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1년이상 살아보기
이규형 지음 / 시공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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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등학교 때 일본 문화에 경도된 적이 있다. Loudness의 Thunder in the East 빽판을 어떻게 구해서 Like Hell을 듣던 당시의 전율이 지금도 새롭다. C.C.B.의 Lucky Chance나 나가부치 쯔요시의 돈보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막연히 일본을 동경하던 그 당시, 일본문화를 정식으로 접할 수 있는 경로란 문학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설국>이나 <사양> 같은 문학작품 外 대중문화는 모두 어둠의 경로를 통해서였다. 그때 몇 권 읽어봤던 책이 이규형의 일본 소개 책들이었다.

이규형은 일본에 90년대 초반에 건너가 일본의 대중문화 아이템들을 한국에 소개하는 책들로 제법 돈벌이를 했던 인물인데, 당시 일본대중문화가 아직 개방되지 않았고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 책에 실린 내용들도 인터넷이 상용화된 현재 본다면 별것도 아닌 정보들이지만, 당시만 해도 실제 일본에 사는 사람이 알짜배기 정보를 책에 써서 전수해준다는 느낌을 주었다. 당시 한국 대중문화의 대부분, 노래와 드라마 CF 등,이 일본의 그것을 대놓고 베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고, 이규형 같은 사람은 그러한 대중문화의 전파자로서 나름 자리매김하여 입지를 쌓았던 것이다.

하지만, 90년대 중후반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고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이러한 사정이 백팔십도 변하고 만다. 막상 개방된 일본 대중문화는 한국적 정서에 어필하지 못해 극히 한정적인 부류들만 열광했고,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일본에 대한 정보도 실시간 입수가 가능하게 된다. 

그 후로 이규형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가 2004년 'DMZ, 비무장지대'로 컴백하지만 흥행에 실패하고, 이후 투자자들에게서 돈은 끌어모아 놓고 영화는 제작하지 않아 사기혐의로 피소, 2009년 2년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한다. 


그리고 그 이규형이 며칠 전, 2020년 2월 7일에 사망한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자신감으로 80-90년대를 신나게 살다가, 몰락을 거듭한 끝에 담도암으로 사망한 그의 나이는 향년 63세. 지금 세대는 누구인지도 모를 그의 책을 2020년의 '내'가 다시 들춰 읽어보며 과거를 추억한다. 한 시대가 또 저무는 느낌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821352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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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잠 밀리언셀러 클럽 145
가노 료이치 지음, 엄정윤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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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다쓰미 쇼이치는 폐허를 전문으로 사진에 담는 카메라맨이다. 그는 최근 준비중인 작품집 표지를 찍기 위해 쇠락한 마을 다카하마를 찾는다. 그곳에는 '어둠의 제왕의 부서진 둥지'라 불리는 다카하마 호텔이 도산한 채 덩그라니 남겨져 있었다.

다카하마 호텔은 본래 정재계의 배후 조정자로 유명한 이종원이 실질적 경영자였다. 그러나 이종원은 호텔이 망하기 1년쯤 전에 실종되어 지금도 행방을 감춘 상태였다.


새벽녘 몇 컷을 찍은 다쓰미 쇼이치가 그 호텔로 들어갔다가 한 여성의 시체를 발견한 것이 사건의 시작이다. 여성의 이름은 아이자와 다에코, 직업은 저널리스트였다. 그녀는 다카하마 마을의 공항 건설 계획을 반대하는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전 남편이자 신문기자 안비루는 '좁은 마을에서 신문사든 경찰이든 모두가 같은 배에 타고 있어 무언가를 끝까지 파고 들어가 조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 면서 흥신 관련 일을 했던 다쓰미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다쓰미는 공항 건설을 둘러싸고 찬성과 반대로 나뉜 두 집단의 대립과 구사카베 흥업이라는 폭력단에 초점을 맞춰 사건을 조사해 나가지만, 조사대상의 행동에서 무언가 의문스러운 부분을 발견하고 그 부자연스러움을 해결하기 위해 애를 쓰다가 한 장의 사진을 입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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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노 료이치는 1963년 요코하마 출생으로 와세다 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뒤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다가 1990년 <그림자의 저편>으로 제7회 오다 사쿠노스케 상에 가작으로 입선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1991년에는 <허밍은 두 번까지>라는 작품으로 제13회 소설추리신인상을 수상하였으며, 1999년에는 <환상의 여자>로 제5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다.


