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녀 창비세계문학 37
쿠라하시 유미꼬 지음, 서은혜 옮김 / 창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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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친상간이라는 소재를 다루려면 엄청나게 용감하든지 글을 엄청나게 잘 쓰든지 둘 중 하나여야 될 것이다. 동시에 몇 편씩 쏟아지는 막장드라마에 노출되어도 아직 이런 소재는 파격적이다. 불편하다는 뜻이다. 쪽수가 많지 않아도 읽는데 시간이 좀 걸렸던 것은 소재와 모호한 표현으로 술술 읽기가 좀 힘들었기 때문이다. 중반 이후까지도 '나'와 미키의 불행한 출생에 스스로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치기 어린 시설이 몹시 피곤했지만 나름의 반전으로 긴장감이 있었다.

사실 읽고 나서도 얼떨떨하고 스스로 뭘 느꼈는지도 잘 모르겠다. 사랑에는 여러가지 형태가 있겠지만 뒤 표지에 나온 것 같은 '성스러움과 악' 이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의구심이 가득하기 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나한테는 사랑이라는 것이 선악과를 따먹고 싶은 유혹으로 시작되는 개념이 아니라서 그럴 것이다. 스스로 어떤 소재에도 관대한 독자라고 생각했는데 근친상간을 성스러움으로 표현하려는 의도를 가진 이야기라니... 일년 중 기분이 젤 안 좋은 11월에는 바람직한 책읽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유미적인 문체도, 강한 개성도 커버하지 못할 만큼 우웩스럽다.


'나'는 어느날 신문에 난 사고기사에 몇 년 전 만난 '미키'라는 소녀를 떠올린다. 딸이 몰던 승용차가 트럭과 충돌 사고가 나서 조수석에 앉아있던 엄마는 즉사하고 딸은 기억상실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기사의 딸은 '미키'였고 '나'와 미키는 몇 년 전에 '나'가 친구들과 차를 훔쳐서 파티를 하려고 절도질을 할 때 만났던 퇴폐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소녀였다. 그 날 미키는 '나'에게 자신의 '파파'와 잘 계획을 고백한다. '나'는 애써 쿨한 척을 했지만 미키가 떠난 후 친구 '에스키모'와 계속 미키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에스키모'는 근친상간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그런 일은 거지나 세속을 등지고 사는 하류층 같은 사람들이 하는 사회악인데, 유럽의 상류층에서는 고급 취미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누나하고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나'와 누나는 하숙집을 운영하면서 파칭코에 빠져있는 할멈이 주워와 키우고 있는 남매인데(정확하지 않음) 둘은 서로 사랑하고 있다. '나'는 엄마인지 아닌지 정확하지 않은 뚱뚱한 여자를 별로 사랑하지 않고 가난한 태생을 '존재 자체의 비열함'이라면서 증오하는, 한 때의 코뮤니스트였다. 

'나'는 친구들과 수면제를 먹은 여성을 납치해 윤간한 사건으로 퇴학을 당하고 미국에 유학을 위해 입국을 신청해 놓은 상태였다. 미국대사관은 '나'의 코뮤니스트 활동에 대해 조사할 것이라는 답을 주었다. 미키는 기억을 잃은 채 공손한 목소리로 '나'에게 연락을 해온다. 그들은 일년전 미키의 전화 한 통으로 약혹을 한 상태였다. 노트를 보내 줄테니 내 기억이 되살아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노트에 씌여진 내용은 미키와 '파파'에 대한 것이다. 감정표현을 전혀 하지 않는 차가운 엄마와 거의 생활하는 미키는 엄마가 추천해준 치과에 간다. 노련한 의사인 '파파'는 미키를 희롱하듯 데리고 놀지만 미키는 이것이 싫지가 않다. '파파'는 아마도 엄마의 옛 연인. 미키는 '파파'의 담배로 집안에 담배 냄새를 풍기고 엄마와 같이 간 여행에서 그가 자신의 몸에 남긴 흔적을 엄마한테 과시하듯 보여주지만 엄마한테는 경멸을 당할 뿐이다. 어느 날 '파파'와 같이 호텔방에서 짐승같은 사랑을 나누고 그에게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한 미키는 일기에 적혔던 그 날 정말로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미키의 일기가 어디서부터 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거짓인지를 구별하지 못한다. 미키가 실제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셔 결혼을 하자는 말을 한 건 사실이지만 일기 속의 '파파'와 미키의 아버지인 실제로 방광암에 걸려서 시한부 인생을 사는 미키의 아버지 중 누가 일기 속에 '파파'인지 구별을 할 수도 없다. 일기가 소설일 가능성도 있었다. 문제는 미키가 기억을 상실했으니 본인에게 물어봐도 소용이 없다는 데에 있었다. 미키의 일기에서 느꼈던 미키의 방이나 친구 M을 실제로 마주한 '나'는 상상과의 괴리를 느낀다. 하지만 미키네 집에서 일하던 가정부의 흘리는 말에 '파파'인지 방광염에 걸려 누워있는 아버지인지 누군가와는 그런 식의 관계를 맺었던 것을 확인하게 된다.

