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눈알사냥꾼>을 읽고서는 그 동안 안고 있던 스릴러 소설에 대한 편견을 모조리 벗어 던졌기에 그의 새로운 책인 <차단>을 너무도 고대하고 있었다. 과연 이 안의 이야기는 무엇이 담겨 있을지, 또 다시 그의 이야기에 빠져 놓치고 있던 단서가 마지막에 가서야 아! 하는 감탄과 함께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한 줄의 문장도 허투로 넘기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집중해서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궁금증이지만 과연 이 사회는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탄식이 점점 커져만 간다.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법이기에 그 안에는 허점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은 했다. 그러나 이 안의 이야기를 바라보면 볼수록, 가해자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철저한 보호를 받고 있는 반면 피해자는 법의 테두리 안에 있기는커녕 오히려 더 냉혹한 현실 앞에서, 아니 법이라는 이름의 무력함을 고스란히 마주하고서는 감내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스스로 삭혀야만 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과연 이 모든 것이 괜찮은 것인가, 라는 깊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든 이야기가 한 권의 소설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 치부하기에 내가 땅을 딛고 사는 이 사회가 드러내는 추악한 현실은 모른 척 이 모든 것들을 넘기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헤르츠펠트가 주의를 끌 만한 발견에 대해 그의 동료들에게 막 알려주려던 찰나, 숫자 아래로 여섯 개의 작은 알파벳 글자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은 현미경을 통해 공포 반응을 관할하는 뇌의 부분인 그의 편도체 안으로 곧바로 뛰어 들어왔다. 맥박이 뛰었고 이마에 땀이 흘렀다.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그와 동시에 헤르츠펠트에게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 들었다.
‘제발 우연이기를.’
토막 난 시체 머리에서 꺼낸 쪽지에 쓰인 알파벳들을 조합하면 하나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한나(Hannah).’
그리고 그것은 그의 열일곱 살 된 딸의 이름이었다. -본문
연방수사국의 법의학자인 파울 헤르츠펠트는 무거운 몸을 안고서 검시소로 들어서게 된다. 잉골프 폰 압펜과 함께 부검을 집도하는 그는 어제의 일로 컨디션이 정상 궤도에 있지 않은 그에게 드리운 시체는 무참하게 살해된 한 여성으로 그럼에도 그는 덤덤히 오늘 그가 해야 할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가 그 안에서 캡슐을 발견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범죄의 단서라 생각했던 그가 캡슐을 열어보는 순간, 이혼 후 오랜 동안 떨어져 살았던 딸이 심상치 않은 일에 연루되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번호를 누른 그는 자신을 향해 구해달라 애원하는 딸의 목소리를 듣고서는 그는 모든 이성은 놓아 둔 채 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그는 길을 나서게 된다.
“그렇게 서두르지 말아야.”
앤더가 그녀를 다시 불러들였고 무거운 열쇠 꾸러미를 뽑아 들었다. 거기에는 병원 전체 열쇠뿐만 아니라 만능키 한 개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문이 열리는 데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이렇게 막무가내로…..”
그녀가 ‘침입’이라는 단어를 말하기도 전에, 엔더가 현관 안으로 사라졌다. 린다에게 그를 따라 들어가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 사항이 없었다. -본문
그리고 다른 한 편에서는 남자친구였던 대니 하크의 지독한 집착과 스토커에 벗어나기 위해 헬고란트란 섬에 들어 온 린다가 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말과 함께 그녀의 곁을 맴도는 것은 물론 점점 그녀를 옥죄어 오고 있다. 두렵다 못해 섬뜩한 그의 행태들을 신고한다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는 이 상황 속에서 그녀는 스스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오빠의 조언대로 섬에 들어오게 되지만 샤워를 마친 후 그녀가 마주해야 하는 상황은 여전히 그녀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아득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뛰쳐나간 그녀는 바닷가 근처에서 한 구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고 그 가방 안에 있던 휴대 전화 속 전화 목록을 따라 통화를 시도한 끝에 그녀는 헤르츠펠트와 함께 이 사건 속으로 함께 들어오게 된다.
딸을 구해야 하는 헤르츠펠트의 간절함이 린다를 이 사건에 발을 들이게 하게 된다. 그리하여 린다가 발견 한 시체 속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힌트는 헤르츠펠트로 하여금 자신의 과거로 돌아보게 하는 것은 물론 그 동안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의롭게 살아왔던 그로 하여금 과연 법은 무엇이며 정의는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계속 던지게 한다.
“하지만 채팅방 과거연결기록 중 마르티넥이 지난 며칠 동안 지속적으로 여러 번에 걸쳐 연결을 시도했던 곳이 하나 더 있는 걸 볼 수 있었어요.”
거기에 대해 헤르츠펠트가 추가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잉골프가 이미 터치스크린 상의 링크 하나를 두드렸으며, 회전하는 모래시계가 모니터 중간에 나타났다.
연결이 성공적으로 구축되었다고 알려주는 명쾌한 신호음이 들리기까지 단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최초의 눈 내리는 듯한 장면들이 화면에 보이기까지 10초였다.
그리고 헤르츠펠트가 벙커처럼 생긴 지하방을 보고 숨이 막힐 듯한 비명을 지르기까지도. –본문
세금을 탈세한 이들에게는 그에 준하는 형벌을 내리지만 성범죄 범죄자들, 특히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끔찍한 죄를 짓는 이들에게는 그 범죄자들이 안고 있던 트라우마를 기반으로 형이 감량되고 때론 형벌조차 면제되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과연 이 사회가 말하는 법과 정의는 무엇인지에 대해 되물어 보고 싶어진다. 빙빙 돌아가는 린다와 헤르츠펠트의 이야기는 붸붸 꼬여버린 이 사회의 단편을 보여주기에도 부족하다는 듯이 빠르게 이야기는 전개되고 그 이야기들을 넘겨 볼수록 먹먹한 분노만이 치밀어 오르게 된다.
실제 판결문이 인용된 기사들을 보며 과연 이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끓어오른다. 죄를 지은 이들에게 그에 맞는 철저한 형벌이 내려지기를, 그리고 더 이상 고통 받는 이들이 이 땅 위에 나타나지 않길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