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저널 - 제38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혼조 마사토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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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오 신문 사회부 기자 마쓰모토 히로후미가 후지사와 서부 경찰서 부서장 다카이를 집요하게 취재한 끝에 유괴범 나카지마의 은신처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마쓰모토가 취재 결과에 추측을 가미해 부서장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하자, 부서장은 "멋대로 해" 라고 말하고 뒤돌아선다. 

적극적인 반박이 없다면 추측이 맞다는 것. 마쓰모토는 팀장 세키구치 고타로에게 즉각 전화를 걸어 범인의 은신처가 발견되어 포클레인을 동원한 수색이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그날 주오 신문은 특종을 잡았다. 다만,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다. 주오신문 사회부는 지금까지 납치된 여아들이 모두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점과 포클레인이 동원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다음과 같은 제목을 내보낸 것이다. 


"행방불명 여아, 시신 발견되었나"


신문이 인쇄되어 전국의 배부처로 발송된 직후, TV 화면 생중계로 경찰에 의해 구출된 피해 아동 아이리의 모습이 방영되었다.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주오 신문의 오보가 언론사의 금도를 무너뜨린 듯 각종 추측 보도가 쏟아졌다. 이미 죽어버렸다는 오보가 쏟아진 이상 피해 아동이 범인에게 능욕당한 것 같다는 추측 기사 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사건으로 심장이 약한 피해 아동의 할머니가 한달 뒤 사망했고, 어머니 역시 정신병원을 들락거리게 되었다.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회부 팀장 세키구치 고타로가 지국으로 좌천되었고, 후지세 휴리는 부서 전보 당했으며, 마쓰모토 히로후미는 취재기자의 무거운 책임을 감당치 못하겠다며 정리부를 지원한다. 

세키구치는 자신들의 오보를 인정하면서도 범인이 한 명 더 있다는 취재 결과가 수사로 이어지길 바랬다. 하지만 범인 나카지마는 처음에 공범을 인정하다가 나중엔 단독범행이라고 말을 바꾼 뒤 사형 당한다. 


그로부터 7년 뒤, 세키구치가 쫓겨간 사이타마에서 유괴 미수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이 2인조인 것 같다는 목격담을 들은 세키구치는 수법이 과거 사건과 너무나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한다. 그러나 동일범일지도 모른다는 세키구치의 확신은 오보 기자의 확신일 뿐. 모든 것은 처음부터 발로 뛰어 밝혀내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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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조 마사토는 1965년 가나가와 출생으로 메이지 대학교 경제학부 졸업 후 산케이 신문사에 입사해 스포츠 분야에서 20년간 취재기자로 일하다 작가로 전업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러한 경험이 <미드나잇 저널>에 생생하게 녹아들어 소설은 박진감 넘치는 현장감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소설에서 오보에 책임을 지고 저널리즘의 도의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기자들의 모습이 어느정도의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일본 신문이 진실을 추구하는 정론 매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어쩌면 작가가 생각하는 저널리즘의 이상향에 맞추어 소설이 재구성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에서는 기자라는 직업이 언젠가 부터 쓰레기와 동격이 되어 기레기로 불린 지 오래 되었고, 이제는 나아가 구더기나 다름 없다는 의미에서 기더기로 불린다. 이러한 모멸적인 호칭 이면에는 해당 직업을 가진 자가 응당 갖춰야 할 소명의식을 내팽개친 데 대한 대중의 배신감이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이라면 진실을 추구하고 정의의 편에 서야 한다는 대중의 기대. 


하지만 한국의 언론은 그러한 소명의식을 갖추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 광고를 지면에 싣기 위한 호객행위를 '취재'라는 이름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것대로 언론의 현 주소라고 인정하면 된다. 

대중은 기레기니 기더기니 하면서 기자들을 멸시하면 되고, 기자들은 그것대로 수긍하고 장사꾼으로써의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면 된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모멸은 사라질 것이다. 쓰레기장에 적치되어 있는 진짜 쓰레기를, 모멸하기 위하여 부러 쓰레기라 부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문제는 기자들이 여전히 자신들의 위상을 과거 목숨을 걸고 독재에 맞서고 진실을 추구했던 기자들의 그 위치에 두려고 한다는 데 있다. 

대중은 자신들 보다 저열하다는 엘리트 의식, 자신들이 언로의 향방을 조정할 수 있다는 착각.  


한국은 언론신뢰도 부동의 꼴찌 국가다. 모멸은 한동안 지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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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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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06년 9월, 우기의 캄보디아. 