미키가 기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동안 '나'도 미국대사관의 결정을 기다리며 자신이 누나와 했던 일도 반추하기 시작한다. 죄의식 같은 건 없고 '나'는 누나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다. 그 사이 '파파'는 죽고 미국에서는 허락이 난다. 미키가 정신병원으로 가게 될 것 같다고 말하자 그 대신 '나'는 자신과 결혼하자고 한다.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되지는 않듯이 작가의 스타일이고 뭐고 불쾌한 생각이 들었던 게 솔직한 심경이다. 하지만 단순히 불쾌했다고만 말하면 소위 쿨하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 그래도 조금 의견을 덧붙여본다. 근친상간이라는 소재라도 이들이 진짜 생물학적으로 아버지와 딸인지, 남매 사이이인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로 불쾌한 건 아니다. 다만, 아방가르드든 전위적이든 미키가 일기를 쓴 형식과 '나'가 직접 자신에 대해 얘기를 하는 부분에서 사춘기 소년소녀처럼 치기에 어린 시선이 몹시 불편했다. 

부정한 출생을 아버지와의 관계로 보상하려는 미키와 불행과 가난한 태생, 누나와의 관계로 자기혐오감을 갖고 있는 '나'와의 결혼이 사실상 이야기에서 가장 성스러운 관계라고 본다. 서로가 가장 사랑하는 상대는 아니지만 자신들의 결핍과 치부를 보완하는 나름의 성숙한 관계라고 생각된다. 찜찜한 해피엔딩으로 끝 마쳤지만 감각적인 표현이나 중세적인 분위기 묘사는 어쨌든 책을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이 있다.




사족1 : 전후 소설이라 그런건지 요즘은 쓰지 않는 글자 수까지 맞춘 외래어 표기법으로 표기되었다. (ex- 도쿄→또오쿄오, 교토쿄오또, 이탈리아→이딸리아 등등) 가볍게 생각했던 것과 달리 몹시 거슬린다. 특별히 이런식으로 표기를 한 이유를 알 순 없지만 분명한 의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독자는 괴로워. 엉엉


사족2 : 예전에 교양 수업 때문에 억지로 읽었던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라는 소설이 왠지 모르게 생각났다. 공허함을 달래려고 마약이든 술이든 섹스든 미친듯이 심취하는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사실상 고문인 소설들.. 꼰대가 되지 말자는 결심에서 점점 멀어지는 듯 하다.



아아, 엄마는 타인의 이야기는 항상 이런 식으로 판에 박힌 소리밖에 하질 않으니. 위선의 완벽함도 여기까지 오게 되면 끔찍한 악의와의 경계가 모호해집니다. (p. 62)

다시 말하자면, 결혼이라는 소유의 형식은, 미키 같은 고급스러운 여자를 (내가 의미하는 것은, 잡종견이 아니라 콜리라든가 푸들, 테리어,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유하는 경우, 의외로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고, 처음 미키를 만나고부터 이런 종류의 여자와 결혼 계약을 맺는 것을 진심으로 동경해왔던 것이다. 이렇게 분석하고 보니, 기가 막힐 만큼 웃기는 고급품에 대한 욕망이나 허영심이 탄로 나긴 하지만, 그럼에도 나처럼 수상쩍은 가정이나 빈곤의 수치에 증오심을 불태우며 살아온 인간에게 있어서 사랑이는 것이 때로 그런 형식을 취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p.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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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8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종길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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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정리하면서 버려야 할 책과 버리지 말아야 할 책을 구분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다. 책을 버리고 싶지는 않지만 포화상태인 책장을 보면 의무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버려지는 책과 남는 책은 순전히 내 판단에 달려 있다. 판단하는 기준은 재미냐 아니냐 왠지 내 인생에 필요하냐 안 하냐이다. 방법은 다시 읽어 보는 수밖에.


몇 년전에 한 번 읽고 괴기스럼에 질렸다가 책 끝에 평론에 엘 그레코의 그림 정도를 떠올릴 수 있겠다는 평을 보고 동의의 물개박수를 친 기억만 난다. 아무 페이지나 열어 읽다가 못난 기억력에 첫 페이지부터 읽기 시작했고 4일간 질리는 표정으로 재독서를 하게 되었다.


