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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의 공포 - 환율전쟁보다 더 무서운 오일의 공포가 다가온다
손지우.이종헌 지음 / 프리이코노미북스 / 2015년 11월
평점 :
1970년대 오일쇼크, 1990년 걸프전, 2003년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
남한은 석유가 나지 않는 나리인데다 오일쇼크로 인한 경기 침체를 겪었던 터라 고유가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2014년 여름 WTI 기준 100달러에 육박하던 유가가 갑자기 빠지기 시작해서 2015년말에 이르러 반토막이 나자 사람들은 기뻐했다. 이제 휘발유도 1,000원 정도로 싸질테고, 전기를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도 절약되니 물가도 낮아지는 등 경제에 활기가 돌거라 전망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휘발유는 1,000원이 되지 않았다. 경제는 오히려 암울한 전망이 지배했다. 저유가에 저금리가 겹치자 보험회사들이 죽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시장에 공포가 만연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20년 4월. WTI 선물 만기에 유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마이너스 유가라니까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럼 기름을 사면 돈도 주는건가?
여전히 사람들은 원유의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고, 저유가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WTI 선물을 거래하는 시장에 개미들이 뛰어들기 시작했다. 어느 날인가 ETN 상품의 괴리율이 1,000%에 육박한다는 자금총괄과 직원의 얘기에 설마 하고 Investing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롱을 장기투자, 숏을 단타로 이해하는 개미들이 홀짝 놀음 하듯 WTI 선물을 거래하고 있었다. 게다가 롤오버 개념을 몰라 장기투자하면 언젠가 큰 돈을 벌 수 있으리라 오인하는 투자자도 있었다. 석유 매장량에 한계가 있어 WTI는 오를 수 밖에 없다는, 벌써 오래전에 폐기된 오일피크 이론을 참으로 믿고 '롱 포지션'을 굳게 '믿는' 투자자도 있었다는 것을 우습다고 해야할지 어떨지...
이 책은 저유가가 대한민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왜 부정적인지 설명하려는 책이다.
1부는 오일시장의 역사에 대해 개관한다. 1986년 부터 2003년까지 수요가 초과한 상황이었지만 WTI는 배럴 당 21.5달러에 머물렀다. 그러다 2003년 부터 2013년 까지 WTI는 배럴 당 평균 78달러로 뛰는데, 때는 아이러니 하게도 공급이 수요를 초과한 시기였다. 원유는 단순히 수급으로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큰손의 의지, 지정학적 리스크와 환율, 금융자금의 개입 등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여 가격이 결정된다.
OPEC의 실질적 수장이자 '석유 황제' 야마니가 석유를 무기화할 수 있음을 세계만방에 드러내고 Seven Sisters의 시대를 종료시킨 후 돌연 미국쪽 입장을 지지하는 실리주의자 면모를 드러내는 일화, 1971년 금본위제 폐지와 석유 거래 시 달러로만 결제한다는 합의 등으로 미국이 돈 찍어내는 나라로서 확고한 지위를 굳히는 대목 등은 매우 흥미롭다.
하지만 책은 2부와 3부로 가면서 맥락을 잃는다. 2부에서 저자는 탈석유 시대가 시작된다면서 이제 전기차와 천연가스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리고 한동안 저유가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이는데, 5년이 흐른 지금 이 전망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니 넘어가자.
하지만 3부에서 다시 오일의 공포를 이야기하면서 '과잉 투자 및 저유가로 인한 연쇄 도산'으로 인한 신용 위기 우려는 그다지 참신할 것 없는 주제다.
2020년 5월 7일 현재, WTI 6월물 가격은 26불 언저리에 있다. 과거라면 엄청난 저유가일텐데도 일군의 투자자들은 2x 인버스에 투자하고 차트가 다이빙대를 만든 후 수직낙하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유가의 폭등과 함께 자신의 자산 가치가 두배 세배에 이르기를 한마음으로 소망하는 레버리지 투자자가 있다. 그들 중 어느 편에 니케가 미소를 지어줄 지는 모르지만, 무포지션인 사람이 누리는 관전의 즐거움 역시 작다고 하긴 어려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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