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열이 있어서 병원에 다녀왔는데 밤새 얼음 찜질을 해서 아침엔 열이 좀 내린 지희. 열도 좀 내렸고, 괜찮은 것 같았는데 괜히 좀 쉬고 싶었나보다.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금세 배를 움켜쥐고 엄살이 분명한 표정으로 어린이집을 못가겠다고 했다. 하루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러마 하고선 난 밥 챙기는데 지희가 뭔가를 부지런히 적고 있었다.

-옥찌, 뭐하는거야?




편지라는 것

 보니까, 선생님께 편지를 쓴거였다. 가끔 사랑한다며 편지를 보내긴 했지만, 어떤 내용이 있는 편지는 그야말로 최초. 반가워서 사진을 찍었는데 옥찌는 그게 또 신이 났는지 나중에 하나 더 써주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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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07-10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 귀여워 정말...
제가 댓글을 달지 않을 수가 없다니까요.

라주미힌 2008-07-10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귀여워.

Arch 2008-07-10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귀여워서 볼을 깨물려다가 제지를 당했습니다. 이거 아무리 수정을 해도 편지 하나는 안 붙여지네요. 페이퍼가 졸지에 두개나. 양으로 승부하려는게냐!
 

 얼마 전에 열렸던 체육대회 뒤풀이로 사람들끼리 모여서 일번지라는데를 갔더랬다. 일번지로 말할 것 같으면 중년의 로망, 부킹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번지에서 우리의 꽃언니와(꽃처럼 예쁘다와는 거리가 먼, 단순히 이름에 '화'자가 들어있어서) 메아리 언니가 오로지 구강으로만 일궈낸 일화이다.

꽃- 아니, 내가 춤을 요로코름 추니까(몸을 이상하게 비틀었다. 순간, 발작인줄 알고, 발작 대처요령이 휘리릭) 헬로우 사람이 눈을 찡긋하면서 날 막 꼬시더라구. 그런데 내가 영어가 돼야 말이지. 그래서 메아리를 데리고 갔지.

 메아리 언니는 대답 뿐 아니라 '체'도 수준급되시겠다.

꽃- 그런데 얘가 말을 못해. 영어 잘한다고 해서 데려갔는데.

메아리 - 언니, 내가 말을 못한게 아니라 둘이 대화 잘 하고 있어서 가만히 있었던거야. 언니 화장실 갔다온 사이에 다 물었다고. 형제가 몇이냐고 했더니 육남매라고 하고(무슨 다방용 질문도 아니고), 뭐하러 한국에 왔느냐, 왜 1년이나 됐는데 한국말을 잘 못하느냐 다 물었다니까.(여기서 바로 영어 문장이 떠오른다면 당신은 에리뜨)

꽃- 야는 왜 내가 화장실 갔을 때 얘기를 하고 그랴. 순 맹탕이라니께. 그래서 내가 그랬지.

프랜드, 잉글리쉬, 아임 낫. (내 친구, 나보다 영어 못하네)

나- 그래서 꽃 언니는 뭐라고 했는데?

꽃- 나야, 뭐

 유아, 일번지 부킹 킬러?

 유, 매니매니 나이트, 매니매니 레이디 오케이?

 그랬더니 그 사람이 고개를 저으면서 아니라고 하더라고.

나- 언니, 그래도 용하네. 말이 통하고.

꽃- 내가 외국 사람들한테도 먹히는 얼굴인가봐.

 아, 사진 올려주고 싶다. 과연 '도'인지 사진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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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8-07-10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는'일지도 몰라요 ^^;;

Arch 2008-07-10 12:44   좋아요 0 | URL
내 말이 그말이에요.
 


 어린이집에 다녀온 지희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주로 오물락조물락해서 만들기 한걸 보여주곤 했는데 오늘은 뭘 그렸나보다.

-옥찌 뭐야?

-응, 봐봐.





 사랑한다는 말과 분홍색을 좋아하는 지희답게 핑크표 그림들이 슝슝. 지희 하는짓이, 그림이 사랑스러워서 뿅반해있는데 이건 타고난 질투의 화신인지라 그냥 넘기질 못했다.

 -옥찌, 이모건?

-아, 이모. 이모.

평소의 녀석답지 않게 옥찌는 약간 당황하더니 금세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는데

  

 -에이 뭐야, 이모건 사랑해요도 없고.

그러자 옥찌 아주 의기양양하게

-그래도 이모건 두개잖아.

 그렇군. 두개구나. 두개에서 위안을 얻고 있는데 애들 가방에서 수저 꺼내면서 본 결과 저런게 수십개는 됐다. 대체 이모가 몇명인거야. 어디서 오린걸 이모꺼라고 주는 센스는 누구한테 배운건지.

 갑자기 아무리 잘해도 애들은 부모 밖에 모른단 엄마의 악담이 생각났고, 지희한테 나는 뭘까란 존재론적 위기감도 좀 있었지만 냉큼 내 품에 안기는 요녀석을 보면서 위기는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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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7-10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애 본건 공이 없다는 말도 있어요. 아무리 기름종이에 적어놔도 소용 없다지요!ㅋㅋㅋ

무스탕 2008-07-10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기, 그런거 없습니다. 그냥 사랑하면 되는거지요 ^^

Arch 2008-07-10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요. 기름종이에 써놓으면 피지 닦을걸요.(이건 뮝~) 무스탕님 그러니까요.
 

# 1

 예전에 회사다닐 때.

 점심 먹을 때면 여자가 많은 곳이면 으례 빠지지 않는 남자친구 얘기가 한창이었다.

