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심청 - 사랑으로 죽다
방민호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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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대표 고전 소설인 <심청전>에 대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 심학규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인당수에 제 한 몸 바쳤던 심청이를 보노라면 지극한 효성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죽음으로 갈라 진 줄만 알았던 심학규와 심청이의 재회를 통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그들을 보면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과 함께 착하게 사는 이들에게는 이렇게 따스한 결말이 전해지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으로 책을 덮으며 안도감을 느꼈었다.

청이는 아버지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가보았다.
안 가지는 게 아니고 못 가져서, 못 가진 괴로움이 평생의 한이 되어, 한시도 한탄에서 벗어나보지 못한 아버니의 얼굴이다.
이렇게 사시면 아니 되는 것을. 이제는 욕망을 내려놓으실 때도 된 것을.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청이는 아버지를 마음 깊은 곳에서 미워하면서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사람들에게는 효성스러운 칭찬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지만 꼭꼭 숨겨둔 진짜 자기 망므을 아버지를 너무도 원망하고 부끄럽게 여겨왔던 것이다. –본문

그렇게 심청이에 대한 이야기를 잊고 지낸 지 어언 이십 여 년의 세월이 흘러 이 책을 통해 다시금 심청전에 대해 마주하게 되면서, 어릴 적 읽었던 심청이는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 아비를 구하고자 하는 효심이 지극했던 그녀도 실은 연정을 담아 새록새록한 마음을 느끼고 있던 수줍은 소녀였다는 것을, 딸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주는 선비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심봉사는 실은 욕정과 욕망에 휘감겨 있던 추접한 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들이 아비와 딸로 부녀의 끈으로 이생에 마주한 것은 전생의 숙명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전에 알고 있던 심청전의 이야기가 완전히 뒤집혀서 다시금 전해지게 된다.

 윤상 오라버니의 바람대로 아버지를 버리고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했다면 심청이는 이 생에서만큼은 사랑만이 가득한 곳에서 그렇게 행복한 여염집 아녀자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윤상 역시도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머슴의 자식으로 살아야 했기에, 자식의 하늘이 되어 그 뒤에서 넉넉히 품어주어야 할 아버지의 부재를 태어나는 순간부터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윤상과의 연정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는 이 두 남녀에게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 것이다.

이 죄를 어찌하나.
돌이켜보면 자기는 인당수에 몸을 바칠 때도 윤상이 오라버니의 바람을 철저히 외면해버렸다.
, 그렇듯 윤상이 오라버니를 멀리 하고 싶었던가.
그것은 아니었다. 세상에 나서 사내라고는 귀덕 오라버니와 윤상이 오라버니밖에는 몰랐다. 마음 바쳐 사랑한 것은 윤상이 오라버니뿐이었다. 오라버니의 가슴 깊은 곳에 박혀 있는 그 한을 사랑했다. 그 깊은 상처를 보듬어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늘 그를 외면하기만 했다. 그를 버려 대신에 아버지를 구하려 했다. –본문

 그러나 그들의 앞에는 전생에서의 죄를 안고서 현생에서 부녀의 연으로 태어난 심청이와 심봉사를 뛰어 넘을 수 없었으니, 심청이가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순간 그리고 모든 것을 잃고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궁궐의 잔치에서 마주한 두 번의 순간 모두 심청이는 마음은 윤상에게 향해 있었지만 늘 그녀가 있어야 했던 곳은 아버지인 심학규를 곁이었다.

 전생의 연이 이어진 현생의 삶에서 그 질긴 끈이 이어져 있는 동안에는 그 무엇도 이뤄질 수 없는 것일까. 죽음을 향해 가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고 다만 이 생에서의 참된 뜻을 알고자 하는 바람으로 청이가 심봉사의 곁을 지키고 있던 그 순간 이 모든 연정을 담아 홀로 아픔을 안고 윤상은 이 생과의 작별을 고하고 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전생의 끈을 놓은 청이과 심봉사는 홀연히 각자의 길을 가게 되는데 지혜로운 왕비로 세상을 보냈던 그녀는 왕의 승하와 함께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게 된다. 이 생애 다 못한 윤상과의 사랑을 내생에서는 이룰 수 있을지. 전생의 깊은 수렁이 덮어버린 현생의 시간들이 부디 내생에는 그들만의 오롯한 시간을 보내보길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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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뺑덕 / 백가흠저


 

 

독서 기간 : 2015.02.1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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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돌아왔다
티무르 베르메스 지음, 송경은 옮김, 김태권 부록만화 / 마시멜로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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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 8월의 어느 날. 베를린 공원 한복판에서 히틀러가 눈을 뜨게 된다. 히틀러. 그래, 우리가 알고 있는 끔찍한 홀로코스트를 자행했던 그 아돌프 히틀러가 세상에 다시 태어난 것이다.