의료 봉사활동을 마친 의사와 간호사를 싣고 가기 위해 헬기가 폭우를 뚫고 도착한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마을에 고립될 것이 분명하기에 헬기 조종사는 탑승을 독려한다. 그러나, 60세의 의사 엘리엇은 언청이 수술이 꼭 필요한 아이가 눈에 어른거려 헬기를 그냥 보내고 그곳에 남기로 한다. 간단한 수술이긴 해도 그 수술을 받지 못하면 아이는 음식을 제대로 씹을 수도, 말을 온전히 하기도 힘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수술을 성공리에 마친 엘리엇에게, 마을 촌장은 '이승에서 가장 이루고 싶은 소원이 무엇이냐'는 다소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엘리엇은 곰곰히 생각한 끝에 30년 전 사고로 죽은 한 여자를 만나는 일이라고 답한다. 대답을 들은 노인은 엘리엇에게 황금색 알약 10개가 들어있는 병을 건넨다.


집으로 돌아온 엘리엇이 노인이 건넨 약을 호기심 삼아 먹고 잠이 든 밤, 꿈 속에서 엘리엇은 1976년 9월의 자신을 만난다. 당시 서른의 엘리엇은 일리나라는 아리따운 아가씨와 사귀고 있는 전도 유망한 신출내기 의사였다.

일리나를 처음 만난 것은 지하철에서였다. 그녀에게 한 눈에 반한 엘리엇이 말을 걸기 위해 가까이 간 순간 지하철이 선로를 이탈했고 큰 불길에 휩싸였다. 온통 아비규환인 그곳에서 엘리엇과 일리나는 잔해 속에서 자기들 또래의 젊은이를 구해 내 가까스로 탈출한다. 이 사건에 계기가 되어 엘리엇과 일리나는 사귀게 되고, 그때 구해준 젊은이 매트와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과거에 머문 시간은 짧았고, 어느 순간 엘리엇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엘리엇은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캄보디아 노인이 준 약이 신비로운 효과를 일으켜 정말로 과거로 가게 된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꿈을 꾼 것 뿐일까. 

그 의문은 과거로 갔을 때 식당에서 집어든 냅킨이 발견되면서 풀린다. 


엘리엇은 이제 큰 고민에 빠지고 만다.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과거를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폐암 말기에 접어든 엘리엇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일리나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엘리엇은 30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에 환자의 곁에 머무는 것을 선택했었다. 이에 실망한 일리나가 직장인 동물원으로 돌아가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탓에 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 날 다른 행동을 하도록 과거의 엘리엇에게 충고한다면 어떨까? 하지만, 만약 그렇게 해서 일리나가 살아난다면 현재의 엘리엇에게 그 무엇보다 소중한 딸 엔지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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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엘리엇은 일리나에게 이별을 통보함으로써 그녀를 살리고자 하지만, 일리나는 이별 통보에 충격을 받아 자살을 시도한다. 온 몸이 형편없이 망가진 일리나를 현재의 엘리엇이 시간여행을 하여 직접 수술해 살려내지만 엘리엇과의 관계는 끝이 난다. 과거의 엘리엇은 그 후 30년간 외로운 시간을 보낸다. 매트 역시 엘리엇과의 관계를 끊기 위해 절교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젊은 엘리엇은 엔지가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현재의 엘리엇이 그랬던 것처럼 이탈리아의 학회에 참석해 다른 여성과 관계를 맺는다. 

고통에 찬 30년이 흘러 현재가 된다. 변한 것이 있다면 일리나가 불구가 되었지만 살아 있다는 점이었다.

폐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이었던 엘리엇이 죽자 장례식장에 매트가 찾아온다. 30년 만이었다. 매트에게 엘리엇의 딸 엔지가 아버지의 작별 인사와 함께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적은 노트를 전하자 매트의 뇌리에 '과거로 돌아가는 약' 이 떠오른다. 노트에 따르면 엘리엇은 알약을 아홉개 밖에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매트는 엘리엇의 유품에서 마지막 남은 알약 하나를 찾아낸다. 그 약을 먹고 과거로 돌아간 매트가 엘리엇을 만나 담배를 빼앗아 내팽개친다. 엘리엇은 매트의 그 행동 덕택에 담배를 끊게 된다. 

매트가 전해준 노트를 읽은 일리나가 그리움에 사무쳐 골든게이트로 갔을 때 그녀는 한 남자를 보게 된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당신은 무슨 선택을 할 것인가? 라는 가벼운 질문을 로멘틱하게 풀어낸 통속 소설로 팔리기 좋도록 잘 쓰여있다. 


