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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가볼까요.

  먼저 계단을 올라야해요. 햇살이 정면에서 비친다고 너무 눈을 찌푸리진 마세요. 사진보다 더 살가운 풍경들이 기다리고 있을테니까요.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냐구요?
 글쎄요. 자전거만큼의 속도도 좋지만 산은 발로 디디는 맛이 그만이거든요.

 

  높게 솟은 나무도 보이고
  깊은 골짜기도 볼 수 있어요

 운이 좋으면 다람쥐, 청솔모랑 인사를 할 수 있어요. 다람쥐가 작은 다리로 나무 사이를 옮겨다니는 것보다 더 괜찮은 일은 다람쥐를 보는 다른 누군가의 시선과 마주쳐 인사를 나눌 수 있는거죠. 산에 있으면 사람들이 착해져요. 산에 있을때면 사람들은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아요. 가만히 바람 소리를 듣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죠.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따사로운 느낌에 그냥 몸을 맡기는거에요. 단순한건 더더욱 괜찮은 관점이 되죠.

 잠시 좀 쉬어볼래요?
 봄에, 동백꽃이 한창일 때 제가 나무 등걸을 쓰다듬으며 쉬었던 곳이에요. 동백꽃은 활짝 핀 순간만큼이나 지고나서도 쭉 예쁜 꽃이 아닐까 싶어요. 꽃이 진 자리가 참 화사하죠?



헥헥,  거즘 정상인 월명 공원에 도착했어요. 저 멀리 바다 보이세요?

 
또, 잠시 쉬어야겠어요


 벚꽃이 지고 있는 저곳에서 벚꽃비를 맞으면서 책을 읽거나 좋은 사람과 두런두런 얘기를 한다면 참 좋겠죠?

 더군다나


모양 안 나는 산행 후 묵직한 음주만큼 맛있는게 또 있을까요

 산에서 내려오다 보이는 휴게실의 파전과 뻥튀기는 정말 끝내줘요. 맥주에 먹는 치토스가 새우깡보다 2.5배 맛있다면 믿어지시겠어요? 알딸딸한채로 내려오다 보면 이제, 월명동입니다.

그저 슈퍼일 뿐인데  전 이 슈퍼가 참 좋아요. 낡고, 낡아서 장사는 될까싶은데 괜히 가서 군것질하고 싶게 만드는 곳.

 그리고

 
예인촌 뒷뜰
  
 산에서 먹은 파전과 취기가 좀 부족하다 싶으면 이곳에서 도토리묵이나 칼국수로 요기를 해도 좋아요. 직접 담근 술도 술이지만 대추살이 씹히는 대추차는 정말 일품이죠.


  저는 도시마다 먹거리나 교과서에 나온 몇가지 정보로 기억되는 것보다는 각각의 색이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봐요. 그러면 사람들이 여행을 떠날 때마다 쉬면서 다채로운 색의 더미에서 춤을 추고 싶을테니까요.

 그리고 군산은 단순히 내가 사랑하는 곳이야라고 말하기 부족한 곳이에요. 군산은 바다이고, 산이고, 논이고, 내가 어릴적 모습이고, 내가 앞으로 만들어나갈 곳이니까요.

 날마다 월명산을 오르내리다보니 가까운 곳에 산이 있다는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나무 껍질을 손으로 어루만질때면 나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눈에 잡힐 듯도 하고, 하늘과 나무들이 주는 편안함이 단순한 휴식일 뿐인지, 등등 여러 생각이 들곤해요. 물론 대부분의 걸음에선 땀과 숨소리만 남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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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7-09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마다 월명산을 오르내린다구요? 우와
근데 나... 맥주에 치토스... 맛있겠다... 쓰읍 질질 ㅜㅜ

Arch 2008-07-09 08:56   좋아요 0 | URL
언니, 침 흘리는거에요? 습습. 월명산이 산이긴 한데 그렇게 높은 산도 아니고, 파워(?)워킹이면 금세 올라갔다 내려와요. 괜히 튼튼 종아리겠습니까. 언제, 치토스에 맥주?^^*

무스탕 2008-07-09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사진을 보고 제가 산에 와 있는줄 알았어요. 참 좋네요.. :)
저희 집 앞에도 야트막한 야산이 있는데 가본지가 언젠지 모르겠어요..;;;

