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프레이야 > 돌아가렵니다



아버지, 지금 제 옆에는 한 자루의 칼이 함께 누웠습니다

이가 듬성듬성 빠지고, 칼자루는 어부의 손등처럼 투박합니다

저의 배를 가르려는 그것에 오히려 연민이 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지 않고 사람들 가까이, 너무 가까이 왔나봅니다

제 눈은 이내 감기지 않으려나 봅니다

탄력있는 몸과 반짝이는 비늘도 아직은 그대로입니다

아버지, 저는 지금 돌아가렵니다

넓고 깊은 물속 아득한 그 품으로..

다른 세상에 나와 한 세상 짧게 놀다 가니

회한도 욕심도 없음입니다.

제가 눈을 감지 못하는 건 단지

흠모했던 님의 참모습을 보지 못한 한 가지 까닭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달팽이 > [퍼온글] 열정의 학자 정민 "미치지 않고 뭘 해요"




[인터뷰]<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펴낸 정 민 교수

[북데일리]정 민(47)교수의 글은 빠르게 읽힌다. 반복과 부연이 ‘덜’ 하기 때문이다. 군더더기 없는 그의 ‘마른’ 글은 중고생이 읽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쉽다. 그 어렵다는 연암도, 다산도 정민 교수의 손을 거치면 평이해진다.

그는 “학자들의 글은 어렵다”는 통념을 깬 저술가다. 특정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 전문적인 단어 대신 보편적인 단어와 문장을 통해 고전읽기를 대중화시켰다. <한시미학산책>(솔. 1998) <미쳐야 미친다>(푸른역사. 2004) <다산선생지식경영법>(김영사. 2007) 모두 그가 만들어낸 베스트셀러다.

이번에 발표한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휴머니스트. 2007)은 2001년부터 7년에 걸친18세기 탐구에 대한 중간 결산작업이다. 18세기의 특징적 문화현상, 조선 지식인의 자의식, 지적 경향 등을 다뤘다.

19일 그가 재직 중인 한양대학교를 찾았다. 병원 차트 보관대에 꽂힌 수백 개의 자료파일, 이중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크기의 서가. 연구실 곳곳에 붙어 있는 메모들이 치열한 연구의 흔적을 드러냈다. 정 교수는 저술법과 연구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2시간여에 걸쳐 밝힌 학문을 향한 고백은 뜨겁고, 순수했다.

-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의 도입부를 보면 한 분야에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는 <미쳐야 미친다>에서 엿볼 수 있었던 ‘벽(癖)’의 예찬론입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진정한 ‘벽’의 의미란 무엇입니까.

“벽이란 자신까지 잊는 ‘몰두’입니다. 벽은 맹목적이고 저돌적이죠. 예전에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해서 늘 지나친 것을 경계하고 차단했습니다. 과거에 ‘벽’이 터부시 되었다면 지금은 ‘벽’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미치지 않고 뭘 할 수 있나?”라는 자문이 끊임없이 필요합니다. 실로 ‘벽 신드롬’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18세기 지식경영의 배경, 조선지식인들을 살펴보면 이렇듯 미칠 듯한 몰두가 엿보입니다. 18세기는 외형적으로는 ‘정보화의 문화’ 내부적으로는 ‘벽의 추구’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 교수님의 방대한 저술량을 보면 스스로도 ‘벽’ 의 기질이 다분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 가지에 몰두하면 끝을 보는 성격입니다. <한시미학산책>을 쓸 때 얘긴데. 우연히 어떤 논문에 있는 새 울음소리로 만든 금언체(禽言體) 시를 보게 됐습니다. 딱 4수였는데 퍼즐을 풀 수가 없어 무척 답답했죠. 밤낮으로 그걸 고민하다 보니 같은 시기의 다른 논문집에 실린 또 다른 금언체 한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간 금언체 한시를 모았습니다. 논문을 써야겠다는 결심이 서자 새에 대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죠. 당시 대만에 교환교수로 가있었는데. 대만조류협회에가서 중국에서 새 관련 책자, CD, 테이프, 우표를 사서 공부했습니다. 일본에 가서 조류도감도 가져왔죠. 그렇게 필요한 게 있으면 어디든 가서 찾아와야 직성이 풀리는 편입니다. 대부분의 작업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됩니다. 보이는 대로 자료를 모으다 보면 먼저 모이는 것이 생기죠. 그 중에서 ‘나 좀 어떻게 해주세요’라고 외치는 것들이 다른 것보다 먼저 책으로 만들어집니다”