 여자1 -음, 우리 오빠가 출장이 많거든. 출장 갔다오면 무슨 선물을 사줄까, 다음에 같이 가자 이러면서 좀 귀찮게해.

 그러니까 여자1은 지금 사귀는 오빠 자랑질 중이었던 것이다. 얘기를 듣던 사람들은 왜 자기 남자친구는 출장이란게 없는지, 대체 무슨 선물을 사다주는지 나름대로 눈치껏 상상의 나래를 피고 있는데, 평소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개념을 팍팍 집어삼키시는 개념녀께서 한마디 던져주셨다.

개념녀- 어머, 너네 오빠 열쇠 수리공이야? 왜그렇게 출장을 많이 다녀?

다들- 야야 (만류하지만 은근 즐기는 분위기)

개념녀- 아니 그렇잖아. 출장도 많고. 니네 모르나본데 문따주는게 돈 많이 번다고. 아니면 에어콘 놔주고 다니는 사람?

 여자1은 돌씹듯이 꾸역꾸역 밥을 먹었고, 다들 좀 고소하단 분위기였다. 물론 개념녀의 말이 열쇠수리공 총각 이하 아저씨들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었음을 밝히는바다.

 

#2

 어제, 같이 공부하는 언니 중 한분이 아구탕 얘기를 해서 우리 아구탕 언제 먹으러갈까, 아구찜이 낫지 않겠어에서 누가 뭘 준비하냐 어쩌냐 쿵짝이 맞아서 맘이 콩밭에 가 있는데

 메아리란 별명을 갖고 있는 김언니가 한마디 거들었다.

-나도 아구탕 좋아하는데.

 그러자 맥을 잘 짚어내는 M이 바로 맞받아쳤다.

-여기, 언니가 아구탕 좋아하는거 궁금해하는 사람 없는데.

 다들 웃고, 메아리 언니도 어설프게 호응을 하는데 정말 웃는게 웃는게 아닌 표정이 되어버렸다.

 tip. 메아리 언니가 메아리 언니인 이유 : 수업 시간마다 누가 대답하거나 선생님이 학생들한테 물은 후 아무 대답도 없어서 알아서 대답을 하면 그걸 꼭 따라해서 붙여질 별명. 주위 사람은 시끄럽다고, 본인 자신은 수업에 집중 한다고 뿌듯해해서  상당한 괴리감을 불러일으키지만 모두들 다 아는데 본인만 전혀 눈치를 못채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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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7-09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씩 저리 콱콱 쏴주는 사람이 있어야 가심에 응어리 진것도 풀리고 그러거든여~~ㅋㅋ
(이름하여 사무실 소방수)

Arch 2008-07-09 20:56   좋아요 0 | URL
소방수 물발이 너무 센건 아니구요? 보는 나야 즐겁지만 당하는 사람은 보통 정신으론 버티기 힘들거 같단 생각이. 공공의 적이라면 또 모르겠으나.

hnine 2008-07-09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메아리 언니 무안했겠네요.
여자1에 대한 응수에 대해서는 뭐 의의 없습니다만.

Arch 2008-07-09 20:58   좋아요 0 | URL
메아리 언니는 가끔 눈치를 밥말아 드셔서 잘 모르세요. 열쇠 수리공은 괜찮았단 말이군요. 흠. 센게 먹혀요.ㅋ
 

 전날 모기와 사투를 벌이느라 새벽잠을 몽땅 날려먹어 아침부터 해롱대고 있는데 옥찌가 내 방으로 와선 이제 일어날때 안 됐냐며 날 흔들어 깨웠다.

-조금만 더 자고 싶은데.

-오늘 안 나가?

-지금 몇시야?

-작은 바늘이 7에 가있는데.

-긴 바늘은?

-3

-아, 일어나야겠다.

-이모, 밥은?

-밥 먹어야지.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밥 사수)

-내가 수저 놔줄게. 세수하고 와.

-근데 옥찌, 너 열 나는거 같아.

-응. 목도 아프고, 이마가 뜨거워.

-약 먹을까?

-밥 먹고.

 즈히 엄마가 밥상을 차리는 동안 수저랑 젖가락을 놓던 옥찌는 식탁에 밥이 놓이자마자 부지런히 밥을 먹는다. 입맛도 좋지, 아침인데. 건성으로 밥을 뜨자 옥찌가 한마디 거들었다.

-이모, 엄마가 밥 빨리 먹으면 콘푸라이트 준댔어.

-어.

 지희 눈이 반짝인다. 과자를 너무 좋아하는거다. 밥을 다 먹고, 도시락 챙겨서 나가려다 주전부리로 콘푸라이트를 좀 싸가려고 하는데 지희가 거든다.

-이모, 우유 하나 가져가지.

 우유는 안 챙겨나왔지만, 아침부터 조그만 녀석 덕분에 괜히 입가에 웃음을 흘리는 시니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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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8-07-09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우는 보람이 있다니까요!!

Arch 2008-07-09 11:07   좋아요 0 | URL
헤헤, 그렇죠? 괜히 제가 뿌듯해져서 원.

hnine 2008-07-09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래서 딸 있어야 한다고들 그러지요.
평소에 이모가 자기를 챙겨주듯이 하는가보군요.

Arch 2008-07-09 20:59   좋아요 0 | URL
아, 그건 잘 모르겠어요. 아닌 것 같은데.ㅋ 제가 다정다감한 성격이 못되어놔서. 사실 애교는 둘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