Arch 2008-07-09 09:36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어딘가로 간다 이런게 있고, 그 중간에 산이 있다면 잘 오르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가끔 산 사진 올릴게요.^^

순오기 2008-07-10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어~ 월명산, 군산 채만식 문학관 갔다가 기념공원(?)이 있어서 올라갔던 곳 같은데...맞나요? 기념비를 들어다보는 회원들을 찍은 사진도 있어요. 나중에 찾아서 올려봐야지~~

Arch 2008-07-10 09:02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순오기님이 더 상세하게 올릴까 두근두근 ㅋ
 

#1

 옥찌들과 쌀알 뻥튀기를 먹었다. 다들 먹어봐서 알겠지만 이거 먹는 것보다 바닥에 떨어지는게 더 많다. 그래서 지희랑 지민이에게 시범을 보여줬다.

-자 봐봐. 이렇게 세 손가락으로 쌀알을 집어서 입에 숑. 봐, 깔끔하지.

 지희는 그러네 하며 제법 잘 따라해서 바닥으로 낙하하는 뻥튀기 수를 줄이고 있는데 지민인 요 녀석은 고집이 있어서 쉽게 따라하질 않았다. 게다가 손에 침을 잔뜩 묻혀서 뻥튀기를 집어드니 아이 침이라지만 껄쩍지근하기도 하고, 그래서 좀 더 얘기를 (아이에겐 잔소리)했다.

-민아, 이거. 봐봐. 이렇게 하면 안 흘리고 잘 먹는다니까. 한번 해봐.

 지민이 나를 찬찬히 쳐다보더니 한번 따라하는 시늉을 하다가 곧 자기 방식으로 먹어버렸다.

 그래서 다시 말하려고 입을 떼는데 지민이가 한마디 했다.

-이모, (한숨을 푹 쉬며) 내가 알아서 한다고.

 어, 그래. 지민이가 알아서 하지. 그런데 이모 좀 무안한걸.

 

#2

 한낮이긴 했지만, 햇볕이 너무 강하지 않은 날.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갔다. 7시면 기상하는 옥찌들 덕분에 아침을 먹고, 뭘하고 뭘하고 했는데도 여전히 시간은 별로 안 지나 9시. 다른 아이들은 아직 기상 전이라 놀이터는 조용했다.

 한참 철봉에 매달리고 그네를 타며 뛰어놀던 지희가 주말이면 잠 좀 자둬야지란 생각에 벤치에서 헤롱대는 이모를 보고 말했다.

-이모, 이리와. 같이 놀게.

-응, 이모는 이렇게 벤치에 앉아서 옥찌들 노는거 보는게 좋은데.

-그래? 그런데 집에서도 맨날 앉아 있잖아. 놀이터에 왔으면 놀고 그래야지.

  아, 그러게. 놀이터에서 뭉개고나 있다고 지희에게 혼나기나 하고, 요즘 이모꼴이 말이 아니올시다이다.  

  놀이터엔 잠의 요정이 숨어있었던걸까. 정자 나무 그늘이 너무 시원했던걸까. 나중에 지희에게 요정을 그려달라고 해야겠다. 나무 그늘에서 잠가루를 뿌리는 요정. 잠가루 맞고 헤벌죽 웃는 내 모습까지. 딱딱한 벤치에서 비스듬히 자는 실력은 아마 타고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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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7-08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귀엽다, 나 막 웃었어요 (여기 회산데 ㅋㅋ)

hnine 2008-07-08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민이 말이예요,
웬지 저랑 '대화'가 될 것 같아요. 진지한 대화요.

Arch 2008-07-08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귀엽다 웬디양님^^ 저는 조그맣게 웃었어요. 여긴 집인데^^*/hnine님 진지한 대화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말을 할는건 분명하다구요.
 

 하던 일도 있고 집안 일도 밀려선 맘이 조급한 날, 친구까지 오랜만에 찾아온터라 정신이 없었다. 평소에는 지희랑 숙제하고, 같이 두런두런 얘기 나누다 책 읽고 잤는데 그날은 친구 신경쓰랴 애기들 돌보랴 가끔 일어나는 몸이 두개라도 소용없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

 정말 해선 안 되는 일인데 몰아내듯 아이들을 방으로 들여보내 자라며 엄포를 놨다. 아이들이 자는 틈을 타서 친구 마중을 나가려고 한거였는데.

