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에 공격성을 숨긴 긴장의 강도가 강한 사회가 전쟁에 치를 떤다고 해서 정말로 평화를 사랑하는 사회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까? - P253

자신의 내면을 분석하는 데는 취약하고, 행동을 기술하는 데는 능통하다. 당시의 일본인, 그리고 지금의 일본인에게 이어지고 있는, 변함없는 성격 경향이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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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일본 병사의 대부분이, 그리고 패전 후 일본인의 대다수가, 전쟁기의 잔학행위를 알게 될 때마다 자신들이 나쁜 짓을 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바로, ‘전쟁이란 그런 거야‘라는 식의 사고로 방어하고, ‘그 이상은 말하면 안 돼‘ 하며 몸을 사렸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양한 이유를 붙인다. ‘잠자는 아이를 깨우지 마라, 국익에 손해를 끼친다, 배상을 청구하면 어떻게 하나.‘ 전후세대도 이와 같은 감정적인 과잉방어를 계승하며 살아온 게 아닐까? - P208

그에게 전환점이 된 것은, ‘죽임을 당한 자의 처지에서 보았을 때 나는 어떤 인간인가‘를 생각할 수 있게 된 시점이다. - P220

그는 "포로를 죽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불교도로서)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저항에 대해, 일본적 집단주의에서는 명령자가 처벌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명령자, 즉 처벌하는 자가 개인으로 부각되기 때문이다. 대신 집단 전체가 ‘저 자식은 못 써‘라고 판단하여 진급시키지 않음으로써, 보이지 않는 처벌을 한다. 보이지 않는 처벌에서 처벌하는 자는 숨어 있다. 처벌하는 것은 집단이다. 물론 그가 "포로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적극적으로 항의했다면 공개적으로 처벌당했을 것이다. - P227

밀그램은 ‘어떤 목적을 수행하고자 하는 사회 조직에서 사람은 손쉽게 ‘대리 상태‘가 되며, 자신을 타인의 요구를 수행하는 도구로 간주하게 된다‘고 말한다. - P233

부하의 마음속에서 책임은 줄곧 윗사람이 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부하는 ‘권위에 의한 허가‘를 요구한다. 사실 윗사람에게 계속해서 허가를 구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자신이 도덕적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는 점을 감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라고 볼수 있다. - P234

복종은 반대 의지나 철학이 극적으로 대결하는 형태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관계, 영달의 희망,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기술적인 관행이 만연한 분위기 속에서 나타난다. - P235

순종적인 것이 선(善)으로 간주된다. 판단력은 목적 달성을 위해서만 요구되며, 목적 그 자체에 대한 회의나 비판은 기피된다. 그리고 업무는 집단의 관점에서 수행된다. 살인이나 반사회적 행위조차도 업무일 수 있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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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쪽은 독자적으로 조사한 내용과 전범이 자백한 것이 일치하면 죄를 인정한 것으로 판정했다. 그들은 자백을 유도하는 일도 없었고, 자백에 기초해 조사하지도 않았다. 자체 조사와 자백이 접근했을 때, 죄를 자각한 것으로 인정했던 것이다.
"전쟁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시오. 그것만으로도 좋소."
"전쟁이란 이렇게 잔혹한 것입니다. 당신이 한 행위는 중국 인민에게 커다란 재난과 그 뒤에 남는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것을 알기 바랍니다."
중국 측은 일관되게 지속해서 그렇게 말했다. 그뿐, 고소의 내용을 듣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지마 내면의 감정까지 묻는 일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가해와 피해의 사실에 대한 인식을 요구했을 뿐이었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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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에서 태어난 일본인은 굴절된 민족 정체성을 지닌다. 중국인과 같은 자연환경에서 자라나 그 풍토에 대한 애착도 강하지만 섭취한 문화는 다르다. 그 때문에 조국에 대한 관념이 심정적 조국과 이념적 조국으로 찢어져 있다. 현지 사람의 눈에 비치는 ‘나‘와, 스스로가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나‘가 다르다. 그러나 이런 일본인은 식민지 태생이라는 자아의 벽을 깊이 인식할 힘이 없었다. 일본인이 지도자가 되어 오족을 협화한다고 하는 식민 이데올로기로 자아의 벽이 덧칠돼 있었다. - P98

오가와는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살과 뼈로 초년병 교육을 체험했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집단으로는 강한 인간이, 개인이 되면 얼마나 약한가를 알게 되었다. 사람을 철저하게 구석으로 몰아넣고 거기서 폭력을 끌어내는 수법도 이해하게 되었다. - P103