본작은 2012년 발표된 작품으로 '현재의 인간관계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 과거 사진 한장'과 '부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지는 후지코라는 여성' 이라는 두 개의 소재를 절묘하게 교차시키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푸른 새벽빛과 '폐허'의 이미지가 오버랩 되며 지독한 쓸쓸함을 자아내는 특이한 소설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806637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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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캐런 M. 맥매너스 지음,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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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의 고등학생이 수업시간에 휴대폰을 소지한 벌로 디텐션(방과후 나머지 공부)을 받게 된다. 희안한 건 이들 모두가 전화기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지식한 에이버리 선생은 이들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고, "과학기술이 미국 고등학교를 어떻게 망치고 있는가" 라는 주제로 500단어 분량의 에세이를 쓰도록 지시한다.


예일대학교를 목표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브론윈 로하스, 촉망받는 강속구 투수이며 멋진 외모를 갖고 있는 쿠퍼 플레이, 교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얼짱과 사귀고 있는 애들레이드 프렌티스, 매력적인 아웃사이더이자 마약 판매상인 네이트 매컬리, 그리고 교내 가십 앱을 운영하며 모두의 미움을 받고 있는 사이먼. 


이들 다섯이 투덜대면서 주어진 과제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목이 마르다며 수도물을 받아 마신 사이먼이 알러지 반응을 나타내며 교실 바닥에 쓰러지고 만다. 네이트가 사이먼의 가방을 뒤져 에피네프린펜을 찾아보지만 있어야 할 펜이 없었고, 양호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밝혀진 바, 사이먼의 사인은 땅콩기름 섭취에 의한 알러지 반응이었다. 


경찰은 함께 있었던 네 명의 학생을 용의자로 보고 조사를 시작하는데 네 명 모두에게 훌륭한 살해동기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사이먼이 운영하던 가십 앱에 네 명의 용의자가 감추고 싶은 비밀이 공개될 예정이었던 것이다. 

쿠퍼는 스테로이드를 상용했고, 네이트는 마약을 판매하여 가석방 규정을 어기고 있으며, 애들레이드는 제이크를 배신하고 TJ와 관계를 맺은 사실이 있었다. 또한, 브론윈은 모범생이라는 평판과 달리 화학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그런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쿠퍼만이 가십의 내용이 사실과 달랐다. 쿠퍼는 스테로이드를 사용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쿠퍼의 비밀은 그가 동성애자라는 것이었다.


왜 쿠퍼만 사실과 다른 내용이 올라갔을까? 

사이먼이 죽고 난 뒤에도 가십앱에 올라갈 내용들을 공개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사이먼은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를 한 범인에 대해 옹호하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것이 이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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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캐런 M.맥매너스의 데뷔작으로 등장인물들의 내밀한 모습들을 하나씩 공개하며 긴장을 고조시킨 뒤 보조인물을 활용하여 반전을 끌어내는 비교적 안전한 구성으로 무난한 평가를 받았다. 

2019년에는 두 번째 소설 <두 사람은 비밀을 지킬 수 있다 Two Can Keep a Secret> 을 발표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802043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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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탐정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5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기원 옮김 / 해문출판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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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탐정>의 원제는 <Partners in Crime>으로 1929년에 발표된 단편집이다. 주인공 토머스 베레즈포드(토미)는 전직 군인으로 간호사 출신 아내 프루던스 베레즈포드(터펜스 Tuppence, Two pence라는 뜻으로 보잘것 없다는 의미가 있음)와 금실좋은 부부이다. 


어느 날, 정보기관의 카터가 이 부부에게 국제탐정사무소를 인수하여 데어도어 블런트라는 이름으로 러시아 스파이를 색출해줄 것을 요청한다. 부부는 흔쾌히 동의하고 조수 앨버트를 고용하여 탐정사무소를 운영하는데, 러시아 스파이가 나타나기 전까지 이런 저런 일반인들의 사건들을 의뢰받게 된다.