 2011년도의 그는 독일제국의 총통도 아니고 그의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는 그저 한 사람으로 다시 눈뜨게 되었지만 그의 머리 속에는 그가 살았던 당시의 생각들은 변하지 않은 채 오롯이 간직하고 있었기에 60여년 만에 눈을 뜬 그는 현재의 독일이 안타깝게만 보인다. 독일 제국이었던 그들은 전쟁에 패하게 되면서 영토 역시 이전보다도 줄게 되었고 연방공화국의 이름으로 지내고 있는 지금 현재의 총리는 여자로서 너무도 유약하게만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민족주의의 힘으로 독일인들을 하나로 만들었던 그때를 기억하며 세상을 호령했던 당시로 돌아가기를 염원하며 히틀러는 21세기 안에서 전과 같은 동일한 목소리로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가고 있다.

 놀랄 일이 아니었다. 영국이 예나 지금이나 항로를 봉쇄했을 테고 이 문제에 대해 난 충분히 알고 있다. 내가 없는 동안 새로운 제국의 지도부에선 해결 방안을 찾으려고 애를 많이 썼겠지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용감하고 고통을 잘 차는 독일 국민은 오래전부터 그래왔듯 대용품으로 견뎌야 하지 않았겠는가. 순간 굉장히 달았던, 어제의 그 뮈슬바라가 생각났다. 훌륭한 독일 빵을 대신해 급할 때 얼치기로 만든 것이 틀림없겠지. 그리고 가엾은 가판대 주인은 자기 손님 앞에서 미안해한다. 대용품 말고는 내놓을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본문

 각이 잡혀 있는 군복을 입고 요새는 잘하지 않은 콧수염을 기른 한 남자가 자신이 히틀러라 주장하는 모습에 가판대의 주인은 그가 히틀러의 코스프레를 하는 희극인이라는 생각에 방송국 PD에게 그를 소개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방송에까지 출현하게 되는데 유태인과 사회 약자에 대해 혐호감을 드러내고 나치즘을 표방하는 그의 이야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비난의 대상이 되기 보다는 오히려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간다. 그렇게 점차, 그는 유투브는 물론 미디어에서도 계속 얼굴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사상들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있었고 그 모습은 사람들에게 그저 하나의 유쾌한 블랙코미디처럼 전해지며 점점 퍼져가고 있었다.

 작은 소녀 하나가 신물을 들고 누군가에게 떠밀려서 앞으로 나왔다. 나는 소녀와 같이 있는 장면이 찍히도록 유난히 천천히 사인을 해주었다. 청소년들이 예전처럼 총통을 믿고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고령의 몸을 이끌고 두 눈을 빛내며 내게 사인을 받으로 온 노부인도 있었다.
 
노부인은 내게 신물을 내밀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억나세요? 1935년 뉘른베르크에서 당신이 분열행진을 사열할 때 저는 맞은편 창가에 있었답니다! 당신이 내내 저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요. 우리는 당신이 너무나 자랑스러웠어요! 그런데 여기서 또 이렇게 만나다니! 당신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네요.” –본문

 이미 흘러버린 역사를 다시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역사를 보며 우리는 과거의 잘못이 다시금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역사를 남긴 그들에 대한 예의이자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일 것이다. 히틀러의 잔혹했던 당시의 기록들을 보면서 민족주의를 가장한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선동되었던 당시의 독일인들이 선택한 길이 얼마나 위험한 것들인지에 대해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등장한 히틀러를 보며 사람들은 경계하기 보다는 그의 모습에 오히려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치부하기에는 크뢰마이어의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그녀가 가지고 있던 끔찍한 기억과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히틀러의 궤변에 빠져 다시금 그를 인정하는 모습에서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는데, 히틀러의 행보 앞에 레드카펫을 깔며 반기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의 생각을 담은 책이 거액으로 출판 계약에 이르게 되고 그를 정치계로 모셔가려는 정당들의 발 빠른 움직임을 보면 씁쓸함이 몰려오게 된다.