 일본군 병사들은자신의 인격을 해체하지 않고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비윤리적 행위를 작전으로 명령받았고, 신체를 극한까지 흥분시키면서 이를 실행에 옮겨야 했다. 견딜 수 없어 도망치면 적 앞에서 도망쳤다는 이유로 사살당했고, 일본에 있는 이들의 부모형제는 ‘비국민‘의 가족이라며 손가락질당했다. 억지로 몸을 추스르더라도, 어느 순간 거부반응이 시작된다. - P110

오가와는 생각했다. ‘여기서는 환자를 치료하는 게 죽이는 것이다. 병에 걸렸다고 말하면 환자로 살 수 있다. 병에 걸린 게 아니라고 하면, 고지식한 사람은 그걸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돌아갈 곳은 전쟁터밖에 없다. 거기서 벗어날 길이 없다.‘ 전쟁터로 돌아가는 것을 죽음으로 거부한 이 병사의 마음을 군의관인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자책의 감정이 북받쳤다. - P113

오가와에게는 ‘인간을 여기까지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있다.
전쟁은 나라를 다스리는 자들이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일으킨다. 그러나 전쟁터의 현실은 관념을 넘어선다. 관념은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나지만, 전쟁터의 시간은 길고, 그것을 견뎌야 하는 당사자에게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기나긴 비인간적인 시간 속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격이 해체되는 위기를 맞이한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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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일본의 의학계는 전쟁과 관련해 그 어떤 반성도 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세균전을 전개하고 인체 실험을 한 731부대 관계자들은 패전 뒤 교토대, 교토부립의대 등의 의학부 교수가 되고, 공립병원의 원장이 되고, 정부에서 일하고, 혈액 관련 제약회사 미도리십자를 세웠다.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 전통은 에이즈 바이러스가 감염된 혈액으로 수많은 사람을 감염시킨 미도리십자의 기업문화, 그리고 일본 후생성과 의학자의 유착으로 이어지고 있다. - P30

의사는 죽음을 수도 없이 겪게 된다. 의학도가 되면 바로 시체 해부 실습부터 시작해서, 병리해부, 임상 연구 등 인간을 신체로 보는 데 익숙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의 의학‘ ‘신체의 의학‘으로 기울지 않기 위해서는 환자가 얼마나 살려고 애쓰는지를 알게 해주는 ‘생명의 의학‘을 먼저 배워야 한다. (중략) 구체적인 한 인격의 발달과 생활사를 지그시 바라보는 ‘생명의 의학‘으로 무장하지 않는 한, 의사는 ‘죽음의 의학‘과 ‘신체의 의학‘의 도구가 될 뿐이다. - P47

나는 지금까지 전범으로 중국의 수용소에 잡혀 들어갔었던 일본군 출신들을 많이 만나왔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나는 중국인을 학살했다. 그러므로 사정이 어찌 됐건 그들도 나를 죽일지 모른다‘고 하는 두려움이 크지 않았다는 점이다. 윤리적인 죄의식이 없는 데다, 중국 쪽에 기대려는 어리광 같은 심리마저 있었다. 죄라고 자각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 P50

자아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집단으로 있는 한 불안하지 않다. 집단이 혼란에 빠질 때는 자신도 혼란에 빠지지만, 그때뿐이다. 집단은 끊임없이 개개인이 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모호하게 흐리고, 집단이 요구하는 모든 행위에 동의하도록 한다. - P51

오가와는 정작 전쟁에서 죽어간 당사자는 ‘영령‘으로 여겨지는 것을 거부하는데, 살아남은 자가 전사자를 영령이라 부르는 괴리를 문제 삼고 있다. 죽어가는 자에게는 살기 위한 타산이 없는데, 살아남은 자에게는 전사자의 혼조차 세속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타산이 숨어 있다. 그 타산이 다음 전사자를 잉태하는 사상으로 발전한다. - P73

국가권력이 국민정신의 총동원을 목표로 검열을 강화할 때, 천황제 국가의 악에 대해 의연하게 반대할까, 아니면 침묵할까, 그것도 아니면 검열을 비껴갈 듯 말듯한 발언을 해서 결국에는 탄압당할까, 셋 중 하나를 고를 수밖에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일본 지식인은 변증법이라는 주문에 의지해 명확한 대립을 모호하게 피하며, 자신들의 이론이 높은 차원에 서서 파악하는 것‘이라거나, ‘단번에 파악하는 것‘이라고 떠들어댔다. 그들에게는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우선 지식인 지도자로 남고 싶은 의지가 모든 것에 앞서 있었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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