150년 전에 발표된 '폭풍(=격정적인)사랑' 이야기인데 집착, 오해, 복수가 뒤얽혀서 몹시 거칠고 피로한 느낌을 주지만 읽기를 멈출 수 없게 만든다. 특이한 것은 가정부 넬리의 입으로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인데 할머니가 들려주는 구수한 얘기 대신에 내용이 엽기적이라는 것이다. 드러시 크로스에 세를 살게된 록우드라는 사람이 주인인 히스클리프를 방문하려고 워더링 하이츠에 방문하는데 그 곳의 거친 날씨만큼이나 구성원들은 모두 악에 받쳐 으르렁거린다. 날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묶게된 록우드는 무시무시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가 묶었던 방의 전 주인인 캐서린의 환영이 꿈에 나타나서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깨자 수상한 주인 히스클리프가 들어와 창문을 열고 몰아치는 바람에 대고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는다.

소름끼치는 경험을 한 록우드씨는 마음씨 좋고 현명한 가정부 넬리에게 두 저택에 대한 긴 이야기를 듣게 된다.

바람이 몹시 부는 곳 웨더링 하이츠에 주인 언쇼는 어느 날 출처를 알 수 없는 남자아이를 하나 주워온다.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건강한 아이를 히스클리프라고 이름 짓고 자신의 자녀 힌들리와 캐서린과 함께 자식처럼 키우려고 한다. 훌륭한 교육이 무색하게 언쇼씨의 아이들은 모두 난폭하고 잔인한 기질이 있었는데 이건 아마도 선천적으로 약한 신체 때문에 항상 짜증이 나 있기 때문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힌들리는 주워온 자식에게 잘해주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이상하게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서로 몹시 사랑했다.

입양된 운에 무색하게 언쇼씨는 금방 운명하고 히스클리프에게는 그에게 적대적인 힌들리와 서로 사랑하는 캐서린이 남게 된다. 옛날이라 모든 권한은 아들인 힌들리에게 있었으므로 히스크리프를 몹시 미워하던 그는 자기 부인과 힘을 합쳐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을 학대한다. 하지만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은 더 돈독해지기만 한다. 어느날 드러시 크로스 저택을 방문하게 된 캐서린은 그 집 도련님인 에드거를 알게 되고 결국 둘은 결혼까지 하게 된다. 

결혼하기 전에 캐서린은 넬리와 대화를 나누는데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와 결혼할 수 없어.. 걔는 뭐가 안 좋고 뭐가 안 좋고.. 린튼은 뭐가 좋고 뭐가 좋고..." 여기서 숨죽여 몰래 듣고 있던 히스클리프 퇴장. "하지만 너가 알다시피 나는 히스클리프를 목숨보다 사랑해" 이렇게 오해가 생긴 젊은 연인은 각자의 길을 가고 복수의 마음의 품은 히스크리프는 몇 년 동안 말도 없이 사라진다. (한국말만 끝까지 들어야 되는 게 아니다. 영어도 끝까지 듣는게 중요하다. 제인 오스틴도 그렇고 그 시대 영국 여류 작가들은 이런 식의 오해를 좋아하는 듯.)

몇 년 후, 복수의 마음을 품고 돌아온 히스클리프는 어쩐지 달라보인다. 그 사이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 힌들리는 부인이 죽은 이후로 술과 노름에 절어 살고 있다. 아들 헤이턴이 있지만 아들을 돌보지 않고 술에 절어 비참하게 살아간다. 히스클리프는 돈을 모두 갚아주고 사실상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이 되고 이들 남매에게 복수를 시작한다. 힌들리와 힌들리의 아들 헤이턴을 거의 바보로 만들고 에드거 린튼의 여동생 이사벨라를 유혹해 도망 결혼을 하고 애정없는 부인을 마구 학대한다. 캐서린을 비참하게 만들어 안 그래도 몸이 약한 캐서린은 신경쇠약 등으로 자기를 광적으로 몰아가다 뱃속에 딸, 캐시를 낳고 죽는다. 한편,이사벨라는 그 집에서 도망쳐 나와 아들 린튼 히스크리프를 낳고 몰래 키우다 아들이 14살 정도가 되자 건강 악화로 죽어버린다. 그리고 캐시의 아버지 에드거도 드러시 크로스 저택과 딸 캐시, 조카인 랜튼을 지키려는 노력이 무색하게 건강 악화로 죽는다. 워낙 약체였던 어른들이 픽픽 죽어나가자 히스크리프는 가장 잔인한 복수를 시작한다.