 그저 웃어넘기는 한 편의 소설이라고 하기에 히틀러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조소를 담고 있는 듯 하지만 그 안에는 놓쳐서는 안될 이야기들이 담겨 있기에 순간순간 움찔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의 실상을 뒤덮기 위해 표적이 되었던 유태인들처럼, 그는 나머지는 역사가 결정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로 오늘도 다시 독일의 여기저기서 자신의 목소리를 울리고 있을 것이다. 정신 이상자라고 생각했던 그가 점차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그의 의견이 멀리 퍼져나가며 사람들이 동요되는 그 순간, 또 다시 그 때의 참혹했던 비극이 다시 시작될 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그러려던 것이 아니었어요, 라는 이야기가 다시 들리지 않도록, 매 순간 정신을 퍼뜩 차리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갖게 하는 서슬 퍼런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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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홀로코스트 / 찰스 패턴슨저 


 

 

독서 기간 : 2015.02.08~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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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비늘 - 개정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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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버림 받은 한 소년이 있다. 생후 2개월 만에 부잣집의 대문 앞에 놓여졌지만 영아원으로 들어가야만 했던 아이. 그 아이는 비상한 기억력을 가지고서 단 몇 초 만에 수십 장의 카드를 통째로 암기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 비범한 모습은 덧셈, 뺄셈을 제대로 못하는 모습과 또래보다도 작은 몸집 때문에 간절히 바라는 제 2의 부모와의 연은 이어주지 못한 채 애만 끓으며 11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게 된다.

체구가 작다는 사실과 계산에 약하다는 사실만 빼고 나면 모든 면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몇 배나 우수한 자질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체구야 나이가 들면 저절로 커지겠지요. 그리고 낱말 카드 백장을 이삼 초만 보여주어도 순서 한번 틀리지 않고 모조리 외울 수 있는 두뇌를 가졌다면 계산에 대한 맹점도 언젠가는 보완이 될 겁니다. 일곱 살 밖에 안된 아이에게 전지전능하기를 바란다면 그것이 오히려 비정상이겠지요.” –본문
 

 김동명이라는 이 아이의 삶을 보노라면 늘 서글픔이 사려있다. 적어도 그가 기억하는 순간 안에는 늘 안타까움이 서려있는데 왜소하지만 튼튼한 체력에도 불구하고 평이하지 않은 그의 외모는 양부모를 기다리고 있지만 늘 어긋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를 괴롭히는 김인탁의 존재는 언젠가는, 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던 동명의 보육원의 생활을 점점 버겁게 만들고 있다. 어린 나이에 이미 알게 되 버린 삶의 고단함. 이 덧없이 막막한 현실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고자 동명은 11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고아원을 탈출하게 되는데 신문 배달 등을 통해서 어떻게든 살아가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던 세상은 그의 바람처럼 녹록하지 않다. 그렇게 길거리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던 그에게 휠체어를 탄 한 남자가 나타나는데, 이 남자는 동영이 그토록 그리던 아버지가 되어 그에게 가족의 의미를 온 몸으로 알려주고 있다.

 그렇게 아버지와의 따스한 시간들이 오래도록 지속되리라 믿었지만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이후 술로 하루하루를 보낸 그에게 드리운 것은 죽음의 그림자이다. 친자식은 아니지만 늘 진심으로 동명을 대했던 그는 자신이 떠나버린 이후 홀로 남겨질 동명을 위해서 그 동안 자신이 갈고 닦아왔던 소매치기의 모든 기술을 전수해주게 되는데 그는 기술뿐만 아니라 삼감사수라는 그의 깊은 뜻을 함께 알려주게 된다. 그리하여 홀로 된 동명은 백화점을 전전하며 그날 번 돈의 7은 주위의 안타까운 이들을 위해 쓰고 나머지 3은 자신을 위해 쓰게 되는데 부의 재분배라는 아버지의 의미를 안고서 생활을 하던 동명의 뒤는 이미 경찰들이 추격해오고 있었다.

