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 -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좋은 엄마의 필독서
문은희 지음 / 예담Friend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21개월이 된 남자 아이 하나를 둔 아빠다. 아내는 2년 동안 육아에 전념하고 있고, 내년 3월이면 아내와 나의 역할 교대가 있다. 내가 육아 휴직을 하는 거다. 며칠 전엔 우리 나라 남자 육아 휴직자가 1,000명이 넘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그 수의 대다수가 공무원이거나 공기업의 직원일 것이다. 나 역시 별 어려움없이 육아 휴직을 결의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직업이 갖고 있는 엄청난 메리트 덕임을 잘 안다. 이런 나를 두고 부러워하는 여성 직장 동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이 무엇을 부러워하는지 잘 안다. 그래서 다른 직종에서도 남편들이 육아 휴직하는 걸 눈치보지 않고, 제도적으로 완벽히 보호받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고, 그런 걸 완전히 보장할 수 있는 정치적 권력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육아 휴직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긴 했지만, 육아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집에 육아 관련 서적이 많지만, 왠지 내 마음을 끌지는 못했다.(나는 내가 선택한 도서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냥 몸으로 놀아주기만 하면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와 희망만으로 육아를 선택한 거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육아 휴직에 관한 걱정이 늘기 시작했다. 육아는 단순히 아기를 기르는 행위만은 아닐 것이다. 그 속에 담긴 여러 가지 의미와 정서의 호응을 생각한다면, 육아를 하겠다는 사람의 마음 가짐이나 육아 태도가 무척 중요할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껏 아내가 해왔던 것만큼의 육아 태도를 내가 견지할 수 있을지, 아기-우리 아기 이름은 슬뫼이다.-에게 오히려 혼란을 불러오는 것은 아닐지, 염려했다.

 

우연히 한겨레 21 잡지를 넘기다가 하단에 자그맣게 난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이 책과 관련한 기사였다. `오호~ 기대가 되는 걸`하는 생각이 우선 들었고, 곧바로 주문에 들어갔다.(나는 대체로 책을 추천하는 사람이나 언론을 많이 의지하는 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언론사에서 추천한 책에 대한 신뢰가 좀 높은 편이다. 물론 실패할 때도 잦다.) 책을 구입하면서 `그봐, 육아에는 엄마의 책임이 그만큼 큰 거야. 그러니까 당신, 잘 해!!`이런 말을 아내에게 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던 것 같다. 책을 읽고, 곧바로 아내에게 읽으라고 들이밀어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이 책은 나의 수중에 있다. 왜 그럴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육아의 책임이 전적으로 `엄마`에게만 있다고 읽지는 않았다.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고 했지만, 실은 엄마 아빠의 잘못된 육아 태도가 아이를 아프게 하는 것이다. 표현으로는 `엄마`라고 되어 있지만, 그것은 육아 주체 모두를 포함하는 의미로 읽혔다는 말이다. 그러니 여기서의 `엄마`는 아기의 육아 주체, 엄마와 아빠를 모두 포괄하는 것이라 여긴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말하는 포함단위나, 공감능력, 어릴 적의 상처 등은 `엄마`의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기에 그렇다.

 

이 책의 저자는 박사 과정을 영국에서 밟았는데, 박사 학위 논문에 `포함 단위`라는 개념이 있었단다. 하지만 논문 지도 교수는 그것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것은 문화적인 차이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 나라 어머니들은 자식이나 남편을 모두 스스로에게 귀속시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자식이 잘 되어야 내가 잘 된다거나, 자식의 실패를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향 등이다. 문화적으로 자유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서방 세계에서는 이런 우리의 인식의 경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겠다. 우리는 집단주의, 가족주의의 세례를 받은 민족이 아닌가.

그런데, 육아에서는 이런 포함 단위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부모의 실패를 자식의 성공으로 보장받으려는 것도 이런 포함 개념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교육이나 선행 학습 등의 성행도 자식을 진정 사랑한다는 것을 가장한 부모 스스로의 자족적 행위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왜? 자식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니까.

