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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랑하고 싶다
띨드 바르보니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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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스물다섯된 내가 제목에 혹해서 읽게 된 이 책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좀 실망스런 소설이었다.

서른 다섯살의 이혼녀가 유부남과의 불륜관계를 청산하고 여섯살 아래의 청년과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 소설의 내용대로라면 아리안이 프레데릭의 관계는 열정일 뿐이었다는 것을 아르뚜아 덕분에 깨닫게 되어 불륜을 청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아리안 자신이 프레데릭과 가진 관계가 단지 열정일 뿐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더라도 '아르뚜아'라는 '사랑'의 대상이 없었다면 아리안은 소설에서와 같이 쉽게 프레데릭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로렌느와 아르뚜아가 사는 성에 대한 이야기는 지루했고, 알고보니 아르뚜아와 아리안이 처음부터 서로에게 끌리고 있었다는 식의 갑작스런 내용은 황당했다. 그것이 사랑이었다는 식의 내용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만 사랑과 열정에 관한 아르뚜아의 설명은 나름대로 읽어둘만 했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열정에 대해서는 좀 이해가 되지만 사랑에 관해서는 여전히 모호하다. 그리고 사랑과 열정을 구분하는 일 역시 여전히 어렵게 느껴진다.

분명한 것은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으며, 가끔씩 자신의 환상이 만들어낸 그 대상과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다. 아~! '부재의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알 수 없는 그 마력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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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아저씨 - 문예교양선서 38
진 웹스터 지음, 한영환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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꺽다리 아저씨에게

아저씨 저는 지금 막 '키다리 아저씨'라는 책을 다 읽었답니다. 제르샤 애벗이라는 소녀가 자기를 돌보아 주던 키가 크고, 돈이 많고, 여자 애를 싫어하던 분이랑 결혼을 하게 된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죠. 왜 믿기 어렵냐고요? 너무나 드라마틱하고, 소녀적인 이야기거든요. 전 아마 오늘 밤 가슴이 너무 많이 두근거려서 잠 들 수 없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소설 속에서 주디가 그랬듯이 저 역시 오늘 잠들기 전에 내가 소설 속의 주디가 된 듯한 상상 속에 빠져버릴지도 모르지요.

꿈많은 젊은 여자애가 환상 속에서나 나놀 법한 키도 크고, 내가 갖고 싶은 것을 다 사줄 만큼 돈도 많고, 게다가 나를 올바로 알고 좋아해주는 멋진 남자를 만나서 사랑한다는 이야기. 알고 보니 그 남자는 내가 어려울 때 나 몰래 나를 도와주던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백마탄 왕자님이라는 사실! 어때요?확실히 매력적인 이야기라고 생각지 않으세요? 물론 아저씨는 나이도 많고 저보다 현명하실테니까 너무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말씀하실지도 몰라요. 시집도 안 간 평범한 처녀가 그런 터무니없는 공상 속에 빠져서 주어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할까봐 아저씨가 걱정하신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요.

하지만 아저씨 그런 걱정 마세요. 저는 이 책을 통해 올바른(?!) 교훈도 얻었거든요. 저는 사랑을 잘 모르지만요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정말로 그 사람의 겉모습이나 환경을 좋아하는 것 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비록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고, 이름조차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을 믿고 이해하게 되는 것. 바로 그게 진짜 사랑이 아닐까요?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말이에요. 제가 아직 너무 소녀적이고 생각이 짧아서 아저씨께 제대로 말씀드릴 교훈이 이것밖에 없어서 너무 죄송해요. 그래도 줄곧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염려하지 마세요. 내일은 또 어떤 책을 읽게 될지 기대가 되네요. 아저씨 그럼 안녕히 계세요.

주디를 부러워하며 나의 꺽다리 아저씨에게 사랑을 담아 당신의 젊은 느티나무.

추신. 개학이 다가와요. 그때는 다시 저희 반 아이들의 신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득 담아 보낼게요.
추신 둘. 써놓고 보니 편지란 역시 낭만적인 매체라는 생각이 드네요.
추신 셋. 아저씨. 저도 아저씨의 답장을 꼭 받고 싶어요. 멀리 계시더라도 저를 잊지 말아주세요. 늘 저는 아저씨를 잊지 않고 있을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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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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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표지가 너덜너덜해진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릴 때는 내가 아다지도 감동을 받게 될지 몰랐다. 어릴 때 나를 울린 책이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였다면 어른이 된 내 마음을 울린 책은 바로 이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다.

물 흐르듯 잔잔히 이어지는 체로키인 조부모님과 '작은 나무'의 이야기는 시종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도 잊고 지내던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고, 반성하게 한다. 이 책을 통해 백인 사회가 문명의 이름으로 인디언들에게 행한 일들이 역설적으로 얼마나 야만적인가를 알게 되었다. 특히 결코 낭만적일 수 없었던 '눈물의 여로'라 불리는 강제이주에 관한 부분과 작은 나무가 고아원에서 지내던 부분을 읽으면서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이 책을 통해 만난 작은 나무와 그 주변 인디언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란 자연 속에 살 때 가장 인간답지 않나'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은 그 자체가 인간을 구속하는 수단이 됨에 비해 자연 속에서의 인간은 얼마나 자유로우며 또 얼마나 현명하고 지혜로운가? 우리가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불안감 속에 얽매여 살고 있음에 비해 인디언들의 영혼은 자연 그 자체로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얼마나 평온한가? 내 자신에게 '도대체 삶의 가치가 무엇이며,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가?'하는 철학적인 질문까지 던져가며 나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현명한 체로키인들의 삶의 방식을 존경하고, 부러워하게 되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그들과 '친구처럼'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것, 사랑은 이해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 마음의 영혼을 잘 가꾸어야 한다는 것, 법이란 단순히 가진 자들의 권력의 도구일 뿐이라는 것(?!)등 많은 깨달음을 준 인디언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인디언식 삶의 방식이 상당히 흥미롭다고 생각 했다. 그들이 아이들에게 이름 붙이는 방식, 삶과 죽음을 대하는 방식,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방식...... 나무와 별과 바람과 소통하는 그들의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비록 빌려서 본 책이지만 한 권쯤 소장해 두고 내 영혼이 병들고 지쳤다고 느껴질 때, 마음이 답답할때 꺼내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더불어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꼭 소개해주고 싶은 책이다.