 이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 아버지가 말했던 칼새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나게 되는데 이 곳에서 그는 칼새가 아닌 격외선당이라는 암자에 살고 계신 한 노인을 마주하게 된다. 무언가 영험한 기운을 가득 안고 있는 할아버지와의 만남을 통해서 동명의 삶은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들게 되는데 할아버지를 통해서 동명은 점차 자신이 왜 이 세상에 태어났고 이 세상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것들을 하나씩 배우게 된다.

꿀벌은 자신이 애써 따 모은 꿀을 도둑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침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니라.”
할아버지는 꿀벌이야말로 남을 괴롭힌다는 사실을 얼마나 죄스러운 소행인가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단 한번만 침을 사용해도 목숨을 잃어버리도록 자신을 진화시킨 곤충이라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이 세상 전체가 나를 완성시키기 위한 스승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었다.만사물도 스승이며, 만인간도 스승이라는 것이었다. –본문
 

인간이 왜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에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답하는 동명을 보면서,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해묵은 그의 과거에서부터 최근의 잘잘못들을 털어놓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가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삶을 바라보게 되리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전에는 모든 것을 가져야만 했고 그렇게 살아야만 행복하다고 느꼈던 그의 삶이 가벼이 털어내고 나서 오히려 가득 차오르는 것을 보며 나 역시도 동명과 같은 내일을 보내기를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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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초상 / 이문열저 


 

독서 기간 : 2015.02.1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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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삼바
델핀 쿨랭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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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라는 이름을 들었다면 신명나게 춤을 춰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름만으로도 유쾌함을 전해주는 그는 자신의 이 이름으로 수 많은 이들을 웃게 해주기는커녕 그의 이름을 숨기고 타인의 이름으로 살아야만 했다. 20여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그의 삼촌인 라무나 소우로, 한 때는 그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모디브 디알로라는 이름으로, 마지막으로 만난 그는 조나스란 이름으로 살고 있었는데 그가 자신의 이름인 삼바를 숨기고 타인의 이름으로 살아야만 했던 이유는 그는 초대받지 못한 사람이자, 프랑스에 거주할 수 있는 증서인 체류증을 받지 못한 이주자. 그러니까 불법 체류자인 삼바는 그의 이름으로 프랑스에서 살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이다.

 이미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는 프랑스에 살고 있는 동안에 세금도 내고 자신의 이름으로   나름의 소일거리를 하며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언젠가는 고국으로 금의환향할 그날을 위해 서다. 자신만을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와 누이들을 위해서. 물론 그가 프랑스에 있는 동안 아프리카인이 아닌 프랑스인으로 보이기 위한 위장과 함께 누군가의 얼굴을 몇 초 이상 빤히 바라볼 수 없는 등 불편이 있기는 했지만 삼바는 그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불편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어머니의 부름으로 잠시 프랑스를 떠날 결심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난 프랑스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었어. 자유, 혁명, 문화, 인권의 나라요. 난 나도 모르게 그것에 애착을 갖고 있었어요. 프랑스가 그 이미지에 못 미치면, 난 부끄러워요. (중략)

 이건 전쟁이야. 넌 숨어야 해. 저항해야 해. 상반된 생각을 가진 두 개의 진영이 있어. 인권의 나라 프랑스와 곰팡이가 슨 눅눅한 프랑스. 이건 전쟁이야. 우린 불리한 진영에 속해 있어. –본문

똑같은 프랑스 하늘 아래, 어제와 똑같은 공간 안에 삼바는 자리하고 있지만 그만은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될 존재로 전락해 버린 지금, 모든 것들이 그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 크라드에 끌려들어간 순간 그는 자신이 이 나라에서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었으며 다행히 이 모든 절차 상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지한 당국이 그 스스로 이 나라를 떠날 것을 종용하고 있지만 그는 그의 집 안에 자라고 있던 자그마한 버섯처럼, 그늘에서나마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종종거리고 있다.   

