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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역사다 - 한국 영화로 탐험하는 근현대사
강성률 지음 / 살림터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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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歷史)'라는 단어를 들으면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에드워드 H. 카)',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와 같은 문구들이 생각납니다. 거의 모든 분야에는 그 나름의 역사가 있으니 참으로 다양한 역사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한국영화사'는 다소 생소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영화를 본 것이 13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기에 그 이전의 시간이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져서 그랬나봅니다.

    역사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역사 속의 사건을 극적으로 해석하는 영화 또한 그렇습니다. 그래서 시대에 따라 새로운 주제가 등장하기도 하고, 같은 주제가 시대별로 다른 관점을 가지기도 합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그에 상응하는 시기에 제작되었던 한국영화들 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굴곡이 많았던 우리나라의 영화만큼이나 영화사도 파란만장합니다.

한국영화사에 드리운 어둠은 짙었다

  <횡성신문>에 실린 광고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1903년에는 이미 영화 상영이 일반화되어 있었다니 한국영화사는 1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당시에는 서구의 도시 풍경을 담은 다큐멘터리나 단편극영화가 대부분이었고, 한국인이 제작한 영화는 일제 시대에서야 등장했습니다.)
제국주의의 물결에 휩쓸렸던 대한제국 시절을 거쳐 일제 시대로 넘어가면서 영화 산업도 위기를 맞이합니다. 일본의 자본과 기술로 만들어졌고 상업적 흥행만을 노린 영화들, 또는 정책 영화나 어용(御用) 영화와 같은 친일 영화가 대부분입니다. 자신의 이념에 맞는 영화를 제작하던 카프(KAPF) 영화인들도 있었지만, 일제의 검열과 검거 앞에서는 힘들기만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맞이한 해방, 이제는 미군정이 일제의 영화 정책을 그대로 계승합니다. 이러한 시나리오 검열, 실사 영화 검열은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에도 사라지지 않았다니 우리나라 영화사에 드리운 어둠은 너무나도 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영화는 대중적 파급력이 강하기 때문에 시대의 지배자들은 영화를 통제하거나 지배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자는 영화(그리고 독립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와 관점에 주목합니다. 아무리 수많은 영화가 만들어졌던 시대이더라도, 현실 또는 과거를 직면하고 그것을 제대로 극복할 의지가 있는지 그 본질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리고 우리 역사의 그늘 속에 묻혀있었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위안부, 제주 4.3 항쟁, 빨치산, 비전향 장기수, 조총련, 베트남전, 광주민주항쟁, 노동자 문제과 같은 주제들을 짚어나갑니다. 

   우리나라의 영화는 1997년부터 재도약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한국영화도 외국영화도 헤아릴 수 없는 요즘을 생각하면 놀랍기만 한 사실입니다. 그것은 나머지의 시간에는 미디어의 자유가 탄압되고 정책적으로 이용되었다는 것을 뜻하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영화에 자행된 억압을 보며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리 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과 권력 앞에 울분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분석적이고 학구적인 분위기여서 영화 자체에 대한 생동감을 느끼기는 힘들었던 점이 아쉬웠습니다. -이런 종류의 책들이 그러하듯이- 보지 않은 영화를 글로 읽으며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책 역시 저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역사이며 또 다른 관점이 존재할 수 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와 사회를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유익했습니다. 개개인이 '영화' 자체에 가지고 있는 의미는 다양하겠으나, 영화 속에 숨겨진 혹은 드러난 의도와 시대상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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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기 인문 A조 마지막 도서 : 심리학, 배신의 상처를 위로하다
심리학, 배신의 상처를 위로하다
이브 A. 우드 지음, 안진희 옮김, 김한규 감수 / 이마고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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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었던 사람의 배신. 이전에 그와 함께 그렸던 미래는 온데간데 없어집니다. 그 자리에는 상처와 분노, 공포와 고통만이 남습니다. 현재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고,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듭니다. 20년 가까이 이런 이들을 도운 저자는 정신과 전문의인 자신의 직업과, 그동안의 상담 사례들을 바탕으로 조언합니다. 그녀 역시, 한때 남편의 배신과 이혼을 겪으며 힘든 시기를 보낸 적이 있었기에 이야기가 깊이 와닿습니다.
이 책은 상처받은 여성을 대상으로 쓰여진 책이지만, -저자의 말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여성을 남성으로, 남성을 여성으로 바꾸어 받아들인다면 비슷한 상황에 있는 남성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후반부의 몇몇 챕터들은 그야말로 여성들을 위한 이야기이므로 예외입니다.)

