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태준 이우일의 도쿄 여행기
현태준. 이우일 지음 / 시공사 / 2004년 9월
품절


--태준이 형과 나는 언제나처럼 홍대 앞의 선술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형, 우리 여행을 가자. 그래 도쿄는 어때? 여행 다녀온 다음 그걸 책으로 만드는 거야. 그림도 그리고 일기도 쓰고. 엄청 재미날 것 같지 않아?"
"응, 재미있겠다."(9쪽)

널리 알려진 대로 코믹엽기 만화와 일러스트를 그리며 장난감 마니아인 두 남자, 술집에서의 수다가 현실이 되어 어느 날 나란히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우일이 만난 도쿄, 차례.

고양이 버스, 책방 순례, 무라카미 타카시, 제멋대로 카이조, 로스트 인 트렌스레이션, 초밥을 맛있게 먹는 법, 도쿄에서 구입한 장난감 컬렉션 등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현태준은 프리마(노점의 일종)와 중고숍, 그리고 도시락, 식당이나 술집의 음식 소개를 열나게 하고 있다.

(**클릭하면 큰 사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뭔가 맘에 드는 아이템이 있으면 죽어라 그것 하나만 입는다. 아무리 집사람이 그것 좀 그만 입고 다른 것을 입으라며 챙겨줘도 반드시 그것만 입는 것이다. 더럽혀지면 저녁에 빨아 아침에 다시 입는다. (...)아무튼 그래서 우린 평소대로 입고 동네 목욕탕 가듯 훌쩍 떠났다.
(13쪽)

정말 마음에 드는 두 남자의 패션 철학이다.


문득 눈에 띈 중고가게에서 아내 선현경을 위해 낡은 치마를 한 벌 사고 좋아라 하는 이우일.

--나는 책방에만 들어가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내가 발견한 몇 곳의 책방은 정말 걸작이었다. 그림같은 책방이었다고나 할까.(...) 그 책방들은 너무나 주변의 풍광과 잘 어울렸으며, 자신의 개성에 걸맞은 책을 다루는 곳이었다.(35쪽)

책방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코가 벌렁벌렁하고 가슴이 뛴다. 아아, 부러워라!

--혼자 도쿄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일주일 동안 있었는데 무인도에 혼자 버려진 기분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곳이 많은 도시이고, 그래서 혼자도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외로움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76, 77쪽)

빌 머레이와 스칼렛 요한슨이 주인공이었던 영화 '로스트 인 트렌스레이션.(우리 나라에서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라는 제목으로 개봉.) 도쿄로 여행 온 두 남녀의 스쳐지나가는 듯한 사랑과 손에 잡힐 듯 전해져오는 외로움이 나에게도 아주 인상적인 영화였다.

--이곳의 모습이 내가 사는 곳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나의 여행은 시작된다.(121, 148, 149쪽)

현태준은 역시 별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동네 허름한 골목을 선호한다. 시모키타자와라는 동네, '그라바'라는 이름의 술집과 옷집 등 독특한 가게들이 몰려 있는 골목.

--청계천 벼룩시장의 분위기와 매우 흡사해서 찰칵. 인형, 골프채, 명품 핸드백, 교황 바오로의 사진까지 잡동사니 대행진이구나.(170, 171쪽)

<뿔랄라 대행진>과 <아저씨의 장난감 일기>의 저자답게 대한민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장난감 마니아 현태준은 100엔 이내의 중고 장난감을 선호한다. 마음에만 들면 비싼 가격도 별로 개의치 않고 사는 편인 이우일과는 쇼핑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

--도쿄의 오빠들과 야키도리술집에서의 만남을 기념하며.(231쪽)

거구의 대식가답게 맛있는 음식이나 식당, 술집이라면 환장하고 달려드는 못 말리는 이 아저씨의 허름하고 맛나 뵈는 음식 소개 사진들도 빠트릴 수 없다.(머리에 두건을 쓰고 파란색 가로줄 무늬 티셔츠를 입은 이가 현태준.)

--멋쟁이 오빠의 놀라운 東京 특수 여행비법 대공개(266쪽)

도쿄에 친한 친구가 살고 있어 내심 그곳을 아지트 삼아 이런 여행을 꿈꾸기도 했는데 몇 주 전 친구 부부가 아예 짐을 싸들고 돌아왔다. 오호 통재라!

두 남자의 도쿄 여행은 중고 장난감 가게나 책방, 변두리의 도시락집, 선술집을 도는 게 다였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뒤를 쫓는 이 시시껄렁한 기행이 무척 재미있고 마음에 들었다. 그러면 된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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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나 2005-05-30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과 별 상관없는 댓글인 지 모름) 도쿄 여행기에서 이우일이 손에 쏙, 들어오는 그 작은 책들 얘기할 땐 저도 얼마나 가지고 싶었는지 몰라요. 예전에 일본여행 갔을 때 무려 4천엔 상당의 비단으로 만든 북커버를 산 적이 있는데 사이즈가 너무 작아 할리퀸 로맨스 말고는 우리나라 책을 싸기엔 어림도 없더라구요 하하..