-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을 통해 찾아낸 18세기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입니까.

“18세기는 조선이 체험한 최초의 정보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18세기를 실학의 코드로만 설명하는 것은 전면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실학은 유용성의 담론이기 때문에 가치의 유무만 따지죠. 어찌 보면 유득공집비둘기에 몰두한 것이나, 앵무새, 화초, 꽃에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는 실학기준으로 보면 잡학일 뿐입니다. 그러나 18세기에 정보화의 대 변혁이 일어나며 많은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18세기는 지금과 닮은 점이 많습니다. 예전과 비교해 볼 때 지금은 무가치하다고 생각되던 정보들이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판매가 되고 수요층이 있기 때문이죠. 정보의 우선순위에 커다란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여기서 강조 되는 것이 바로 ‘편집’의 능력입니다. 정보를 어떻게 선별하고 취할 것인가로 고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시대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면 많이는 알되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과거 박제가나 유득공처럼 급제를 하지 못한 서얼들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대학은 나왔지만 취직을 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학문을 향한 태도만큼은 다릅니다. 시험에 관계없이 학문을 향해 열정을 불태우던 그들과 달리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열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18세기를 정보화 하고 체득하는 과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 과거 시대의 인물. 그 중에서도 특히 조선시대 인물들에게 특별한 애착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정말 꼽고 싶은 인물이 있다면요.

“다산과 연암을 빼놓을 수 없겠죠. 10년간 연암을 연구했습니다. 다산은 미국에 가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죠. 기질로 봐서 저는 다산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꼼꼼하고 소심한 편이죠. 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연암입니다. 연암을 알고 나서 저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공부하는 스타일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죠. 지금처럼 다양한 주제에 폭넓은 관심을 갖게 된 것 모두 연암의 영향입니다. 연암을 체험하기 전에는 전통적인 한문학을 연구하는 학자 일 뿐이었죠. 그러다 또 이덕무에 빠져서 여러 해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덕무하면 우선 삐쩍 마른 몸. 퀭한 눈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인간이 저렇게 열심히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죠. 책읽기와 학문을 향한 그의 성실한 태도는 배울 점이 정말 많습니다. 다산에 도착하면 또 달라집니다. 다산 역시 성실의 화신이지만 이덕무가 주는 인간적인 면은 없죠. 엄청난 절망 속에서 자신을 세우려는 의지가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18세기 문인들은 소통의 글쓰기를 실천했습니다. 그들의 글을 읽다 보면 스스로가 움직이는 것을 느낍니다. 매번 매료되곤 합니다”