'용서'에 대한 새로운 관점

   심리 치료에 관한 책들은 비슷비슷한 과정을 언급할 때가 많습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상대방을 용서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라고 말이지요. 말이 쉽지 용서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저기에서 "일단 용서하라"고 말하니 그러지 못함으로 인한 고민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는 "용서할 수 없으면 용서하지 말아라"고 말하고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용서는 정의에 대한 당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은 부당한 일들에 대해 어떤 종류든 보상받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nbsp;…(중략)… 무엇보다 용서는 절대 가해자를 너그러이 봐주는 것이 아니다. 용서할 준비가 되었다면 당신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그를 용서하는 것이다.  - p. 102  
   

 상대방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는 일이 닥쳤다 하더라도, 그 상황을 어떻게 대할지는 본인에게 달려있습니다. 희생자로 남을지 고통을 발돋움하는 계기로 만들지, 헤어질 것인지 관계를 회복할 것인지 말이지요. 현실을 마주하고 자기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치유한 후, 상대방을 용서해도 괜찮다는 저자의 말, 그리고 과거의 일을 반복하지 않고 새로운 인생을 만들기 위한 방법들까지 언급하여 현실적인 조언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심리학과 관련된 심오한 이론이 나오지는 않지만- 다양한 사례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고, 적절한 질문과 실천 방안을 제시하여 행동으로 연결하기에 좋았습니다. 또한 해당 챕터와 관련이 있는 책들을 추천하고 있어 보다 깊은 앎을 유도하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분야는 그 상황과 어느 정도 관련되어 있어야 깊이 다가온다는 점이 아쉽지만, 참고삼아 읽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 생각합니다.
결혼 생활이나 연인 관계에서 배신의 아픔을 겪어본 분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남녀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언급되므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분에게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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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싸우는가>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 행복한 사회 재건의 원칙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비아북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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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이 계속되던 시절,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과 국가, 현실에 대한 질문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버트런드 러셀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1915년에서 1916년 사이에 강연했던 내용이 이 책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충동적인 존재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책의 전반에 걸쳐 인간의 행동이 충동과 욕구에서 비롯된다고 전제합니다. 그 중에서도 충동의 비중을 크게 보고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자연스러운 활동을 야기하는 것은 그 활동이 겨냥하는 목적이 아니라 그 활동 자체에 이끌리는 충동이다. 사람들이 어떤 목적을 원할 때 목적 그 자체를 원해서가 아니라 그 목적을 실현시켜주는 행동을 필요로 하는 본성이 작용하기 때문에 그 목적을 갈망하는 경우가 많다. 전쟁도 마찬가지이다. 전쟁을 통해서 실현되는 목적은 그것이 실현될 때보다 계획 중일 때 더 중요하게 부각된다. 전쟁 자체가 인간 본성의 한 측면을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동이 행복을 가져다 주리라 기대되는 것을 실현하려는 욕구에서 비롯한다면 합리적인 전쟁 반대론만으로도 전쟁은 이미 오래전에 종식되었을 것이다. 전쟁은 어떤 이득이 있는지를 따지는 시중한 계획이 아니라 충동에서 비롯하기 때문에 예방하기 어렵다.  -p. 86     
   

개인적으로는 동의하기 힘들지만, 전쟁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변한 현실 앞에서 저자는 기존의 논리로 사회 현상을 규명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의 폐해가 드러나고, 자유를 추구하는 성향이 강해지며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던 복잡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이전과는 다른 대안이 필요했겠지요. 그래서 인간의 본성이라는 새로운 원인을 찾았나봅니다.