여기서 내가 좀 의아했던 것은 포함 단위의 개념이 우리 나라의 어머니들에게만 내면화되어 있다는 걸까? 하는 거였다. 당장 나만 봐도, 나는 나의 어머니를 포함하고 있다. 나의 행복이 곧 어머니의 행복이라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나의 어머니가 나를 포함했듯, 나 역시 나의 어머니를 포함하고 있는 거다. 이게 독립된 나로서의 삶에 때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지만 어떻게 벗어날 수 없다. 그저 주어지는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처한다는 것일 뿐. 여기에는 다분히 문화적 기제들이 작용하고 있다. 내가 자라온 환경의 가부장적 태도들, 나의 성공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의 노력들. 이런 세례를 받고 성장한 나 역시, 아들 슬뫼에게 어떤 포함의 그물을 던져 놓을지 알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포함 단위의 위험성을 자각했으니, 조금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그런데 이 포함단위의 문제가 거의 생래적인 것에 가까워서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그래서 수양이 필요한 거겠지.)

 

아직 슬뫼는 말을 거의 하지 못한다. `엄마, 이거 이거` 정도가 뚜렷하다. 그래도 사람의 말귀를 알아듣는 눈치다. 내가 하는 말은 슬뫼가 잘 알아듣는데, 슬뫼가 하는 말은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대화의 형식은 성립하는 것인데, 소통이 이뤄지지 않으면 좀 문제가 될 것 같다. 상대의 말을 알아듣는데, 자신의 말을 상대가 알아주지 않으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그래서 아기와 부모의 공감 능력이 무척 중요한 거다. 내용은 뚜렷이 잘 몰라도 느낌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그게 공감아닌가. 아기는 내용의 전달이나 이해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감정, 상태 등을 공감받으면 대체로 안전함을 느낀다. 그런데 부모의 공감 능력이 단시간에 생겨나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을 공감하는 능력이 과연 있나? 리더쉽 연수나 아빠 연수에서 기술적인 부분을 배우긴 했지만, 아직 내면화의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사실, 그게 어디 배움으로 해결될 문제인지도 잘 모르겠다.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뭘까를 꼽으라면, 나는 부모의 육아 태도라고 말할 것이고, 육아 태도를 결정짓는 핵심 기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부모의 어릴 적 경험이라고 말할 것 같다. 사실 육아 태도만이 아니라 인간 관계를 맺는 법, 화를 내는 법, 대화를 하는 법 등,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삶의 태도 중 많은 부분들이 나의 어릴 적 경험과 상처에서 비롯한 게 많겠기에 그렇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보라고 권하고 있다. 자신의 상처가 해소되어야 건강한 육아가 가능하다는 말씀인데, 전적으로 공감이 됐다. 사실,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아픔과 상처를 떠올리며 그 상황에 들어간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진실한 태도가 요구된다. 어떻게 나의 불우한 과거를 남한테 드러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저자는 그렇게 하는 용기가 자녀의 육아에 무척 중요한 것이라 말하는 것 같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아내가 생각났다. 가끔 아내는 자신의 어린 시절 상처에 대해 나에게 말해줄 때가 있다. 남편인 나에게도 그런 아픔을 드러낸다는 게 그리 쉽지 않은 일 같은데, 아내는 참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를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아내는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는 욕구가 굉장히 큰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행복한 삶을 위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그것을 치유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아내가 이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요가나 정토회 법회, 명상의 힘이 큰 것 같다.

나는 대체로 아내에게 어릴 적 시골에서의 따뜻한 기억들 중심으로 이야길 했던 것 같다. 돌아보면 나에게도 무수히 많은 상처가 있었을 텐데, 그게 아직 나에게 확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갑갑증 같은 걸 느낄 때가 많은 걸 보면, 나 역시 해소되지 못한 어떤 커다란 아픔이 있겠다는 느낌 같은 것은 있다. 7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으니, 그 상처가 오죽하겠는가. 어릴 때 `젊잖다`(젊지 않다는 말의 준말이다.)는 말을 자주 들었으니, 어린 마음에 얼마나 많은 상처가 있겠는가. 며칠이 지나면 명상 기간에 들어간다. 그 기간만큼은 나의 어릴 적 아픔과 상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이것은 나를 위한 것이면서 나의 주변 사람을 위한 것일테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부모의 역할에 초점을 두고 읽었다. 부모 모두 포함 개념을 이해하고 자식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혜안을 길러야 하며, 부모 모두 아기와 공감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하며, 부모 모두 스스로의 상처를 돌아볼 줄 알고 그것을 치유하며 육아에 임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렇지만, 어찌 육아가 부모의 일로만 묶일 수 있는가. 부모가 건강한 육아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그것을 둘러싼 제반 여건들이 조성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남편의 육아 휴직을 교묘하게 막아서고 있는 사회적 풍토, 공동 육아 시설의 열악함, 출산과 육아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는 주택의 문제, 육아가 오롯이 엄마의 몫이라고 여기는 가부장적 문화 등.