아! 나도 '작은 나무'라는 예쁜 이름으로 불리며 사슴 가죽 조끼를 입고, 자연 속을 마구 뛰어다니는 행복한 야만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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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usso 2004-03-25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해전에 이 책을 지인한테서 선물 받았습니다. 후다닥 읽어서 사실 지금은 기억이 잘 안나네요^^ 허나 이 책이 줬던 따뜻함은 아직 제 서재에 가득합니다. 세상은 '인간과 자연이면 충분하다'라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인간과 자연사이에 너무 많은 것이 생겨났지요.. 전 지금 '카네기 처세술'을 읽고 있답니다. 다 읽으면 리뷰 올려 놓을께요..오늘 처음 알라딘 서재 방문한거라 제 서잰 썰렁하답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소설로 그린 자화상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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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이 말은 작가가 서울 현저동으로 이사와서 매동학교까지 가는 길에 산을 넘는 동안 낯설고 정도 가지 않던 아카시아의 '비릿하고 들척지근'하여 '헛구역질'이 나는 맛을 보고 고향인 박적골 뒷동산의 '새콤달콤'하며 '입 안에 군침이 돌게 신 맛'인 싱아의 맛을 그리워하며 하는 말이다.

어린 시절 박적골에서의 기억은 그야말로 유년시절의 철모르던 행복함 그 자체로 그려진다. '한시도 정지해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심심할 겨를'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할아버지'라는 든든한 백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엄마를 따라 서울로 오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그녀의 성장통이 시작된다. 풍요롭고, 자유롭던 박적골에서와는 달리 그녀는 서울에서야 비로소 궁상맞은 생활을 경험했으며 엄마의 이중성으로 인해 엄청난 혼란스러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궁상스러움이나 인간의 이중성이란 철저히 세상에 물들어 가는 과정을 상징하는 것이니만큼 어린 그녀에게는 처음 겪는 낯설음과 혼란을 안겨주었으리라.

그녀가 기억으로 묘사하고 있는 그녀의 성장의 과정이 단지 한 개인의 지나온 과거로 읽히지 않았던 까닭은 당시의 혼란스러운 사회상에 우리의 지난 역사가 그려져 있었기때문이다.

오빠의 사상과 전향. 한민족끼리의 사상 싸움이 이렇게도 혹독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무척 가슴이 아팠다. '승리의 시간은 있어도 관용의 시간은 있어선 안 되는게 이데올로기의 싸움의 특성인 것 같다'는 작가의 말. 어쩌면 시대가 죄인을 만든다는 말이 맞는 말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유년의 기억은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평화로움과 아늑함의 시간>과 급격한 신체적, 감정 변화와 예민하다 못해 날카롭기까지 한 감수성으로 인한 <혼란스러움의 시간>으로 나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자가 '싱아'로 후자가 '아카시아'로 짧게 대별되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아련한 그리움과 따뜻한 기억의 상징인 싱아는 정말 누가 다 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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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크리스토 백작 1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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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완벽하게 보여준 몽테크리스토 백작.

이 책을 처음 읽었던 것은 내가 중학교때였다. 책을 손에 잡으니 다 읽을 때까지 책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너무 흥미진진하고 유쾌, 통쾌, 상쾌한 내용이었기때문이다. 그때의 기분을 느껴보려고 10년만에 다시 손에 잡은 이 책. 역시나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전개는 무척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학교때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냥 쭉쭉 잘도 읽었던 것 같은데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 책을 읽을 때는 종이 위에다가 등장 인물 이름을 적어가면서 읽어야 했다. 나이가 들어서 인지(^^;;) 아니면 통쾌한 복수 이야기에 그때만큼 집중이 잘 되지 않아서 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종이 위에 적은 것을 보며 에드몽 당테스, 마르타, 뱃사람 신뱃, 몽테크리스토 백작, 톰슨 앤드 프랜치 상회의 대리라는 영국인, 자코네, 윌모여경, 이탈리아인 브조니 신부가 모두 동일인이라는 것에 상당히 놀랐다. 이 엄청난 변장술과 신출귀몰하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놀라운 능력! 이런 것들이 긴장감을 유지하며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든 것이 아닐까.

복수를 계획하면서 일어났던 많은 일들이 몽테크리스토에게 매우 쉽고 유리하게 벌어진 것이 어떻게 보면 너무 허무맹랑하게도 느껴지지만 반면에 그런 것들이 착한 이는 복을 받고 나쁜 이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우리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권선징악적 주제를 띤 우리나라 고전소설을 보면 대체로 하늘이 나쁜 사람을 벌주는 내용이 많은데 이 책은 하늘이 벌을 줄때까지 기다리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닌 오랜 세월동안 계획적으로 복수의 칼을 갈며 와신상담하는 적극적인 인간상을 만들어 낸 것 같아 우리 속을 훨씬 더 시원하게 해주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아무래도 복수에는 죄를 지은 사람이 벌을 받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착하고 죄없는 사람이 나중에 모든 이가 부러워할만큼 성공하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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