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척 오빠랑 (새)언니, 동생과 고기를 구워먹었다. 참숯은 아니지만 불을 기가 막히게 조절해서 고기 맛이 좋았다. 아니지, 고기는 거의 탔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동생 집에서 정신없이 먹는 조카들을 옆에 두고 있다보니 맛나게 느껴진거지. 한잔 두잔 술잔을 기울이고 저물어가는 풍경을 지켜보며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워나갔다. 가부장의 때를 못벗은 오빠는 언니가 아침밥을 안 챙겨준다는 한탄을 했다. 나이가 몇갠데 아직도 밥을 못챙겨먹냐고 뭐라고 했더니 또 뭐라뭐라하고. 이야기는 산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그칠줄 몰랐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누군가의 말을 끊고 얘기를 하는걸 인식했다. 그러길 한 번, 두 번, 세 번. 인지한 것만 세 번이었지 아마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약간 취했고 흥겨웠다. 언니, 오빠에게 난 항상 똑소리나고 야무진 동생이고 동생에겐 믿음직한 언니였으니까 좀 자신했을까. 내가 대화 도중에 끼어들어도 좀 봐주겠지란. 아무도 내가 말하는 도중 끼어드는걸 제지하지 않았고 불쾌한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눈치챘다. 꼴같지 않은 짓을 한다는 생각에 아득해졌다. 내가 뭐라고 사람들 말을 가로채고 말을 끊는단 말인가. 며칠 뒤 동생을 만나서 내가 그랬노라고 고했다. 한소리 들을 줄 알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동생 왈, 언니가 아기랑 있다 보니 얘기가 하고 싶었나보네.

 

 한다. 독설이라면 나 못지 않은 동생이 선뜻 저렇게 말해주니까 고맙고 푸근하고 그렇다고 막 고맙다고 하긴 쑥쓰러웠다.

 

 언젠가 동생 지갑에서 소원을 적어놓은 종이를 본적이 있다. 가족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하고 뭐 사고 싶고 뭐 하고 싶다고 써놓은 말미에 언니에게 30평대 집을 사주고 옷이랑 화장품, 책을 사주고 싶다는 글이 적혀있었다. 맨날 얼굴 방치하지 말라고 구박하고 정리정돈 좀 하라고 한소리 하는 동생.

 

 동생은 요즘 수시로 찾아와 놀다간다. 아기가 입을 삐죽거리면서 우는 게 이뻐 죽겠다며 발을 물어대는 통에 접근금지라고 협박했지만 짠하고 고마운 맘이 들 때가 많다. 언니 심심할까봐 와서 고스톱 치고(거의 동생이 따서 거지될 지경) 아기랑 한참을 놀다간다. 혼자 먹는 밥은 아무리 맛난 반찬이 있어도 맛없는데 동생 덕에 대충 볶은 밥도 맛나게 먹는다.

 

 아기 보는 게 한결 수월하고 행복한 건 옆에서 지치지 않게 도와주는 동생이 있어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6-05-12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18 1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