 

결국,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육아를 불가능하게 하는

우리 사회의 미개함이 아이를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닐지 반성할 대목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진애가 쓰는 인간의 조건 - 어떤 ‘삶’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김진애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어느 주간지에서 이 책의 출판 소식을 접했다. 나는 책의 제목이나 책의 내용에 대한 대략적인 언급보다 저자 `김진애`에 더 마음이 쏠렸다. 김진애라... 지난 해에 학교 학생들과 함께 운영한 독서 토론 동아리에서 <젊은 날의 깨달음>이란 책을 읽었는데, 거기서 김진애를 처음 만났다. 책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자신의 전공인 건축과 자신의 삶 이야기를 하면서 도전의 의미와 실패의 가치에 대한 말씀을 하신 것 같다. 젊은 시절부터 유학이나 공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그러면서 일하는 여성이 경험하고 이겨내야 할 우리 사회의 구조적 편견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아, 사실 나는 김진애의 글을 읽으면서, `와~~ 대단한 남자네.`라고 생각했다가, 거의 다 읽을 무렵, 여자란 걸 알았다. 이것 역시 내가 갖고 있는 편견의 투영이겠다.)

 

 김진애와의 만남은 `4대강 공사`와 관련한 신문 기사를 통해서 더 이어졌다. 비에 무너진 강 제방 옆에 아주 걱정스런 눈빛으로 서 있던 모습은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4대강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치고 질타하는 내가 아는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4대강 관련해서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하고 항의를 했던 이로 나는 김진애와 관동대학교 토목 교수님을 기억한다.) 그녀는 공부하고 배운 학문적 지식을 양심의 잣대에 비추어 현실에서 목소리를 내고자 한, 실천적 지식인의 모습이었다. <나무의 죽음>, <신갈나무투쟁기>를 쓰면서 자연의 위대함에 귀기울이게 했던 수많은 독자를 배신한 차윤정과는 격이 다른 `성찰적 실무자`였다. 그래서 나는 김진애같은 이가 공공의 영역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실천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권력을 쥘 때, 이 뒤틀린 사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것 때문에라도 2012년 4월은 무척 중요하다.

 

 이런 그녀가 최근에 새 책을 냈다. 나는 김진애라는 이름 때문에 당장 이 책을 구입했고, 어젯밤 내처 읽고 말았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김진애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아, 이렇게 따뜻한 사람이 있나, 소위 속물적 시선으로 엄청난 학벌을 가졌으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희생적으로 살아갈 수 있나, 대체 어떻게 한결같이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보편적 인류애의 모습을 견지할 수 있나, 그녀의 삶은 어떻게 선택되었던 것인가?

 

 그녀는 이런 나의 물음에 한나 아렌트가 쓴 `인간의 조건`을 인용해가며 자신의 삶을 선택한 기준들에 대해 술회해나가고 있다. 이것은 지극히 김진애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누구나 한번쯤 읽어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 이유는 우리도 매 순간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하는 본원적 물음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활동적 삶`을 인간의 조건으로 여기며, 이 인간의 조건이 더욱 나빠지는 현실적 문제에 대해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이 활동적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인간의 근본 활동인 노동, 작업, 행위가 무척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노동은 생의 아주 기본적인 욕구, 먹고, 입고, 자고 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수단 정도 될 것이다. 그리고 작업은 인간의 유한성으로 생겨난 작용으로, 후대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한 어떤 노력 등으로 정리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예술 작품을 만든다거나 건축물을 만든다거나 이명박처럼 저렇게 강을 파헤쳐 뭇 생명들을 죽인다거나. 그리고 행위는 아렌트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것인데,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그 과정 혹은 그것 전체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녀가 현실적으로 인식하기에는 노동은 위기이고, 작업은 폭력적이며, 행위는 실종되었다. 노동의 위기는 노사관계의 폭력적 구조, 엄청난 실업률, 산업 구조의 극단적 양극화 등으로 이야기될 수 있겠다. 폭력적인 작업은 이미 말했듯이 4대강 사업, 청계천, 원자력 발전소 건설 - 아이고, 어째 말하는 것마다 가카하고 연결되냐? - 등이 예가 되겠다. 행위의 실종은 날치기, 밀어붙이기 등으로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그녀의 눈으로 보나, 우리의 눈으로 보나, 지금, 현재는, 인간의 조건이 엄청난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 세가지 인간의 조건 가운데 행위를 무척 중요하게 여겼다. 아까 말했듯이 행위는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이뤄지는 모든 작용을 포함하는데, 그러니까 소통 그 자체일 수 있는데, 이 소통의 원활함 여부에 따라 노동, 작업의 문제가 개선될 수 있다고 믿었던 듯하다. 그런데 소통은 곧 정치다. 이에 따르면, 정치는 노동과 작업과 행위의 문제를 보다 개선하기 위한 어떤 작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 김진애는 정치에 뛰어들게 된다. 정치로 인간의 조건을 지키며 살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결국, 경제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정치가 문제인 것이다!!!