각 장 마다 시간과 운명에 관련한 유명인들의 말들이 적혀 있어 옮겨 본다.


아름다운 저녁, 미래는 과거라 불린다. 이때 우리는 젊었던 시절을 바라본다. - 루이 아라공


내게 미래는 흥미로운 곳이다. 내가 앞으로의 날들을 보내고자 하는 곳이 바로 거기니까. - 우디 알렌


예쁜 처녀 옆에 앉아 있어 보라. 1분처럼 지나간다. 뜨거운 프라이팬 위에 1분간 앉아 있어 보라. 1시간처럼 지나간다. 이게 바로 상대성이다. - 앨버트 아인슈타인


......그리고 꿈을 간직하라. 언제 그 꿈이 필요할지 결코 알 수 없으니까. -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시간 여행이 불가능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우리 눈앞에 미래에서 무더기로 몰려온 여행자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 스티븐 호킹


우리가 친구였던 행복한 날들을 네가 기억해주길 간절히 바래. 그때의 삶은 지금보다 아름다웠으며 태양은 더 빛났었지. - 자크 프레베르


살고, 괴로워하고, 속고, 위험에 처하고, 주고, 잃고 하면서 나는 죽음을 밀쳐낸다. - 아나이스 닌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원하는 대로 생각할 수도 믿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과학을 다 손에 넣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 마르셀 소바죠


친구와 책은 조금이라도 좋은 걸 가져라 - 격언


사랑은 두 사람의 가장 강한 끈이 아니다. 그건 섹스다 - 타룬 텟팔, <머나먼 찬디가르> 11페이지


섹스는 두 사람의 가장 강한 끈이 아니다. 그건 사랑이다. - 타룬 텟팔, <머나먼 찬디가르> 670페이지


어제만 해도, 난 스무 살이었네. 시간을 어루만지고 있었네. - 샤를르 아즈나부르


어제는 사랑이란 게임이 너무나 쉬웠어. - 존 레논과 폴 맥카트니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는 단 하나뿐인 사람을 찾고 있다. 우리가 그를 찾지 못하면 그가 우리를 발견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방법밖에 없다. - 위기의 주부들


우리는 두 눈에 붕대를 감고 현재를 통과한다. 시간이 흘러, 붕대가 벗겨지고 과거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될 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비로소 살아온 날들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깨닫는다 - 밀란 쿤데라


당신이 아무리 피하려고 애써도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당신이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일어나지 않을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 라마나 마하르쉬


모든 건 운명이다. 운명은 절대 바꿀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조차 길을 건너기 전에 좌우를 살피는 것을 나는 보았다. - 스티븐 호킹


그는 나의 북쪽, 나의 남쪽, 나의 동쪽, 그리고 나의 서쪽이었다. - 오든


사람들은 이제 무엇을 알아가는 데 쓸 시간이 없다. 그들은 가게에서 완성품을 산다. 하지만 친구를 파는 가게가 없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이제 친구가 없다. - 생텍쥐페리


우리는 책만 읽어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시련을 통해서만 배운다. - 스와미 프라냔파드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하는 것은 동시에 우리가 죽어야 하는 좋은 이유이기도 하다. - 알베르 까뮈


스무살에, 우리는 세상의 중심에서 춤춘다. 서른살에, 우리는 원 안을 떠돈다. 쉰 살에, 우리는 안쪽으로든 바깥쪽으로든 쳐다보지 않고 원주 위를 걸어 다닌다. 이후에는, 중요하지도 않다. 아이들과 노인들의 특권, 우리는 투명 인간이다. - 크리스티앙 보뱅


인생은 바람마다 들러 가는 쓸쓸한 큰 성처럼 지나갈 것이다. - 루이 아라공


나를 운명에 내동댕이치고는, 그는 빛이 가득한 아침 속으로 떠나버렸어. - 에디뜨 피아프


비밀을 하나 간직하는 게 인간적이듯이, 그것을 언젠가 밝히는 것도 인간적이다. - 필립 로스


당신 앞에 여러 갈래 길이 펼쳐지는데, 어떤 길을 선택할지 모를 때, 무턱대고 아무 길이나 택하지 마라. 차분히 앉아라. 그리고 기다려라.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 꼼짝하지 마라. 입을 다물고 가슴의 소리를 들어라. 그러다가 가슴이 당신에게 말할 때, 그때 일어나 가슴이 이끄는 길로 가라. - 수잔나 타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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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소울 1 블랙 캣(Black Cat) 6
가키네 료스케 지음 / 영림카디널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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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0월, 아마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본인이 있었다. 에토라는 이름의 이 일본인은 크로노이테 강 어귀의 습지를 향하고 있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얼마되지 않는 돈까지 나눠줬던 노구치를 보기 위해서.