두 사람의 팬인 나로서도.. 로드무비님의 '그러면 된 거지 뭐'에 동감 ^^

하루(春) 2005-05-30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싶어요. 근데, 오타 있어요. 아래에서 네번째 그림 옆 설명 '이곡--> 이곳' 아닌가 싶어서요.

nemuko 2005-05-30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관찰기를 재밌게 읽은 탓인지 이것도 좋아보여요^^

로드무비 2005-05-30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무코님, 네. 이 책도 아주 재밌습니다.^^
하루님, 오타 가르쳐 주셔서 고마워요.^^
스노드롭님, 그러게 말입니다. 작은 책 이야기 흥미롭더군요.
오, 일본도 다녀오시고.
님의 쇼핑 목록도 궁금하구만요.^^

히피드림~ 2005-05-30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개인적으로 이름난 작가가 수필집 내는 거 별로 안좋아 하구요. 이런 만화가나 공예가(?)가 작품으로 말하지 않고 좀 시시해뵈는 여행기같은거 쓰는거 별로 안좋아해요. 이런 치사한 기획으로 탄생한 책들 보면서 일반인들도 나도 조금만 하면 책하나 쓰겠네라고 생각하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너무 엄숙주의라고 욕할 수도 있겠지만 누구든 글이라는 것은 제 살과 뼈를 깎는 고통속에서 나와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설가는 오직 소설로만 말하고 만화가는 만화만 성실히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에세이라는 건 그 작가들이 늙어서 적어도 예순이 넘은 다음에 한권 정도는 써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남이 경험하고 내가 읽는 여행기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서울갔다온 사람이 아무리 얘기해주면 뭐합니까 본인이 한번 다녀오는게 낫지.
오해 마세요. 저는 이런 종류의 책이 싫다는 것이지 로드무비님의 리뷰가 싫다는 것은 아니니까요. 도서관에서 빌려읽으면 모를까 제돈주고 살 일은 없으니까 여기서 이렇게 포토로 보고가니 좋네요.^^

릴케 현상 2005-05-30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좋아:)
근데 혹시 잊은거 없수?

로드무비 2005-05-30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자명한 산책님!
잊은 거 있습니다.
내일 꼭 보낼게요.
그런데 좋다고 하심시롱 뭐 잊은 거 없수꽈?ㅎㅎ

punk님, 저도 그런 엄숙주의 좋아합니다.
그런데 산문을 훨씬 재밌게 잘 쓰는 시인이나 소설가를 가끔 봅니다.
여튼 저는 제가 읽어 재밌고 좋기만 하면 됩니다.
소설이든 시든 여행기든 여타 잡문이든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런 책들 포토리뷰 올리는 이유가 뭐게요?
저야 워낙 좋아하니까 책까지 사서 보지만 그럴 의사가 없는 분들
사진으로나마 잠시 웃으며 즐기시라고요.ㅎㅎ

히피드림~ 2005-05-30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말도 맞습니다. ㅎㅎ
세상만사 정답이 없는 법이고, 뭐든 상대적이니까요.
결국엔 많은 것들이 취향의 문제로 낙찰되기 마련입니다.
로드무비님, 제가 읽어보지도 않은 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거 잘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제가 좀 이렇게 신중치가 못하네요.^^
어제 하루종일 들어왔었답니다.근데 주말이라 어디가셨었나봐요.
님서재들어오면 재밌거든요.

로드무비 2005-05-30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방이 재밌다니 기분이 좋습니다.
어제는 친구 생일 축하해주러 우리 가족이 출동했어요.
밤늦게까지 실컷 마시고 먹고 떠들고 왔습니다.^^

날개 2005-05-30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토론의 장이 지나고 난 뒤의 댓글 달기는 정말 어려워~~~ㅡ.ㅡ
하여간 재밌겠어요...^^*

로드무비 2005-05-30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배드민턴 여사님 납셨다!
날개님, 오늘 낮 올린 포토리뷴데요?
요즘은 리뷰든 페이퍼든 인적도 빨리 끊겨요.^^;

히나 2005-05-31 0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인적을 저라도 쭈욱~ 이어드릴게요. 제 쇼핑목록이 궁금하다구요? 하하, 기억날까 모르겠네(라고 하면서 열심히 굴리고 있음)

썸머소닉이라는 락 페스티벌을 보러 갔을 때라 쇼핑은 별 게 없어요 우선 HMV는 너무 비싼 관계로 우리나라에선 구할 수 없는 CD 딱 한 장만 샀어요. 그리고 중고레코드점에서 몇 장의 시디를 더 사구요. 비틀즈 마니아 샵이 있는데 거기서 퍼즐, 손거울, 열쇠고리를 샀어요 열쇠고리는 친구에게 선물로 주구요. 도쿄 여행기에도 나오는 곳들이죠~

그리고 블라이스 인형을 샀어요 큰 걸 사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작은 걸루.. 1500엔 밖에 안 하는 옷도 하나 샀구요.. 그리고 책과 관련된 쇼핑은 비단 북커버와 책깔피,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읽은 패션잡지 정도.. 쓰고 나니 정말 별 거 없네요 ^^;

로드무비 2005-05-31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노드롭님, 락 페스티발을 보러 일본에......멋집니다.
비틀즈 마니아 샵 꼭 가보고 싶군요.
블라이스 인형 무지 비싸던데 어느 놈으로 사셨는지
사진 찍어 한번 보여주세요.
비단 북커버도......^^

플레져 2005-06-03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이우일씨와 선현경씨가 그렇고 그런 사이였어요? 흐미~ ㅎ
이 만화는 좀 땡기네요.

로드무비 2005-06-03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플레져님 그것도 몰랐어요?
얼마 전 가족관찰기가 알라딘을 한 바퀴 돌았는데도?@,.@

실비 2005-07-03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좋아요.. 약간 외국에 대한 동경이있어서 꼭 한번 가고싶답니다. 엄마께서 외국나가는거 자체를 반대하셔서 지금은 보류중이지만.. 자세히 찍으셨네요
추천하고 퍼갈게요^^

로드무비 2005-07-10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비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