 

 결국, 김진애는 어떠한 삶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인간의 조건`이 기준이 되어왔다. 노동과 작업과 행위가 온전할 수 있는 것, 인간이 인간의 조건을 지키며 살 수 있는 것,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이것이 김진애가 선택한 모든 것의 기준이었고, 그의 미래이다.

 

 나는, 이런 김진애가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 무척 다행스러우며,

 이런 김진애가 2012년에도 달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더 나아가, 이런 김진애가 세상을 바꿀 위치에서 권력을 집행할 수 있길,

 그 마음이 크다.

 

 덧>

   노무현 대통령과 김진애의 인연에 대한 글에서 울컥했다.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노무현 대통령을 아직도 마음 속에 대통령으로 두고 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김진애의 평가가 인상깊다.

  내가 좋아하는 국회의원을 내가 좋아하는 책의 저자가 칭찬한다는 게,

  나로서도 뿌듯한 일이었다.

  김진애의 롤 모델이라는 이정희 의원을 나 역시 좋아한다는 것,

  김진애를 빌어 말할 수 있어서 기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석봉으로 오르는 길.

 지리산에는 바람과 눈만 있는 것 같았다.

 하늘은 갇히지 않았다.

 

 

  저 멀리 남해 바다가 보인다.

 

 

 제석봉 표시판.

 몇 년전에 찍은 모습은 아래와 같았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글로 남긴 적이 있었다.

 

장터목에서 제석봉 오르는 길에 표지판이 눈을 맞고 서있다.

 

이걸 보고서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삶에 있어서도

이쪽으로 가면 몇 킬로미터 남았다.

저쪽으로 가면 몇 킬로미터 남았고,

종착지는 어디다.

이렇게 알려주는 표시판 하나쯤 있었으면...

 

이제는 이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의 내 삶은 저때보다 나아졌다는 징표인가.

 

 

 눈꽃을 피워 올린 나무는 든든한 하늘을 배경삼아 섰다.

 

 

힘든 길이었지만, 아직 우리는 건재했다.

 

제석봉에서 천왕봉을 향해 오르는 길.

사람이 다니지 않은 길은 내 무릎보다 높게 눈이 쌓였다.

 

 

 

 겨울 바람을 쉽게 이길 수가 없었다.

 껴입고 가리고 덮어 썼다.

 저 머~~얼리 반야봉이 조그맣게 보인다.

 

 

 

 

겨울 지리산, 나무는 이랬다.

 

 이 과정을 다 거쳐 우리는, 천왕봉에 섰다.

 

 

 여기서 우리는 중산리 방향으로 하산했다. 

 그 길이 그렇게 가파를 줄 미처 알지 못했다.

 이 길로만 여러번 오르셨다는 우리 학교 선생님도 계신데,

 정말 몇 번이나 숨이 넘어가야 하는 길 같았다.

 

 이번 산행길에 만난 몇 사람이 있다. 서울에서 혼자 내려온 총각, 거창 아가씨, 별 준비없이 종주길에 나선 세 청년.

 서울에서 혼자 내려온 총각은 우리에게 말했다.

 이렇게 고생해서 한 번 종주하고 나면 삶에 힘이 생긴다고,

 그리고 한 달만 지나도 이 고생스런 지리산 종주가 다시금 하고 싶어진다고.

 

 그래, 나도 그 말에 쉽게 공감한다.

 아니, 나는 벌써 다시 지리산 종주에 나서고 싶어진다.

 

 과연, 지리산은 이게 지리산이다.

 

 

이번 산행의 모토는 `한 바탕 울 만한 자리`였다.

외롭고 스산했던 나의 2011년을 눈물로 흘려보내겠다, 잊겠다...

 

그런데, 나는 다른 이유로 눈물을 흘렸다.

천왕봉에 올라 빙 주위를 돌아 산 아래를 내려다 보는데,

그야말로 아름다운 산의 능선이 아닌가.

거기다

아버지가

어른거렸다.