에토가 고베항에서 배를 타고 브라질을 향한 때는 1961년 11월이었다. 외무성과 산하조직 일본해외협력연합회는 브라질 이민을 장려하는 홍보활동을 일본 각지에서 펼쳤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노동력이 부족한 브라질 정부가 이민자들에게 관개용수가 완비된 20정보의 토지와 거주용 주택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했다. 에토는 아내와 동생을 데리고 브라질을 향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브라질에 그들이 말한 토지와 주택은 없었다. 인간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밀림이 있을 뿐이었다. 벌렘 주재 일본 영사는 "힘이 닿는 한 조처해 드리겠다"고 했지만, 말 뿐이었다. 


돌을 고르고, 나무를 베어내고, 천막을 쳐 겨우 햇빛과 비를 가리는 거처를 마련했다. 원시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황무지를 개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그곳 토양은 부식토가 지표에서 겨우 몇 센티미터에 불과했고, 인과 질소가 현저히 부족한 강산성을 띠고 있었다. 석탄을 대량으로 뿌려 토질을 변화시켜도 우기에 비가 내리고 강이 범람하면 말짱 헛일이 되고 말았다. 겨우겨우 작물을 길러내도 브라질 사람들은 사줄 돈도, 의사도 없었다. 주위에 지천으로 널린 게 과일이었기에, 브라질 사람들은 쌀이나 야채를 굳이 사먹으려 들지 않았다. 

말라리아와 아메바성 이질, 황열병이 돌았다. 치료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에토의 아내와 동생도 황열병으로 죽는다.

도망치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언젠가부터 그마저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일본인 이주민이 토지로부터 이탈되는 것을 막기 위해 브라질 정부가 여권을 압수했기 때문이다. 일본 영사관의 묵인 하에 일어난 일이었다.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에토가 올가미에 목을 걸고 생을 마감하려 할 때, 그를 구조해준 사람이 노구치였다. 노구치는 어쨌든 살아야 한다며 에토를 격려했고, 돈도 주었다. 에토는 아내와 동생을 잃어버린 그곳에서 더 살 수는 없었다. 10년을 기약하고 에토는 노구치와 작별한다. 


마나우스, 벌렘, 리우데자네이루, 상파울루를 떠돌며 에토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나 포르투갈어에 서툴고 기술도 없는 에토에게 삶은 가혹했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에토는 아사했을 것이다. 

가장 먼저 도움을 준 이가 창녀 엘레인이었다. 덩치가 큰 그녀는 아무런 조건 없이 에토를 받아들여 먹여주고 재워줬다. 그 다음에 만난 이가 같은 일본인 야마모토였다. 사금을 채취하는 곳에서 야마모토와 에토는 제법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강도들이 들이닥쳐 에토는 사금을 모조리 빼앗기고 한쪽 다리마저 불구가 된다. 

다시 빈털털이가 된 에토를 도와준 이가 레바논 출신의 핫산이다. 핫산의 소개로 과일중개인이 된 에토는 몇 년간 미친듯이 일에 몰두했고, 약속한 10년째가 되었을 때에는 세 아자(Ceasa)에 가게를 차린 중견 상인이 되어 있었다.


성공하면 찾아가겠다던 엘레인과의 약속을 지킨 에토가 이번엔 노구치를 찾아 크로노이테강으로 간다. 하지만 그곳에는 노구치 부부는 없고 어린 아들 케이이치만 원시인처럼 생활하고 있었다. 노구치 부부 역시 자연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한 것이었다.


엘레인과 결혼한 에토는 케이이치를 친아들처럼 키운다. 엘레인과의 사이에 마리아라는 예쁜 딸도 태어났다. 장사도 번창해 가게가 하나 둘 늘어났다. 이제 모든 것이 잘 될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엘레인과 마리아가 친정으로 갔다가 브라질의 낮은 치안 때문에 사고를 당한다. 강도들은 엘레인과 마리아를 처참하게 살해하고 가진 돈을 빼앗아 도망친다. 