창조적 충동, 사회 재건을 추구하다

    그는 인간의 행동을 분석하고, 국가의 역할과 전쟁의 본질에서부터 경제, 교육, 결혼, 종교 등 국가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 고찰합니다. 이야기는 창의성과 활력, 그리고 삶의 기쁨이 넘치는 사회로 향합니다. 본능과 지성과 영혼이 조화롭게 발전된 모습, 그것은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 해당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훌륭한 삶과 변화된 세계에 대한 생각이 정립되어야 하고, 경제 구조나 인생 철학에서부터 바뀌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시대가 많이 바뀐 지금의 관점에서 보아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세월이 지난 만큼 사회적 수준이 향상되지는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특히 교육 분야에서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교육 과정에서 주입하기보다는 존중심을 강화하여 청소년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고 정신을 키우고, 그들이 진실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육은 무조건적인 수용 대신에 건설적인 의문과 지적 탐구심, 진취적인 태도가 승리를 거둔다는 세계관, 사고의 대담성을 조장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는 태도, 정치적인 목적에 순종하는 태도는 정신적인 요소에 대한 무관심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앞서 말한 해로운 습성을 야기하는 직접적인 원인이다. 그러나 이런 원인들 뒤에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교육을 학생들의 성장을 돕는 수단이 아니라 학생들을 지배하는 권력을 획득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태도이다. - p. 158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이 떠올랐습니다. 의문을 가지는 과정 없이 그저 받아들이고, 시험을 위한 지식을 외워야하는 학생들을 본다면 버트런드 러셀은 무슨 말을 할까요? 그러한 습성은 그 시절에 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릇된 권위와 언론, 그리고 사회적 풍조에 순응하는 수동적인 사고 방식이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만들어냈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 읽었던 『9시의 거짓말』의 내용이 자꾸만 겹쳤습니다.
+ 관련글: 9시의 거짓말 - 한국의 언론은 어디로 가는가?

물론 저자에게 동의할 수 없는 사고방식도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민족주의가 한껏 고취되었던 시기라 그런지, 나라에 따라 민족성을 규정하는 문구가 등장합니다. 특히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프랑스는 가장 문명화된 민족으로 통한다든지, 독일이 자국에서 소질을 발휘하지 못하는 분야를 시샘하여 다른 나라의 문화를 짓밟으려고 작정을 했다는 부분에서는, 이것을 그저 당시의 당연한 관점으로 여기고 넘어가기가 힘들었습니다 (p.88~90).

   전체적으로 볼 때, 전쟁에서 벗어나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로 변화시키고자 고심했던 흔적이 곳곳에 보이는 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이 그러하듯,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를 줄이기에는 한계가 많은 듯 합니다. 게다가 정치철학이라는 어려운 주제와 난해한 문장이 만나 읽는 내내 쉽지 않았던 책이었습니다. 20세기에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을 미쳤던 버트런드 러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심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정치 철학이나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분 또는 인간의 심리나 행복론에 관심이 있는 분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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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의 거짓말>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9시의 거짓말 - 워렌 버핏의 눈으로 한국 언론의 몰상식을 말하다
최경영 지음 / 시사IN북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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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가 언론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진 것 같습니다. 주요 일간지와 스포츠신문을 막론하고 내용없는 기사에 자극적인 제목을 써서 클릭을 유도합니다. TV 뉴스에서도 인터넷의 기사와 별 다를 바 없는 소식을 전하기에 새롭지 않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언론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아졌습니다. 방송법에도 명시하고 있듯이, 방송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민주적 기본질서를 존중할 공적 책임이 있고, 방송에 의한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합니다 (방송법 제5조 1항 및 제6조 1항). 그런데 언론은 지금 그러한 보도를 하고 있을까요?
이에 대해 솔직하게 드러내놓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자는 KBS 기자로 10년 넘게 활동했던 경험과 풍부한 사례를 바탕으로 한국 언론의 현실을 꼬집어냅니다. 그리고 대중에게는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워렌 버핏  vs. 한국의 언론

   이 책은 워렌 버핏의 가치관과 한국 언론의 몰상식을 대조하는 구성으로 전개됩니다. 저자는 워렌 버핏이 말하는 기업의 본질과 가치를 통해 한국 언론이 내세우는 -'진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한다는- 이념이 왜 틀렸는지 짚어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투자가와, 공익을 위해 존재하는 언론이 같이 다루어진다는 점이 독특하지요.
읽다보면 주식시장의 속성, 그에 참여하는 대중과 뉴스의 상호관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주식에 관심이 있는 개인투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들도 많았습니다.

