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라는 이름을 들었다면 신명나게 춤을 춰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름만으로도 유쾌함을 전해주는 그는 자신의 이 이름으로 수 많은 이들을 웃게 해주기는커녕 그의 이름을 숨기고 타인의 이름으로 살아야만 했다. 20여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그의 삼촌인 라무나 소우로, 한 때는 그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모디브 디알로라는 이름으로, 마지막으로 만난 그는 조나스란 이름으로 살고 있었는데 그가 자신의 이름인 ‘삼바’를 숨기고 타인의 이름으로 살아야만 했던 이유는 그는 초대받지 못한 사람이자, 프랑스에 거주할 수 있는 증서인 체류증을 받지 못한 이주자. 그러니까 불법 체류자인 삼바는 그의 이름으로 프랑스에서 살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이다.
이미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는 프랑스에 살고 있는 동안에 세금도 내고 자신의 이름으로 나름의 소일거리를 하며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언젠가는 고국으로 금의환향할 그날을 위해 서다. 자신만을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와 누이들을 위해서. 물론 그가 프랑스에 있는 동안 아프리카인이 아닌 프랑스인으로 보이기 위한 위장과 함께 누군가의 얼굴을 몇 초 이상 빤히 바라볼 수 없는 등 불편이 있기는 했지만 삼바는 그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불편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어머니의 부름으로 잠시 프랑스를 떠날 결심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난 프랑스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었어. 자유, 혁명, 문화, 인권의 나라요. 난 나도 모르게 그것에 애착을 갖고 있었어요. 프랑스가 그 이미지에 못 미치면, 난 부끄러워요. (중략)
이건 전쟁이야. 넌 숨어야 해. 저항해야 해. 상반된 생각을 가진 두 개의 진영이 있어. 인권의 나라 프랑스와 곰팡이가 슨 눅눅한 프랑스. 이건 전쟁이야. 우린 불리한 진영에 속해 있어. –본문
똑같은 프랑스 하늘 아래, 어제와 똑같은 공간 안에 삼바는 자리하고 있지만 그만은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될 존재로 전락해 버린 지금, 모든 것들이 그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 크라드에 끌려들어간 순간 그는 자신이 이 나라에서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었으며 다행히 이 모든 절차 상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지한 당국이 그 스스로 이 나라를 떠날 것을 종용하고 있지만 그는 그의 집 안에 자라고 있던 자그마한 버섯처럼, 그늘에서나마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종종거리고 있다.
위선. 그는 함께 쓰레기를 분류하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공식적으로는 채용이 안 되는 그들이 비공식적으로 프랑스 경제 전체가 돌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쓰기 편하고,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했다. 그들은 지하 프랑스에서 거리를 청소하고, 쓰레기를 분류하고,노인네의 똥을 닦아주고, 밤에 사무실 바닥을 청소했다. 낮이 되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갈 수 있게, 마치 때, 노쇠, 쓰레기 같은 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마치 그들 자체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본문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가 평온한 집 아래서 젊은 아가씨와 함께 남은 여생을 보내보려는 소박한 꿈을 말이다. 힘든 나날이기는 했지만 그렇기에 빛 조차 들어오지 않던 지하에서 라무나와 함께 있었던 시간들도 이겨내고 있었고 타인의 삶으로 살아야 하는 것조차 감내하고 있었으며 그라시외즈를 만나면서 이 척박한 삶 속에서 설렘 가득한 시간들을 보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넘실거렸다. 그러나 그에게 전해지는 현실은 이 땅 위에서 그는 살아서는 안될 존재였으며 언제나 다른 누군가로 쉬이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한때는 그라시외즈를 가졌던 조나스를 동경하기도 했지만 어찌되었건 그에게 있어서는 이 모든 것들이 삼바에게는 가질 수 없는, 그러니까 그는 아등바등 하루를 열심히 살아도 가질 수 없는 잡히지 않는 희망이었던 것이다.
이 나라에서 그의 삶은 현실로 볼 수 없었다. 그는 오로지 부정적으로만 정의 되었다. 그에게는 신분증이 <없다>. 그는 프랑스인이 <아니다>. 그는 백인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이 되고 싶어하는 것의 부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울이기도 했다. 그를 보면 프랑스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알 수 있었다. –본문
그 누가 그에게 웰컴, 이라는 단어를 전해줬을까. 이제는 삼바라는 이름으로도 살아갈 수 없는 그의 앞날에, 그럼에도 그는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주 노동자들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는 있으면서도 그들이 사회의 악을 유발하듯이 바라보는 이들의 이야기를 보며 우리 역시도 사회 곳곳에 퍼져있는 이방인들을 철저하게 배척하고서 그들과 우리는 다르다는 잣대를 명확하게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한때는 이름 없이 이 나라를 떠도는 그들을 그저 그들의 나라로 보내는 것이 유일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나에게 삼바는 과연 그것이 최선의 것들인지를 묻고 있다. 프랑스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변해가고 있고, 앞으로 우리는 변해 가야 할지. 과연 우리는 삼바에게만 돌을 던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