이미 죽은 캐서린을 아직도 사랑하고 미워하는 히스크리프는 힌들리의 아들과 캐서린의 딸, 자신의 아들의 인생을 망치기로 한 것이다. 자신의 아들과 캐시를 결혼시켜서 드러시 크로스 저택도 갖게된 히스크리프는 귀하게 자란 캐시를 마구 학대한다. 결혼의 임무를 띈 약한 아들도 곧 죽어 버리고 캐시는 팍팍한 생활에서 의지할 곳이 없이 악만 남은 여자가 되어간다. 자신의 남을 사촌을 무식하다고 놀리고 무시하며 화를 심보를 부리고 평생 일해본 적 없는 집안일까지 해야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건강한 히스크리프는 며칠만에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자지 않고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숨을 거두고 만다. 다행인지 남은 가족, 캐시와 헤이턴은 화해를 하고 관계가 급 진전되어 새로운 세상을 살 것을 암시한다.


매우 정상적(?)이고 보수적(!)인 내가 보자면 '미친 두 남녀의 개같은 사랑' 이라고도 일축해 버리기는 쉽다. 위대한 소설로 꼽히는 중에 주인공들이 이렇게 미운 소설은 없을 것 같다. 심지어 줄거리를 쓰다가 지쳐서 리뷰를 포기하고 싶었을 정도로 '사랑꾼'들의 복잡한 사랑놀음에도 질려버렸다. 이야기도 과잉되고 감정도 필체도 모두 과잉되었지만 강렬한 서사에 왜 명작으로 뽑히는지 이해가 간다.(이 책을 쓰고 건강이 급 악화되어 죽음까지 잃었던 작가의 생애가 이해가 될 정도다.) 나도 휴양지보다는 거친 자연을 좋아하는 편이라 저택을 중심으로 바람이 몰아치는 워더링 하이츠에 갇힌 으스스한 기분이 느껴지는 것은 특별한 독서 경험이었다. '섹스 엔더 시티'의 주인공이 캐리가 아니라 실은 '뉴욕'인 것 처럼 소설의 주인공은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지만 실은 워더링 하이츠의 거친 자연, 거친 바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복수는 나의 힘'이라는 영화는 보지도 않았는데 제목이 참 끌린다. 열등감의 화신 히스클리프가 살아가던 힘은 건강한 신체에서가 아니라 안 건강한 복수의 정신이었던 것 같다. 용서보다 복수라는 소재를 더 좋아하는 나는 왜 이 소설이 무서울까. 망각이 안 될만큼 뜨거운 사랑의 감정이란 건 끔찍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시청하는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에서 매일 죽은 부인의 무덤에 찾아가는 늙은 남편에 대한 사연이 나올 때가 있다. 완전한 남인 우리 엄마는 혀를 찬다. 남에 말이라서 쉽게 하는 거지만 저건 병이다, 라고 단언하듯 말했다. 남편의 장례식이 끝나자 마자 유품을 바로 정리하던 할머니와 엄마, 예전 남친과 맞췄던 옷도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다니는 울 언니를 보면 우리집 여자들 입에서는 저런 말이 나오는 것도 그리 놀랄 것은 아니다.

방송에 나오는 할아버지들은 죽은 부인에 대해 무척 애틋한 감정을 가진 것을 보니 애증의 마음으로 찾아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번 생에 자신의 부인이 된 것에 대한 감사함과 그리움으로 눈시울을 붉히는 할아버지들의 사연은 내게 감동적인 대신에 의아함을 자아냈다.

책을 읽고나서 흔한 질문이 떠올랐다. 쿨한 사랑과 뜨거운 사랑. 이 둘중에 뭐가 정답일까? 뜨거운 사랑은 떠나가고서도 일생에 걸쳐 애가 타야하는 것인지. 우연인지 필연인지 책 읽기를 끝내고 아니라고 생각하던 관계를 정리했다. 후회는 없지만 심란함은 남는다.




발길에 채는 것이 당연한 벌이라는 것을 아는 듯 하면서도 그 아픔 때문에 발로 찬 사람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미워하는 사나운 똥개 같은 얼굴은 하지 마 (p.95)

나의 장래는 단 두 마디면 족할 거야. 죽음과 지옥이라는 두 마디. 캐서린을 잃어버린 뒤의 내 삶이란 지옥일 거야. (p. 243)

내가 당신의 마음을 찢어놓은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찢어놓은 거야.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내 가슴도 찢어놓은 거야. 건강한 만큼 나는 불리하지. 내가 살고 싶은 줄 알아? 당신이 죽은 뒤에 내 삶이 어떨 것 같아? (p. 263)