- 고전읽기 붐이 일고 있습니다. 직접 쓰신 <다산선생지식경영법>을 비롯해 많은 책들이 고전 읽기의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고전의 진정한 가치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시공간을 초월해 가치 있게 읽히는 것이 고전입니다. 지금 수업 중에 강독하는 것이 <고전명문감상>인데 학생들이 굉장한 혼란에 빠집니다. 글이 갖고 있는 충격이 굉장히 무겁게 다가온다고 합니다. 자꾸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고 해요. 심지어 어떤 학생은 책을 읽다 수업 중에 울기도 합니다. 리포트 쓰다 우는 학생도 많았습니다. 모두 자신이 새까맣게 잊었던 것을 회복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과거 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렇듯, 미친 듯이 열정을 쏟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자문을 하게 되는 것이죠. 지금 대학생들을 보면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모두 영어공부, 취업공부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12년간 대학에 들어오려고 공부하고, 대학 와서는 취직을 위해 공부하고, 직장에 들어가면 안 잘리려고 공부하고. 결국 자신을 위한 공부는 하지 않습니다. 공부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적습니다. 얼마나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만 있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에는 관심이 없죠. 고전은 그 본질적 문제를 명확히, 깊숙이 찔러줍니다. 그리고 확인시켜주죠. 그러니 지금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요. 지금 지식은 전부 실용적인 것들뿐입니다. 고전에는 도구적인 것을 뛰어넘어 삶의 자세를 가다듬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 600페이지가 넘는 <다산선생지식경영법>을 6개 월 만에 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왕성한 저술력의 비결이 궁금합니다.

“어떤 관심사가 생기면 일단 메모를 시작합니다. (병원카트에 꽂혀 있는 파일 철 세 개를 가져와서) 얼마 전에 <에도시대의 여행문화>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그걸 읽으면서 왜 조선시대를 소재로 한 이런 책은 없을까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18세기 조선의 여행문화’라는 이름의 파일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백지에 어떤 내용들이 가능할까 쭉 써내려 갑니다. 그러면 30개 혹은 40개에 달하는 소재들이 정리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두 장짜리 세부안을 만듭니다. 여기에는 추가적인 메모들이 곁들여집니다. 미쳐 생각 하지 못했던 것을 다시 붙이고 추가 하는 작업이죠. 그 다음에는 ‘내가 왜 이 책을 쓰고 싶은지’에 대한 집필 의도를 씁니다.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하면 쓰지 않습니다. 이렇게 만들어 놓은 파일 철이 (차트를 가리키며) 저기 꽂힌 것들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다고 해서 바로 논문이나 책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죠. 몇 년 후에 완성될지 몰라요. 그렇지만 떠오르는 것들은 반드시 파일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리고 그 자료들을 운명적으로 다시 만나게 될 때 본격화 하는 식이죠”

- 교수님의 글쓰기는 중고등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다는 평을 받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단문체의 비결, 쉽게 쓰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글은 반드시 짧게 씁니다. 퇴고 할 때 글 자르는 게 일이죠. 글이 짧으면 속도감이 생깁니다. 마냥 늘어놓으면 뜻이 접속이 안 됩니다. 관용어절을 끌고 들어가는 습관을 매우 싫어합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영희언니를 만났다’라는 문장을 예로 들어볼까요. 벌써 내가 좋아하는 게 영희인지 영희 언니인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글쓰기에 있어 구문의 간결성은 무척 중요합니다. ‘조선후기고문론(문장론)연구’가 제 박사학위 논문입니다. 예전 한문가들의 문장을 연구했죠. 글쓰기에 있어서 간결함, 표현의 함축성을 추구하는 것이 제 전공입니다. 그러다보니 글쓰기에 굉장히 예민한 편입니다. 우리나라 문장에는 ‘이다’ ‘있다’ ‘것이다’ 체가 있습니다. 모든 글쓰기의 기본은 ‘이다’체가 되어야 합니다. ‘있다’는 늘어지고 ‘것이다’는 권위적인 느낌을 줍니다. ‘것이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면 ‘00은 것이었던 것이다’라는 문장까지 쓰게 됩니다. 강조하는 데 매달리게 되는 거죠. 권투로 말하자면 ‘이다’는 ‘잽’ ‘있다’는 ‘어퍼컷’ ‘것이다’는 ‘스트레이트’입니다. ‘어퍼컷’이나 ‘스트레이트’는 아무 때나 쓰면 안 됩니다. 결정타로 정말 필요한 곳에만 써야 합니다. 자신이 쓴 글을 읽어 보면 스스로가 ‘이다’ ‘있다’ ‘것이다’ 중 어느 형의 인간인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학자들의 글을 보면 그 세 가지 분석이 가능합니다”

- 글쓰기를 두려워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동어 반복을 피하는 방법도 들려주시죠.