한국 언론의 현실을 말하다

   저자는 우선 언론이 주장하는, 또는 언론에 강요하는 '절대적 객관'과 '기계적 중립'이란 문구부터 틀렸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이성에는 한계가 있고, 기사를 쓰고 선정하는 모든 과정에 편집자의 주관이 들어가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계적 중립'을 논하며 '물타기'를 합니다. 누구를 위한 정치이고 기획인지 구별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경제적 사안의 본질은 흐리고 논쟁거리만 늘어놓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의 극우 신문들이 창조한 용어 '세금 폭탄'도 참 잘 먹혔습니다. 덕분에 종합부동산세 대상자뿐만 아니라 달랑 집 한 채 가진 일반 서민들도 세금이 폭탄처럼 투하될까 노심초사했습니다. 지금은 보수 정권으로 바뀌어 세금이 폭탄처럼 투하되지 않으니 참으로 편안하실 겁니다. 그런가요? 세금이 확 줄어서인가요, 아니면 세금 폭탄이라는 단어가 신문에서 사라져서인가요? 당시 여러분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본질'이 세금 폭탄이었을까요, 아니면 세금 폭탄으로 한동안 지면을 도배했던 신문 기사였을까요?  -p. 27 

   김대중, 노무현 재임 기간 동안 택시 운전기사들의 입을 빌려 흉흉한 경제 민심을 전파해온 신문들은 왜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요즘에는 그런 기사를 싣지 않는 것일까요? 택시 운전기사들의 살림살이가 급격히 나아져서?   -p. 95

 
   

   이렇게 된 원인 중 일부는 우리나라의 역사, 1970~80년대 독재정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의 정치 사회적 환경 때문에 언론, 특히 방송은 권력에 길들여져 있었습니다. 90년대 초반까지도 정부나 야당에서 내어주는 자료를 보도했을 뿐, 제대로 된 취재를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받아쓰기 저널리즘(stenographic journalism)에 익숙한 사람들이 현재 언론의 고위직에 있으니 언론의 소극적인 성향이 바뀌기 힘든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언론이 진실을 추구한다는 것은 사실들 속에 숨겨진 사회적 맥락, 그 의미를 찾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언론은 단순한 사실을 전하는 데도 힘에 부쳐 합니다. 당연히 숨겨진 사실을 발굴해서 그 사회적 맥락까지 꿰어 맞추기란 어렵습니다.   -p.211  
   

   또한 대중과 광고주 사이에 있는 것이 언론입니다. 광고주는 대중의 관심을 얻어야 상품과 서비스를 광고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수입원인 미디어 산업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사만 가득한 상업주의 언론으로 전락하였습니다. 기사의 초점은 대중에게 필요한 사안에 있지 않습니다.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소재가 난무합니다. 그러다보니 극단적인 언어도 많이 사용합니다. 미국의 금융위기였던 2008년 9월~12월에 미국의 경제 신문에서 사용했던 '위기, 공포, 공황'이란 단어보다, 같은 기간에 우리나라의 일부 경제 신문에서 사용한 동일 단어가 무려 3배나 더 많다는 사실은 한국 언론의 몰상식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현실을 멋대로 정의하고 추정하여 대중의 불안한 심리를 부추깁니다. 
   
  평상시 언론 뉴스는 약장수들의 헛소리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많은 사람들이 언론 뉴스를 마지막 기댈 곳으로 여기기 때문에 군중심리를 불러일으키는 언론의 영향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 p.222, 로버트 쉴러 교수(Robert James Bob Shiller)
 
   

   속체가 드러난 언론은 사회적 의제를 걸러내고 규정하는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정부과 기업 등 특정 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고, 결과적으로는 사회의 부당한 구조마저도 옹호합니다. 이러한 현실을 알고 나니 언론이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은 더욱 명확해집니다. 그리고 대중은 언론의 근본적인 한계를 알고 뉴스를 구별해야 합니다. 냉철하고 합리적인 언론과 이성적이고 현명한 대중이 만나야 이 사회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해 발전할 것입니다.