일단 의뢰인이 사무소에 들어서면 앨버트가 시간을 끌며 바람을 잡는다. 앨버트가 '소장님은 지금 런던 경시청장과 통화중이라 즉시 응대가 어렵다' 따위의 말로 시간을 끌면 그 사이 부부가 의뢰인을 관찰한다. 이 때 알아낸 사실로 의뢰인의 신뢰도를 얻은 뒤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매 장마다 탐정역할을 아내와 남편이 번갈아 가며 맡는데, 이들은 홈즈나 브라운 신부 등 유명한 소설 속 탐정을 흉내내어 그들의 수법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이들이 해결하는 사건은 실종신고 된 여성 찾기가 집안에 숨겨진 금화 찾기 등 가벼운 것부터, 마약밀매조직 소탕과 같이 생사를 넘나드는 활극까지 다양하다. 포와로가 '회색 뇌세포' 만을 이용한 안락의자 탐정이라면, 이들 부부는 다소 하드보일드적 요소가 가미된 행동파 쪽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801405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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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남
신도 준조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수첩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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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 '나'는 영화 관련으로 로케이션 장소 헌팅 일을 하고 있다. 그런 '나'에게 지도남의 존재는 매우 도움이 된다. 그는 찾고 있는 로케이션 조건만 알려주면 후보지를 줄줄 불러 주는 한 사람이었다. 그는 대형 지도첩을 항상 끼고 다녔는데, 전국 어느 곳이든 그가 가보지 않은 곳은 없는 듯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의 지도첩에는 엄청난 분량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음악에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M이 네 살에 첫 앨범을 발표하는 이야기, 도쿄 23구의 마크를 둘러싸고 밤의 주인공들이 벌이는 장렬한 격투 이야기, 정리해고된 샐러리맨이 산적이 되어 가는 이야기, 그리고 무사시와 아키루의 절망적인사랑 이야기 등등...


'나'는 그 이야기들의 공통점이 대체로 삼인칭으로 누군가에게 얘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문체라는 점. 그리고 모두 다 리얼리즘의 지표에서는 늘 몇 센티미터쯤 떠 있는 것 같은 망상담이라는 점. 이 두 가지 정도라고 생각한다. 

지도남은 어떤 타이밍이 되면 이야기들을 말로 풀어놓는 듯했다. 먼저 말로 이야기를 풀어놓고, 말로 풀어놓은 김에 지도 위에 써 나가는 듯했다. 자기가 서 있는 혹은 걷고 있는 장소가 포함된 지도첩 페이지에 그 토지의 이야기를. 그 이야기들은 대체로 모두 팝하고, 광조적(狂躁的)이고, 엔터테인먼트가 제대로 살아 숨 쉬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다 '나'는 궁금해진다. 지도남이 지도첩을 펼칠 때. 그 이야기를, 지도남은 누구에게 하는 것인가? 그리고 알게 된 사실. 그의 이야기들은 호쿠사이의대표작 <후가쿠 36경>에 '후지 산'이 반드시 그려져 있듯이 여자 한 사람이 등장한다는 점. 


그녀에게 모든 이야기를 바친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헌사적 뉘앙스가 아니야...... 그녀가 살아가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얘기하는 거야. 아, 지금 어딘가로 갔다! "지도첩에는 그녀가 있는 거로군." 그래서 지도남은 돌아오지 않는다. 지도첩에 틀어박혀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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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남>의 작가 신도 준조는 1997년 도쿄 태생으로 2008년에 <지도남>으로 데뷔, 제3회 <다빈치문학상> 대상을 수상한다. 같은 해에 <안도 3형제의 성직>으로 제15회 <일본호러소설대상> 대상, <RANK>로 제3회 <포플러소설대상> 특별상, <도쿄 뱀파이어 파이낸스>로 제15호 <전격소설대상>은상을 수상하는 등 상복이 꽤나 있는 작가로, 2019년에는 <보물섬>으로 나오키상 까지 수상한다.


작품 성향은 작품 속에서 지도남이 풀어내는 이야기처럼 "리얼리즘의 지표에서는 늘 몇 센티미터쯤 떠 있는 것 같은 망상담" 계통이다. 

영어와 일본어를 믹스시킨 문장이 거슬리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쓸데없는 말이나 텔레비전 얘기 잇세트라를 모조리 믹스시켜 초고속으로 셰이크했고..." 하는 식의 문장들이 그렇다. 국내에는 아직 <지도남> 외에 출간된 작품이 없는데, 흥행이 어느 정도 보증되는 나오키상 수상작 <보물섬>이 곧 번역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785784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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