“리듬 살리는 것에 주의하다 보면 동어반복은 피할 수 있습니다. 글에는 리듬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머릿속에 들어옵니다. ‘그러나’가 나오면 그 다음은 ‘반면에’로 다음은 ‘또한’으로 고쳐야 합니다. ‘00처럼 00 처럼 00 처럼’이 아니라 ‘00처럼 00이냥 00같이’로 다양하게 바꾸어야 합니다. 어미를 다르게 하면 완전히 다른 글이 됩니다. 글을 쓸 때는 반드시 소리를 내서 읽어야 합니다. 더 좋은 것은 남이 읽어주며 퇴고하는 방법입니다. 제 글의 대부분은 아내가 읽어줍니다. 듣다 보면 ‘턱’ 걸리는 부분이 나옵니다. 잘못된 문장이죠. 그러면 고칩니다. 읽히기 위해 쓰는 것이 글입니다. 읽히지 않으면 글이 아니죠. 그래서 퇴고는 아무리 해도 부족합니다. 끊임없이 고치고, 또 고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 글쓰기와 함께 거론 되는 것이 독서의 중요성입니다. 책읽기의 필요성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책을 읽는다는 것은 통찰력을 기르는 과정입니다. 자신의 삶을 운영해나가는 기본적인 힘을 기르는 과정이 독서죠.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정보취득의 목적으로 책을 읽습니다. 잘못된 방법이죠. 책이 잘 읽히고 않고 손이 가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독서는 삶의 안목과 통찰력을 길러주고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습니다. 삶의 기본을 가르치는 책을 처음부터 소리내어 읽는다면 그것이 갖는 힘은 실로 대단할 것입니다. 동종 분야보다는 다른 분야의 책에서 더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보는 자신의 관심사에 의해 ‘재배열’이 됩니다. 같은 책이라도 읽는 이에 따라 효과가 달라집니다.

실용위주의 책읽기가 아닌 자신의 자양분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책읽기가 필요합니다”

- 글 쓰고 공부하는 것 외에 다른 취미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이덕무처럼, 정약용처럼 오직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고 계신 듯 보입니다. 지금의 삶에 행복을 느끼십니까.

“물론 행복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글은 주로 저녁에 씁니다. 낮에는 강의도 있고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일도 있거든요. 저녁 11시 12나 돼야 집에 갑니다. 강의실에 있을 때도 부재중으로 해놓고 문을 잠가 놓을 때도 있어요. (웃음) 토요일 일요일에도 주로 학교에 나와 있습니다. 가족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사실은 그때 밖에 공부할 시간이 없어요. 그래도 연구실에 조용히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예전에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종종 갖곤 했는데 요즘에는 시간이 아까워서 못 마십니다. 어떻게 보면 삶이 무미건조 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 묘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건 다른 사람과 같이 나눌 수 없는 나만의 즐거움이겠지요”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잔잔하게 흐르는 영화다.
<오만과 편견>을 생각하면 느낌이 비슷할 것 같다.
오만과 편견의 흐름이 신분의 인습과 진정한 사랑의 갈들이었다면
이 작품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미스 포터는 그림을 좋아하고 상상력이 풍부해서 의인화된 토끼를 비롯한 각종 동물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어내었다. 그 과정에서 당시 과년한 처녀들에게 주어진 결혼의 의무는 옆으로
내쳐놓았는데 부모들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자가 밖을 나가는데 유모의 동행이 필요했고 발걸음 닿지 못하게 막힌 많은 공간이 있는 시대였기에
스스로 벌어서 자립한다는 포터의 의지는 쉬운 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은 적절한 조력자를 만나 출판되어 결국 대박의 길로 다다렀다.
오늘날 해리 포터 만큼이나 큰 대박이었다고 보여진다.
참고로 영화를 보고 집으로 와서 화장실 벽을 보니 미스 포터의 작품 둘이 붙어있었다.
발 미끄러지지 않게 붙이는 스티커의 도안이 바로 포터의 그림들이었다.
하여간 당대의 풍경으로 잠시 돌아가면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 나오는 구절이 하나 떠오른다.