 아파트 입구에서 친구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보내려고 하는데 먼 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지희랑 지민이가 잠옷 차림으로 엄마, 이모를 부르며 계단을 내려오는게 보였다. 악덕 이모가 된게 친구한테 창피하기도 하고, 지금 내가 무슨짓을 하는건지 참담하기도 해서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하고선 아이들을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 미안함에서 당황스러움으로 조금 화가 나기도 했지만, 내 불찰을 생각하니 답답하고 미안해서 한참동안 자는 아이들 곁을 지키다 방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그날은 그리고 그날의 기억들은 조금씩 옅어질거라 생각했는데,

 얼마 전부터 지희가 하루에도 몇번씩 화장실을 가고 있다.

 아마 그날 이후부터 인 것 같다.

 항상 떠들고 장난쳐서 아이들에게 드러나는 변화를 못느꼈지만, 아마 오래 전부터 아이들은 맘이 불안하다는걸 나타냈고, 맘이 닫히고 있다는걸 얘기하고 있었던게 아니었을까. 다만 주의깊지 못하고, 한편으론 애써 모른척 간과했던건 아니었을까. 행여 이걸 환경적인거라고 물고 늘어져버릴 몇몇의 입들이 생각나서. 

 언젠가는 놀이터에서 한 아이가 부모님과 자동차를 가지고 와서 놀자, 그걸 보던 지민이가 자랑처럼 말했다.

- 아빠집에도 자동차 있다.

 아이들에게는 우리 집이 아니라 누군가의 소유가 된 집의 명칭만 남았을 뿐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집'이라고 해왔던 말을 잃어버린 아이들에 대해서 난,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의기양양하게 그래도 아빠집엔 자동차가 있다며 우기던 지민이는 다른 어느날, 자신에게 '우리 집'이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한부모 가정보다 더 불편한 사실은 사람들의 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건 자주 자신의 정체를 의심해야하는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야하는 순간이고, 순간의 쌓임은 아이들 각자를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우울하게 할지 모를 예측할 수도 없는 미래의 얘기일지도 모르니까.

 정상성이란 범주가 없다고, 그건 환상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생각 자체가 환상이었다.

 지희와 지민이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내 치기는 당분간 사용을 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아이를 위해 희생한다거나 사력을 다한다는 거창함은 아니다. 다만, 부족함이 과잉으로 읽혀 아이들의 맘을 다치게 하기보다는 시행착오를 조금 줄인 건강함으로 대해야겠다는 것 정도. 

 지희는 병원에 다니면서 화장실 가는 횟수가 좀 줄었다. 지민인 여전히 활달한 장난꾸러기이고.

 차곡차곡 쌓여가는 일상의 따스한 감각들이 낯설어질 때마다 불안하고, 두려운건 어른인 나도 마찬가지다. (나를 어른이라고 하니까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낯설음이 아이들에겐 즐겁고 유쾌한 상상으로 이어진다면 좋겠다. 아이들의 삶은 나의 바램과는 별개지만, 할 수만 있다면 옆에서 계속 응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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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7-09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어떤 일들에 대해 이해하기도 전에, 우선 납득해야만 한다는 게 참 아픈 일인 것 같아요.
시니에님도 걱정으로 힘드시겠지만, 옥찌들 많이 안아주세요. 더워서, 싫어하려나요? ^^

Arch 2008-07-09 00:12   좋아요 0 | URL
아, 사실 고민되는 페이퍼를 올릴때면 조마조마해요. 이거 가식이 아닐까. 막돼먹은 착한체가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고. 그런데 알스님 말을 들으니까 조금 괜찮아지네요. 지희를 꼬옥 안아주면 제 속에서 자꾸 꿈틀거려서 마구 간지럽죠. 어릴때부터 맡아온 아이 냄새에 주책맞게 콧등이 시큰해지기도하고.^^ 알스님 댓글 참 고마워요.
 

본 이미지는 페이퍼의 내용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밝힙니다. 요새 알콩달콩질이 많이 줄어서. 옥찌의 체크무늬 원피스가 너무 예뻤던 날.

 친척들 모임에서 금기란 없다. 직장이 없으면 없는대로 결혼을 못하면 못하는대로 표적물은 민망함이 없는 무생물처럼 취급이 된다.