 위선. 그는 함께 쓰레기를 분류하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공식적으로는 채용이 안 되는 그들이 비공식적으로 프랑스 경제 전체가 돌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쓰기 편하고,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했다. 그들은 지하 프랑스에서 거리를 청소하고, 쓰레기를 분류하고,노인네의 똥을 닦아주고, 밤에 사무실 바닥을 청소했다. 낮이 되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갈 수 있게, 마치 때, 노쇠, 쓰레기 같은 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마치 그들 자체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본문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가 평온한 집 아래서 젊은 아가씨와 함께 남은 여생을 보내보려는 소박한 꿈을 말이다. 힘든 나날이기는 했지만 그렇기에 빛 조차 들어오지 않던 지하에서 라무나와 함께 있었던 시간들도 이겨내고 있었고 타인의 삶으로 살아야 하는 것조차 감내하고 있었으며 그라시외즈를 만나면서 이 척박한 삶 속에서 설렘 가득한 시간들을 보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넘실거렸다. 그러나 그에게 전해지는 현실은 이 땅 위에서 그는 살아서는 안될 존재였으며 언제나 다른 누군가로 쉬이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한때는 그라시외즈를 가졌던 조나스를 동경하기도 했지만 어찌되었건 그에게 있어서는 이 모든 것들이 삼바에게는 가질 수 없는, 그러니까 그는 아등바등 하루를 열심히 살아도 가질 수 없는 잡히지 않는 희망이었던 것이다.

 이 나라에서 그의 삶은 현실로 볼 수 없었다. 그는 오로지 부정적으로만 정의 되었다. 그에게는 신분증이 <없다>. 그는 프랑스인이 <아니다>. 그는 백인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이 되고 싶어하는 것의 부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울이기도 했다. 그를 보면 프랑스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알 수 있었다. –본문

 그 누가 그에게 웰컴, 이라는 단어를 전해줬을까. 이제는 삼바라는 이름으로도 살아갈 수 없는 그의 앞날에, 그럼에도 그는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주 노동자들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는 있으면서도 그들이 사회의 악을 유발하듯이 바라보는 이들의 이야기를 보며 우리 역시도 사회 곳곳에 퍼져있는 이방인들을 철저하게 배척하고서 그들과 우리는 다르다는 잣대를 명확하게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한때는 이름 없이 이 나라를 떠도는 그들을 그저 그들의 나라로 보내는 것이 유일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나에게 삼바는 과연 그것이 최선의 것들인지를 묻고 있다. 프랑스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변해가고 있고, 앞으로 우리는 변해 가야 할지. 과연 우리는 삼바에게만 돌을 던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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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 / 카람진, 푸슈킨저


 

 

독서 기간 : 2015.02.08~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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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의 마지막 춤
파비오 스타시 지음, 임희연 옮김 / 가치창조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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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의 이름은 종종 들어왔지만 그의 모습을 스크린을 통해서 보게 된 것은 영상 예술의 이해라는 교양 과목을 들으면서였다. 흑백 영화이자 무성영화를 처음 마주한 나로서는 그 영화 자체를 본다는 것이 생경하면서도 그 안의 주인공이 찰리 채플린이라는 사실이 마냥 신기하게 바라보았는데, 무표정한 듯 하면서도 무심한 그가 보여주는 몸짓들에 피식 웃을 수 밖에 없는, 그의 노련한 몸짓은 소리가 없어도 사람들을 끌어 당기기에 충분했다.

펑퍼짐한 바지에 중절모를 쓰고, 큰 구두를 신고 움직이는 그를 보노라면 마치 무대 위의 마리오네트 같은 느낌인데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줬던 그의 삶 역시도 언제나 행복한 웃음으로 가득 찼을 것만 같은데, 실상 그의 삶을 들여다 보고 나면 그야말로 비극이 따로 없는 삶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란 그의 이야기는 그가 살아온 시간들을 압축하여 말해주고 있는 것인데 홀로 세상에 남겨진 어린 아들에게 전해주는 그의 목소리는 더 없이 서글프면서도 초연하게 전해지고 있다.

191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한 점쟁이 말에 따르면, 난 평생 운이 넘치게 살다가, 6년 전 성탄절에 폐렴으로 이미 죽을 운명이었다.
 