 

아, 또 이렇게 불쑥 나를 찾아오셨다.

 

아버지도 이 깊은 풍경을 보고 계시군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게 아버지는 그런 존재다.

 

아주 오랜만에 아버지를 뵐 수 있어서 행복한 산행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제 2011년은 가고 없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1-12-29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9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9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9 1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틀째 밤을 세석에서 잤는데, 거의 10분 단위로 깼다.

 100여명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잔다는 건, 나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좀 둔해질 필요가 있는데...

 

 새벽 6시부터 산행 준비를 했다.

 6시 40분에는 출발이다.

 아침은 장터목에서 먹기로.

 

 촛대봉 일출이 무척 기대가 됐다.

 

 

 

 

 

 

 

 

 

 

 

 촛대봉에는 오를 수가 없었다. 바람이 무척 거세서 서있기가 힘들었다.

 그냥 능선에서 일출의 장면을 목격했다.(참고로 사진에 찍힌 시간은 한 시간 가량 빠르다.)

 빛 아래 세상의 모습이 희미하게 드러나고,

 섬진강, 남해 바다가 보인다.

 

 

 일출의 장면이다. 바람 소리가 인상적이다.

 

 

 

 촛대봉에서 천왕봉 오르기까지 바람이 제법 거셌다.

 이곳에서의 나무는 좀 남다른 데가 있다.

 바람에 휘고 꺾여서 만들어진 독특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또 뒤돌아봤다. 그랬더니 역시나 반야봉이 은근히 자리잡았다. 반야봉 왼편 뒤쪽으로는 노고단도 보인다.

 

 

 

 

 천왕봉이 가까워 오는 모양이다. 바람이 무척 세고 차다.

 이날 장터목에서의 온도가 영하 17도였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1-12-29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9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9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리산 첫 날은 성삼재에서 연하천까지의 구간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구간이라 구경하기가 좋았다.

 

 첫날 저녁, 삼겹살을 구워먹고, 처남과 술 한잔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하천 산장은 20시에 소등이어서 일찍 들어가 누웠다.

 밤 하늘이 무척 보고 싶어 밖으로 나왔더니 별 잔치가 벌어졌다.

 하늘을 가득 채운 별이 황홀했다. 별자리를 찾고 싶었으나, 별이 너무 많아 그것도 쉽지 않았다.

 근데 날이 너무 추워 오래 밖에 있을 수가 없었다.

 

 이곳 산장지기와 잠깐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4박 5일 근무에 4박 5일 휴무란다.

 나는 그것보다 이런 곳에서 직업을 갖는다는 게 좀 부럽기도 했다.

 (처남은 아닌 것 같단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은 다들 순할 것만 같았다.

 

 

 

 

  연하천의 아침. 민둥하게 솟은 봉우리 능선 아래 따뜻한 곳에 자리잡았다. 아침에 밖에 나올 때는 눈이 펑펑 내려 걱정이었는데, 이렇게 출발 직전엔 그쳤다. 아담한 산장이 예쁘다.

 

 

 우리는 뜨거운 커피 한 잔에 크래커 몇 조각을 먹고 출발길에 섰다. 벽소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간밤에 내린 눈으로 등산로가 제법 덮혔다.

 

 

 벽소령으로 향하는 능선길에서 운해를 볼 수 있었다. 저 멀리가 광양만, 순천만 방향이다.

 

 

 이건 처남 디카로 찍은 운해 영상~

 

 

벽소령에서 점심을 먹고 세석 방향 능선을 올랐다.

저 멀리 중봉, 천왕봉, 세석평전이 보인다.

 

 

 

왔던 길을 뒤돌아봤다.

저 멀리 제일 높게 솟은, 애기 엉덩이 두쪽같이 생긴게 반야봉

 

 

세석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영신봉.

하늘이 무척 아름답다. 꼭 신이 내려올 것만 같다.

 

저 앞에 촛대봉이 보인다. 이 길만 내려서면 세석대피소가 있다.

처남은 한참 뒤에 쳐져 있다. 무릎이 많이 아프댔는데, 매형은 무심히 앞으로만 갈 뿐!

  처남은 나보다 40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그 사이 나는 밥을 지어놓고, 처남이 와서 김치찌개를 끓였다. 산행에서 먹는 맛도 빠질 수 없지. 이곳에서는 거창에서 온 아가씨 셋한테서 맛있는 것도 얻어 먹었다~ㅋ

 

 둘째날 산행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세석 대피소에서 잠을 자고 촛대봉에서 일출을 본 뒤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로 하산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