   저자가 머리말에 언급했듯이, 이 책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언론과 그에 휘둘리는 대중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강하고 격앙된 어조라고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들이 자세하게 까발려지니 속이 후련합니다. 그동안 언론이 조성한 이미지가 우리 생활에 얼마나 깊게 관여하고 있는가가 놀라웠습니다. 반성이나 변화 없이 앞으로도 무의미하거나 편향된 기사들이 쏟아져나온다고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언론과 사회에 대해 생각하고 답답해왔던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아직도 언론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읽어보셔야 할 것입니다. 또한 주식에 관심있는 분에게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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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커피북>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더 커피 북 - 커피 한 잔에 담긴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니나 루팅거.그레고리 디컴 지음, 이재경 옮김 / 사랑플러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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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커피 한 잔이 있기까지

   '커피'를 생각하면 원산지, 종류, 맛과 향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그 커피 한 잔이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칠까요? 그리고 커피는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요?
커피는 한 염소지기 목동이 염소가 먹는 커피 과육을 따라 먹으면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후 그 마을 수도사가 목동의 행동을 본 후 자신이 먹어보고, 예배를 드리며 장시간 깨어있어야 하는 수사들이 이 열매를 끓여마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커피의 기원설이 이슬람 국가에 많이 전해진다더군요.
우즈베키스탄의 의사 겸 철학자 아비센나가 커피의 의학적 효능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 서기 1000년의 일이라니, 커피의 역사는 벌써 천 년이 넘은 셈입니다. 이 책에는 커피가 중동에서 유럽, 미국으로 전파되고 발달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역사가 자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커피를 접하고, 커피하우스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던 모습은 그 시대의 사회적 단면을 보는 듯 하여 흥미진진했습니다. 또한 근현대사에 접어들면서 시작된 여러 커피 생산국들의 고충, 아라비카 커피와 로부스타 커피, 인스턴트 커피와 스페셜티 커피의 모습은 지금의 삶과 무척 가까운 이야기였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맥심이나 맥스웰하우스, 스타벅스나 피츠 등이 등장하고 지금의 시장이 형성되기까지의 시간이 소개되어 있으니 그저 케케묵은 과거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스타벅스가 사회단체나 소비 운동의 타겟이 되고 있으나, 그에 앞서 스타벅스가 커피의 역사와 문화에서 기여한 바를 알아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향긋한 커피의 이면을 만나다

   커피의 역사는 나라 간의 무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와 정치를 빼놓고 말하기가 힘듭니다. 식민지에 커피를 재배하고 본국으로 가져갔던 제국주의의 횡포, 생산국과 소비국의 관계를 알고 나면, 이전에 띄엄띄엄 알고 있던 사실들이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또한 대기업, 다국적 기업에게 밀리고 경제적, 정치적으로 소외되어 힘든 삶을 살아가는 생산자, 특히 소규모 자영농이나 노동자의 실태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커피가 인기를 얻었을 때 그것을 재배하였던 사람들은 식민지의 노동자들이었고, 커피 소비량이 많아질수록 재배지의 환경은 파괴되어갔습니다. 현재에도 역시 생산자와 그곳의 환경은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 잔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자는 책의 1/6에 걸쳐 '지속가능한 커피' 열풍에 대해 설명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구매하는 물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고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소비자가 이전의 수동적인 존재를 넘어 생산 및 소비 과정 전체에 걸쳐 주체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전세계적인 윤리적 소비 운동을 접하며 커피에 대해 보다 깊게 생각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습니다.

   
     식품시장 먹이사슬에서 소비자들이 발휘하는 힘은 우리들 대다수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자유 시장경제 체제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결국 다른 무엇보다 소비자 구매력이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시장이 들을 수 있을 만큼 크고 분명한 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재배되고, 어떻게 가공되고, 어떻게 운반되어야 할지, 그리고 그 거래에서 마땅한 보상을 받을 사람은 누구인지 분명히 가르쳐줄 필요가 있다. 
- 본문 p.315/ 머나 그린필드, <커피를 강하게 만드는 법(Making Coffee Strong)>(1994)
 
   

   시중의 커피 관련 도서는 주로 커피의 재배 지역, 로스팅 및 분쇄 방법, 그리고 커피 레시피를 언급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와 달리, 커피의 역사와 재배, 거래 과정과 시장의 역학, 지속가능한 커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읽는 내내 많은 사실을 새로이 알게 되었고, 소비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관점에서 커피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전문 자료로 글을 뒷받침하고, 이를 책의 마지막에서 정리한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생소한 부분이 많기에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하며 곱씹을 수 있는 깊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커피를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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