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일도 있고 집안 일도 밀려선 맘이 조급한 날, 친구까지 오랜만에 찾아온터라 정신이 없었다. 평소에는 지희랑 숙제하고, 같이 두런두런 얘기 나누다 책 읽고 잤는데 그날은 친구 신경쓰랴 애기들 돌보랴 가끔 일어나는 몸이 두개라도 소용없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

 정말 해선 안 되는 일인데 몰아내듯 아이들을 방으로 들여보내 자라며 엄포를 놨다. 아이들이 자는 틈을 타서 친구 마중을 나가려고 한거였는데.

 아파트 입구에서 친구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보내려고 하는데 먼 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지희랑 지민이가 잠옷 차림으로 엄마, 이모를 부르며 계단을 내려오는게 보였다. 악덕 이모가 된게 친구한테 창피하기도 하고, 지금 내가 무슨짓을 하는건지 참담하기도 해서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하고선 아이들을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 미안함에서 당황스러움으로 조금 화가 나기도 했지만, 내 불찰을 생각하니 답답하고 미안해서 한참동안 자는 아이들 곁을 지키다 방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그날은 그리고 그날의 기억들은 조금씩 옅어질거라 생각했는데,

 얼마 전부터 지희가 하루에도 몇번씩 화장실을 가고 있다.

 아마 그날 이후부터 인 것 같다.

 항상 떠들고 장난쳐서 아이들에게 드러나는 변화를 못느꼈지만, 아마 오래 전부터 아이들은 맘이 불안하다는걸 나타냈고, 맘이 닫히고 있다는걸 얘기하고 있었던게 아니었을까. 다만 주의깊지 못하고, 한편으론 애써 모른척 간과했던건 아니었을까. 행여 이걸 환경적인거라고 물고 늘어져버릴 몇몇의 입들이 생각나서. 

 언젠가는 놀이터에서 한 아이가 부모님과 자동차를 가지고 와서 놀자, 그걸 보던 지민이가 자랑처럼 말했다.

- 아빠집에도 자동차 있다.

 아이들에게는 우리 집이 아니라 누군가의 소유가 된 집의 명칭만 남았을 뿐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집'이라고 해왔던 말을 잃어버린 아이들에 대해서 난,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의기양양하게 그래도 아빠집엔 자동차가 있다며 우기던 지민이는 다른 어느날, 자신에게 '우리 집'이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한부모 가정보다 더 불편한 사실은 사람들의 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건 자주 자신의 정체를 의심해야하는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야하는 순간이고, 순간의 쌓임은 아이들 각자를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우울하게 할지 모를 예측할 수도 없는 미래의 얘기일지도 모르니까.

 정상성이란 범주가 없다고, 그건 환상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생각 자체가 환상이었다.

 지희와 지민이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내 치기는 당분간 사용을 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아이를 위해 희생한다거나 사력을 다한다는 거창함은 아니다. 다만, 부족함이 과잉으로 읽혀 아이들의 맘을 다치게 하기보다는 시행착오를 조금 줄인 건강함으로 대해야겠다는 것 정도. 

 지희는 병원에 다니면서 화장실 가는 횟수가 좀 줄었다. 지민인 여전히 활달한 장난꾸러기이고.

 차곡차곡 쌓여가는 일상의 따스한 감각들이 낯설어질 때마다 불안하고, 두려운건 어른인 나도 마찬가지다. (나를 어른이라고 하니까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낯설음이 아이들에겐 즐겁고 유쾌한 상상으로 이어진다면 좋겠다. 아이들의 삶은 나의 바램과는 별개지만, 할 수만 있다면 옆에서 계속 응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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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7-09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어떤 일들에 대해 이해하기도 전에, 우선 납득해야만 한다는 게 참 아픈 일인 것 같아요.
시니에님도 걱정으로 힘드시겠지만, 옥찌들 많이 안아주세요. 더워서, 싫어하려나요? ^^

Arch 2008-07-09 00:12   좋아요 0 | URL
아, 사실 고민되는 페이퍼를 올릴때면 조마조마해요. 이거 가식이 아닐까. 막돼먹은 착한체가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고. 그런데 알스님 말을 들으니까 조금 괜찮아지네요. 지희를 꼬옥 안아주면 제 속에서 자꾸 꿈틀거려서 마구 간지럽죠. 어릴때부터 맡아온 아이 냄새에 주책맞게 콧등이 시큰해지기도하고.^^ 알스님 댓글 참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