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나로 살지 않은 상처
앤 비티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테라피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아르's Review

 

          

 단편을 읽다 보면 드는 생각. 그래서 그 뒤에 이야기는 어떻게 됐을까? 라는 풀리지 않는 호기심은, 더 이상 두드려도 아무도 나올 이 없는 덩그러니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집 한 채를 마주한 느낌이다. 아무리 뒤져 보아도 더 이상 나타날 것이 없는 그 진공의 상태에 남겨진 듯한 기분이기에 단편은 늘 아쉬움을 함께 전해주는 듯 하다.

 이번 <온전한 나로 살지 않는 상처> 역시 단편을 묶어 놓은 책인데, 각 이야기마다 딱히 명확한 줄거리가 있다거나 그 안에 강렬한 사건이 있거나 하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마지막이 정갈하게 정리된 듯한 느낌은 아니면서도 묘하게 이 책은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힘이 있다. 대체 뭐가 좋은 것일까, 라고 고심해 생각한다 하더라도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냥 좋다, 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이 이야기는 정형화되지 않은 그 만의 매력에 다음 이야기를 또 읽게 한다.

<온전한 나로 살지 않는 상처>의 주인공 엘런은 고등학교 음악 교사로 남편과는 별거 상태에서 이혼을 위한 준비를 하나씩 해 나가고 있다. 당시 엘런의 여동생의 집에서 하숙하고 있던 대학생 샘과 매제와의 관계가 불편해짐에 따라 샘은 엘런과 함께 살게 되는데 30대의 엘런과 20대의 샘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무언가 색다른 광경 속에서 생경함과 신선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된다.

엘런은 샘의 방을 청소했다. 샘이 로스쿨에 입학하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기꺼이 청소를 맡았다. 샘은 정리할 시간이 없으니까. 또 다시 남자 뒤치다꺼리를 할 마음은 없었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샘은 청소를 해 주면 매우 고마워했다. 처음 엘런이 청소를 해 주었을 때 샘은 다음 날 꽃을 선물하면서 그러실 필요 없다고, 거듭 고맙다고 말했다. 바로 그 점이 달랐다. 엘런은 해 줄 필요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샘이 고맙다고 말하면 엘런은 청소를 더 해주고 싶었다. –본문

 이들의 이야기가 질척거리는 사랑이야기로 변모되었다면 아마도 읽는 내내 불편했을 것이다. 그들이 집이라는 공간을 공유하고 있고 서로에게 위로를 전하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플라토닉 사랑을 맺고 있다고 말하는 엘런의 말처럼, 엉뚱한 샘과 그런 샘으로부터 자신을 위안해가는 엘런은 조금씩 정상이라는 궤도 속에 자신들을 올려 놓을 수 있도록 서로를 다독여주고 있다. 사랑, 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미적지근하고 그렇다고 아무 관계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적당히 따스한 이들의 이야기는 시도해 보지 않고 어떻게 알겠어요?” 라는 대담한 메시지를 전하는 샘의 방랑으로 인해 끊어진 듯 하지만 여전히 서로의 마음 속에는 살고 있을 것만 같다.

 

<먼 음악소리>의 잭과 샤론은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는 연인이다. 아직 잭이 샤론에게 함께 살자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잭이 어머님의 유품을 그에게 선물하는 것은 함께 살자는 말보다도 더 큰 의미를 전해주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렇게 믿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도 거스 그릴러를 통해 잭에게 이미 아내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삐걱거리게 되는데 분노로 점철되어야 할 이 상황을 생각보다 차분하게 대처하는 샤론과 잭의 모습을 보면서 사랑이란 이름의 또 다른 면을 마주하게 된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왜 이혼하지 않는 거야?”
부인을 사랑하지 않으면 전부 다 이혼해야 된다고 생각해? 나만 논리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게 아니야. 당신도 이런 하수구 속에 살면서 악몽이나 꾸는데도 여기서 벗어나려 들질 않잖아.”
그건 달라.”
잭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지?
당신을 만나기 전까진 이혼 생각 안 했어. 미라는 엘파소에 있어. 나를 떠났다고. 그걸로 끝인 거지.”
그럼 이혼할 거야?”
그럼 나랑 결혼할 거야?” –본문

 뉴욕을 벗어나기 싫어하던 샤론과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던 잭은 서로가 더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기를 원치 않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알았던 것일까. 이제는 가끔 연락만 하고 지내는 그들의 추억 속에 남겨진 서로의 기억들이 다음 사람에게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사랑은 사라졌을 지 언정 그들의 추억은 또 다른 곳에서 움트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난다.

 나는 아버지가 죽어 가고 있는 줄 몰랐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건 알았지만 죽음이 뭔지는 몰랐다. 단순한 일을 쉽게 이해한다. 낯선 이가 건네주는 편지를 읽고 고개를 끄덕여 주는 일이나 힘이 없는 사람을 친절하게 도와주는 일은 쉽다. 나는 아버지가 허리를 구부리던 모습을 기억한다. 통증으로 구부정해진 등. 추운 계절이 오기 전에 돌아가셨는데도, 아버지를 떠올리면 항상 겨울눈처럼 창백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본문

 <당신은 나를 모른다>의 이야기는 서로 함께하고는 있지만 미적지근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린과 마틴의 모습과 바니스의 고백을 보면서 순간순간을 나누고 함께한다고 해서 한 인간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가까이 여겼던 이들, 예를 들어 부모님, 남편, 애인 등과 같이 나와 바로 곁에 있는 이들일수록 오히려 그들에 대한 잃어버린 퍼즐 조각이 많다는 것으로 늘 곁에 있기에 안다고 여기는 것과 실제는 다르다는 것은 사뭇 서글프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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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빌라 / 전경린저


 

 

독서 기간 : 2015.03.22~03.23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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