그리고 그중에서도 제일가는 것은 헤어튼이란 놈이 나를 몹시 좋아한다는 사실이지! 그 죽은 악한이 자기 자식을 부당하게 대우한다고 나를 비난하기 위해 무덤에서 기어 나올 수 있다 해도, 나는 그 자식 놈이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자기 친구에게 욕하는 것에 분개하여 그를 되쫓아 보내는 것을 재미있게 보고 있을 거란 말이야! (p.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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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즈 Singles + GEEK@ 2014.7 - 합본세트판매
싱글즈 편집부 엮음 / 더북컴퍼니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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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비를 잘못 찾아가서 우연히 발견한 대금식당. 제주산 갈치조림..... 따봉!! 가격도 35,0000원

비가 엄청 내렸는데 비 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따순 밥 먹는 기분은 최고였다.) 

(섭지코지가서 본 안도 타다오 건물. 잡지 안 보고 갔으면 그냥 와- 돈 많은 사람이 카페 차렸나벼? 했을

으리으리한 건물. 보고가니 의미가 있더라. 비록 그날 문을 닫혀있었지만 언니한테 잘난 척 했다.)


(협재 해수욕장. 폐장 됐는지도 모르고 물만나서 신나서 저런 사진 찍겠다고 백번을 뛰었다. 저것은 청춘 전용포즈니까.

 대형 비가 내리기 전에 엄중한 경고를 받고 사람들과 우르르 쫓기듯이 퇴장했다.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물빛 최고!)




지난 9월 1일~ 3일 언니와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제주도 물 빛이 그리워서 언제나 가고 싶었는데 효리언니 블로그 때문에 결정. 여전히 제주의 자연은 멋있었다. 막상 횰언니가 사는 애월읍? 소길읍? 은 못 가봤네. 가봤자 바쁜 횰언니가 반겨줄 것도 아닌데... 내 운전 실력이 문제지. 3일 연짱으로 혼자 운전하고 나니까 후폭풍이 더 컸다. 원없이 엑셀을 밟았고 여행 갔다와서 앓아 누웠었다.


일하는 언니를 위해 백수인 내가 비행기며, 렌터카며 숙소며 다 알아보았다. 싸게 싸게 가겠다고 소셜을 이 잡듯이 뒤졌다. 언니와 나는 국내여행이라 멍청하게 안심했으며... 결국 숙소는 마음에 드는 곳을 잡지 못하고 전날 예약...(미쳤지, 말 통하면 될 줄 알았냐?! 2박을 차에서 잘 뻔했다.) 하는 사태가 이어졌지만 노는 게 최고인 사람들이라 첫 날 날씨가 너무 좋아서 다 잊어버린 몹쓸 두 자매.


책은 잘 사면서 희안하게 여행안내서나 에세이를 사기 싫어하기에 싱글지 7월 부록으로 제주도 스페셜이 나온다기에 무조건 사서 블로그 검색마저 대충도 안 하고 그날 그날 계획을 짰던 우리에게 참 많이 도움이 되었다. 책만 휘리릭~ 하고 차에 타서 목적지로 돌진한 게 우리 여행의 패턴이었다.


자연 위주로 봤기에 체험같은 건 거의 안 했지만 다시 읽으며 책만 봐도 제주도의 축축한 짠 공기가 느껴진다.


싱글즈 잡지는 기사가 출중한 만큼 부록도 짱! 화장품 부록도 좋지만(10월호 잡지는 몇 권이나 살지) 이런 질 좋은 부록도 무한감사하다. 갖고 가기에 무겁지도 않게 나와서 더 좋았다.


1박2일에서 2박 3일 코스까지 소개하고 있지만 여기 나온 곳을 가보려면 역시나 좀 오래있어야 한다. 요즘 제주도에서 한 두달 사는 것이 유행이라는데 이해가 된다. 날씨도 워낙 변덕스러워서 날씨 좋은 날은 바다가고 비 오는 날은 공방이나 미술관, 카페에 가서 비오는 제주 풍경을 본다는 상상만 해도 지상낙원.(카페는 문을 참 빨리 닫으니 이 점 참고하시길.)


겨우 여행으로 2박만 갔다와서 그런지 몰라도 제주도는 아저씨들이 참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차비도 정말 싸다. 어느 식당엘 가도 느릿느릿, 여유가 느껴진다. 하지만 유명한 여행지는 중국인들로 가득차서 사진 찍어달라하기도 힘들다는 단점. 화장실 이용은 왠만하면 자제하게 되었다.


(중국인들한테 제주도 땅 팔지말라고~!!!!!!! 진심 화가난다.)  


