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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e - 시즌 8 ㅣ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8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평점 :
<지식 e>시리즈가 7권을 이어오면서 누적 판매부수가 100만권을 돌파했다고 한다. 그동안의 시리즈를 모두 읽은 건 아니고 몇 권은 뛰어넘었는데 이번에 제8권은 우연히 좋은 곳에서 제공 받아 읽게 되었다. 고마운 기회다. <지식채널 e>는 'e'를 키워드로 자연, 인간, 사회, 과학,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간결하고 강렬한 메시지와 영상으로 전한다. 영상 시대이니 각처에서 필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을 묶은 책 <지식e>로 보는 건 영상이 아니라 사진과 활자인데 이 또한 나쁘지 않다. 영상은 순간 지나가면 그만이지만 사진과 활자는 두고두고 곱씹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여덟번째 책으로 나온 <지식 e>는 '사람들'을 주제로 한다. 링컨의 연설에 나온 문구로 유명한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를 걸고 세 장으로 나누었다. 각 장이 굳이 다른 맥락은 아니다. 링컨은 국민을 지칭한 것이지만 이 책에선 국민 혹은 사람들로 변형하여 가져온 듯하다. 당시에는 온갖 어려움과 비난과 박해를 겪었더라도 결국 세상을 바꾸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각 편마다 소개된다. 간략한 메시지와 사진 다음으로 이어진 상세한 내용과 역사적 사실, 확장한 생각거리들, 우리나라의 경우에 적용된 여러가지 사안들을 읽을 수 있다. 더 읽으면 좋은 도서도 두 권씩 권장해 두어 지식과 생각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굳이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눈길 끄는 곳에서 먼저 펼쳐 읽어도 좋다. 우리가 결국 말할 수 있는 건 '사람'에 대해서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사람'에 대한 이 책을 보며 똑바로 알지 못했거나 전혀 몰랐던 사실들이 꽤 흥미로웠다. 역시 사람이 희망이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고 한다. 배움이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그치는 일이 아니란 건 잘 안다. 문제는 늘 실천과 행동에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프랑스의 전 교육부 장관 레옹 베라르가 한 말은 신선하다. 교육과 배움의 목적은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을 원하게 되고 또 원하는 것을 제대로 아는 데에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민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원하게끔 하는 데 있다. (121P)
이 책이 독자에게도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처음 알게 된 사람도 있고 제대로 몰랐던 사람도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뿌리깊은 나무> 발행인 한창기(1936-1997).
학생 시절에 이 잡지를 서점에서 본 기억이 나고 사진 않았지만 들춰보았던 적이 있는데 그동안 이런 파란을 겪었다는
사실은 몰랐다. 통념에 빠지지 않고 권력에 타협하지 않고 올곧게 자신의 뜻을 관철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가슴 한켠에
퍼른 서슬을 서게 한다.
"외래어와 한자를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품격 있는 잡지를 독자들에게 선보일 수 있다"
"후미진 촌구석의 민중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의 가장 훌륭한 스승이다." (90p)
그 다음으로는,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의 주인공 건축철학자 정기용.
"건축가는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설계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건축가의 역할은 "원래 거기 있던 사람들의
요구를 공간으로 번역해내는" 것뿐이라고 생각한 정기용이 가장 염두에 둔 것은 '공공성'이었다. 2007년 9월 유력 일간지들이
'아방궁'이라는 수식어를 단 전 노무현 대통령의 봉화마을 사저를 설계한 건축가는 정기용이다. 지금은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사저도 곧 개방할 것이라고 하니 꼭 가서 정기용 건축가의 설계를 눈으로 보고 싶다.
외국사람 중 인상 깊었던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독해한 템플 그랜딘.
그녀는 1947년 보스턴에서 태어나 세살 때 자폐아 진단을 받았다. 언어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그녀는 동물처럼 시각적으로 세상을 이해했다. 동물의 관점을 장착한 그랜딘은 목장과 도축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풀어냈다. 30여 년간 육류산업에 종사하면서 동물에게 고통을 덜 주도록 고안한 '중앙궤도형 도축장치'는 오늘날 미국 도축장 절반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소떼들이 제 몸을 압박하는 보정 틀에 들어가서는 매우 차분해지는 것을 목격한 그녀는 자신에게 맞는 보정 틀을 만들어 불안하거나 우울할 때마다 사용해 효과를 보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허그 머신'은 자폐인용 압박치료기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랜딘을 소개하면서 이 책은 니체의 관점주의와 영화 '라쇼몽', 왜상(anamorphosis), 바니타스(vanitas)로 이어지고 지젝의 '삐딱하게 보기'를 권한다. 이런 게 이 책의 미덕이다.
그 다음으로는 파브르. 파브르의 곤충기는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 곤충의 관찰기록과 본인의 사생활을 엮어낸 '곤충기'의 원제가 '곤충학적 회고록'이라는 건 몰랐다. 1911년 시인 프레데리크 미스트랄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파브르를 추대하는 운동을 벌였다고 하니 그의 곤충기는 읽기에도 멋진 문장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장 앙리 파브르를 이 책은 '험난한 길을 걸어간 고요한 산책자'로 명명한다. 파브르를 말하며 법곤충학도 소개하는데 꽤 흥미롭다. 권장하고 있는 '파브르 평전'도 담아둔다. 당시 진화론에 반대한 자연주의적 관점을 고수한 그는 더욱 고독한 말년을 보냈다. 가난에 처한 파브르는 이렇게 항변했다.
"당신들은 동물을 해체하지만 나는 산 채로 연구한다. 당신들은 동물을 공포와 연민의 대상으로 바꾸지만 나는 사랑받는
대상으로 만든다. (...) 당신들은 화학실험을 통해 세포의 원형질을 연구하지만 나는 가장 고귀한 존재의 본능을 연구한다"
(242p)
이 책을 읽으며 몇 해전 지식채널e 에서 소개되었던 영화감독으로서의 심형래가 생각났다. 요즘 그의 소식을 떠올리니 안타까운 마음이 일어났다. 너무 쉽게 한 사람을 부풀린, 대중의 욕심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의 일은 더 두고 봐야 알 일이고 속단해서도 안 될 일 같다. 물론 어떤 면에서만 보자면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으로 격상될 일이라 더욱 그러하다. 다각도로 차분히 생각하는 힘이 이 책을 보면서도 필요할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모든 사람들, 그와 연관된 세상 후미진 곳의 사람들과 확장해볼 생각거리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작은 힘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 지식이 지식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원하고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게 되면 좋겠다.
아홉번째 <지식 e> 를 기대하며 덧붙인다. 2013년 4월 30일, 1000회 방영을 맞은 '지식채널e'는 6월 말까지 UCC공모전을 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작은 힘,이라는 주제로 시청자들의 공모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