산책하는 어느 귀족 가문의 어머니와 딸이 나누는 대화다.
딸, "A씨 가족이 지나가네요 우리와 사귀려고 미친듯이 갈망한다고 하네요."
어머니, "안돼 우리는 우리와 사귀려고 덤비는 가족은 사용한다. 우리가 정말 사귀어야 할
사람들은 우리가 미치도록 사귀고 싶어 하는 가족이 되어야 한다."

딱 그런 처지였다. 포터의 집안은 빠른 속도의 신분상승으로 귀족의 지위를 꿰어찼다.
덕분에 자신들이 막 벗어난 중산층 즉 gentry들과는 별로 어울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원래 신분의 차별 내지 인종의 차별은 그 계층의 가장 아래단에서 가장 심하다.
미국에서도 백인 중에 가진 것이 딱 하나 백인이라는 사실 자체 밖에 없는 사람들이 가장
인종 차별이 심하다.

이런 사회적 풍경을 하나 하나 드러내면서 우리들에게 웃음을 유도하고 교훈을 주면서
자연으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막대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자연 그대로를 사서 우리에게
남겨준 선구적인 마음이 잔잔하게 여운을 남긴다.

다른 작품에 비해서 여주인공의 역할이 훨씬 크다 보니 관객도 여자분들이 많았다.
영화 끝나고 박수 소리가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자신의 목표를 뚜렷이 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 그녀의 삶은 그만한 아름다움을 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는 가끔 생각해 보기를, 사람은 성인이 되는 초기에 2-3일 동안이라도 맹인이나 귀머거리가 되어 본다는 것은 하나의 큰 축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암흑은 그로 하여금 빛에 대한 감사를, 침묵은 음성의 즐거움을
가르쳐 줄것이다. 종종 나는 눈으로 보는 친구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보았는지에 대하여 테스트해 보기도 한다.

얼마 전에 나는 오랫동안 숲 속을 산책하고 돌아온 친구에게 "무엇을 보고 왔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녀는 "아무 특별한 것이 없었다"고 대답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물어보기를,
'어쩌면 그럴 수 있을까? 한 시간 동안이나 숲속을 산책하고 왔는데, 신기한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니?'

보지 못하는 나는 손끝의 촉감만을 통해서도 수백 가지 흥미로운 것들을 발견한다. 나뭇잎의 섬세한 좌우 대칭도 느낄 수 있고, 거칠고 주름진 소나무나 부드러운 자작나무의 껍질을 통해 그들의 사랑을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봄엔 기대에 찬 손으로 나뭇가지에 돋아나는 꽃눈을, 겨울잠을 자고 처음으로 깨어나는 꽃순들을
느끼고 알 수 있다. 혹은 운이 좋으면 작은 나무에 살짝 손을 대고 그 나무 위에서 노래부르는 새들의
행복한 진동도 느낄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을 손끝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동경으로 마음으로 울부짖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촉감만으로도 이처럼 즐거운데, 내가 만약에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는 내 눈을 사용해 더도 말고 3일 동안만 이 세상을 볼 수 있다면
하고 상상해 본다. 나는 그 기간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놓겠다.

