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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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말에서 11월 초까지 거진 2주에 걸친 시간동안 한국에서 퇴사를 하고 놀러온 내가 사랑하는 친구 S와 함께했다.

내 부탁으로 친구가 프랑스에 종이책을 몇권 가지고 와서 선물로 주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책과, 세안용 머리띠 - 본인 것과 커플임 ㅋㅋㅋㅋ- 달고나 만들기 세트, 홋카이도 팬케이크가루, 후시딘 등등... 멀리서 날아온 고마운 마음)



이 책은 이 친구 S가 자신의 올해의 책 중 하나로 최근에 뽑았다고 할 정도로 극찬을 한 책이라 한권 갖다 달라고 부탁을 했더랬다.

아무리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름은 들어봤을 유명한 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했던 (그리고 그곳을 퇴사하고 유럽 여행을 온 ^^) S의 2023년 pick 이라 묻고 따지지도 않고 읽기 시작했다.


저자의 아버지는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외부 세계와 단절된채 본인만의 교리 해석을 바탕으로 쌓아 올린 자신만의 '동산'에 갖혀 살아가기를 강요한다. 그런 가정 속의 8남매(7남매인가 9남매인가?)의 막내로 태어난 저자는 출생과 동시에 사회와 완전 격리된 채 아버지의 세상에서 가족들과 살아간다. 이 책은 그렇게 유년시절을 보낸 작가가 '교육'이라는 것을 통해 여태까지 자신이 속했던 세상을 깨고 나와 시행착오를 거치며 비로소 사회를 만나게 되는 자서전이다.


이 책에서 대척되는 세상은 아버지가 짜맞춘 세상, 그러니까 저자가 '교육'을 받기 전 까지 속했던, 그녀가 아는 전부인 세상과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이다.


그 아버지의 세상이라 하면, 책을 읽으면 충격적이어서 입을 다물 수 없는 내용들의 향연인데, 이를테면 아래와 같다.


- 1999년 지구의 종말을 믿는다.

- 종말이 찾아 오지 않은 1999년 이후의 이어지는 일상 속에서도 종말이 다가올 거란 확신 아래, 지구 종말 이후의 생존을 위한 준비가 이들의 인생의 목표의 거의 전부이다. 

- 국가나 정부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불신. 그에 의하면 국가와 정부는 그들의 가족을 암살하려는 사회 공산주의자들이 만든 단체이고, 이들은 하느님의 뜻을 반하고 사회공산주의 이념을 국민들에게 물들이기위해 온갖 정책들을 만들고 인간 실험을 자행한다. 이를테면 공교육 시스템이나 의료시스템 모두 국가가 사람들을 조종하기 위한 속임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파도 병원에 가면 안되고, 약을 먹으면 우리의 신체는 사회 공산주의들에게 조종을 당하게 될 것이며, 학교는 

- 안전, 예방 등에 대한 1차원적 기본 욕구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개념이 전무. 예를 들면 자동차를 탈 떄 안전벨트를 메면 안된다. 이는 정부의 반동분자를 길들이기 위한 거짓말 수작일 뿐이다.

- 어린 여자들은 일정 나이가 되면 모두 잠재적 창녀이므로 각별한 주의를 해야 한다.

- 조혼 장려, 가부장제, 여성혐오의 콤보 등등....


............................ 사이비 종교의 모든 예시를 충족하는 그런 어떤... 예......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세계 속에 살아가는 가족들은 특히 생존과 직결된 안전에 위협을 받고 저자는 부모로부터, 가정으로부터 '보호받는다'라는 느낌을 가져본 적 없이 유년시절을 보낸다. 인간의 근원적이자 모든 동물의 본능이기도 한 안전에 대한 위협 문제는 나중에 저자가 사춘기를 지나며 여성혐오를 만나며 가족 구성원들로부터의 직,간접적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폭력을 겪는다.

(그리고 물론 이것이 폭력이라는 사실도 후에 '교육'을 통해 깨닫게 된다.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작가는 책을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모르몬주의에 관한 것도, 어떤 다른 종교적 신념에 관한 것도 아니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책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제목에서 부터 말하고 있다) 그것은 '교육'이다.

그런데 작가에게 교육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책을 덮는 순간까지 찾지 못했다. 아니, 책을 읽으면 읽으면서 더 헷갈렸다.


