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ET처럼 나왔다. 그런데도 난 지금의 몸이 내 인생에서 제일 좋다. 배가 나와서 좋다기 보다는 내 몸을 인정하기로 했으니까. 이제 ET배라고 놀리면 더 내밀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줘야겠다. 스티븐 스필버그 뺨치는 환상의 셀룰라이트 세계로 초대해요.

 쟤도 있는데 내 똥배야 하찮지. 남에게 위안도 주니 일석이조다.

 예전엔 푼수라거나 촌스럽단 소릴 들으면 무진장 화를 냈다. 듣기 싫었으니까. 싫어서 발악을 한다고 그들이 조심하는건 아니었다. 너무 재미있는 먹잇감. 발끈녀. 왜 발끈했지? 진짜 푼수인데다 촌스러웠기 때문이다. 조금 촌스럽거나 약간 푼수였다면 뭐 그런걸로 놀릴까하고 말 것을 진짜인걸 생것으로 알아차리니까 낯설었다. 낯선데다 듣기 싫어서 생지랄을 했던거다.

 지금은 그냥 인정이다.

 대세는 인정. 인정하면 사람 대하기가 한뼘 정도 쉬워진다. 그래도 여전히 어려운거 투성이지만. 배가 나왔구나. 인정. 점이 참 많구나. 인정. 이젠 늙었구나. 그럼 인정. 팔뚝살 봐. 인정. 넌 왜 그 모양이냐. 그러게. 인정. 다 인정하는건 아니지만 바로 반발하기보다는 한꺼풀 인정하고 들어선다. 우선 그의 말을 찬찬히 들어본다. 대개는 그냥 해보는 소리거나 발끈녀의 과거를 추억하려는 수작인걸 이젠 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예쁘고 멋지단 생각을 해도 대개는 싫은 소리에 인정을 한다.

 듣기 싫은 소리 뿐만 아니라 칭찬에도 인정 모드다. 오늘 예뻐보인다거나 살이 빠졌다는 얘기에 쉽게 수긍하는 편이다. 정말 그래서 그렇다고 하기보단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거라는걸 알아서이다. 그런데 그게 참 재미있다. 칭찬에 인색하고 받는 것에 어색해하는 나로선 좀 간지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엔 바득바득 그렇지 않다고 하거나 증거를 대라고 상대를 협박했었다. 그냥 해본 소린데 죽자고 덤빈 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마워한다. 실없을지 모를 그의 말에 내가 잠시나마 기분이 좋아졌으니까. 잘 안 나오지만 나도 가끔은 칭찬을 한다. 

 와. 오늘 정말... 세수하고 나왔네.

 아직 칭찬 초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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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공주 2008-07-05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이 글 재미있어요.

Arch 2008-07-05 22:57   좋아요 0 | URL
도넛공주님. 저도 누군가를 웃길 수 있다니.ㅋ

hnine 2008-07-05 0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대에 벌써 이런 요령을 터득하시면 너무 앞서가시는거 아닙니까? 인정하면서 사는 요령이요. ^^

Arch 2008-07-05 22:58   좋아요 0 | URL
hnine님, 아, 뭐 그렇기까지한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