년 전부터 성탄절마다 사신이 나를 찾아왔어. 내 앞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지. 그럼 난 방랑자 의상을 입고, 예전에 연기했던 극 중 한 장면을 선보이지. 사신이 웃으면, 나를 이듬해까지 살게 해줘. 그게 우리의 계약이지. 사신을 계속해서 즐겁게 하는 한, 난 죽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내 실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최근에 난 인정해야 했지. 사신이 나랑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아니었다면, 그 노파를 미소조차 짓게 하지 못했을 거야. 같은 연령대만이 공감할 수 있는, 세월이라는 희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거지. -본문

 세상을 떠나기 6년 전부터 어린 아들에게 전해줄 이야기를 써내려 가고 있는 찰리 채플린의 이야기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그가 어떻게 현재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지, 그 시간 속에서 그가 느끼고 배웠던 것들을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들에게 그의 삶을 오롯이 전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써 내려간 이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그의 아들에게는 잘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난해함으로만 전달되면서 머리를 갸웃거리게 한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실제의 경험인지 아니면 꿈인지 모를 이야기가 함께 섞여 있기에 그가 하는 이야기들이 두리뭉실한 느낌으로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되었건 그가 그의 어머니를 대신해서 무대 위에 오른 순간부터 그의 삶은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그의 삶으로 그를 안내하고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가 시네마토그래프에 알게 되면서 그가 어떻게 스크린 속의 삶을 살게 되었는지, 그 스크린 속에서 무표정한 듯 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수 많은 몸짓들을 그가 누구에게 배워오게 되었는지 등 자세한 이야기가 이 안에 담겨져 있다.

내 이야기는 음정이 어긋난 낡은 자동 피아노처럼 네게는 무의미하고 지루하게 연주될 거야. 이런 방법으로 계속해서 끊임없이 말한다면, 오늘 저녁, 사신은 나를 데리고 가겠지. 하지만 추억이라는 것은 언제나 열 일을 제쳐놓고서라도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내 삶의 일 순위였지. –본문

 무대 위에서, 스크린 안에서 늘 완벽하게 보였던 그조차도 사랑에 있어서는 애송이에 불과했기에 그가 헤티에게 했던 청혼의 모습은 평범함을 넘어 소박함마저 느껴지게 된다. 그러나 이 프로포즈의 시작과 아이의 탄생. 그 평이한 삶의 연속을 바랐던 그에게 전해지는 것은 다시금 삐걱거리는 일들의 연속이었고 계속된 유랑은 정착을 떠나 다시금 몰락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뉴욕에 들어섰을 때, 그는 자신의 무대만큼은 확실하게 채워지기를 바랐으며 때론 엉뚱하기도 했던 그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 놓으며 자기 스스로를 세우기 위한 준비를 해 나가고 있었다. 책의 초반에 보여지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도 왼손잡이인 그에게 맞게 개조한 것이었으니, 세상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게 변화시키고 있었다.

 승승장구하던 그의 앞날에도 그림자가 드리우게 되었으니 화재로 인해 스튜디오는 무너져 내렸고 차량마저 도난 당한 그날 그는 두 번째 아내로부터 이혼이라는 파경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이러한 일들은 수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고 그로 하여금 그는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야 했음에도 굳게 입을 다물게 된다. 자신을 믿지 않는 세상에게 그의 읊조림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라는 것을 그는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자들이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해 달라고 요청할 때마다 나는 매번 고통을 느꼈어. 왜냐하면 날 바라보는 기자들의 얼굴에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측은하고 동정 어린 미소를 보았거든. 그럴 때마다 나는 분노로 피가 끓어올랐어. 내 고통과 시련 속에는 매혹적이거나 낭만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이런 종류의 질문 앞에서 늘 자신감이 없을 수 밖에. 그들이 숨기는 것을 내가 알게 될까 두려웠어. –본문

 시작과 끝이 없는 영화가 없는 것처럼 그의 이야기도 결국은 끝을 향해 가게 된다. 왜 영화가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물음의 답은 얻지 못했지만 그는 사신과의 내기 속에서 얻어낸 6년이란 시간 속에 아들에게 들려줄 그의 이야기를 원 없이 전해줬을까. 그의 아들에게는 아련하고 그를 사랑했던 이들에게는 다시 없을 추억과 같은 이 책이 나에게는 여전히 난해하게 남아 있다는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조금이나마 그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이 고된 독서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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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 나의 자서전 / 찰리 채플린저


 

 

독서 기간 : 2015.02.06~02.07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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