특히 횰언니 블로그에서 보이는 장터에도 가보고 싶다. 한라산과 올레길은 근처에도 가지 않았지만 슬슬 걸어보는 것도 힐링이 되겠지.. 그건 다음 제주도 여행에서.


아무튼 알찬 잡지 부록 따봉! 좋아요를 백만번 눌러주고 싶다.


해가 쨍쨍한 날에 우도 바다. 새파란 바다, 검은 돌, 뽀얀 파도의 삼합은 가히 최고.



오션뷰의 카페에서 비 오는 날 따뜻한 아메리카노의 사치를 부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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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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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잣대가 있다. 질투에서 비롯된 잣대일 수도 있지만. 그건 글에 영어든 뭐든 이국언어를 섞어쓰면 아무리 잘 쓰여진 글이라도 글쓴이의 자질을 의심하는 것이다. 특히 잘 쓴 글일수록 더더욱 혹독하게 비난한다. 이것은 분명 질투에서 비롯된 감정은 맞다. 인정!


한 때 인터넷 커뮤니티를 달궜던 일명 '보그체'. 나도 안 좋아한다. 본능적인 거부감이랄까. 두세줄 읽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다. 왜? 그냥 다 영어로 쓰지? 왜 조사는 한국어로 쓰는 거냐?! 나도 은근 사대주의가 있는 사람인데 볼 때마다 반성하게 된다. 하지만 잡지 [보그 vogue]는 허세만 덜 아니꼽게 보면 인터뷰든 기사내용이든 의외로 충실하다는 것도 발견할 수 있다. 


굳이 가만히 있는 보그 잡지까지 언급하는 이유는.. 이 책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영어 번역가다 보니 보통 사람보다 영어에 친숙할 수는 있겠지만 굳이 영어를 쓰는 것을 보면 괜히 눈쌀이 찌푸려진다. '나의 페이보릿 식당' 같은... 다른 알라디너가 지적한 화려한 수사는 가끔 좋은 표현도 있어서 볼 만한데 섞어 쓰는 영어 형용사는 정말.. 참기 힘들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디자이너 앙 선생님의 성대모사를 끊임없이 하던 개그맨들처럼 괜히 비꼬고 싶은 나쁜 마음이 들었다. "엄.. 엘레강스 하고.. 엄.." (죄송합니다. 실제로 앙드레 김 쌤을 그분의 인격 때문에 참 존경합니다.)


이런 거슬리는 부분을 배제하고 책을 읽으면 저자가 얼마나 충실하게 여행했고 그때그때 느낀 감정을 얼마나 충실하게 썼는지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알라디너들의 꿈일 것 같은 독서여행까지. 책을 읽으면서 후회의 눈물까지 흘릴 뻔 했다. 나는 왜 프라하를 코스에 넣지 않았던가! 


색감까지 예쁜 잘찍은 사진과 독특한 편집은 책을 보는 재미를 보태준다. 굴라쉬든 브런치든 여기, 서울이 아닌 어딘가에서 먹고 싶어졌다.



아무도 안 궁금한 내 이야기 > 작년에 벼르고 벼르다 첨으로 유럽이란 곳을 여행했다. 서유럽을 중심으로 4개국 여행했을 뿐이지만 스스로 넘 뿌듯하여 갔다가 돌아오면 인생이 거의 180도로 변할 줄 착각했었다. 1. 독립적인 성숙한 여인이 되거나 2. 일생일대의 사랑을 만나거나 3. 감성 촉촉한 에세이 한 권쯤은 거뜬히 쓸 수 있겠지? 라는 턱없는 기대로 시작되었던 여행은 현실이 개떡같을 때마다 지상천국으로 둔갑하는 향수의 땅으로 만들어 놓는 걸로 마무리되고 있다.(엉엉)


여행에세이를 보면 괜히 베베꼬이는 마음은 역시 질투 때문이었다. 에세이 한 권을 쓰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니까. BGM : 너는 대체 누굴 보고 있는 거야~♪♬


에세이의 미덕은 가볍지만 진한 공감이 아닐까. 밑줄 긋기 해본다.