 어제 친척 모임에서 모임의 성격에 딱 들어맞는건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나였다. 노총각 친척 오빠까지 이번에 결혼을 해버리니 여자인데다 나이가 차가는 나야말로 아무 때나 나타나는 화제의 핵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요새 난 살까지 쪄버린 상태다.

 얼른 결혼해야지부터 돈을 벌어놓고 시집을 가야한다. 자기는 모르겠지만 그런게 알고 보면 부모한테 불효하는 거란 것까지. 너무 뻔해서 하품이 나올만도한데 당할때마다 어찌나 전투 의지를 치솟게 하는지 지치지도 않고 맞대응을 했다. 하나같이 결혼을 못하더니 애가 독해지나부다란 표정이었지만, 지금 그런거 신경쓰게 생겼어? 잔뜩 악을 품고 다신 모임이고 뭐고 안 나온다고 선포까지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리에 먹을게 다 떨어져서였지만.

 부엌에 가보았다. 그곳에선 새언니랑 친척 언니, 그러니까 친척 모임의 젊은피들이 동동주를 마시고 있었다. 동동주. 어화동동. 동동주에 신 김치를 살짝 싼 머릿고기를 먹고 싶었지만 웬만하면 끼고 싶지 않던 모임에 어거지로 들어앉은게 일테면 앉으면 술이신 아빠를 대신한 고작 대리운전 때문이었기 때문에 꿈도 못꿀 일이었다.

 젊은피들과 이런저런 얘기 끝에 왜 그리들 결혼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둥, 난 결혼이 무섭다는둥, 맨날 뻔한 소리만 한다는둥 아까 못했던 말들의 2절을 읊어대고 있는데 새언니가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들도 결혼해서 행복한 것도 아니면서.

-그치그치.

 그러자 옆에서, 이번에 결혼을 하게 되지만 그동안 노총각 범버꾸 행세 하느라 수많은 걱정과 염려를 한 몸에 받아왔던 오빠가 한마디 했다.

-나도 한 이년동안은 명절 때 집에 안 내려왔잖아. 그 소리 듣기 싫어서.

 오호.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게 아니었구나. 새언니는 한술 더 떴다.

-아가씨. 아예 거짓말을 해버려.

-어떻게?

-남자친구 있다고 하는 거야.

-에이. 그럼 언제 결혼할거냐, 뭐하는 사람이냐, 집안은 어떤지 꼬치꼬치 물을거 아냐.

-사업 준비중이라고해. 자리가 잡혀야 결혼을 할거 같다. 이렇게 둘러대는거지. 아니면 공부한대던가.

-그래서?

-그런 다음에 한 몇 년 지나서 둘이 결혼하려니 하고 있으면 그때 뻥터트리는거야.

-뭘?

-사업 말아먹어서 결혼이 무기한으로 연기됐다고.

-그런 다음엔?

 그러자 아구탕의 살을 초장에 살짝 찍어먹던 친척 오빠가 거들었다.

-그때는 나이도 있고 하니까 유부남으로 갈아타면 되지.

 허허. 그들의 터무니없는 말이 그 시간의 피크였고, 뒷맛이 알싸한게 오래오래 남을 것 같았지만 그것보다 내 맘을 동동주 우린 물처럼 맹탕하게 만든건 우리, 별로 다를게 없다는 느낌이었다.

 집에서 결혼해라, 잘 살아라, 애는 언제 낳느냐, 애가 공부는 잘 하느냐. 나는 죽어도 하지 않을 것 같은 말들이 나이 들면서 의식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나올 말들이 되고, 정말 하고 싶은 일보다는 사는 것에 관성이 붙어 어쩌면 그냥 살아가게 될지도 모를 어느 날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지 않다는 느낌. 언니와 오빠가 내 나이였을 때 나와 마찬가지로 어른들의 잔소리를 피해 나만의 공간, 나만의 것들을 자꾸 찾게 되었을지도 몰랐겠단 상상. 때가 묻는게 아니라 세월의 움이 자라나고, 그 안에서 유머를 잃지 않았구나란 이 정도 나이 먹어서 느끼는 풋내나는 동질감.

 극악을 떨 필요도 어깃장을 놓을 이유도 없었다. 잠깐 웃어줘도 좋고, 딴청을 피워도 됐다. 어른들은 내 안에 어떤 싹이 있는지 다 알고 계시니까. 나는 가끔 우스개를 늘어놓거나 남자 앞에선 죽었다깨나도 안 나오는 애교로 어른들의 뭉친 근육을 푸는 수 밖에.