성년이 된 다혈질의 케이이치가 군복무 시절에 알던 지인들을 동원해 강도들을 추적, 마침내 찾아내 모조리 살해한다. 복수는 완료했지만 둘은 자신들이 가장 소중히 여겼던 사람들을 잃어버린 상처를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상실의 날들이 반복되고, 그들의 의식이 크로노이테 강 어귀로 치닫는다. 정글에 자국민을 내팽개치고 전혀 돌봐주지 않았던 일본 정부, 일본에 남은 가족들에게 애걸복걸해 송금 받은 돈을 가로챈 일본해외협력연합회 직원들... 절망의 끝에서 그들이 찾아낸 것은 새로운 복수 대상이었다. 


에토, 케이이치, 야마모토, 그리고 케이이치가 어렸을 적 함께 놀았던 마쓰오 등은 자신들의 삶을 황폐하게 만든 일본 정부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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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반 일본은 전후 피폐해진 자국에서 입이라도 덜어낼 목적으로 이민 정책을 펼친다. 어떤 계획 하에 조건을 따져가며 추진된 일이 아니었다. 정부는 거짓말로 국민을 속여 브라질 오지에 내버렸다. 어떠한 후속조치도 대책도 없었다. 


남의 나라를 침략해 제국주의 놀이를 하며 흥청거리던 천황과 일본 군부, 그리고 정치인들에은 패전 후에도 전체주의 통치이념으로 무장하고 국민을 쓰레기 취급했다. 이에 들고 일어난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과 대학생들의 투쟁들이 아사마 산장 사건으로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자 버블 경기가 찾아왔다. 

버블 경기로 일본 국민들의 불만은 사라져갔다. 선악, 도덕, 정의... 그런 개념들이 삶과 유리된 채 책속에서만 거론되던 시절이었다. 경제의 부흥과 번영은 문화 측면에서 폭발했다. 사이버 펑크에서 다루는 미래 세계는 모두가 도쿄시내를 연상시켰던 그 시대... 버블이 꺼지고, 우민화된 국민들은 자민당만 찍는 투표기계로 전락한 현재. 아주 소수의 의식있는 사람들만이 일본이 뭔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르포르타주와 추리소설의 영역을 넘나들며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가키네 료스케의 <와일드 소울>은 일본 정부의 과거 잘못을 통렬히 꾸짖으면서도 대중성을 잃지 않는 미덕을 보여주고 있다. 출간된 2004년도에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오야부 하루히코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일본 문학 사상 최초 3관왕에 올랐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026729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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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어디에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1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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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고야는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은행에 취직했다. 직장은 만족스러웠고, 삶은 순탄하게 이어지리라 생각됐다. 하지만 고야의 그런 생각은 곧 깨지고 만다. 어느 날 부터인가 몸에 발진과 발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의사는 아토피성 피부염이라 했고, 상태는 점점 더 심해졌다. 결국 고야는 은행을 그만두었다. 인간관계와 안정된 수입, 사회적 지위, 체력 모두를 잃은 고야는 고향으로 돌아와 자영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차린 게 '고야 S&R' 이었다. Search & Rescue, 대상은 개.


하지만 개업 후 맡게 된 사건은 개가 아닌 사람 찾기였다. 의뢰인은 고부세에서 농사를 짓는 사쿠라 가쓰지라는 사람으로 손녀를 찾아달라 했다. 손녀의 이름은 사쿠라 도코. 대학 졸업 후 주식회사 콘 구스에 입사, 만족스럽게 직장생활을 하던 그녀가 최근 주소지를 할아버지 집으로 옮겨 놓은 뒤 실종되었다. 고야는 개를 찾는 것이 본인의 사무실이 할 일이라는 말을 삼키고 일단 의뢰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교 시절 후배 한페가 찾아와 탐정 일을 시켜달라고 조른다. 개를 찾은 사무실이라고 발명해 봐도, 한페는 요지부동이다. 그런데 마침 고부세에서 온 또 다른 의뢰인이 마을의 고문서를 해독해달라고 부탁한다. 고야는 새로운 일거리를 한페에게 던져주고 둘은 각자 맡은 사건에 착수한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빙과>로 제5회 가도카와 학원소설 대상 영 미스터리&호러 부문 장려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지향하는 쪽은 신 본격. 2011년 <부러진 용골>로 제6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는 등 상복도 꽤 있다.


주인공 고야는 내부침잠형 탐정으로 주관적인 도덕률로 사건에 임한다. 고야는 사라진 사쿠라 도코가 인터넷에서 한 유저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다 끝내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도코는 일상을 버리고 피신하지만 가해자는 끈질기게 도코의 행적을 쫓아온다. 