여행이 아니라면, 삶은 언제나 나에게 부당한 업신여김을 당해왔다. 익숙함이 낳은 무례함이란 사생아, 권태, 생계형 짜증, 줄줄이 매달린 의무들. 만만한 마누라에게 온갖 성질을 다 부리는 못난 마초처럼 굴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는 그 지긋지긋하던 삶이 나를 도발한다. 더 이상 지루하지 않은 척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나는 졸린 고양이처럼 솔직해진다. (p. 39-40)

사실 짦은 여행 후에 어느 나라 혹은 그 나라 사람들에 대하여 섣부른 진단을 내리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태도는, 책이나 영화에서 만난 허구의 인물과 실제 사람들의 특성을 동일시하고 일반화하는 것일 테다. 우리가 시장이나 버스에서 부딪치는 현지 사람들은 픽션의 주인공보다 훨씬 추상적이고 모호하며 비일관적이다. 그들은 데생이 끝난 후의 4B연필처럼 뭉툭하고 투박하다. 그들에게선 아우라 대신 매캐한 생활의 냄새가 풍길 뿐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어딘가를 여행하기 전에 그곳을 배경으로 한 책이나 영화로 예행연습하는 걸 좋아한다. 나에게는 그것이 사랑에 빠지기 위한 구실이다. 사랑은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덧없는 몸부림이 아니던가. 그 덧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할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이다. 흐라발이나 카프카가 아니었다면 이만큼 프라하를 좋아하지 못했을 것이다. (p. 50)

그런데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은 곧 삶에 대한 애착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산다는 것이 허기를 채우는 것과 다를 게 뭐냐 싶다. 여행을 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관계를 맺는 것도 결국은 서로 다른 종류의 허기를 채우는 일이 아니겠는가. 세계 각지의 공항에는 섭식장애자들이 우글거린다. 그들, 아니 우리들은 아무리 잘 먹어도 해결되지 않는 어떤 충동을 품고 있다. 때로는 그 뜨거운 충동 때문에 가슴이 터질 지경이다. 지구가 점점 더워지는 것은 이산화탄소가 아니라 그런 충동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p. 60)

그러고 보면 번역의 최대 적은 센티멘털리즘과 거대담론 강박증일지도 모르겠다. 있는 그대로의 뜻이 너무 소박해 보이면 왠지 거기에 묵직한 뭔가를 덧입혀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다. 대체 가구가 숲보다 꿀릴 것이 뭬라고! 아무리 번역가 인생이 신산하기로서니 텍스트는 춥지 않다. 아무도 무거운 외투를 원치 않는데, 번역가 혼자 지레 설레발을 칠 때가 많다. (p. 116)

새우는 껍질 벗기는 과정이 귀찮고 조개는 썩지 않는 쓰레기가 많이 나와서 번거롭지만, 녀석들은 비교저거 살생의 죄책감을 덜 느끼게 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 팔팔 끓는 물에 집어넣어도 갑옷을 입고 있으니 좀 덜 뜨거울 것 아니냐나는 말이다.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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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트 가드너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랄프 파인즈 외 출연 / 대경DVD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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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와 함께 돌아온 불면의 밤. 오랜만에 공중파 방송에서 방영하는 더빙 외화를 편안한 기분으로 봤다. 더빙 영화는 인위적인 성우 목소리가 몰입을 방해하는 느낌이들어서 별로 선호하지는 않지만 공중파에서 바로 쏴주는 영화를 거부할 이유는 없지. 게다가 한 번 보기 시작하니까 그만 보기가 힘들었다.


레이첼 와이즈를 좋아하기도 하고 참담한 내용이라도 아프리카의 이국적인 풍경에도 맘을 확 뺏겼다. 특히 아프리카의 붉은 빛이 나는 흙 색깔은 언제봐도 좋다. 자원이 많아서 오히려 더 불행한 아프리카가 배경인 이 영화는 제약회사의 음모와 그와 손잡은 정치인의 비리를 밝혀내다 희생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잘못된 교육중 하나라 생각하는데 편식하는 아이들한테 '아프리카의 굶어죽는 아이들을 생각하라'며 가르침을 주는 엄마들이 있다. 그 중에 울엄마도 끼어있었다. 가르침보다는 죄책감을 심어주기만 했다. 아프리카에 대한 왠지 모를 죄책감이 있었는데 얼마전 다큐멘터리를 보니 왠지 모를 죄책감은 아녔다. 요 몇 새에 미친 듯이 마시는 커피, 대형 옷 브랜드가 파는 옷이 세탁되는 과정, (특히 유럽에서) 특별한 행사를 위해 사용되는 아름다운 관상용 꽃... 이 모든 것이 아프리카에 빚지고 있다. 얼마전 본 다큐멘터리에서 선진국의 '물 발자국(water footprint)' 의 크기는 어마어마 했다.


지금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에볼라 바이러스'의 백신이 없는 까닭이 백신 구매력이 없는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퍼졌었기 때문이라는데 모든 것이 신자유주의의 생각으로 지배되는 세상이 참 무섭고 삭막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구 진행도 전쟁에서 세균전으로 사용될까 두려워서 미국 정부에서 진행하고 있는게 전부라고 하니.. 차가운 심장은 에볼라 바이스러만큼 무섭다는 생각이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처럼 이렇게 어떻게.. 흑흑 이러다 말겠지. 나도 아주 적은 돈을 기부하는 거 말고는 사실 아프리카를 위해 하는 일은 하나도 없으니 나도 제약회사가 야속하니 뭐니 할 말이 없다.