 그런데 이게 또 내 전문이니까 부지런히 전문 분야에 몰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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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7-06 0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꽤 찼는데도 시집 안 가냔 성화가 안 들리는 것은, 내 위로 나보다 훨씬 꽉 찬 언니가 버티고 있는 까닭이지요.
뭐, 내가 최전방에 서도 좋으니까 제발 시집 가주는 게 더 간절한 소원이긴 하지만요^^;;;

Arch 2008-07-07 22:03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슬프긴 하지만 그게 좋은 방패막이 되기도 해요.^^ 결혼, 꼭 해야하는거 아니잖아요. 꽉 찬 언니도 나름 생각이 있을거라고 비혼하고싶은 일인으로서 항변 해봐요.

순오기 2008-07-06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나도 스물일곱까진 오빠가 버티고 있어서 그래도 나았어요~ 스물아홉에 결혼했고요.^^
어른들은 저런 말 할 일 없으면 또 뭔소리를 짜낼까? 이제는 나도 저런 어른들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고욧!ㅜㅜ

Arch 2008-07-07 22:0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강하게 어필하진 않을거라고 믿는다구욧!
 

 배가 ET처럼 나왔다. 그런데도 난 지금의 몸이 내 인생에서 제일 좋다. 배가 나와서 좋다기 보다는 내 몸을 인정하기로 했으니까. 이제 ET배라고 놀리면 더 내밀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줘야겠다. 스티븐 스필버그 뺨치는 환상의 셀룰라이트 세계로 초대해요.

 쟤도 있는데 내 똥배야 하찮지. 남에게 위안도 주니 일석이조다.

 예전엔 푼수라거나 촌스럽단 소릴 들으면 무진장 화를 냈다. 듣기 싫었으니까. 싫어서 발악을 한다고 그들이 조심하는건 아니었다. 너무 재미있는 먹잇감. 발끈녀. 왜 발끈했지? 진짜 푼수인데다 촌스러웠기 때문이다. 조금 촌스럽거나 약간 푼수였다면 뭐 그런걸로 놀릴까하고 말 것을 진짜인걸 생것으로 알아차리니까 낯설었다. 낯선데다 듣기 싫어서 생지랄을 했던거다.

 지금은 그냥 인정이다.

 대세는 인정. 인정하면 사람 대하기가 한뼘 정도 쉬워진다. 그래도 여전히 어려운거 투성이지만. 배가 나왔구나. 인정. 점이 참 많구나. 인정. 이젠 늙었구나. 그럼 인정. 팔뚝살 봐. 인정. 넌 왜 그 모양이냐. 그러게. 인정. 다 인정하는건 아니지만 바로 반발하기보다는 한꺼풀 인정하고 들어선다. 우선 그의 말을 찬찬히 들어본다. 대개는 그냥 해보는 소리거나 발끈녀의 과거를 추억하려는 수작인걸 이젠 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예쁘고 멋지단 생각을 해도 대개는 싫은 소리에 인정을 한다.

 듣기 싫은 소리 뿐만 아니라 칭찬에도 인정 모드다. 오늘 예뻐보인다거나 살이 빠졌다는 얘기에 쉽게 수긍하는 편이다. 정말 그래서 그렇다고 하기보단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거라는걸 알아서이다. 그런데 그게 참 재미있다. 칭찬에 인색하고 받는 것에 어색해하는 나로선 좀 간지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엔 바득바득 그렇지 않다고 하거나 증거를 대라고 상대를 협박했었다. 그냥 해본 소린데 죽자고 덤빈 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마워한다. 실없을지 모를 그의 말에 내가 잠시나마 기분이 좋아졌으니까. 잘 안 나오지만 나도 가끔은 칭찬을 한다. 

 와. 오늘 정말... 세수하고 나왔네.

 아직 칭찬 초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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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공주 2008-07-05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이 글 재미있어요.

Arch 2008-07-05 22:57   좋아요 0 | URL
도넛공주님. 저도 누군가를 웃길 수 있다니.ㅋ

hnine 2008-07-05 0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대에 벌써 이런 요령을 터득하시면 너무 앞서가시는거 아닙니까? 인정하면서 사는 요령이요. ^^

Arch 2008-07-05 22:58   좋아요 0 | URL
hnine님, 아, 뭐 그렇기까지한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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