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줄리언 웰즈의 죄 ㅣ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5
토머스 H. 쿡, 한정아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그리 어렵지 않은 내용인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 내용이 만만치 않게 쓰는 작가가 있다. 처음에는 그냥 물흐르듯이 책을 읽어가다가 어느 순간되면 뭔가 깊은 굴속에 들어가는 마냥 내용에 깊이가 느껴진다. 한번보단 두번 읽어보면 그 느낌이 느껴진달까. 그런 글 쓰기가 쉽지 않은데 그렇게 쓰는 작가 바로 토머스 H 쿡이다. 평에 이르길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언어로 슬픔을 노래한다'라고 하는데 사실 가장 아름다운지는 모르겠다. 영어로 쓰여졌으니 영어로는 아름다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말로 된 책에서는 그걸 못느끼겠으나 적어도 글자 한자 한자 파내듯이 정성스럽게 글이 쓰여졌다는 느낌이 들긴 한다.
이번에 나온 책은 형식면에서 그전에 보여줬던 책과 좀 색다른 식으로 서술되는 내용이다. 결론은 나 있고 그 결론의 이유에 대해서 추적해가면서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서 보여주는 방식. 물론 그 마주치는 부분은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지나칠수 있는 작은면도 놓치지 않고 뜻을 담아낸다.
주인공은 제목에 나와있는 줄리언 웰즈이다. 초반에 그는 자살한다. 줄리언은 그야말로 인간말종인 존재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작가였다. 세계 곳곳에 있는 잔악하고 반사회적인 범죄를 직접 찾아가서 조사하고 그런 실화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독특한 사람이었다. 근데 그가 갑자기 죽는다니?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화자인 필립과 줄리언의 여동생인 로레타가 그 이유를 알수없는 자살에 의문을 품고 그 수수께끼같은 동기를 추적하게 된다. 도무지 알수 없는 그의 행동. 전혀 낌새도 눈치채지 못했기에 더욱더 그 진실이 무엇인지 알수가 없다. 다만 몇년전 필립과 함께 갔던 아르헨티나에서의 일들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는 정도만 알수 있을뿐. 과연 거기에서 일어났던 일과 거기에서 만난 사람이 그 후 줄리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을까.
책은 장르를 규정짓기가 애매하다. 원칙상은 추리 스릴러다. 자살한 줄리언의 행로를 추적하면서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려고 하니까. 하지만 아주 복잡한 추리 기법이 동원된것도 아니고 가슴 두근거리는 추적장면이 있는것도 아니다. 내용이 어렵지도 않다. 하지만 하나하나 곱씹어보면 의미가 간단하지 않으면서 뭔가 의미심장한 느낌이 들게 한다. 심리소설인가싶을때도 있다. 작가는 그런 형식을 통해서 뜻한바를 나타내고자 한것인가. 아주 정교하게 설계된 형식이라고 할수 밖에 없을꺼 같다.
책은 쉬우면서도 쉽지 않은게 일단 내용 전개 자체가 그리 어렵지 않다. 어찌보면 단순하다. 하지만 내용중에 나오는 수많은 문학 작품을 생각해보면 헉헉거리게 만든다. 필립과 로레타의 대화에서 여러 작품들에서 나오는 주옥같은 대사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둘 사이가 오랫동안 알고 친한 사이고 또 두 사람 모두 책과 관련된 직업을 갖고 있어서 그런 대화가 가능하겠지만 그 수많은 책을 읽지 못한 일반 독자로서는 쉽지 않을밖에. 그리고 그런 대사를 잘 집어내서 적절하게 글을 이어나가는 작가가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독특한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가지만 결국 작가가 말하고 싶은것은 바로 '인간'이다. 인간의 본성과 내면은 무엇이고 어두움과 진실의 밝음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하는게 아닌가 싶다. 그런 치열한 의식이 소설에 투영되었는것이고. 그래서 그 속의 단단함이 책에서 쉽게 손을 떼지 못하게 하는거 같다.
책의 화자는 친구인 필립이지만 주인공은 줄리언이다. 책을 읽으면서 참 매력적인 사람이란 느낌이 들었다. 일반적인 스릴러에서 보여지는 캐릭터 구축을 굳이 하지 않았는데도 있을법한 사람으로 잘 그려진거 같다. 물론 필립이나 로레타같은 다른 사람도 참 자연스럽게 인물 묘사가 되어서 극의 사실성을 더 높이는거 같다. 그래서 내용이 주는 진득함과는 관계없이 글은 잘 읽히는 편이었다.
인간의 삶의 형태를 섬세하면서도 치밀한 서술로 다양하고도 다채롭게 보여주는 토머스 쿡의 진면목이 잘 드러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