초반에는 야만의 시대를 지나 문명의 세계로 가는 여정을 써낸 책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읽을 수록 이렇게 단순한 서사 구조만은 아닌 것 같은 것이다.


그녀에게 교육이란 문명화로 가는 길인가? 그녀가 학교에서 세상의 상식 속에서 습득한 지식이 교육인가? 

그렇다면 저자에게 학교에 가기 이전의 생활, 그러니까 태어나서 16살 이전까지의 시간들은 교육에 대척하는 삶이었나?

아니면 학교에 가기 이전의 생활도 그 나름대로의 '교육'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모르몬교 종교 위에 아버지의 신념으로 지은 세상은 야만의 세상인가? 약병원에 가지 않고 오로지 약초와 에너지로 치료를 하고 기도에 신체와 정신의 안전을 모두 맡기는 세상. 전부인 줄 알았던 본인이 속한 이 세상이 학교에 가면서부터 통째로 붕괴되기 시작한다면, 그렇다면 그 교육의 반대편엔 분명히 아버지의 세상이 있는 것 아닐까? 그 세상은 아버지가 자신의 신념으로 지은 종교적 세상이 아닌가? 


그렇다면, 바로 그 그릇된 종교적 교리가 가족구성원을 집어 삼키는 폭력적인 괴물 그 자체의 세상의 원인이었다고 왜 작가는 말하지 않는 것일까? 모순적으로 이 글은 그 누구도 고발하지 않는 고발성 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책을 다 읽고 덮자마자 처음 떠오르는 생각은 '대단하다'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겁하다' 였다.

그녀가 겪어야 했던 그 끔찍한 모든 일들에 기함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것을 통과하고 현재에 이렇게 존재하는 작가, 그리고 이 모든걸 이렇게나 솔직하게 썼다는 작가의 용기에 대해 경외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이와 동시에 비겁하다고 느꼈던 이유는, 결국 모든 걸 쓰면서도 아무 것도 고발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왜 작가는 이 서두에 '이 이야기는 모르몬주의에 관한 것도, 어떤 다른 종교적 신념에 관한 것도 아니다'라고 못을 박고 이 모든 이야기를 고백한 것일까? 


종교적 교리로 인한 (그것이 특정 집단에 의한 사이비든 아니든) 폭력에, 특히 여성에 더 가혹하게 자행되는 폭력에 피해 여성이 자신이 당한 피해에 대해 쓰면서 동시에 이 모든 것은 종교와는 상관이 없다고 하는 모든 이야기에 이젠 조금 지친다.


물론 이 책 전체는 그녀가 겪은 일을 적은 것이기 때문에 인과관계가 언제나 선명한 것은 아니다. 어떤 피해자는 다른 사건의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때론 방관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종교적, 여성혐오적 맥락 속에서 때론 가해자가 될 수 밖에 없는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교차성에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모순점들은 익히 알고 있다. 나는 이 모든 비극의 중심에 자리한 '절대적'가해자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 모든 비극의 시작에 있는 그 악의 중심, 이 모든 악몽은 그 '절대적 가해자' 때문이라고, 언제쯤 우리는 돌려 말하는 것을 멈출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모르몬주의에 관한 것도, 어떤 다른 종교적 신념에 관한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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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12-02 0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이건 제목이랑 표지가 좀 잘못했네요.. ;;전에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그땐 그냥 넘겼고.. 달자님 리뷰 잘 읽고서 이제야 담습니다. ㅋㅋㅋㅋㅋ

달자 2023-12-02 02:01   좋아요 2 | URL
은오님 안녕하세요! 표지가 영어 원서 꺼 그대로 가져온 거 더라구요...?ㅋㅋㅋ 읽고 나서 은오님 후기 넘 궁금해요 꼭 써주세요! 근데 정말 책 좋아요

청아 2023-12-02 12: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궁금했었는데 달자님 글 읽으니 더 읽고싶어지네요.
역시 제대로 직면한다는게 어렵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도 ‘대단하다‘라는 부분 어느 정도인지 알고싶어져요.^^ 밀린책들이 많아 기약이 없지만 그래도 달자님 글이 반갑기도 해서 다시 찜!ㅋㅋㅋㅋ

달자 2023-12-06 18:42   좋아요 1 | URL
저 작가는 정말... 일단 글을 잘쓰고 솔직하고 똑똑하고... 그 많은 일을 겪고도 우뚝 서는 단단한 멋진 사람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