 이상했다. 아, 중고등학생은 저런 식으로 생활하는구나. 나도 저런식으로 성장하게 되나? 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방황하고 반항하는 10대. 그것이 내가 가졌던 '성장'에 대한 생각이었다.   

지금도 나이가 어린 편이지만 나의 10대는 정말 잔잔하게 흘러갔었다. 딱히 반항이 심했던 것도 아니고 일단 치열하게 고민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오히려 지금이 더 심난하고 고민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또 일탈이란 것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정해진 것 외의, 그 밖의 일은 거의 하지 않고 살았다. 

10대의 나는 참 보수적이는데.. 어른들의 규칙에 별 의문도 없이 잘 따랐던 나는 지금은 아주 방탕(?)하고 즐겁게 살고 있는 편이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다 놀랠 정도로. 억지로 누르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다시 1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할래?" 라는 설문조사에서 '공부'를 하겠다는 응답이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의아한 생각이든다. 아직 사회생활을 잘 안 해봐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다시 10대로 돌아간다면 심하게 놀아 볼 것이다. 차라리! 어정쩡하게 공부할 바에는.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는 놀랍게도 성장 소설이다. 나는 처음에 제목과 책의 재질을 보고는 환경운동에 대한 에세이일지, 페미니즘서인지, 이게 왜 소설 부분에 꽂혀 있는지 이상하게 생각했다. 책의 내용을 보면 [(내가 너보다 먼저 죽는다면)내 무덤에서 춤을 춰 주겠니?] 랄지, [핼, 내 무덤에서 춤을 춰] 라야 더 맞는 것이 겠지만... (일단 그들은 친구이니, 해라체는 너무 이상하다.) 내가 생각해도 참 어색한 번역이다. 번역가도 어려움이 컸을 듯. 

죽음이란 관념에 관심이 많은, 문학적 재능이 있는 소년 핼이 바다에 빠지게 된다. 약간 오지랖이 넓지만 따뜻한 매력의 엄마와 멋진 욕실이 있는 집에 살고 있는 배리가 그를 구해주는 것이 소설의 발단이다. 어릴 때 바보상자에서 본 '마법의 콩'과 우정의 이미지를 결부 시켰던 핼은 드디어 그 상대를 만난다. 그들은 계속 붙어다니며 폭주족과 나쁜 짓을 하기도, 취객을 도와주며 투닥거리기도 하고.. 아무튼 배리가 바람을 펴서 큰 싸움이 나고, 그것으로 오토바이 질주를 하다 배리가 죽게 되기 전에는 그들의 만남은 완전했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것이 고작 7주였지만.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들의 관계를 우정이라 규정하는 느낌이었지만-주인공은 확실히 헷갈리는 것 같았다- 그것이 과연 우정이었을까. 나는 사랑하는 관계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잤다는 사실도 그렇지만(이 작품 상에서는 동성애도 그저 하나의 사랑에 지나지 않지만, 혐오증이 있다면 읽지 않는 게 좋을 듯) 돌을 던져 거울을 깰 정도로 심한 질투를 표출하고 자신의 무기력함을 느끼는 것은 보통의 친구 관계와는 다른 점이 있다. 결국은 사랑은 우정보다 진하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혈기왕성한 10대 였기에 재밌는 일을 즐겨야 하고 극에는 역시 극적인 것이 필요하기에, 배리는 핼에게 자신이 먼저 죽으면 자신의 무덤에서 춤을 춰 달라고 부탁, 아니 강요를 한다. 그래서 저렇게 멋진(?) 제목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또 극은 극이므로 핼은 그의 무덤에서 춤을 추고, 배리의 엄마의 신고로 기소된다. 무덤을 훼손한 미치광이의 기사를 소개하며 소설은 시작해서 끝은 -스포일러 일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책을 읽다보면 자연히 예상되는 결말- 핼은 무덤에서 춤을 춘 이유를 선선히 불면서 풀려나는 해피엔딩(?)이다. 