한페가 쫓던 사건과 도코의 사건이 묘하게 교차되는 시점에 고야는 문득 깨닫게 된다. 도코는 도망친 것이 아니라 가해자를 끝장내기 위해 유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야는 향토사가와 도코 등 몇 사람만이 알고 있는 장소로 유인된 가해자가 아마도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야는 더 이상의 행동을 취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개 찾기였다면 좋았을 텐데..."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99314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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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의 공포 - 환율전쟁보다 더 무서운 오일의 공포가 다가온다
손지우.이종헌 지음 / 프리이코노미북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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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오일쇼크, 1990년 걸프전, 2003년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 

남한은 석유가 나지 않는 나리인데다 오일쇼크로 인한 경기 침체를 겪었던 터라 고유가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2014년 여름 WTI 기준 100달러에 육박하던 유가가 갑자기 빠지기 시작해서 2015년말에 이르러 반토막이 나자 사람들은 기뻐했다. 이제 휘발유도 1,000원 정도로 싸질테고, 전기를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도 절약되니 물가도 낮아지는 등 경제에 활기가 돌거라 전망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휘발유는 1,000원이 되지 않았다. 경제는 오히려 암울한 전망이 지배했다. 저유가에 저금리가 겹치자 보험회사들이 죽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시장에 공포가 만연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20년 4월. WTI 선물 만기에 유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마이너스 유가라니까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럼 기름을 사면 돈도 주는건가? 


여전히 사람들은 원유의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고, 저유가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WTI 선물을 거래하는 시장에 개미들이 뛰어들기 시작했다. 어느 날인가 ETN 상품의 괴리율이 1,000%에 육박한다는 자금총괄과 직원의 얘기에 설마 하고 Investing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롱을 장기투자, 숏을 단타로 이해하는 개미들이 홀짝 놀음 하듯 WTI 선물을 거래하고 있었다. 게다가 롤오버 개념을 몰라 장기투자하면 언젠가 큰 돈을 벌 수 있으리라 오인하는 투자자도 있었다. 석유 매장량에 한계가 있어 WTI는 오를 수 밖에 없다는, 벌써 오래전에 폐기된 오일피크 이론을 참으로 믿고 '롱 포지션'을 굳게 '믿는' 투자자도 있었다는 것을 우습다고 해야할지 어떨지... 


이 책은 저유가가 대한민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왜 부정적인지 설명하려는 책이다. 


1부는 오일시장의 역사에 대해 개관한다. 1986년 부터 2003년까지 수요가 초과한 상황이었지만 WTI는 배럴 당 21.5달러에 머물렀다. 그러다 2003년 부터 2013년 까지 WTI는 배럴 당 평균 78달러로 뛰는데, 때는 아이러니 하게도 공급이 수요를 초과한 시기였다. 원유는 단순히 수급으로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큰손의 의지, 지정학적 리스크와 환율, 금융자금의 개입 등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여 가격이 결정된다. 

OPEC의 실질적 수장이자 '석유 황제' 야마니가 석유를 무기화할 수 있음을 세계만방에 드러내고 Seven Sisters의 시대를 종료시킨 후 돌연 미국쪽 입장을 지지하는 실리주의자 면모를 드러내는 일화, 1971년 금본위제 폐지와 석유 거래 시 달러로만 결제한다는 합의 등으로 미국이 돈 찍어내는 나라로서 확고한 지위를 굳히는 대목 등은 매우 흥미롭다. 


하지만 책은 2부와 3부로 가면서 맥락을 잃는다. 2부에서 저자는 탈석유 시대가 시작된다면서 이제 전기차와 천연가스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리고 한동안 저유가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이는데, 5년이 흐른 지금 이 전망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니 넘어가자. 


하지만 3부에서 다시 오일의 공포를 이야기하면서 '과잉 투자 및 저유가로 인한 연쇄 도산'으로 인한 신용 위기 우려는 그다지 참신할 것 없는 주제다. 


2020년 5월 7일 현재, WTI 6월물 가격은 26불 언저리에 있다. 과거라면 엄청난 저유가일텐데도 일군의 투자자들은 2x 인버스에 투자하고 차트가 다이빙대를 만든 후 수직낙하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유가의 폭등과 함께 자신의 자산 가치가 두배 세배에 이르기를 한마음으로 소망하는 레버리지 투자자가 있다. 그들 중 어느 편에 니케가 미소를 지어줄 지는 모르지만, 무포지션인 사람이 누리는 관전의 즐거움 역시 작다고 하긴 어려우리라.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950977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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