(약간 스포 있음)


열렬한 인권운동가 테사는 정원 가꾸기가 취미인 식물같은 성격의 외교관 저스틴과 논쟁을 벌이다 사랑에 빠진다. 저스틴이 케냐에 발령이 났을 때 테사는 프로포즈를 받아내고 케냐로 같이 떠난다. 케냐에서는 국제적인 대형 제약회사가 아프리카인들을 상대로 비윤리적인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테사는 신혼부부는 임신과 함께 행복한 나날이 펼쳐질 것을 기대하지만 테사가 무리하게 조사를 한 탓인지 부부의 처음이자 마지막 아이는 유산으로 끝나고 만다. 뼈속까지 인권 운동가인 테사는 백인 의사가 없는 열악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유산을 했어도 남의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그 순간에도 조사를 멈추지 않는다.

테사를 곱게 볼 리 없는 정치인은 그녀의 동료와 함께 죽이고 대충 무마시키려 한다. 아내가 남겨놓은 쪽지로 단순한 죽음이 아님을 직감한 저스틴의 싸움은 시작된다. 온전히 사랑의 힘과 주위 선한 이들의 도움으로 제약회사와 정치인의 비리를 밝혀내는 저스틴. 하지만 그의 말로 또한 테사와 다르지 않다.


마지막 그의 명대사.. "당신이 원했던 거는 내가 집으로 돌아가길 바랬던 거지? 당신이 내 집이야..."


기억에 의존한 것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당신= 내 집'이라는 것은 정확하게 들었다. [콘스탄트 가드너]를 보면서 계속 다른 영화가 생각났다. 데자뷰라 해도 좋을 만큼 겹치는 영화는 [잉글리쉬 페이션트]였다. 주연도 랄프 파인즈에다, "나는 그녀가 죽었을 때 이미 죽었소." 같은 명대사를 날린 먹먹한 영화. (희안하게 진짜 좋았던 영화는 리뷰 쓰는 게 엄두가 안 난다.)


두 대사가 다 엄청나게 여심을 자극하는 코 끝 찡-한 대사지만 맥락은 비슷하다. 주인공에게 그녀들은 사랑이 시작되고 끝난 장소였다는 것. 랄프 파인즈란 배우의 얼굴은 주관적인 느낌으로 잘생겼지만 인상이 왠지 모르게 안 좋다는 거 였는데 영화 2-3편을 보고 편견이 완전히 깨졌다. 완전 멋있어..ㅠㅠ


외모는 결벽증이 있을 것처럼 샤프하고 신경질적이게 생긴 남자가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거는 역이 묘하게 더 매력적이게 느껴졌다. 이런 시나리오라면 연기 변신 안 해도 된다는 게 속좁은 내 의견.


그래도 참 씁쓸한 것은 관객을 엄청 속 시원하게 했던 [테이큰]같은 류의 영화에서 위안 받는다는 것. 역시 사랑하는 사람, 가족밖에 없구나..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제목 번역에 관해.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그대로 옮기면 '영국인 환자'쯤 될 것이다. 별 느낌은 없지만 아주 나쁘지는 않을 거 같다. 언어에도 운치라는 게 있다면 깔끔하고 운치 있는 제목인 거 같기도 핟고. 뭐 영어권 사람들이 보기에도 저 뜻이지 않을까. 영국인에 대한 환상이 얼마나 있는지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콘스탄트 가드너]는 인터넷에 찾아보니 어떤 기사에 '충실한 정원사'로 번역이 되어있다. 나는 '영원한 정원사'정도로 생각했는데 충실한이 더 맞는 표현인 것도 같다. 하지만 '정원사'라는 말은 우리말임에도 좀 생소한 느낌이 든다. 가드너 보다야 낫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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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5-01-02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3년인가 4년 전에 본 영환데, 정말 수준 높은 걸작이지요. 레이첼 와이즈의 연기가 단연 돋보였던 작품이었습니다. 명작을 꼽을 때 언제나 꼽을 수밖에 없는 멋진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뽈쥐의 독서일기 2015-01-28 21:39   좋아요 0 | URL
가끔 주말의 명화에서 느끼한 성우 목소리로 더빙된 영화가 더 좋을 때도 있어요. 특히 이렇게 남자 주인공이 멋진 영화는 더 그래요^^
레이첼 와이즈.. 참 예쁜 배우죠. 얼굴도 예쁜데 연기력도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