눈물의 빵을 먹어본 적 없는 잔잔한 인생을 살아온 나로서는 공감이 잘 안 가고 참 소설이 라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었다. 소설이다 소설이야......... 

남들은 다 이렇게 성장통을 겪고 자라온 걸까. 나도 이제 뭔가를 만들어야 할까. 아무리 돌이켜봐도 내 인생의 극적인 순간이 있었는지 기억이 잘 안난다. 아니면 있는데도 기억을 잘 못하는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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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8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10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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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강이라는 이름은 그 전부터 많이 들었었지만 책을 읽은 결정적인 계기는 영화였다. 프랑스 영화가 아닌 일본영화. 그 유명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란 영화 말이다.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영화다.

이 리뷰는 영화 [조제....]로 써야할지 소설 [한달 후 일년 후]로 써야할지 망설였다. 아무튼 영화를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었다.

영화 [조제..]의 조제는 츠네오와 아주 쿨한 이별을 한다. 야한 잡지를 선물하면서. 밤이 되면 다시 돌아오는 사람을 배웅하듯이.

그녀는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달 후, 일년 후면 변하는 사람의, 아니 사랑의 속성을.

소설의 조제도 물론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조제는 본래의 이름을 버리고 조제로 살아가려고 했던 것이다. 너무나 현명한 두명의 조제의 모습이 어떤식으로든 유쾌해 보이지는 않은 까닭은 내가 사랑의 짦음을 슬프게 느끼기 때문일까. (이렇게 생각하면 미쳐버리게 된다고, 사강은 말한다.)

책 내용을 설명하자면, 출판사를 다니는 알랭 말리크라스와 그의 아내 파니는 월요일마다 살롱을 연다. 교양이 있는 모임이지만 사실 그들 부부는 젊은 사람들, 그들의 신선한 생기와 육체를 접하고 싶어 그 모임을 힘들게 유지한다. 알랭은 무명의 배우 베아트리스를 사랑한다. 

베르나르는 그 출판사를 기웃거리는, 알랭과 친분이 있는 소설가 지망생이다. 그는 부유한 이십대의 여성 조제를 사랑한다. 그렇지만 그녀는 지금 자크라는 어린 의대생 남자친구가 있는 상태이고, 베르나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지만 호감의 감정은 아직 지니고 있다.

베르나르와 알랭, 이 두 사람이 조제와 베아트리스를 사랑하는 것으로 소설은 사랑의 얄궂은 속성을 설명하려 한다. 조제는 앞서 말했듯 현명한 여자이고, 베아트리스는 야망이 크고 아름다우며 난폭한(물리적인 것은 아니다.) 성질을 지니고 있다.

알랭은 자신이 가지지 못하는 것을 잘 아는 것인지, 비겁하게 그의 조카인 에두아르를 베아트리스에게 소개시킨다. 베아트리스에 대한 사랑을 그런 식으로 충족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치만 그는 바에서 취해있었다. 에두아르가 버림받았을 때는 더더욱!) 베아트리스는 곧 미남인 그와 사랑에 빠졌지만 야망이 큰 그녀는 무능력한 그에게 금방 질려버린다. 대신 연출가 줄리오와 연애를 하며 알랭을 절망에 빠지게 한다.

한편, 베르나르는 조제에게 애인이 생긴 것을 알고 절망에 빠져 그만을 바라보는 아내 니콜을 방치하고 시골에 틀어박혀 글을 쓴다. (실은 조제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고, 임신한 그의 아내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니콜의 사정을 안 조제는 그를 설득하기 위해 그를 찾아갔지만, 그와 며칠 밤을 보낸다. 그렇지만 그들은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다시 모인 모임에서 베르나를 조제에게 말한다.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죠.....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독해지겠죠. 그렇게 되겠죠. 그리고 한 해가 도 지나가겠죠...." (p. 186)

현명한 조제가 대답한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러면 미쳐버리게 돼요."

사랑에 대해, 그것이 특히 자기 일이 되면 어리석게 구는 여자들이 참 많다. 그건 나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 상황 속에 들어가 있다면 못 느끼는 게 정상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현명한 여자가 참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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