첫날은 우정과 친절로 나로 하여금 인생의 살 가치를 갖게 해준 내 친구를 보고 싶다.
나는 영혼의 창문인 눈을 통하여 친구들의 심장을 꿰뚫어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나는 손가락 끝 촉감을 통해서만 그런 표정들을, 그들 얼굴의 외형만을 알 수 있었으니까!
난 웃음, 슬픔, 그리고 여러 가지 밝은 감정들을 분명히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친구들의 얼굴표정을 통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본질적인 성품을 감정 표현의 미묘함을 통해서, 안면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서, 그리고 손의 움직임을 통해서 이해한다면 얼마나 쉽고 얼마나
만족스러울까?

당신은 친구의 내적인 본질을 당신의 눈을 통하여 꿰뚫어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얼굴의 외형만을 통해서 건성으로 파악하고 그대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예를 들면 당신은 가장 사랑하는 다섯친구의 얼굴을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가?
시험적으로 나는 여러 남편들에게 자기 아내의 눈 색깔을 말해 보라고 한다.
그들은 종종 혼돈하거나 아니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오! 내가 3일 동안 볼 수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첫날은 매우 바쁜 날이 될것이다. 나는 우선 내 친구들을 모두 다 우리 집에 불러모아 놓고 그들의 얼굴 하나 하나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면서 그들의 내부에 숨은 아름다움의 외부적인 특징들을 내 가슴속에 깊이깊이 간직해 두겠다.

다음에는 어린이의 얼굴에 눈을 고정하고 약육강식의 의식이 생겨나기 전의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아름다움을 보고 싶다. 그 다음에 나는 내가 읽던 책들을 보고 싶다. 내 인생에 가장 깊은 정신적 물줄기였던 그 책들을, 그리고 나서 내 강아지들의 충성스럽고 믿음직한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싶다.

그러다 오후가 되면 시원한 숲 속을 오래오래 산책하면서 자연계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싶다. 그리고 저녁 노을의 찬란함을 위해 기도드리겠다. 그날밤은 아마도 밤새 잠을 못 이룰 것이다

다음날 나는 먼동이 틀 때 일어나서 밤이 낮으로 변해 가는 놀라운 기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잠자던 세계를 깨우는 빛의 찬란한 파노라마를 경외의 눈으로 쳐다볼 것이다. 이날 나는 세계의 현재와 과거를 대충 더듬어보기 위하여 내 모든 정열을 쏟을 것이다. 그리하여 인류의 진보와 장관을 보기 위해 박물관으로 가겠다.

박물관에서 내 눈은 지구 동물들의 요약된 역사와 원시 환경에 나타난 인류의 선조들을 복 수 있을 것이다. 인류가 이 지구 위에 출현하기 전에 살고있던 공룡들과 선사시대에 살던 큰 코끼리들, 작은 몸집의 강력한 두뇌로 이 동물의 왕국을 정복하려 했던 유적들을 볼 것이다.

다음에 나는 미술관으로 가겠다. 그곳에서는 고대 나일강 유역의 여러 신들의 조각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리스 아테네 신전의 장식물들의 모형들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고 또 희랍 전사들의 리드미컬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호머의 괴팍한 수염 달린 모습은 나에게 더욱 친근감을 즐 것이다. 왜냐하면 그도 역시 장님이었으니까 이렇게 하여 나의 둘째 날은 인류의 예술을 통하여 인간의 영혼을 탐구하는 하루가 될 것이다. 만져서만 알았던 사물들을 보아서 알 수 있게 되었다. 더욱 황홀한 것은 미술의 놀라운 세계를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표면상의 느낌만 갖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말하기를, 예술은 깊고 진실되게 감상하기 위해서는 눈을 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사람은 경험을 통하여 색깔과 형태, 선과 구성의 장점을 배운다. 만약 내가 볼 수 있다면 나는 얼마나 행복하였을까?

둘째 날 저녁에는 영화관에 가서 보내겠다. 햄릿의 매력적인 모습이나 다채로운 엘리자베스 시대의 장식 속에 돌풍처럼 나타나는 팔스켑 기사의 모습을 관람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손으로 만져서 얻는 한정된 영역 외의 율동적인 운동의 미를 즐길 수 없었다. 비록 리듬의 기쁨을 약간 알기는 하지만, 그것은 오직 파블로프의 반사작용에 의하여 희미하게 느낄 뿐이다. 왜냐하면 나는 가끔 마루를 통해서 전해지는 진동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상상한다. 율동은 이 세상에서 가장 우리를 즐겁게 하는 구경거리라고, 나는 이와 같은 즐거운 기분을 조각된 대리석의 곡선을 만질 때 느끼곤한다. 이런 정지된 우아함도 그렇게 사랑스러운데, 하물며 움직이는 동작과 우아함을 봄으로써 느끼는 그 스릴은 얼마나 경이로울까?

---

다음 단락이 있는데 아직 다 못 찾았습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레이야 2007-01-21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글 전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무척 감동적이었어요. 다음 단락, 셋째 날 것 찾아 올려주시와요. 사마천님, 서울 가게 되면 콜하지요^^

사마천 2007-01-21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 그 자체죠. 하루하루를 무덤덤하게 보낸 날은 꼭 다시 와서 읽으려고 합니다. ^^

상념 2007-09-13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헬렌켈러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의 셋째 날 입니다.

내가 볼 수 있는 셋째 날이자 마지막 날에는 현실세계에서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구경하며 보낼까 합니다. 사람들의 활동이 왕성하고 수많은 상황이 연일 벌어지는 뉴욕을 행선지로 정했습니다. 내가 살고있는 롱아일랜드의 포리스트힐 근교에서 출발하여 이스트리버로 뻗은 레이스 모양의 철제 구조물을 지나 뉴욕의 매력적인 고층 건축물의 하나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꼭대기에서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상상으로만 보았던 광경을 내려다 볼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아주 번화한 곳에 서서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렵니다. 5번가를 지나 파크 애비뉴, 슬럼가,공장지대를 거치면서 내 눈은 행복과 불행 모두를 주목합니다.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더 깊이 탐구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내 눈은 언제나 행복과 불행 양쪽으로 활짝 열려 있습니다. 불행하고 비참한 광경도 삶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눈감는 것은 마음과 정신에 눈감는 것이니까요. 광명이 주어진 셋째 날이 이제 끝나갑니다. 마지막 날 저녁에 나는 아주 신나는 코미디 공연이 한창인 극장으로 달려가야만 할 것 같군요. 그래서 인간의 정신 속에 깃들어 있는 희극적인 요소를 감상하고 싶습니다. 자정이 되어 암흑으로부터의 유예 기간인 사흘이 마침내 끝나면, 나에겐 다시 영원한 밤이 이어지겠지요.

나는 장님이기 때문에, 앞이 잘 보이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힌트-시각이란 선물을 받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드릴 수 있답니다. 내일 갑자기 장님이 될 사람처럼 여러분의 눈을 사용하십시오. 모든 감각을 최대한 활용하세요. 자연이 제공한 여러가지 접촉방법을 통해 세상이 당신에게 주는 모든 즐거움과 아름다움에 영광을 돌리세요.
 
 전출처 : 프레이야 > 안아주기

아빠의 포옹 그리고 스킨십


'스킨십은 말보다 강하다.'
육체적인 접촉 없이 자란 아이들보다
안아 주거나 입맞춤을 해준 아이들이 훨씬 건강하게
자란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딸을 많이 안아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은 아빠의 품에 안겨 여성성을
키워 나갑니다. 아들은 아빠의 품에 안겨서
남성성을 키워 나갑니다.
토마스 카알라일은 "우주에는 성전이 하나뿐인데
그것은 인간의 몸이다. 인간의 몸에 손을 댈 때에
우리는 하늘을 만진다
."고 말했습니다.


- 김성묵 한은경의《고슴도치 부부의 사랑》중에서 -

오늘 고도원의 아침편지에서 갖고 왔어요. 더 많이 안아줘야겠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